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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문헌
영건도감의궤(營建都監儀軌)
국가에서 주관한 건설공사에 대한 종합적인 보고서 형식의 관찬 조영문서
국가에서 주관한 건설공사〔工役〕에 대한 종합적인 보고서 형식의 관찬(官纂) 조영문서(造營文書). 조선시대에는 국가적인 행사를 치를 때 이를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임시행정기구를 설치하였는데, 이 가운데 대표적인 기구가 도감(都監)이다. 도감은 고려시대부터 설치되었으며 조선시대로 계승되었다.
건설공사와 관련되어 설치된 경우는 고려시대에는 주로 창고·행랑·궁궐, 조선시대에는 주로 산릉(山陵)·영건(營建) 등의 분야였다.
또 공사의 내용에 따라 설치된 도감도 다양하여 조선시대에는 조성·수축·수리·수개(修改)·개수·증수(增修)·중수(重修)·중건·증건(增建)·개건(改建)·선수(繕修)·영건 등의 이름이 붙여진 도감이 설치되었다.
한편, 공사의 규모가 작을 때에는 영건청(營建廳)·중건청(重建廳) 등의 기구를 도감 대신 설치하였고, 때에 따라서는 주무관청인 선공감(繕工監)이나 호조·공조 등에서 직접 맡아서 공사를 진행하였다.
공사를 집행한 기구의 이름이 다양한 만큼 의궤의 명칭도 여러 가지이므로 영건도감에 의하여 집행된 공사를 정리, 기록한 책만을 ≪영건도감의궤≫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영건’이라는 말은 조영(造營)’영조(營造) 등의 용어와 마찬가지로 건축과 관련된 공사를 대표하는 용어이므로, 건축 관련 공사보고서는 도감이나 청의 설치여부에 관계없이 모두 ≪영건의궤 營建儀軌≫ 또는 ≪영건도감의궤≫에 포함시킬 수 있다.
공사가 완료되면 곧 일정장소에 의궤도감을 설치하고 여기에서 등록(謄錄)과 여러 문서들을 정리, 편집하여 의궤를 만든다. 이 때 어람용(御覽用) 1부를 비롯, 여러 부를 작성하여 사고(史庫) 및 관련 관청에 나누어 보관한다.
의궤의 내용은 대개 좌목(座目)·시일(時日)·도형(圖形)·승부(承傅)·이문(移文)·내관(來關)·품목(稟目)·감결(甘結)·실입(實入)·상전(賞典)·공장(工匠)·의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건 관련 의궤들은 현재 규장각도서·장서각도서·파리국립도서관 등에 보관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633년(인조 11)에 편찬된 ≪창경궁수리도감의궤≫이며, 최근의 것은 ≪경운궁중건도감의궤≫(1906)이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래 경성수축도감(京城修築都監)·궁궐조성도감·문묘조성도감 등 국가적인 공사가 있을 때마다 여러 도감이 설치되었으나, 여기에서 의궤를 편찬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또, 조선 후기에도 많은 영건 관계 의궤가 편찬되어 지금까지 전하지 있으나 광해군 때 벌어진 창경궁·창덕궁의 중건 및 경희궁(慶熙宮 : 창건 당시에는 慶德宮)·인경궁(仁慶宮)의 창건에 대한 의궤는 전하지 않고 있으며, 조선 후기 최대의 건축공사인 경복궁의 중건에 대한 의궤 또한 전하여지지 않는다.
≪영건도감의궤≫는 건축사연구를 위한 1차사료임은 물론, 당시의 정치·경제·사회를 연구하는 데에도 기초적인 사료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朝鮮朝의 儀軌(朴炳善,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5)
영산대회작법절차(靈山大會作法節次)
1634년(인조 12) 철원 용복사에서 간행한 찬자미상의 불교의식집
1634년(인조 12) 철원 용복사(龍腹寺)에서 간행한 찬자미상의 불교의식집. 목판본. 1권 1책. 모두 50장이다.
영산재(靈山齋)를 거행하는 작법절차를 위주로 하여 소례결수작법절차(小禮結手作法節次), 중례문작법절차(中禮文作法節次), 지반문작법절차(志磐文作法節次), 성도작법절차(成道作法節次), 별축상작법절차(別祝上作法節次), 독성의문(獨聖儀文), 지장단청(地藏單請), 야작법절차(夜作法節次) 등이 실려 있는 책이다.
영산대회작법절차는 갈향(喝香), 연향게(燃香偈), 갈촉(喝燭), 연등게(燃燈偈), 갈화(喝花), 서찬게(舒讚偈), 불보찬(佛寶讚), 법보찬(法寶讚), 승보찬(僧寶讚), 관음찬게(觀音讚偈), 쇄수게(洒水偈), 사방찬(四方讚), 도량장엄게(道場莊嚴偈), 법화거불(法華擧佛), 참경거불(懺經擧佛), 청불기두(請佛起頭), 헌좌진언(獻座眞言), 다약게(茶藥偈), 청법게(請法偈) 등 게문, 변식진언(變食眞言) 등 진언, 향공양찬(香供養讚) 등 찬문, 보회향진언(普回向眞言) 등 여러 절차에 따른 게문(偈文), 찬문(讚文), 청문(請文), 진언(眞言) 등이 수록되어 있다. 김영태(金煐泰)가 소장하고 있다.
<<참고문헌>>韓國佛敎儀禮資料叢書(朴世敏 編, 三聖庵, 1993)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영접도감의궤(迎接都監儀軌)
조선시대 명과 청의 사신을 접대할 때의 영접 절차와 의식 및 물품 조달, 인력 동원에 관한 제반 사항을 기록한 책.
조선시대 명나라와 청나라의 사신을 접대할 때의 영접 절차와 각종 의식 및 이에 소요되는 물품 조달, 인력 동원에 관한 제반 사항을 기록한 책.
현재 남아 있는 영접도감의궤는 16종인데 각 의궤를 시대별로 보면, 1609년(광해군 1) 3종, 1626년(인조 4) 1종, 1634년 7종, 1637년 1종, 1643년 4종 등이 있다.
이 중 1609년의 의궤는 선조의 국상 및 광해군 즉위 때 온 명나라의 사신에 대한 영접 기록이며, 1626년과 1634년의 의궤는 왕세자의 책봉차 온 명나라의 사신에 대한 영접 기록이다.
1637년과 1643년의 의궤는 청나라의 사신에 대한 영접 기록으로 병자호란 뒤에 청나라에서 인조를 왕에 다시 책봉하고 여러 가지 새로운 외교적 문제를 해결할 때 이루어진 것이다.
이 의궤들은 통상 영접도감을 설치, 업무를 담당한 각 부서별로 작성하였다. 1609년에 만든 의궤는 ≪도청의궤 都廳儀軌≫·≪미면색의궤 米麵色儀軌≫·≪사제청의궤 賜祭廳儀軌≫로 구분되고, 1634년의 것은 ≪도감의궤≫·≪응판색의궤 應辦色儀軌≫·≪반선색의궤 盤膳色儀軌≫·≪군색의궤 軍色儀軌≫·≪연향색의궤 宴享色儀軌≫·≪미면색의궤≫·≪잡물색의궤 雜物色儀軌≫ 등 7종의 의궤로 완비되어 있다.
〔영접도감도청의궤〕
1609년의 ≪영접도감도청의궤 迎接都監都廳儀軌≫ 1책은 전·후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는 선조의 상(喪)에 사제(賜祭)의 목적으로 온 명사(明使)의 영접 기록으로서 목록이 없이 사신명, 사신의 일정, 좌목(座目), 도감사목(都監事目)이 기록되고, 감결(甘結)·계사(啓辭)·사제시응행절목(賜祭時應行節目)·의주(儀註) 등이 날짜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좌목〉에는 관반(館伴)을 필두로 도청(都廳)·낭청(郎廳)·사제청(賜祭廳)·원접사(遠接使) 등의 인원과 명단이 소개되어 있다. 이어 〈도감사목〉에는 사신의 숙소, 당상(堂上)·도청의 인신(印信), 지필묵·예단(禮單) 등의 물품 조달, 도감응역장인(都監應役匠人)·녹사(錄事)·의원(醫員)·서사(書寫)·고직(庫直)의 인원 동원 내역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계사〉의 예조계목(禮曹啓目)에는 사부(賜賻)·사시(賜諡)·사제(賜祭) 때의 의례, 행례처(行禮處) 및 기타 준비 사항과 각종 의식의 습의(習儀), 사신의 입경(入京) 및 각종 의식 거행의 일정, 택일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이 의궤의 후반부는 광해군 즉위시의 명나라의 사신에 대한 영접 기록으로 사신명, 사신의 일정, 좌목, 계사, 비망기 등의 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 형식은 전반부와 대동소이하다. 〈비망기〉는 왕의 명령을 적은 것이다.
〔영접도감미면색의궤〕
1609년의 ≪영접도감미면색의궤 迎接都監米麵色儀軌≫ 1책은 미면색의 소장 업무, 좌목에 이어 날짜에 따라 감결·품목 등이 수록되었다. 미면색에서 담당한 것은 미면·다주(茶酒)·향약(香藥)·거촉(炬燭)·등유(燈油)·시탄(柴炭)·방배기명(房排器皿) 등이다. 〈좌목〉의 낭청에는 형조정랑이 차출되고 있다.
〔영접도감사제청의궤〕
1609년의 ≪영접도감사제청의궤≫ 1책은 사신명, 사제의 일시, 좌목이 기록되고, 계사·전교·감결·이문(移文)·품목이 날짜순으로 기록되고 이어 반차도(班次圖)가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사신명〉에는 사제천사(賜祭天使)의 이름이 적혀 있다.
〈계사〉에는 사제 때 소용될 물품 조달, 인원 동원 및 사제 의례의 장소·일시·절차 등을 논의한 기록이 있고, 사신이 갖고 온 패문(牌文), 사제 제문과 사신이 자찬(自撰)한 의주·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책 끝에 있는 〈반차도〉에는 천사반차도(天使班次圖)·곽위관제물배진반차도(郭委官祭物陪進班次圖)·상배도식(床排圖式) 등이 채색으로 수록되어 있다.
〔영접도감응판색의궤〕
한편 1634년의 의궤는 모두 소현세자의 왕세자 책봉차 온 명 사신에 대한 영접 기록으로 이 중 ≪영접도감응판색의궤 迎接都監應辦色儀軌≫는 사신명, 사신의 일정, 좌목, 계사, 각양예단질(各樣禮單秩), 송례물건질(送禮物件秩) 등의 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좌목〉에는 응판색 낭청으로 호조정랑이 차출되어 있다.
〈계사〉에는 응판색에서 소요되는 금품을 각 도(道)나 아문(衙門)에 배정한 일과 허통증직응행사목(許通贈職應行事目)이 있다. 〈각양예단질〉에는 원접사의 강상초견예단(江上初見禮單)을 비롯해 평양·개성·벽제 등 영위사(迎慰使)의 재거예단(賷去禮單)의 물품이 적혀 있다.
사신의 입경 후 이별 시까지의 예단으로서 개독례예단(開牘禮禮單)·하마연예단(下馬宴禮單)·천사전하마연예단(天使前下馬宴禮單)·인정전초차연예단(仁政殿初次宴禮單)·인정전재차연예단(仁政殿再次宴禮單)·왕세자초견예단(王世子初見禮單)·왕세자전연남별궁행예단(王世子餞宴南別宮行禮單)·상마연예단(上馬宴禮單)·상마연시일번별증급(上馬宴時一番別贈給)·교외전연예단(郊外餞宴禮單) 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각종 진상과 재신(宰臣)의 처소 규정이 있다. 〈송례물건질〉에는 사신에게 준 각종 예단과 송례 물건이 나열되어 있다.
〔영접도감반선색의궤〕
1634년의 ≪영접도감반선색의궤≫ 1책은 사신명, 사신의 일정, 좌목, 반선색의 응행사목(應行事目)과 감결·이문·품목이 날짜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좌목〉의 반선색 낭청에는 홍문관교리·부사과(副司果)·봉상시첨정 등이 차출되어 있다.
〈응행사목〉에는 사신의 처소, 필요한 인원 동원, 음식에 소용되는 물품 및 기명의 조달에 관한 규정이 있다. 이 밖에 취사용 연료, 접대 시 지응잡물(持應雜物)의 물품 조달과 취역군(取役軍)·수직군(守直軍)·방량관(放粮官) 등의 인력 동원 및 곳간(庫間)·사신반공처(使臣飯供處) 등의 장소 선정에 대한 사항도 수록되어 있다.
〔영접도감군색의궤〕
1634년의 ≪영접도감군색의궤≫는 사신명, 사신의 일정, 좌목, 사목에 이어 감결·이문·전교·계사 등이 날짜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사목〉에는 천사접대절목과 군색소장단자(軍色所掌單子), 입접관내(入接館內) 태평관(太平館) 등의 장소 수리에 대한 사항이 수록되어 있다.
〔영접도감연향색의궤 및 영접도감잡물색의궤〕
1634년의 ≪영접도감연향색의궤≫와 ≪영접도감잡물색의궤≫는 각각 1책씩으로 통상적인 순서에 따라 사신명, 사신의 일정, 좌목에 이어 감결·품목·이문·계사·전교 등이 날짜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접도감연향색의궤≫의 〈좌목〉에는 낭청으로 예조정랑·좌랑이 차출되고, 감조관(監造官)으로 내자시(內資寺)·내섬시(內贍寺)·예빈시(禮賓寺)·전생서(典牲署)에서 차출된 인원이 적혀 있다. 또한 연향색에서 주선한 연회의 종류로는 하마연(下馬宴)·인정전회례연(仁政殿回禮宴)·왕세자남별궁별연(王世子南別宮別宴)·남별궁익일연(南別宮翌日宴)·남별궁상마연(南別宮上馬宴)·모화관전연(慕華館餞宴) 등이 있다.
≪영접도감잡물색의궤≫의 〈좌목〉에는 낭청으로 성균관 직강·부사직(副司直)·부사과 등이 차출되고, 〈품목〉에는 잡물색에서 소용되는 소목(燒木)·유목(杻木)·탄(炭) 등 연료의 종류와 수량, 타락우(0x9799酪牛) 6필(匹) 등이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잡물색 소장(所掌)인 급수(汲水)·사환대객관(使喚對客官)·진지관(進止官)·서리(書吏)·악생(樂生), 각처 차비인(差備人) 등의 인원 동원과 기명·부채·종이 등의 물품 조달에 관한 사항이 수록되어 있다.
이 영접도감의궤류는 광해군 및 인조 때 명나라 및 청나라와의 외교 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한편, 조선시대의 국빈에 대한 의전 절차를 상세히 설명해 주는 자료이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의궤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의 회갑연을 기록한 의궤.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은 1795년(정조 19년) 윤2월 9일부터 16일까지 화성(華城 : 지금의 수원 성곽)에서 벌였다. 100리 길을 행행(行幸)하여 화성 행궁(華城行宮)에서 8일 동안 잔치를 벌였다. 진찬(進饌) 외 문무과방방(文武科放榜)·행성조(行城操)·어사(御射)·사미(賜米)·양로연(養老宴) 등 부속 행사를 다채롭게 펼쳤다. 그리고 노량진 앞 한강에 배들을 잇대어 다리를 놓은 주교(舟橋)를 설치하였다.
정조가 이렇게 전례가 없을 만큼 거창하게 행사를 치른 까닭은, 1795년이 정조 재위 20주년에 해당하는 데다 자전(慈殿)의 나이가 육십을 바라보고, 사도세자의 구갑(舊甲)이며, 혜경궁 홍씨의 주갑(周甲 : 환갑)에 해당하는 뜻깊은 해이기 때문이라고 이 의궤에 적혀 있다. 그러나 그 의도는 화성 건설의 명분을 높이고 화성을 통한 왕권 강화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의궤의 글씨는 목활자인 생생자(生生子)를 본떠서 제작한 금속활자인 정리자(整理字)로 찍었고, 그림은 목판화를 사용하였다. 조선시대 의궤로는 맨 처음 활자와 판화를 함께 갖춘 인쇄의 체제로 제작한 점에 서지학적 의의가 있다.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권수 1권, 본편(本編) 5권, 부편(附編) 4권이고 모두 8책으로 나누어졌다. 권수에는 택일(擇日)·좌목(座目)·도식(圖式)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전의 의궤와는 달리 도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양식적 측면에서 보면, 이 의궤는 정교한 새김 기술을 바탕으로 당시 도화서(圖畫署)를 주도한 김홍도(金弘道)식의 화풍을 표현하여 ≪무예도보통지 武藝圖譜通志≫·≪용주사부모은중경 龍珠寺父母恩重經≫·≪오륜행실도 五倫行實圖≫·≪화성성역의궤 華城城役儀軌≫ 등과 더불어 정조시대 판화 양식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특징을 지녔다.
이전의 의궤도가 마치 지도처럼 일종의 표시가에 가까운 데 비하여, 이 의궤에서는 판화로 제작되고 당시의 새로운 화풍을 반영하여 회화성이 풍부하여 회화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작품을 만든 것이다.
이 의궤는 체재·기법 등에 있어서 ≪화성성역의궤≫를 비롯하여 잔치를 기록한 ≪진찬의궤 進饌儀軌≫·≪진연의궤 進宴儀軌≫·≪진작의궤 進爵儀軌≫ 등에 영향을 미쳐 후대에까지 계승되었다. 규장각도서·장서각도서·국립중앙도서관·국립중앙박물관 및 김학수(金學洙)가 소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은 그림이 필사로 되어 있고, 김학수 소장본은 목판화에 채색을 입힌 점이 특이하다.
<<참고문헌>>園幸定例
<<참고문헌>>華城日記
<<참고문헌>>園幸乙卯整理儀軌의 板畫史的硏究(鄭炳模, 文化財管理局 22, 1989)
위판조성도감의궤(位版造成都監儀軌)
조선 영조 때 전주이씨의 시조인 사공공 한의 신위판 봉안에 따른 의식·절차 및 경위·전말 및 경위·전말 등을 기록한 책.
조선 영조 때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시조인 사공공(司空公) 한(翰)의 신위판(神位版) 봉안에 따른 의식·절차 및 경위·전말 등을 기록한 책. 1책. 필사본. 1771년(영조 47) 위판조성도감을 설치하고 그 행사를 치른 뒤에 작성되었다.
앞에 목록이 있고, 이어 좌목(座目)·계사(啓辭)·전교(傳敎)·의주(儀註)·예조절목·병조절목·이문(移文)·내관(來關)·감결(甘結)·상전(賞典)·의궤(儀軌)·노정기(路程記)·반차도(班次圖) 등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좌목〉의 이조별단(吏曹別單)에 의하면 당상에 행호조판서 조운달(趙雲達) 등 3인, 낭청에 조재술(趙載述) 등 3인이 임명되었다.
〈계사〉 및 〈전교〉에는 1771년 이득리(李得履)의 상소에 따라 전주이씨 시조인 사공공의 추제(追祭)를 봉행하기로 하여 계경묘(啓慶廟)를 짓고, 경기전(慶基殿)에 태조의 영정을 봉안할 때의 일기를 참고하여 신위판을 봉안하게 된 전말이 기록되어 있다.
〈의주〉에는 신위판봉안자정전후친제의(神位版奉安資政殿後親祭儀〉·왕세자아헌의(王世子亞獻儀)·계경묘신위판봉예고유작헌례의(啓慶廟神位版奉詣告由酌獻禮儀)·동시왕세손배참행례의(同時王世孫陪參行禮儀) 및 신위판을 봉례할 때의 왕세손수하기영의(王世孫隨賀祗迎儀)·계경묘신위판봉예의(啓慶廟神位版奉詣儀) 등에 대한 설명이 있다.
〈의궤〉에는 위판을 비롯하여 신주를 모셔두는 주독(主櫝), 천을 재는 포백척(布帛尺), 목수가 쓰는 영조척(營造尺) 등의 도식이 있다.
그 다음 〈노정기〉에는 서울을 출발하여 과천을 경유, 전주의 계경묘에 도착하기까지의 자세한 노순과 일정이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다. 그 뒤 마지막으로 14면으로 된 채색반차도가 그려져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