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기는 역사서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읽기 힘들어 하는 책이다. 1-9장이
끝없는 족보로 되어 있고 그 이후에도 중간 중간에 다양한 명단과 제의 제도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히브리
성경에서 역대기의 이름은 ‘그날들의 사건들’(디브레 하야밈)인데, 우리말 성경에서는 이 말을 ‘역대지략’(대상27:24)으로 번역하였다. 현재
우리가 부르는 ‘역대기’(Chronicles)라는 명칭은
제롬이 사무엘서와 열왕기에 대한 번역본의 서문에서 이 책들이 ‘거룩한 역사 전체의 연대기’를 담고 있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그리고 역대기의 70인역 제목이 ‘빠진 것들’(Paralipomenon)인
것은 오랫동안 역대기가 사무엘서와 열왕기의 내용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는 정도로만 평가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학자들은 역대기가 이스라엘 역사의 해석을 통해 포로에서 돌아온 공동체 사이에 일어난 질문에 응답하는 중요한 책으로 보고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매일성경 05/06 p.16에서 인용). 아래는 역대기상 1~29장을 읽고 요약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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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언약 자손(역대상 1:1-54)-아브라함의
계보에서 이스마엘과 에서의 후손을 제외시키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이 소개되기 전에(2:1,2), 또 유다 자손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전에(2:3이하), 이스마엘과 에서의 후손이 먼저 소개됩니다. 출애굽 때에도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는 이미 개방적이었습니다(신23:7,8). 장차
완성될 새 이스라엘도 혈통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지고 믿음으로 누구나 언약 백성이 되는 나라일 것입니다.
2. 믿음으로 받는 유산(역대상 2:1-55)-아갈(아간)은 유다의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언약의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합니다(수7:18-26). 하나님께 봉헌되어야 할 것(헤렘, 짐멸)에 욕심을
부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탐욕을 절제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약속된 안식의 땅을 얻지 못하고 저주를 받아
죽습니다. 유다 자손이라는 혈통적 지위가 그를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지위는 순종하는 이에게 주시는 언약의 선물입니다.
3. 돕는 자의 영예(역대상3:1-4:43)-성전
재건을 주도한 스룹바벨은 메시아적 소망의 예표가 됩니다(슥3:8;
6:12,13; 마1:13). 이스라엘이 패망하고 포로로 끌려갔을 때에도 하나님의 언약은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스룹바벨은 절망의 때, 불모의 땅에서
솟아난 소망의 싹이었습니다. 그가 예표했던 그리스도 역시 죄의 포로가 된 절망의 땅에 오신 연한 순(荀, 사53:2)이셨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든든한 소망이 있습니다. 봄에 마른 땅을 뚫고 올라온 새싹처럼, 우리 완고한 마음을 녹이는
말씀이 순으로 돋아나길 소망합니다.
4. 다윗의 충성된 사람들(역대상 11:20-47)-요압의
아우 아비새는 삼십 인 부대의 세 우두머리 중 첫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창을 들어 적군 삼백명을 죽일
만큼 용맹한 장수였지만 그의 지략은 용맹에 미치지 못했고, 성품도 잔인했습니다. 그는 다윗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지만 (삼하21:17), 그의 형 요압처럼 적에게 무자비했습니다(삼하3:30). 그의 이런 성격은 자비와 은총을 베풀어야 할 다윗의 통치에 종종 걸림돌이 되었습니다(삼상26:8,9; 삼하16:10;
19:21). 지나친 열정은 하나님의 일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행동하기에 앞서 묵상하고, 내 뜻을 펼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 과정은 느린 것 같아도 바르고,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가장 빠른 길이 될 것입니다.
5. 다윗의 업적(역대상 18:1-17)-다윗은
온 이스라엘에게 정의와 공의의 통치를 펼칩니다. 지역을 차별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가 공평한 법을 적용받고 공정하게 대우받도록 다스렸습니다. 정의와
공평은 하나님 나라의 변치 않는 통치 원리입니다. 우리 사회가 아직 정의롭지 못하고 공평하지 않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 큽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의를 바랐는데
포악이 있고 공의를 바랐는데 억울한 자의 울부짖음만 가득한’(사5:7)
불의한 세상에 대한 책임을 직무를 유기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정의로운
통치가 내 삶의 작은 일에서부터 구현되게 합시다.
6. 방심과 교만의 무서운 결과(역대상
21:1-17)-영적인 승리와 성공을 거둔 후에도 얼마든지 사탄의 유혹과 충동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압, 에돔, 암몬, 아람 등과의 싸움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
이후에 사탄의 충동을 받아 인구조사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인구조사는 군대와 세금을 더 얻기 위한
것으로 이는 하나님 보다 자신의 힘을 더 의지하는 불신의 행동이었습니다. 다윗은 ‘인구조사가 하나님께 죄 짓는 일’이라는 요압의 반대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압적으로 명령을 내려 인구조사를 강행합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손을 의지했던 다윗이 계속된 승리로
어느덧 교만한 군주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의식적으로 겸손하려 하지 않으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교만하게
됩니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우리도 순식간에 사탄의 충동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순간에라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며, 특히 승리와 성공을
거둔 후에는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7. 신령한 노래를 하는 사람들(역대상
25:1-31)-더 잘 섬기기 위해 배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찬송하는 사람들로 선발된 288명을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배우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라마드)는 ‘훈련받은’이란 뜻입니다. 배우고 훈련받아야 익숙(능숙)하게 섬길 수 있습니다. 찬양을
맡은 자는 음악적으로도 잘 훈련되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도 잘 훈련되어야 합니다. 특히 찬양대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헤만’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왕의 선견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5절). 찬양뿐
아니라 어떤 섬김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훈련은 필수입니다. 아무리 재능과 실력이 뛰어나도
말씀 없이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내가 맡은 일은 무엇입니까? 실력과 영성을 균형을 갖춰 잘 섬기기 위해 훈련받아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8.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역대상
28:1-21)-모든 마음을 감찰하시고 모든 의도를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버린다는
것은 적극적인 면에서 배교에 해당하기도 하지만, 소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몸이 예배하고 봉사하며 종교의식을 행하는 곳에 있을지라도 우리 마음이 간절히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이를 모르실 리 없습니다. 내 행위에 ‘온전한 마음’, ‘기쁜 뜻’이
담겨있는지 점검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