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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02-02)
하나님을 바르게 공경하는 여자들
디모데전서 2장 9-15절
옷차림은 그 사람의 맘가짐과 생각을 반영합니다. 그렇기에 행위와 복장은 결코 신앙과 별개가 아니라 자신의 신앙과 자세를 반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외형적인 모습을 꾸미기보다 신앙고백에 일치하는 선한 행실들로 자신을 적절하게 단정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도 장미란 선수는 여성으로서 아름다운 몸매를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실력으로서 세계적인 선수가 되고 나니깐,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믿음 또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아름답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서 공적인 가르침에 열심인 여자들에게 명령합니다. 앞에서 남자 성도들에 대한 선한 싸움을 언급한 후(2:1-8), 이제는 여자 성도들이 어떻게 선한 싸움을 해야 하는지 바른 자세히 가르쳐 줍니다. 그들은 가르치려 하지 말고 조용히 배워야 합니다. 또 남자들을 주관하려 하지 말고 조용히 가정에 충실하며,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들에게 경건한 삶입니다.
외모보다 선행으로 단장(9-10)
아름다움은 화려한 장식이나 외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한 아름다움은 선한 행실에서 나옵니다. 역사 이래로 여성들은 자신을 꾸미는 데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살아갑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움을 꾸며가려면 거울 앞에 서있는 시간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은 더 많이 가집니다.
9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9-10)
사도 바울은 9절에서 에베소의 남자 성도들이 공식예배에 참석할 때, 다투지 말고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예배를 거룩하게 인도해 나가야 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디모데에게 여자 성도들도 똑같이 거룩한 심령을 가지고 공중 예배에 참여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⑴ 단정하게 단장함(9)
바울은 남자에 대한 권면에 비해 여자에 대한 권면은 훨씬 길고 구체적입니다. 이것은 여자들이 교회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여인들의 옷이 단정하고 품위가 있어야 함을 말함으로써 예배에 임하는 올바른 자세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먼저 여자들의 옷차림과 치장에 대해 지적합니다. 그는 ‘아담한 옷을 입으며’라고 권고하는데, 그것은 적당한 옷차림으로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게 입으라는 뜻입니다. 분수와 환경에 맞지 않는 치장을 하여 남의 이목을 끄는 것은 여자의 미덕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의 마음가짐은 정결함과 진정으로 사모하는 마음이 요구됩니다(요한복음 4:24). 그런데 하나님을 향한 내면적 마음가짐보다 주의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여 외모에 더욱 신경을 써 자기 분수에 지나친 치장을 한다면 그것은 외식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 나가서 여자의 2대 덕목으로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라고 권고합니다. 당시에 디모데가 시무한 에베소 교회는 여자들이 내면의 아름다움보다 외적인 화려함에 더 치중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소박함’(σἰδοῠς)은 여자다움을 잃지 않는 현숙함을 뜻하고, ‘정절’(σωφροσύνης)는 마음의 건전함과 육체적 순결을 뜻하는 것으로 모든 격동하는 정욕이나 혈기를 제지하여 도덕적 균형을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 안에 여성들은 이러한 2대 미덕 ‘소박함’, ‘정절’으로 자신들을 단장하라고 권고 합니다. 이것은 예배에 참석할 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신경을 쓰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를 과시하기 위하여 옷치장을 하는 행동은 헌신적인 신앙과 거리가 멉니다.
남자에게 분노와 다툼 같은 혈기가 있다면, 반면에 여자들은 허영에 쉽게 빠지는 것이 단점입니다. 그래서 이제 바울은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고 명합니다. ‘땋은 머리’는 여자들의 일상적인 머리 모양이지만, 여러 가지 장신구로 금이나 진주는 머리단장뿐만 아니라 여자들이 각종 장신구로 화려하게 땋아서는 장식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서 부유한 여인들이 있었고, 그들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화려한 장식과 값진 의복으로 치장하고서 교회에 왔던 것 같습니다. 분수에 지나치게 치장할 때 사람들의 주목을 끔으로 인해 그들의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적대의식을 부각시키게 되는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또한 당시 에베소에는 아르테미스 신전에 있는 여인들이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하고 남자들을 유혹하였습니다. 이러한 악한 문화가 종교라는 개념으로 기독교 안에까지 들어와서 성적으로 어지럽혔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리스도인 여자들이 결코 아르테미스 신전의 여자 사제들의 사치스러운 차림새를 따르지 말 것을 강하게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교회 안에서 여인들이 화려하게 꾸미지 말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가난하고 연약한 성도들에게 대한 배려입니다. 그리고 교회 밖에 사람들이 화려하게 꾸민 여인들과 신전에 화려한 여인들을 동일시해서 기독교를 음란한 종교로 착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여성들의 단정함에 대한 권고를 베드로도 한 적이 있습니다(베드로전서 3:3).
⑵ 선행으로 단장함(10)
계속적인 바울의 권고에서 여성 성도들의 외적인 단정한 옷차림에 대한 권장하기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인이라면 자신을 선행으로써 단장하는 것을 알 것입니다.
바울은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고 권고합니다. ‘선행’은 성도의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값진 옷이나 장식품으로 단장하는 것보다 더욱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받으실 만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여성들의 선행을 하찮은 것을 다루지 않습니다(잠언 31:10-31; 디도서 2:3-5).
당시에 교리와 행위를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자선 행위의 필요성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인 선행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보석이나 값비싼 옷을 훨씬 능가하는 가치 있는 요소입니다. 사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일을 힘쓰는 여성 성도로서 지닐 수 있는 최대의 장식품으로서 결과적으로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고 합니다. 여성 성도들의 품행이 단정해야 하는 그 수준이 일반 여성들과 같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는 데에 있음을 말해줍니다.
여성 성도들이 좋은 옷과 보석으로 자신을 꾸밀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외면을 가꿈으로써 내면을 감추는 위선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꾸며서 아름다워지는 것이 여성의 본능이긴 하지만,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공언하는 여성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선행이라는 무형적 장식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자신의 믿음의 증거가 겉으로 들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외모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착한 행실에서 베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자신을 꾸미기 위해 수많은 물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성형하고 기능성 화장품을 구입하는데 많은 물질을 쏟아 붇습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이런 것에 있지 않습니다. 여인들의 치장은 금과 진주가 아닌 선한 행실입니다.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는 것, 신중하며, 순결하고, 집안을 잘 돌보며, 선하며,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치장하라고 합니다(디도서 2:4-5). 이것이 여인의 진정한 아름다움입니다.
종용히 배워야할 여인들(11-15)
여성의 순종이나 복종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일부 여권신장 단체에서 남녀평등 시대라고 분노합니다. 극단적인 사람들은 바울을 반여성주의자로 매도하여 비난합니다. 이 일이 어찌 바울의 책임이며 비난 받아야 할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리에 따라 남녀가 자신의 고유한 역할에 충실할 때, 교회 공동체뿐만 아니라 가정 공동체도 날마다 든든하게 세워져 갈 것입니다.
11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12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15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11-15)
바울은 디모데에게 여성 성도들을 향한 두드러진 두 가지 내용을 소개합니다. 이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여성 성도들을,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 분을 영화롭게 하기 원하며 그분을 위해 살고자 원하는 이들을 위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성도로서 살아가는 여성은 공중 앞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자신의 행동에 주의합니다.
(1) 순종하고 배우라(11-12)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또 다른 종류의 여성들을 향해 권면합니다. 이번에는 교회 안에서 가르치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여성들에게 명합니다. 그들에게 모든 일에 순종하고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조용히 배우라고 명령합니다. 이런 권면은 바울이 여성들에 대해 어던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에베소 교회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바울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남성우월주위에서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부분에서는 여자들의 가르침들이 많이 나왔고, 칭찬할 때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24-28절에서는 여자들의 가르침으로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로마서 16장 1-3절에서는 복음 전도 사역에서 여자들과 동역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6장에서 겐그리아 교회의 자매인 뵈뵈를 훌륭한 일꾼으로 추천하기도 했으며 브리스길라를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일하는 동역자로 소개하기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여성들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일관된 신념으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후 1세기 당시에 유대사회나 헬라사회에서 여성들은 여러 측면에서 활동에 제약을 받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나마 여성들이 가장 자유롭게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었던 영역은 종교적 활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성들의 적극적인 종교 활동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 안에서도 일부 회심한 여성들이 갑자기 경험하게 된 자유를 남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 정학하게 교육을 받지 않는 미성숙한 상태에서 앞에 나서서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사역을 제한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가르칠 만한 자격이나 자질을 갖추지 모했으며, 도리어 조용히 배워야할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라서 여성이 가르치는 것과 남성을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습니다. 여기서 ‘허락하지 아니하노니’라는 선언은 바울 자신의 판단과 결정으로 명령한 것입니다.
(3) 순종으로 배울 이유(13-14)
왜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여성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남성들을 주관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했습니까? 그 이유를 이제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성경적인 원리를 통해 가르칩니다. 아담이 하와보다 먼저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장자권처럼 법적 권리와 특권을 부여받은 근거가 됩니다. 두 번째는,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하와의 범죄는 아담을 속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권위를 가로채고 옳지 않는 주도권을 행사한 데 있었습니다.
바울은 교회에서 여성이 가르치는 일과 아내가 남편을 주관하는 것을 연결하여 설명한비다. 사실 여성이 공적인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과 남편을 가르치고 주관하는 것은 서로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둘을 서로 연결하여 마치 같은 문제인 것처럼 설명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은 상황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바울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베드로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베드로전서 3:1).
아내가 남편을 주관하면 안 되는 이유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다름에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먼저’라는 말 자체에 주도권을 의미하는 첫째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자가 먼저 지음을 받았기에 남성에게 리더십이 주어진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고나한 문제를 일반적인 문제로 확대하여 모든 여성은 모든 남성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남편의 아내 사람과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을 명한 것은, 그것이 인간 창조의 본성에 부합하는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을 요구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가장으로서의 리더십을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본질적 욕구이며, 그러한 욕구를 서로에게 충족시켜주는 것이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다는 것은 왜 여자가 가르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 설명합니다(14). 이것은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유혹에 잘 속아 넘어간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인비다. 특히 거짓 교사들이 교묘한 속임수로 성도들을 미혹할 때에는 주로 여자들을 유혹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또한 여성들이 잘 속아 넘어갔습니다(디모데후서 3:6). 여성들이 거짓 교사들에게 잘 속았던 것은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에서 당연한 결과였을 것입니다.
현대에는 남성이나 여성이나 동등하게 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지만 고대에는 여성들이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저의 없었기 때문에 남성들에 비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분별하는 능력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당시에 여성들이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잘 넘어갔으며 그러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교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여성들에게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조용히 배우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속임수에 잘 넘어간다는 사실을 인간의 최초 타락에서 논증하고 있습니다. 뱀의 유혹에 넘어간 것은 아담이 아니라 하와였습니다. 이러한 설명은 바울 당시에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는 여성이 잘 속아 넘어가므로 가르치지 말나는 명령이 그리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여성들은 무조건 가르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문제지만, 바울의 교훈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바울의 권면의 원리는 이렇습니다. 남성이든지 여성이든지 판단력이 부족하여 잘못된 가르침에 잘 속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조용히 더 배우는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지 않은 채, 그릇된 교훈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인 것입니다. 먼저 조용히 교회의 질서를 따르며 조용히 듣고 겸손하게 배워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면서 배우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은 교만입니다. 교회의 질서가 무너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3)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함(15)
본 절은 이해하기 쉽지 않는 구절입니다. 헬라어의 어순대로, ‘여자들은 해산함으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만약 정숙함으로 계속해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한다면...’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와에게서 얻게 되는 교훈을 모든 여성 성도들에게 적용시켜 주원에 이르게 힘쓰도록 권면하면 있는 구절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여성 성도들에게 여성으로써의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권합니다. 신전에서 남자들을 유혹하는 여인들처럼 방탕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여인들이 정숙하도록 경건한 삶을 살면서 출산을 이루어가면 경건한 자녀들을 해산합니다. 자신에게 맡긴 고유한 역할을 잘 감당할 때 구원을 이루어 갑니다.
여성들이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한다는 것은 경건한 신앙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여인들에게 요구되는 정절과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은 모든 신자들이 구원을 위해 갖추어야 할 성품입니다.
여성의 역할은 시대마다 조금씩 변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이 반드시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고유한 역할과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여성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하여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잘 보여줄 때 세상 앞에 선한 싸움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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