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분옥할머니초당순두부
그 유명한 초당두부마을에 왔으니 두부를 한번 먹어봐야겠다. 강릉음식문화와 초당두부맛을 잘 보여주는 집으로 가 볼 생각으로 찾은 집이다. 역시 두부찌개 맛만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1.식당얼개
상호 : 고분옥할머니초당순두부
주소 :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308-11
전화 : 033) 652-1897
주요음식 : 두부찌개, 순두부
2. 먹은 음식 : 두부찌개(1인 9,000원)
먹은 날 : 2020.7.10.점심
3. 맛보기
아마 최근에 식당 리모델링을 한 듯, 아담한 가게가 산뜻하고 깔끔한 것이 눈에 띈다. 음식도 그렇다. 차림새도 맛도 산뜻하다. '고분옥'이라는 전통적인 이름, 거기다 할머니라는 친족 호칭까지 더해져 수더분하고 솜씨좋고 인심좋은 음식이라는 이미지하고는 오히려 거리가 있을 정도로 산뜻하다.




오늘의 주요리, 두부찌개다. 두부찌개에는 점수를 한없이 줘도 모자랄 정도로 솜씨와 맛이 제대로인 거 같다. 우선 국물 맛이 깔끔하고 개운하다. 익은 김치를 몇 조각 넣었는데, 물론 그것만으로 국물맛을 내지는 않았겠지만, 김치 고명은 신의 한 수다. 두부김치찌개가 아니고, 두부찌개다. 김치맛을 더해 국물이 산뜻하고 맛이 깊어졌다.
국물에는 김치 외에 가진 재료를 사용해서 맛을 내고,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김치를 더한 거 같은 맛이다. 두부는 웬일인지 오래 끓이지 않아도 국물 맛이 적당히 배이고 부드럽다. 안내판을 보니 100% 국산콩도 아닌데 맛이 좋다. 느타리와 파는 싱싱하여 밭으로 갈 거 같다.
오랜 솜씨, 깊은 손맛이 배여 있는 연륜이 두부찌개 한 냄비에 다 담겨 있다. 두부찌개만을 보고 간다면 후회없을 맛이다. 식당은 메뉴판에서 솜씨가 절반은 드러난다. 이 집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한 우물만 파왔고, 그러는 사이 전문성이 최대화되었다는 것이다. 맛집을 모르겠거든 한 메뉴만을 고집하는 집을 찾으면 실패할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메뉴는 결정에 들이는 시간을 절약해줘서도 좋다. 맛도 이미 결정된 것, 오랫동안의 시간과 노하우가 맛으로 집적된 것을 향유하기만 하면 된다. 두부찌개에서는 그런 전문성과 전통이 충분히 묻어난다.

곁반찬들이다. 반찬은 절기와 상황에 따라서 바뀐다. 오뎅, 김치와 콩비지는 고정 멤버다. 이번에는 미나리와 콩자반, 고추장아찌가 나왔다.

역시 두부 전문점답게 콩비지 맛도 좋다. 비지답게 입에 녹듯 부드러운 식감은 아니다. 까칠하고 간간한 맛이 좋다.



미나리 맛이 좋다. 찌개 고명처럼 싱싱하지는 않지만 김치처럼 간이 잘 배여 있는 무침이다.
섭섭한 건 오히려 김치, 생김치 맛이 기대했던 것만큼 맛이 깊지 않고 표면에 한정되는 맛이다. 젓갈맛이 약해서인가?
4.
그런데 음식을 다 먹고 나서 드는 이 헛헛함은 뭘까. 맛도 있고, 메뉴도 두부여서 거부감도 없이 속도 편한데, 이 허전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전에 한 전주사람에게 물은 적이 있다. 전주음식이 왜 맛있어요? 일단 많이 주잖아요. 반찬도 여러가지 주고, 양도 많이 주고, 먹고 배 고플 일이 없잖아요. 맛은 그 다음이죠. 배 채우다보면 내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다는 생각이 그때서야 드는 거죠.
전주 음식이 유명한 이유는 사실 태반이 인심이다. 맛도 있지만, 맛을 맛으로 느끼게 해줄 푸짐한 인심이 밥상에 담긴다는 거다.
푸짐한 인심을 담고 가격도 내리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을 한다. 서신동 막걸리골목에 가면 그 가격에 어떻게 이렇게 고급진 다양한 찬들이 끝없이 나오는지, 먹으면서도 기적처럼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런 식당이 다른 도시 어느 곳에 있든지 모두 성공할 것이다. 근데 다른 도시에는 왜 이런 집들이 없는 거지?
식당 주인이 말했다. 이 골목 어느 식당도 다른 도시로 못 옮겨갑니다. 우리는 모두 식재료를 공동구매를 해서 가격을 낮추어요. 그런 협동체제 아니면 도저히 이런 가격을 받을 수 없어요.
강릉이 이 정도 문화 배경과 음식 전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주의 명성과의 거리가 먼 것이 바로 상차림에 담긴 인심의 차이 아닐까.
식사를 하면서 나름 정한 원칙이 반찬을 더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혹시 그러다 남으면 낭비와 환경오염이 되고, 스스로 과식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깔끔한? 밥상만으로는 도저히 양을 채울 수 없어 두 번이나 반찬을 요구하였다.
'할머니'의 이미지가 갖는 가게에 대한 기대와도 어긋난다. 뭔가 적극적인 방안을 생각하기를 바란다.


기대와 달리 중국산이 상당히 쓰이고 있다. 하기야 이 정도 손님, 이 정도 가격을 감당해 내려면 한국산 가지고는 힘들 것이다. 오랜 초당마을 전통을 중국산이 흔들어 놓지 않을까, 염려도 되지만 시대가 그런 걸 어쩌겠는가.
지필묵 탓하지 않고 그래도 이 정도 맛을 내는 것보면 상당한 솜씨임이 분명하다.




*이웃한 다른 순두부맛집.
5. 먹은 후
초당두부마을은 우선 입지가 천혜의 조건이다. 경포대 호수와 해수욕장을 끼고 있고, 선교장에서도 멀지 않다. 김시습기념관 등 자잘한 볼것까지 열거하기 시작하면 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이렇게 볼것이 많으니 근처에 온 사람은 반드시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그 유명한 초당마을이 있어 방문객은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고 할 수 있는 동네다. 거꾸로 말하면 식당주인도 반드시 손님을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이어서, 손님도 주인도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기분 좋은 마을이다.
아다시피 초당은 허난설헌, 허균의 부친 허엽의 호다. 허엽이 자신의 집 앞 우물로 만든 두부에 바닷물로 간을 한 것이 맛이 좋아 초당두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동해바다는 서해나 남해보다는 염도가 높아 마그네슘과 칼슘 등의 비중도 높아서 응고제로 쓰기에 좋다. 두부 공장에서는 심해에 파이프를 박아 여전히 동해물을 응고제로 쓴다 한다.
현재 초당두부마을은 1979년부터 몇 대째 두부를 만들던 사람들이 음식점을 내기 시작하여 형성되었고, 1983년에는 현대화된 두부공장이 생겨났다. 지금은 40여가의 식당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부마을은 한눈에 보기에도 요즘같은 코로나 어려운 시절에도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두부집도 다양하여 순두부, 두부전골 등 전통적인 메뉴에서부터 청국장순두부, 짬뽕두부 등으로 요리가 확장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초당 허엽(1517~1580)에서부터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허균도 외가가 있는 이곳에서 성장하여 많은 기념물이 있다. 부자는 여러 공통점이 있는데, 음식과 관련하여 맛을 잘 알았다는 점이 주목된다. 허엽은 초당두부를 만들고, 허균은 도문대작을 지었다. <도문대작>은 허균이 전라도 함열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글로 문집 <성소부부고>에 수록되어 있다.
<도문대작>은 여러 음식물에 대한 간략한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두부에 대한 기록도 있다. "장의문 밖 사람들이 잘 만든다. 말할 수 없이 연하다." 기록이 다른 식품에 비해서도 간단한데, 물론 초당두부에 관한 내용은 없다. 허엽은 초당두부를 만들어 판매까지 해서 문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허균이 문집에 올릴 정도의 수준까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허엽은 서경덕 문하에서 수학했는데, 사후에는 이황 문하에서도 수학했다. 나중 이이와는 이기일원론 때문에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하는데, 사상적 궤적만으로는 일관성이 없어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삶으로 작품으로 세상에 저항을 한 것은 부자가 비슷한 거 같다. 음식에 관한 탐닉까지도 말이다 .
어쨌든 초당의 유명도를 업은 초당두부는 강릉 음식의 최고 명물이 되었다. 가까이는 초당과의 관련보다 6.25당시 어려운 생계를 위해 바닷물로 만든 두부를 만들어 판 아낙들의 공이 더 큰 거 같다. 그러는 동안 세월의 힘이 누적되어 어언 400년이 된 초당두부는 강릉의 아름다운 경관에 다양한 문화적 유산을 빛내는 또하나의 재산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강릉을 문화적인 함의가 깊은 도시로 만들고 있다. 강원도의 힘으로 한국의 힘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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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강원도는 뻘이 없어 젓갈이 빈약한 곳입니다. 춘천에서 나고 자란 저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소금과 새우젓으로 김장김치 간을 맞춘 것 같습니다. 1985년 춘천을 떠나 인천에 살면서 저희 집 김장김치에 까나리젓과 생새우가 추가되었습니다. 대체로 강원도산 김치는 양념보다 배추가 勝해 색깔도 허여멀건하고 맛도 밋밋해, 배추 씹는 맛으로 먹는다고 합니다. 경상도 음식이 독일과 가깝다면, 강원도 음식은 노르웨이와 같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제주도는 김장김치 자체가 없다고 하니, 최하는 면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겠습니다. 젓갈문화 없이도 저만하게 김치 담궈내는 것이 대단한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지역마다 음식 종류의 차이는 물론, 조리법의 차이가 많다는 것을 좀 더 유심히 살펴봐야 할 거 같습니다. 음식지형도를 그리고자 하나 어디까지 봐낼 수 있을지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생각도 들고, 변화도 많다는 생각도 듭니다. 강원도 음식과 노르웨이 음식, 공감이 가는 비교입니다.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