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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위대한 복음(6)≫ 2019.8.14.(수)
말 씀 ; 마태복음 4; 1~11
시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테스트, 시험이고 또 하나의 시험은 영어로 템프테이션, 유혹이라 뜻이 있다.
성경에는 이 시험이라는 단어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테스트, 이 부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이다.
예를 든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시험이다.
하나님께서 시험하실 때는 왜, 시험을 하실까? 이유가 무엇일까?
믿음을 자라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때로 시험을 하신다.
우리가 제대로 믿고 있는가?, 믿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테스트를 하신다.
그 때 우리가 그 시험을 통과하면 하나님의 합한 자가 되어서 형통한 일을 하게 되는데 그 때 믿음으로 가능하지 못하면 어려움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로 들어가서 광야 40년을 보내는데 이것이 테스트 다, 시험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했다.
하나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 하나님을 의지 하는지 안하는지, 말씀에 순종하는지, 안하는지를 시험을 했다.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백성 1세대들이 광야에서 다 죽게 된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시험을 하신다.
여러분은 그 때 이 테스트를 잘 통과하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템프테이션. 이 유혹이라는 시험은 누가 주는 시험이냐?
마귀, 사탄이 주는 시험이다.
사탄이 시험을 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죄를 짓게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시험, 이 테스트는 우리의 믿음이 자라도록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보기 위해서 시험을 하시는데, 이 마귀의 시험은 오로지 죄를 짓도록 하기 위한 것이 마귀의 시험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 알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의 시험과 이 마귀의 유혹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이 안된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마귀가 우리를 유혹한다할지라도 하나님의 주권 안에,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귀가 우리를 죄를 짓도록 시험을 하지만, 유혹을 하지만 우리가 그 과정을 통해서 결과적으로는 신앙의 성숙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는 시험이든 마귀가 주는 시험이든 잘 통과하면 잘 이겨내면 우리의 신앙이 굳건해지고 반환점이 된다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께서 시험을 당하시는데 이 시험은 무슨 일까요?
이것은 마귀의 시험, 유혹이다.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려고 하니까 마귀가 시험을 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모든 시험을 이기시는 분이신데 왜 하나님은 마귀의 시험을 받도록 이끄셨을까?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그런 유혹을 받으니까 보여주시는 것이다.
마귀가 예수님께 한 유혹은 우리가 평생 살아가면서 받는 유혹이다.
예수님을 롤모델로 예수님을 통해서 마귀가 이런 유혹을 하는 것을 알아야 하고 예수님께서 그 시험을 이겼듯이 우리도 그 시험을 이겨야 한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마귀가 우리를 어떻게 유혹하는가?
또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기셨는가? 를 보고
우리도 마귀의 유혹과 시험으로부터 승리함으로 우리의 믿음이 성숙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아 멘!
첫 번째 마귀의 시험 ; 하나님의 뜻 대신 자기 욕구를 만족시켜라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의 욕구를 먼저 만족시켜라 하는 것이 마귀의 유혹이다.
(1) 예수님은 누구에게 이끌리어 시험을 받으셨습니까? (1절)
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에 가사”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갔다고 했는데
이것은 성령님과 마귀가 함께 일하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되는데 이것은 마귀도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잘못생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선과 악의 대결구도를 생각해서 하나님과 마귀를 마치 대결구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마귀는 하나님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마귀는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기에 마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마귀가 우리를 유혹할 때에 그것을 허용하시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것을 훈련시키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그들을 광야로 들어가게 하신 이유는 신앙을 성숙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마귀의 유혹을 받지 않도록 지켜주시면 될 텐데 왜 우리를 유혹을 받게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하며 세상의 여러 가지 유혹이 없이 그냥 깨끗한 마음을 갖도록 하면 안 될까요?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빨리 천국가면 된다.
우리가 이 세상을 통해서 그런 유혹을 받는 것은 그 과정을 통해서 믿음이 자라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귀의 유혹에 대하여 걱정하시지 마시고 마귀의 유혹을 나의 성숙의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우리가 성숙하다고 마귀의 시험을 안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마귀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마귀의 유혹을 받는다.
(2) 마귀는 첫 번째 어떤 유혹을 했습니까? (3절)
3.“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하라“
첫 번째 유혹이 돌을 떡덩이가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왜 이것이 유혹인가 하면 2절에 보니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배고프기에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지금 예수님에게 있어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 가장 급하고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다.
마귀는 지금 예수님에게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라고 유혹을 했다.
사탄은 우리의 관심을 어디에 두게 만드느냐 하면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해결해야할 나의 현실의 문제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을 모르게 만들고 하나님을 수단화한다.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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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문제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마귀는 우리를 끊임없이 현실적인 문제에 집착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3) 예수님은 어떤 시험을 이기셨습니까? (4절)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 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이 지금 떡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는 지금 떡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왜 집중해야 됩니까? 하나님 말씀에 청종하기 위해 집중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여기는 것이 참된 신앙이다.
잘못된 신앙,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왜,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는데 응답이 없다고 하며 하나님에게 서운하다는 분이 있다.
또 어떤 분들은 신앙생활이 나에게 현실적인 도움이 안된다고 하며 공허하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사업을 하면서 이 교회에 다니면 나에게 도움이 되겠지 하며 나오다가 현실적인 도움이 안된다 생각이 되면 그 교회를 떠난다.
나의 문제, 나의 현실을 해결해줄 곳, 이것은 마귀의 유혹이다.
우리가 이것을 잘 분별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면 안된다.
(4) 참된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사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도록 집중하게 만든다
무엇을 하느냐가 관심이고 무엇을 만지느냐, 무엇을 하느냐, 여기에 집중하게 만든다.
참된 신앙은 그것이 중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탄은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들고 자기에게 만족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내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교회 안에서도 자기 욕구를 채우려다보니 싸움이 일어나고 갈등이 생기게 된다.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지 아니하면 우리의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니다.
빌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에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마귀는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그렇게 고백했는데 마귀는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분은 병이 걸리거나 아플 때 물론 낫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정답이 나는 반드시 나아야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분은 살든지 죽든지 가 아니라 살아야만 예수님이 존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분은 자기중심적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처음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닐 때 그들의 관심은 현실적인 것이었다.
누가 높아지느냐, 누가 높은 자리에 앉느냐, 여기에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고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어떻게 바뀌었나 하면 현실적인 자기 문제에 집중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순교자의 삶을 살았다.
이것이 참된 신앙이다.
사탄은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며 내 관심의 문제에 집착하도록 끊임없이 만든다.
우리는 그 유혹을 이길 때마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에 꼬꾸라지고 “누구는 잘되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이야” 하면 “기도를 하지 않아서 그렇다” 하며 “기도를 많이 하라”고 한다.
물론 기도 많이 하면 되지만 마음의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내 현실의 문제를 더 많이 붙잡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렇게 되면 삶의 그 분의 신앙이 하나도 없고 기쁨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대신 자기의 욕구를 만족시키라는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강조하는 것이 말씀이고 나의 목회에서 중요한 것이 말씀이다.
그래서 앞으로 계속해서 말씀훈련, 말씀묵상, 성경공부 말씀에 대한 집중적인 훈련을 하려고 한다.
두 번째 마귀의 시험 ; 하나님을 시험하고 그분의 약속을 의심하라
(1) 예수님께서 시험받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마3;16~17
16.“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해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 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 받기 바로 전에 세례를 받으셨다.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말씀하셨다.
(2) 마귀는 두 번째 어떤 시험을 하였습니까? (5,6절)
5.“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전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의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 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3절에도 마찬가지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했고, 6절에서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똑 같이 말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해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까 없을까?
증명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말씀해주셨기 때문에 믿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꾸 증명하려고 한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 맞은가, 내가 하나님의 딸 맞은가 자꾸만 증명하려고 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
마귀는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의심하게 만든다.
마귀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하고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는 것이 맞나, 그런데 왜 병이 안 낫는 거야” 이것이 마귀의 유혹이다.
마귀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고 증명하도록 요구한다.
저도 무엇인가 잘 안되면 “나를 목회자로 부르신 것이 맞나,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 것이 맞나”, 저도 흔들릴 때가 있다.
그것이 마귀의 유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잘 나갈 때는 이런 유혹이 없다.
그런데 내가 어려울 때, 내가 비참해질 때, 내가 밑바닥을 칠 때, 그럴 때 하나님이 나를 버리고 간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럴 때 마귀가 유혹하는 것이다.
(3) 예수님은 어떻게 시험을 이기셨습니까?(7졀)
7.“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내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파도, 내가 망해도, 내가 생각하는 일이 잘되지 안 해도 정말 세상적으로 비참하게 살아도 하나님이 날 사랑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이것이 믿음이다.
그런데 마귀는 자꾸 못 믿게 하며 자꾸만 증명하라고 한다.
(4) 우리가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그런데 마귀는 끊임없이 멋있게 보이려고 우리를 유혹하기를 한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멋있게 보여야지 뛰어내려봐, 무엇인가 네가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줘 봐”
내 자신이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그것이 마귀의 유혹이다.
나는 멋있지 안은데 마귀가 자꾸 멋있어지라고 하니까 그 괴리감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목회자 중에도 그렇게 비참하게 몰락하는 분도 있다.
멋있게 목회하려고 교회를 성장시키고 또 뭔가 대단한 일을 자꾸만 꾸며 보여주려 하다보면 목회가 탈진하게 된다.
그런 유혹이 끊임없이 목회자에게 있다.
우리가 처신을 잘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인가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사람들의 평가, 시선,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여기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신앙이 무너진다.
이런 대표적인 사람이 사울 왕이다.
다윗과 사울왕의 차이가 뭐냐 하면 윤리적으로 보면 사실 다윗이 사울보다 더 많은 죄를 지었다.
사울왕이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윤리적으로는 다윗에 비하면 그렇게 버림받을 만한 죄가 없다.
그러나 사울왕을 버리고 다윗을 선택한 이유는 다윗은 정직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자기의 연약함이 들어날 때 자기 죄를 인정하고 자복하고 회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울왕은 끝까지 자백하지 않았다.
죄를 짓고 불순종을 했는데도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서 불순종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무엘에게 부탁하는 말이 백성들이 나를 왕으로 계속 섬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니까 사울왕의 관심은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나, 멋지게 보여지느나 관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나남에게 버림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멋지게 보이려고 애쓰지 마시고 하나님께 멋지게 보이면 된다.
정말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그게 멋있게 보인다.
시편 51;10 “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이것이 다윗의 고백이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이고 이렇게 고백한 것이다.
그는 자기의 죄가 들어났을 때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약할 때 강함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왜 약함이 강함이 되느냐 하면 원래 우리는 약하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에 약함이 강함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는 이것이 물론 시험을 이기는 것이다.
세 번째 유혹 : 십자가를 잊고 스스로 영광을 취하라고 유혹합니다.
(1) 마귀는 세 번째로 어떤 시험을 하였습니까? (8,9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네가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리라“
마귀에게 절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했다.
(2)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떻게 직접 시험을 이기셨습니까? (10절)
10.“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 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만 관심을 가졌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이것이 순종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왕이시여! 왕이시여! 할 때 그 자리를 피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 말씀하셨고 십자가를 지기위해 오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삶을 사셨다.
이것이 마귀의 유혹이다.
마귀는 우리에게 지금도 십자가의 길을 걷지 말고 높은 자리에 앉도록 유혹을 한다.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마귀는 십자가 없이 영광이 있다고 유혹을 하며 믿도록 만든다.
(3)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약 4;6 “그러니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누구에게?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러면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가 어떻게 되기를 바랍니까?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교만하게 만든다. 이것이 유혹이다.
약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 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러면 너희를 피 하리라“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했는데 마귀는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고 높아지게 만들며 높아지는 것이 최고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마귀를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복종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내가 쳐서 주님 앞에 굴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겸손이다.
내 생각을 주님께 굴복하는 것이 겸손이다.
이것이 시험을 이기는 길이다.
(4)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영광을 얻게 됩니까?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고난 십자가를 질 때 이런 고난이 온다.
우리 교회에 표어로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는데
그런데 안 죽고 열매만 바란다. 이것이 사탄 마귀의 유혹이라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이 무엇이냐?
희생하는 것이고 겸손해지는 것인데 그런데 그것 없이 열매만, 영광만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 마귀의 유혹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다보면 기분 나쁠 때가 있다.
기분 나쁘다는 것은 지금 내가 교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겸손하면 기분 나쁠 것이 없다.
속상하다 기분 나쁘다는 것은 내 안에 교만이 있다는 것이다.
마귀 사탄의 유혹은 끊임없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게 하고 나에게 초점을 맞추게 한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께 집중하게 만든다.
예수님은 그 마귀의 유혹을 이기셨다.
우리 모두 싸워서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끝까지 마귀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고 승리함으로 우리의 신앙이 더욱 더 성숙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