나는 무수히 발원한다
김기정
PARAN IS 5
2023년 9월 20일 발간
정가 12,000원
B6(128×208)
148쪽
ISBN 979-11-91897-63-0 03810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신간 소개
통영더러 시를 쓰라 말하면 돌아앉아 그냥 말없이 울지 않을까
[나는 무수히 발원한다]는 김기정 시인의 세 번째 신작 시집으로, 「나뭇잎은 물결을 탓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시」, 「통영 시작(詩作) 1」 등 62편의 시가 실려 있다.
김기정 시인은 1956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으며,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코네티컷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 [시와 현장]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꿈꾸는 평화] [귀향] [나는 무수히 발원한다], 학술서 [김기정의 전략 디자이닝] [한국 외교 전략의 역사와 과제] [외교 정책 공부의 기초] 등, 산문집 [1800자의 시대 스케치] [풍경을 담다] [생각의 최전선] 등을 썼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사회적 협동조합인 미들클래스소사이어티(MCS) 이사장을 맡고 있다.
“「날개를 달고 싶다」에서 우선 주목할 대목은 두 개의 종착지이다. 한쪽엔 “이승의 인연들이/더 깊어지지 못하는/끄트머리”가 있다. 또 한쪽엔 ‘풍경의 끝’이 있다. 그리고 이 시에서 두 끝은 포개어져 있다. 인간사의 끝에서 자연을 펼쳐 놓거나 자연이 인간의 등을 떠미는 것이 아니라 극점에서 이 둘은 “꿰어져 있”다. 빗금처럼 경계에 서 있던 화자는 이제 양쪽 끝이 수렴하며 포개어진 점 위에 서 있다. 인간의 한계와 자연의 영원이 아니라 풍경으로 분절된 번민과 세사의 인연들이 낳는 회오의 극점에 화자는 서 있다. 세 가지 길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 인연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 이것은 회군이다. 둘째, 자연 속으로 투신하는 것. 이것은 체념이 된 위안이다. 세 번째 길은 극점에서 솟는 것이다. 세 번째 선택지는 논리적으로, 시적으로 가능하다. 논리로서 그것은 비약이되 시적으로 그것은 ‘갱생’을 지시한다. 우리는 이 ‘갱생’의 실정성들을 구체적으로 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이것이 시집 내에서 여러 번 표현되는 상승 지향의 의지와 관계됨은 틀림없다. 이 상승은 ‘갱생’을 위한 것이고 ‘갱생’은 상승을 위한 것이다. 사랑, 평화, 용서, 관용과 같은 추상적 가치들이 ‘갱생’의 조건과 상승의 고도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세목들보다는 의지 그 자체이다. 빗금으로 구획된 사회와 자연을 매개하는 것은 결국 소외된 내적 자연을 재발견함으로써 가능할 것인데, [공기와 꿈]과 같은 저서에서 가스통 바슐라르 같은 이가 보여 주었듯이, 상승적 기운을 북돋는 가장 ‘효율적’ 기관이 예술이며 특히 시이다. 살펴보았듯, 김기정 시인의 언어는 빗금에서 한 점으로 수렴되었다가 상승하여 자취를 남기면서, “그래도” 아직 남은 희망을 환기하고 있다(「아름다운 시」).” (이상 조강석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 추천사
김기정 시집을 읽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주제’로 읽는 것이다. 독자는 현실의 억압에 의연히 인내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영웅이 아니다. 그는 현실의 횡포가 두렵다. 그러나 “두려움은 마음의 일,/마음에서 생각이 나오고/상상은 비로소 넉넉해”진다(「외교 유연성」). 그는 루스벨트처럼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임을 깨친다. 이로부터 두 번째 독법이 나온다. 풍경을 음미하는 것이다. 시인은 인내를 상상으로 치환하고 스치는 세상의 물상들에서 스스로 생동하는 힘을 찾아낸다. 과연 “물결을 탓하지 않는” “나뭇잎”을 보라(「나뭇잎은 물결을 탓하지 않는다」). 세파를 생의 리듬으로 바꾸고 있지 아니한가? 그러니 시시각각 삶이 솟아난다. “문을 여는 곳곳마다/출발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한 걸음」). 다른 시인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우리 시인은 마침내 “궁수를 비웃는” “구름의 왕자”로(보들레르)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정과리(문학평론가)
•― 시인의 말
사람 목숨이 유한한 것은 참 못할(mortal) 짓이다.
사는 일은 소풍이고 세상 구경이라 했는데
이번 생은 헛물켠 일이 더 많다.
1899년생 우리 할머니는 ‘제왕님네’를 거푸 부르며
남의 눈에 꽃이 되고 잎이 되라 했는데
할머니 말씀만 홀로 꽃이 되었다.
세상이 못생겨진 이유는 무지와 탐욕, 분노 조절 장애 때문이다.
지식은 불안하고 행동보다 게으르다.
이름 속에 나를 붙들고 살았으나
비겁함이 지혜를 차용하여 함께 번식했다.
부질없을 것을 알고 있으나 그래도 희망을 발원한다.
오늘은 어제이고, 내일이므로.
•― 저자 소개
김기정(金基正)
1956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코네티컷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 [시와 현장]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꿈꾸는 평화] [귀향] [나는 무수히 발원한다], 학술서 [김기정의 전략 디자이닝] [한국 외교 전략의 역사와 과제] [외교 정책 공부의 기초] 등, 산문집 [1800자의 시대 스케치] [풍경을 담다] [생각의 최전선] 등을 썼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사회적 협동조합인 미들클래스소사이어티(MCS) 이사장을 맡고 있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한산도 앞바다 – 11
통영, 비바람 불 때 – 12
손잡은 섬 – 14
잠자는 섬 – 16
분주해진 아침 바다 – 18
통영 시작(詩作) 1 – 20
통영 시작(詩作) 2 – 22
미륵산 기원(祈願) – 24
뱃머리 풍경 – 26
코펜하겐에서 통영으로 – 28
백석 시비 앞에서 – 30
말라가의 전혁림 – 32
도다리쑥국 – 34
제주 바닷가 – 36
해안선 – 37
제2부
21세기 번개 – 41
창으로 피고 지는 꽃 – 42
카메라 기법 – 44
기하학적 사랑 – 46
헤어질 결심 – 48
약속 시간 – 49
미로 – 50
착륙 준비 – 52
기다림 – 54
이모티콘 – 56
입속의 가을별 – 57
제3부
노란 배—2014년 오월 시청 앞 광장 – 61
바코드 – 62
외교 유연성 – 63
기내에서 비빔밥을 맛있게 먹은 이유 – 66
해양정치론 – 68
세력균형론—구성주의적 해제 – 70
지정학 유감(遺憾) – 72
거짓말의 정치학 – 74
진지전 – 76
북구의 새벽 – 78
야간 비행 – 80
알 수 없는 일 – 82
지혜롭게 혹은 비겁하게 – 84
채도 낮게 – 86
하루만, 딱 하루만 – 88
깨어 있는 시민 – 90
아름다운 시 – 92
제4부
새벽별 – 97
나뭇잎은 물결을 탓하지 않는다 – 98
한 걸음 – 100
신작로 – 102
보청기 – 104
낡은 단어 – 106
멀리서 산을 보다 – 108
울음 – 110
시간 계산법 – 112
길 – 114
갱생을 위한 이륙 – 116
습자(習字) 1 – 118
습자(習字) 2 – 120
미분(微分) – 122
불만 – 124
겨울 여행 – 126
날개를 달고 싶다 – 128
차례 – 130
발걸음 – 131
해설 조강석 길 끝에서 – 133
•― 시집 속의 시 세 편
통영 시작(詩作) 1
통영이 시를 쓴다면
목쉰
뱃고동 같은 시를 쓸 것이다.
낮고 길게
울고 울며
나를 애절하게 부르는 소리,
나는 흔쾌히 대답을 못 하는데
그것조차 알면서
나를 부르는 소리.
내가 소리를
안으로 삼키려 할 때마다
바다 위 낙조는
더 벌겋게 달아올랐다.
내 탓이다.
너를 만지지 못한 것은
오로지 나의 게으름 탓이다.
너는 지쳐 가며 시를 쓰고
나는 눈물로 읽어야 한다. ■
나뭇잎은 물결을 탓하지 않는다
나뭇잎 하나
냇물 위에 누워 하늘을 본다.
절반쯤 하늘과 몸이 섞인 구름은
농도가 적절하고
햇살은 마침 싱싱하다.
찰랑찰랑
등 떠밀려 내려갈 시간이다.
물살들이 서로 부대끼며
낮은 신음 소리 내는 걸 보니
내가 흘러야 할 시간이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나뭇잎은 물결을 탓하지 않는다.
하늘도 바람도 탓하기 힘들다.
내가 서둘러 움직이려 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살아가는 일은
부름을 받고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찬찬히 흘러가는 일이다. ■
아름다운 시
높고 맑은 하늘,
여린 담록 잎이 단풍으로
묵직하게 익어 갔던 일,
이런 풍경들을 아름다운 언어로
기억해 두고 싶었다.
산 위에서 봤던 풍경화와
시장 바닥 인물화 사이에는
슬픈 간격이 있다.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히며 사는 곳에는
늘 바람이 불고
불편한 비가 내렸다.
전쟁을 겪지 않았으니
아버지 시대보다 덜 고달팠을까?
징용 공포가 없어도
일상의 평화는 위태로웠다.
정치는 아둔하고
시장은 속되다.
계급이 벌어지고
목숨은 가벼워졌다.
예술의 감동은 반딧불 같아서
눈물 몇 방울이
오래된 습관을 바꾸지는 못한다.
지구별은 아름다우나
별이 안으로 죽어 가니
어디라도 비 오지 않는 날이 없었다.
‘살다 가면 그뿐’
한탄하며 시를 쓴다.
아름다운 언어로 시를 쓰는 일은
고된 숙제와 같다.
원근의 간극이
뒤죽박죽 불완전해서
더욱 고되다.
그래도
아름다운 시를 써야 한다고
울며 주장하는 일은
더러운 것들을 버리고 싶고,
버려야 하는
얄궂은 희망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