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산물 도매시장
제인자
사는 일이 시들해지면
가장 더디게 진화하는 도시의 곳간으로 간다
동해보다 먼저 일어나
불끈 허리를 묶고
치열하게 어르고 달래는 낙찰의 값어치
누구는 서운하고 누구는 짭짤하다고
적당한 값이란 애당초 없더라고
어긋난 마음의 저울질만 질퍽대다 곧추선다
살아 뛰는 바다는 비릿하게 흥을 돋우는데
논밭이 내어준 빨주노초파남보,
한바탕 켜켜이 쌓아 올린 거룩한 제단을 헐어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새벽
덜커덩덜커덩 아날로그의 힘줄이 일어선다
염통이 전신으로 피를 보내듯
재바르게 퍼 나르는 손수레의 질서
사람의 땀방울로만 한 알의 실과를 얻겠는가
햇빛과 바람과 빗물을 머금은
신의 생물에 살이 올랐고
이름을 불러준 볼때기마다 오동통 단물이 들었다
비워내면 채워지는 왁자한 곳간
길고양이도 머물러 새끼 치고
배춧잎을 그러모아 연명하던 88번 마진상회
베테랑 배추밭 두어 평 일구었고
든든한 열쇠 하나 허리춤에 차고 늦은 아침을 들고 있다
겨자나무
제인자
이스라엘 낮은 언덕에 샛노란 물결이 일렁인다
겨자나무가 아니라 겨자 풀밭이었다
가이드는 낄낄거리며 예수님의 정원에 심은
바로 그 겨자나무라고 우긴다
공중에 새들이 깃드는 큰 나무라니요?
함께, 같이, 더불어가 아니라면 쓰러지고 무너질 허리들
가녀린 허리춤마다 노랑 콩고물이 묻어난다
풋풋한 꼬투리 한 줌 훑어
연둣빛 피가 도는 씨알에 맞대어 보았던 겨자씨 비유
겨자보다 더 노랗게 웃으며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후 불면 날아가는 여정처럼 잃어버린
겨자씨 몇 알
호주머니 속에서 밀입국한 마른 꽃잠을 털어낸다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주셨듯이
이 작은 형체에 할딱이는 숨을 불어넣으신 아버지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말씀 끝에 새기는 방점이 살아 있다
겨자나무라 부르시니 축복이고 사랑이고 능력이고
아버지 나라에 뿌리내린 믿음이고
가장 고상한 천국의 은유이다
이중주
이 땅에는 소망이 없어요
라고 하면 화가 치미는가 봅니다
정말 없어서 없다고 하는데
버럭, 리듬을 놓치고 엇박자를 냅니다
나는 레일 같은 일상이 삐걱대고
그는 그럭저럭 괜찮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한눈팔다 놓친 음표를 주워 담아
헐렁한 박자 사이사이 매달아주는 그는
내가 고장 날까 봐 전전긍긍 합니다
고작 내가 하는 일이란
그래도 둘이라서 다행이야 끄덕이며
걷어찬 이불을 덮어주거나
때때로 하이파이브로 기분을 조율합니다
자, 이제부터 거꾸로 연주해 봅시다
저 하늘에는 소망이 있어요
라고 하면 조금 부드러워집니다
불협화음이 빛 가운데로 이끌어
새벽마다 끊어진 현을 수리하고는
이 세상엔 아무 소망이 없어요
우리는 조금씩 팽팽하게 참아주었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