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맹자』
삶과 의를 모두 가질 수 없다면 나는 삶을 버리겠다
맹자(孟子)가 말했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의(義)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다면 나는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가 최근 국내 독서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정의에 대한 서양의 도덕철학 전통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천 년 전 동양에 정의를 위해 목숨마저 버릴 수 있는 맹자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공맹지도(孔孟之道)’라는 말이 시사하는 것처럼 맹자는 공자와 더불어 유교의 ‘공동 창시자’로 인정된다. 공자가 유교의 지성(至聖), 맹자가 아성(亞聖)이다. 공자보다 맹자가 동아시아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를 ‘동양의 소피스트(sophist)’로 평가하는 소수 시각도 있으나 다수 서양 학자들은 공자-맹자의 관계를 예수-바울, 소크라테스-플라톤의 관계와 비교하기도 한다. 그들은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와 동시대 사람이었던 맹자가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산파술(産婆術)을 구사했으며 천(天)에 대해 서양의 신정론(神正論·theodicy)과 유사한 논의를 전개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오바마·클린턴도 연설문서 맹자 인용
▶『맹자』의 국문판(우재호 역)과 영문판(D.C 라우 역)
공자의 이론을 계승·발전시킨 맹자에게서 우리는 다양한 모습을 발견한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이상주의자·진보주의자로 부(富)의 공정한 분배, 자유무역·조세경감·복지를 주장했다. 한편 그에게는 현실주의·보수주의적 요소도 있다. 맹자는 폭군살해(tyrannicide)를 정당화하고 왕 앞에서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콧대 높은 학자였다. 그는 “백성이 가장 귀중하고, 사직(社稷)이 그 다음이다.” “중요성에서 군주는 마지막이다”며 군주를 깎아내렸지만 정치적인 변화는 ‘위에서 아래로(top-down)’, 즉 군주로부터 시작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도 했다. 지도자가 변해야 나라가 변하고 천하가 변한다는 것이다. 그가 지은 『맹자』는 군주가 인의(仁義)를 실천하면 인구가 증가하고 이웃나라에서 인재·백성이 몰려 들어 나라가 부강하게 된다는 논리로 요약될 수도 있다.
맹자는 오늘날 ‘CEO학’으로도 응용할 수 있는 제왕학(帝王學)을 완성했으며 국내·국제 정치를 아우르는 정치 이론도 전개했다. 맹자는 또한 인의의 실천으로 누구나 요순(堯舜) 임금처럼 될 수 있으며 작은 나라도 단시일 내에 강대국이 될 수 있다고 믿은 낙관주의자이기도 했다. 최근 중국의 유교 복권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는 맹자에게서 오늘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얻을 수 있을까. 중국을 방문한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199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2009년)은 연설문에서 맹자를 인용했다. 공자와 더불어 부활한 맹자는 이제 미·중 관계의 배경 화면에 등장한다. 맹자는 중국이 세계를 보는 시각과 향후 국제 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런 문제 의식에서 『맹자』의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요약했다. 맹자의 답변은 일부 현대 상황에 맞게 재구성한 내용을 제외하고는 모두 『맹자』 원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융통성 없는 중도는 극단주의와 같다
-인간은 이기적이기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인간의 이익 추구를 ‘양성화’하고 ‘제도화’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오직 인의가 있을 뿐이다. 왕·관리·백성, 위 아래가 저마다 이익을 추구하면 나라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반면 군주가 어질면 모두가 어질게 되고 군주가 의로우면 모두가 의롭게 된다. 정부가 덕이 있는 자를 영예롭게 하고 능력 있는 자를 채용해 뛰어난 인물들이 높은 지위에 있으면 천하의 선비들이 모두 기뻐하여 그 정부에서 벼슬하기를 원할 것이다.”
-선생께서는 정치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쉽다고 생각한 낙관론자로 알려졌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마음으로 정치를 행한다면 천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움직이는 것처럼 쉽게 다스릴 수 있다. 문왕(文王)을 스승으로 삼는다면, 큰 나라는 5년 안에, 작은 나라도 7년 안에 반드시 온 천하를 압도할 수 있다.”
-인(仁)과 의(義)는 무엇에 비유할 수 있나.
“인은 사람의 마음이자 편안한 집이요, 의는 사람이 가야 할 바른 길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이룩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의 경쟁자들, 자신이 비판하는 정치인들과 자신을 견주었을 때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통치자는 성현(聖賢) 같은 생활을 해야 하는가.
“아니다. 왕이 재물·여자를 좋아하더라도 백성과 함께 좋아한다면 왕정을 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공직에 나서는 사람은 어떤 경제적 처우를 받아야 하는가.
“가난이 벼슬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가난 때문에 벼슬하는 자는 높은 자리가 아니라 낮은 자리를 선택해야 하며 많은 녹봉이 아니라 적은 녹봉을 받아야 한다.”
-정치 지도자는 자신의 후임을 정하고 권력을 넘겨줄 수 있나.
“천자라도 자기 마음대로 천하를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다.”
-정치의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진보·보수, 좌파·우파의 중간을 표방하는 중도주의는 어떤가.
“중도는 올바름에 가깝다. 그러나 융통성이 없으면 중도주의도 극단주의와 마찬가지다.”
작은 나라는 결사의 의지면 나라 지켜
-천하통일은 누가할 수 있는가.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임금이 천하를 통일한다. 칼로 죽이나 정치로 죽이나 사람을 죽이는 것은 같다.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천하를 통일하려 한다면 이를 막아낼 길이 없을 것이다.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백성의 지지를 얻게 되고 지지를 얻으면 천하를 얻게 된다. 백성의 마음을 얻으려면 그들이 바라는 것을 쌓고 싫어하는 것을 부과하지 않아야 한다.”
-큰 나라와 작은 나라 사이의 국제 관계에 필요한 원칙은 무엇인가.
“인자한 사람만이 큰 나라로 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만이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길 수 있다. 큰 나라로 작은 나라를 섬기는 자는 천리(天理)를 즐기는 자요,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기는 자는 천리를 두려워하는 자다. 천리를 즐기는 자는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고 천리를 두려워하는 자는 자기 나라를 보호할 수 있다.”
-큰 나라들 사이에 낀 작은 나라는 어느 나라를 ‘섬겨야’ 하는가.
“내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답변을 꼭 해야 한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국방태세를 확고히 하고 국민이 나라를 버리지 않고 결사(決死)의 의지로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서면 해볼 만하다.”
-국내·국제 정치에서 패도(覇道), 권력 정치(power politics)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힘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경우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복종하는 것이요. 덕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경우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진정으로 복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행동하면 호연지기 손상
-나라의 흥망성쇠는 무엇에 달렸는가.
“하늘의 뜻에 순종하는 자는 생존하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順天者存, 逆天者亡). 인(仁)을 실천하라는 게 하늘의 뜻이다. 하·은·주 삼대가 천하를 얻은 것은 어질었기 때문이요 천하를 잃은 것은 어질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까닭도 그러하다.”
-나라가 망하는 경우가 있다. 외부적 원인과 내부적 원인 중에 무엇이 더 결정적인가.
“모욕당하는 사람은 그가 모욕을 허용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모욕당하는 것이다. 망하는 집안은 망하기를 자초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그 집안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정복당하는 나라 또한 정복의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가 그 나라를 정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를 정복해 국가를 팽창할 기회가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복 대상인 나라의 국민이 기뻐하면 정복하라. 정복 대상이 적개심을 품는다면 정복하지 말라.”
-공자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인류가 있은 이래로 공자와 비교할 만한 분은 없다. 공자는 집대성하신 분이다. 내가 희망하는 바는 공자를 배우는 것이다.”
-선생께서는 어떤 점에서 뛰어난가.
“나는 말에 대한 통찰력이 있으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른다. 호연지기는 설명하기 어렵다. 호연지기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다. 정직함으로 호연지기를 기르고 방해하지 않는다면 호연지기는 천지사방을 가득 채우게 된다. 그러나 마음에 부끄러운 행동을 하나라도 하게 되면 호연지기는 위축된다.”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힘이 있는가.
“어떤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무언가가 그를 재촉하기 때문이요, 멈추게 되는 것 또한 무언가가 그를 저지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고 멈추는 것은 그의 권한 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