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반찬이란 단어에 어느 날 마음을 빼앗겨 그림을 그리다가 무명천에 그림을 다시 그려 수를 놓았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그림 안에 할머니가 느껴져서 홀로 코끝이 시큰하다가 자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토트백을 만들었다. 삼 년 전 한국 갔을 때 할머니의 바다에도 이 가방을 들고 가서 갯내음과 갯바람과 황토 흙 내음을 가방에 담으며 센치한 시간을 보내다 돌아오는 길에 굴 껍데기 세 개와 고추 꽃 하나를 따 가방에 담으며 울 할머니 고쟁이 생각이 났다.
우리 가족이 외가에 갈 때면 할머니는 배가 도착하는 시간을 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미리 선착장에 나와 우리를 기다리셨고 할머니 댁에는 손수 준비한 음식들이 꽃 상보를 덮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각조각 바느질한 상보를 열면 생선구이와 조림, 나물들, 해초류 무침, 조개 전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반찬들이 단정히 앉아 웃는 듯이 보였다. 그중 여름 반찬의 으뜸은 톳 초무침과 애호박과 오징어 숙회 무침 그리고 야들야들한 열무 된장 비빔밥이었다. 열무 비빔밥에 할머니께서 손으로 찢어 놓으신 구운 노래미를 올려 먹으면 얼마나 맛있던지... 말이 필요 없는 맛이었다.
그 시절 할머니 댁으로 가는 배를 탔던 선착장 주변에는 식당이 한 십여 군데 있었을까... 흐릿한 기억으로 그 이하일 것 같기도 하다. 삼 년 전 그 항구 앞 회 센터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테이블마다 비닐 커버가 씌워져 있었다. 우리가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일회용품을 사용하게 되었고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서 낭만이라고는 1도 없는 우울한 저녁밥을 먹게 되었으며 항구에서 느꼈던 어린 시절 향수도 사라질 지경이었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는 의도치 않게 일회용품을 쓰는 대열에 합류하게 되는데 여기서 의도치 않음이란 표현은 팬데믹 전에 스타벅스에서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올 수 있었다면 팬데믹 상황에서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아 그들이 제공하는 테이크아웃 컵에 커피를 담아준다는 것이다. 항구의 식당처럼 말이다. 그러니 나는 밖에 나갈 때 커피를 사 마실 수 있는 자유를 잃게 되었다. 며칠 전 한국의 택배기사 한 분이 한 달 동안 배달음식을 배달하여 올린 수익이 오백만 원을 넘은 기사를 읽고 그 개인으로서는 좋은 일이겠으나 쓰레기로 쌓인 플라스틱 용기들을 보니 숨이 막힐 정도였다.
환경개선을 위한 국가적 시스템을 온 인류가 함께 가동해야 한다는 현실에 동의하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이미 팬데믹 상황에 살고 있고 편하게 숨 쉴 자유를 박탈당했다. 정책을 결정하지 못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환경 실천은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좀 더 액티브한 그룹에 스스로 들어가 변화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팬데믹이 시작되었던 올봄에 거위 두 마리가 풀밭 위에 앉아 아침을 즐길 때 나는 바로 옆 마켓의 얼리버드가 되기 위해 라인업을 하고 있다가 그 상황에 자괴감이 들어 시장 보기를 포기하고 산책을 하다 돌아왔다. 지금 그때보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고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건강 염려증으로 플라스틱 빨대 사용량은 나노 단위로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다 우리는 어쩌면 목말라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과대망상일까?
여하간 나는 불안 해소를 위해 할머니의 밥상으로 돌아간다. 바쁠수록 돌아간다는 말처럼 식사를 되도록이면 집에서 할 수 있도록 시간을 할애한다. 그 시간이 미래의 아이들에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투자라 생각하니 달갑게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풀잎 반찬 만드는 일을 공유하는 일을 좀 더 액티브하게 하기로 한다. 만드는 즐거움을 알아야 음식 만들기에 시간을 할애할 것 아닌가. 물론 지금 사회는 모두가 바빠서 옛사람들처럼 조각보 이어 상보를 만들거나 음식을 만들거나 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의 클릭으로 소통할 수 있는 세대를 살고 있으니 교육하기에는 예전에 비해 나은 상황이다.
어린 시절 소꿉장난할 때 그릇이 되었던 꼬막 껍질과 조개껍질이 미래의 아이들에게도 향수가 되길 바라며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이들이 감정적으로 연대할 수 있다는 마음에 기대를 해본다. 바람과 구름과 비와 햇살과 땅의 힘이 길러 주었던 풀잎 반찬을 먹으며 나의 건강만이 아닌 다른 이들과 지구의 건강을 생각하는 일... 마스크 쓰고 몇 개월 만에 예배를 드리러 가게 된 아침의 묵상이다. 오늘 교회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플라스틱 물병에 담긴 생수로 예배 후 다과를 대신한다고 한다. 그러니 잠잠히 세상을 살려해도 그게 어려운 상황이다. 내가 예배위원이었다면 개인 물병을 가져오라는 친절한 안내를 했을 텐데... "우아한 식탁에 플라스틱 그릇이 없다." 상황탓으로 미루지 말자. 그 상황을 야기하는데 부끄럽지만 나도 일조를 했다. 지구는 우리의 거주 공간이 아니라 우리와 동고동락하는 존재. 아낌없이 주었던 지구, 사랑하련다.
첫댓글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이들의 감정적 연대라....
많은것들과 감정적인 연대..
연대보다 소중한 것은 감정...
환경을 위해 좀더 액티브한 그룹에 들어가 자신을 묶어둘 필요를 느낍니다...
풀잎반찬 여름톳무침과 오징어숙회,열무된장비빔밥 떠올리다 이 밤에 군침이 가득 돕니다. 맛난 음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