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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5) : 여호와 닛시 / 출 17:8-16
기독교 역사를 통해 우리 시대에 이르러 그 중요성과 본질을 광범하게 깨닫게 된 진리 하나가 있다면 '영적 전쟁'에 대한 것입니다. 물론 과거 청교도 시대에도 이미 요한 번연의 '천로 역정'같은 작품이 등장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경험되는 여러 유형의 여려움을 영적싸움으로 묘사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시대만큼 설교, 성경공부, 세미나등을 통하여 신앙의 삶을 영적 전쟁의 측면에서 보편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로 보여집니다.
나폴레옹이 전쟁에 나가려는데 부하가 "각하, 목사님을 모셔다가 기도를 하고 나가시지요"하고 말했습니다. 나폴레옹이 대답했습니다. "그런 건 필요 없어. 전쟁은 내가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니야. 전쟁과 하나님은 아무 상관이 없어."나폴레옹은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수많은 부하들이 죽었고 나라도 망하고 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영국의 해군 제독 넬슨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허사로다"(시 127:1)라는 성경 말씀을 외우며 믿었고, 전투에 나가기 전에 군목과 함께 갑판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전쟁을 이기게 하셨고 그 결과로 영국이 살고 자기도 살고 부하들도 살았습니다. 같은 장군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장군과 자기를 의지하는 장군의 종말은 하늘과 땅처럼 달랐습니다.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시 91:15)
여러분 세상적인 싸움이든지 아니면 영적인 싸움이든지 어떤 싸움이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싸움의 대장이십니다. 그분만 앞에 모시고 가면 어떤 전쟁에도 승리합니다. 세상적인 전쟁애서는 방해물은 물러가고 물질과 사람은 다가 옵니다. 영적 전쟁에서 그분을 앞에 모시고 나아가면, 우리를 괴롭히고 넘어뜨리는 사탄 마귀의 역사는 결박 당하고 물러 갑니다. 한길로 왔다고 일곱길로 도망칩니다. 벼락이 터져서 모든 물건을 쌔까맣게 태워 버리는 것 처럼 완전히 태워 버리십니다. 주님 앞세우고 나가면 적들은 산산히 흩어집니다.
우리가 어렸을때 누구한테 얻어 터지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너 우리 엄마 한테 일러 버려”이말을 힘주어서 말하고 나면 시원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후렷합니다. 그리고 정말 우리 엄마가 저놈을 혼내줄 것을 생각하니깐 힘이 납니다. 내가 맞은 것 100배로 갚아 주실 엄마를 생각하면 정말 없던 힘이 납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연약한 분입니다. 그리고 선하디 선하신 분입니다. 때리기는 커녕 욕한번 안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100배로 때리다뇨?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아니 혹시 우리 어머니가 아들이 맞는 것을 보고 분하게 여겨서 때린다 할지라도 약하디 약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나를 대신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어린 우리에게는 어머니처럼 강하신 분이 아무도 없습니다. 어머니 처럼 힘이 많으신 분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엄마 앞세우고 나가면 겁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엄마가 위대하다는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사실 힘이 있으십니다. 가장 강하신 분입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도와주기를 원하고,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 그분을 앞세우고 나가면 그 앞에 당할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렘 10:10절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이방이 능히 당하지 못하느니라.’
오늘은 하나님의 이름 다섯 번째 시간으로 ‘여호와 닛시’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와 닛시는 ‘하나님은 나의 깃발이십니다.’또는 ‘하나님은 나의 승리이십니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랍간의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의 승리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봅니다. 유일신 신앙, 국론통일, 제공권 장악이 그것입니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이스라엘은 “우리는 공개할 수 없는 최신 무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무기 때문에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에 전 세계 군사 전문가들과 미국의 정보당국은, 극비리에 그 정체를 밝히기 위해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 최신 무기의 실체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이 밝힌 최신 무기는, 그들의 ‘신앙’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들이 홍해를 건넌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들이 한 것이라고는 갈라진 바닷길을 지나간 것 뿐입니다. 홍해를 앞에 두고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았을 때, 그들이 얼마나 원망했습니까? 출 14:11-12절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그러다가 바다가 갈라지자, 바다를 마른땅처럼 걸어갔습니다. 자기들을 잡으려고 추격해 왔던 애굽의 군대는, 바다에서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얼마나 신났겠습니까? 실제로 그들은 하나님께 소리 높여 찬양했습니다. 출 15:1절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마라에서 겨우 물을 발견했는데, 물이 써서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의 주특기가 나왔다.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물을 마실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한 고비를 넘겼는가 싶었는데, 신 광야에 이르자 이번에는 먹을 게 떨어졌습니다. 그때도 이스라엘 백성의 주특기가 나왔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출 16:3절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그러자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 그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신 광야를 떠나서, 르비딤에 도착하여 장막을 쳤습니다. 그런데 마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역시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 때도 이스라엘 백성은 주특기를 발휘했습니다.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출 17:2절상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매번 당하기만 했던 모세가 이번에는 가만히 있지 않고 한 소리 했습니다. 출 17:2절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그럼 그들이 가만히 있을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출 17:3절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그들이 “여호와 라파”를 경험한지 며칠이나 지났습니까?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지, 수일이 지난 게 아닙니다. 사실 모세는 속으로 짜증이 났습니다. 하지만 백성을 상대로 짜증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그 짜증을 하나님께로 가져갔습니다. 출 17:4절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이게 기도입니까, 아닙니까? 어찌 보면 기도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아닌 거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건 기도입니다.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자신의 마음을 토해낸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정직하게 말입니다. 고상하게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심정을 표출해냈습니다.
모세의 리더십은 기도에서 나왔습니다. 그 원망하는 200만명을 이끄는 지도력은, 다름 아닌 부르짖는 기도에서 나왔습니다. 물론 모세 리더십의 뿌리는 하나님의 세우심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모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조건 하나님께 엎드렸던 것입니다. 어쩌면 직분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목사라고 무조건 순종하고, 장로라고 무조건 순복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주어진 권위만 갖고는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힘든 시대입니다. 획득된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 권위를 획득하는 방법이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기도를 뺄 수 없습니다. 이제 직분보다는 오히려 은사로 달란트로 일하는 시대입니다. 직분이든 은사든, 기도 없이는 어떤 것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모세에게 있어 최고의 무기는 기도였습니다. 모세에게 최고의 자산은 기도였습니다. 모세는 인생의 중요한 승부처에서마다, 기도를 승부수로 던졌습니다. 그 때마다 승리를 거둔 것은 물론입니다. 모세가 부르짖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이 모세를 호렙산 반석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곳에서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게 하여,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만난 문제는 지금까지 만나왔던 문제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8절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여기서 "그때"는 반석에서 물이 나온 때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다투기도 하고, 모세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반석에서 물을 얻었습니다. 또 한 번 엄청난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들은 그 기적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아 하나님이 우리 중에 거하시구나!’하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시험했던 것이, 조금은 머쓱해졌습니다. 그러던 차에 아말렉이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가지고 온 금은 보화가 탐이 났을 수 있습니다. 아말렉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창 36:12절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아말렉은 에서의 핏줄입니다.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아들이니까, 에서의 손자인 셈입니다. 에서가 누구입니까? 야곱의 형 아닙니까? 이스라엘과 아주 남남은 아닙니다. 이들은 유목민으로서, 당시 상당한 세력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싸움을 걸어온 것으로 되어 있는데, 같은 사건을 기록한 신명기 25:17-18은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줍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들이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치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진의 후미를 쳤다. 행진하다보면 피곤해서 뒤쳐지는 약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친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 전투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사탄이 누구를 공격하겠습니까? 뒤쳐진 약한 자입니다. 뒤에 쳐져서 불평하는 자입니다. 동물의 왕국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맹수가 어떤 동물을 노립니까? 공동체에서 이탈한 자입니다. 저만치 혼자 떨어져서 놀고 있는 자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도 함께 있어야(인사이더) 합니다. 홀로(아웃사이더) 있다가는, 자칫 바깥으로 튕겨져 나갈 수 있습니다. 예배도 앞자리를 사모해야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앞자리에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뒷자리는 아무래도 집중이 안 됩니다.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것을 보면 압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존경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 질서를 존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나보다 잘나지 못해도, 그가 나보다 사회적인 지위가 낮아도,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합니다. 그게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표시입니다.
전라북도 김제의 금산교회 일명 ‘ㄱ자형 한옥교회’는, 아름다운 일화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조덕삼 장로와 그의 마부였던 경상남도 남해 출신 이자익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이자익은 여섯 살 때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서 살았지만, 농촌에서 과중한 노동과 배고픔에 시달렸습니다. 곡창 전라도에 가면 머슴을 살더라도 배는 곯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김제평야 금산을 찾아갔습니다. 주인인 조덕삼과 하인인 이자익은, 데이트 선교사에 의해 함께 세례를 받고, 함께 집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교회를 건축하고 난 다음 해인 1909년, 장로를 뽑는 투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교인들과 마을사람들은, 당연히 조덕삼 영수가 장로가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주인인 조덕삼 영수는 안 되고, 그의 마부인 이자익 영수가 장로로 선출되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잠시 침묵하고 있던 조덕삼 영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교인들을 향해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 결정은 하나님이 내리신 결정입니다.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나는 교회의 결정에 순종하고, 이자익 장로를 받들어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습니다.” 조덕삼이 인간적으로 그렇게 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교회공동체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기의 이익보다 교회의 덕을 구합니다. 그런 사람은 마귀가 쉽게 공격하지 못합니다.
아말렉과의 전투는 내부 문제가 해결되니까, 외부에서 문제가 터진 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에 접어들고는, 첫 번째 맞이하는 전쟁입니다. 무엇이든지 처음 하면 실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신을 집중하고 바짝 긴장을 하는데도 실수를 하게 됩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데뷔전은 부담스러워 합니다. 선수는 데뷔전에서 죽을 쒀도 다음 기회가 있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다릅니다. 단 한 번의 실수가 곧 죽음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니 모세도 다소 긴장했을 거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술렁거렸을 것입니다. 전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었기에, 전쟁이란 말만 들어도 오금이 저렸을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진에는 군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약자와 어린아이들 그리고 여자들도 같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번 전쟁은 여러 가지 조건으로 볼 때, 만만하지 않은 전쟁이 될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객관적인 전력상 열세를 딛고, 이스라엘이 승리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실력 외적인 요소가 작용했다는 말입니다. 보이지 않은 플러스 알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라고 단답형으로 답하고 넘어갈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승리를 주실 때, 쓰임 받았던 사람들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9-10절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먼저 말씀에 순종한 여호수아입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고 했지만, 그들이 군사훈련을 한 번이라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그저 20세 이상의 남자로 선발되어 나갔지만,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아마 전술이란 말도 전략이란 말도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어떻게 합니까? “아니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어떻게 전쟁합니까?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전투하란 말입니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나가라면 죽으라는 말밖에 더 됩니까?”이렇게 물었습니까? 그는 모세의 말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이스라엘 승리의 원동력이 순종에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겁을 내고 있는데, 만약 여호수아마저 겁을 먹고 뒷걸음질을 쳤다면, 그 전쟁은 해보나 마나였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순종이 이스라엘 전체의 사기를 올렸습니다.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순종하면 물론 좋습니다. 다는 아니라도 다수가 순종하면, 목회자가 기운이 납니다. 그러나 때로는 한 사람의 순종이 교회 전체를 살릴 수 있습니다. 순종하는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순종하는 한 사람이 이스라엘 전체를 살렸습니다. 순종하는 한 사람 여호수아가 되어, 승리하는 인생이 되기 바랍니다.
10-11절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다음은 기도의 손을 든 모세입니다.
이스라엘 승리의 원동력 첫째가 순종이었다면, 둘째는 기도였습니다. 오합지졸을 이끄는 여호수아 혼자 고군분투한다고 이길 수 없습니다. 그의 배후에서 기도의 손을 든 모세가 있어야 합니다. 언뜻 생각해 보면, 모세 자기는 편한 것하고, 여호수아에겐 힘든 걸 시킨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결정적으로는 모세의 기도에 달렸습니다.
어떤 일을 추진할 때,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태도가 그것입니다. 모든 일의 성패는, 그 일을 놓고 기도할 때, 이미 결판난다는 것입니다. 훈련 때 땀 한 방울 더 흘리면, 전시에 피 한 방을 덜 흘리게 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됩니다. 훈련 때의 땀 한 방울, 눈물을 흘리면서 씨를 뿌리는 것, 여러분 이것이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심는 것입니다. 기도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루 쯤 기도 안한다고 해도 크게 표 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주간 기도와 담쌓고 살아도 별로 티 나지 않습니다. 겉으로 봐서 표 나지 않고, 티 나지 않을 뿐이지, 사실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는 호흡입니다. 기도가 힘겹게 느껴진다면, 산소호흡기로 호흡하는 것입니다.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교회는, 성도들이 기도 많이 하는 교회입니다. 새벽이든, 낮이든, 밤이든,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정말 부럽습니다. 세상의 VIP(very important person)도 있고, 교회의 VIP(very important prayer)도 있습니다. 따라서 합니다. ‘나는 우리교회의 VIP입니다.’옆사람에게 ‘당신은 우리교회의 VIP입니다.’기도는 교회의 엔진입니다. 교회의 힘이 바로 기도에서 나옵니다. 기독교에 기적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도가 약해졌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라는 수단을 통해 기적을 주십니다.
아프리카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때는 8월이었고 굉장히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었는데, 선교사인 어머니가 중병에 걸렸습니다. 어린 딸은 의사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네 어머니는 지금 열병으로 몸이 불덩이 같다. 어머니를 구하려면 얼음이 있어야 하는데….”그러나 얼음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어린 딸은 의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엄마가 돌아가시면 안돼요. 어떻게든 얼음을 구해야만 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제가 하나님께 얼음을 달라고 기도하겠어요.” 어린 딸은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쉴 줄 모르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늦게 시커먼 구름이 피어오르고, 처음엔 비가 내리더니, 비는 굵은 우박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우박은 하늘로부터 내린 얼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녀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의 어머니는 생명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오후에 전화로 기도부탁, 16살 변산서중, 변산 주사랑교회. 이민영에서 이찬으로 개명) 기도하는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이스라엘 200만명을 살렸습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 모세가 되어, 승리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12-13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마지막으로 협력한 아론과 훌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한 원동력이, 여호수아의 순종과 모세의 기도, 그리고 아론과 훌의 협력에 있습니다. 아론과 훌은, 모세나 여호수아에 비하면, 눈에 덜 띄는 게 사실입니다. 공도 적게 세운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들의 공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모세의 손은 피곤을 느끼는 손입니다. 그의 손을 붙들어 주는 또 다른 손이 있어야 합니다. 아론과 훌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의 승리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아론과 훌 같은 협력자들이 많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모세나 여호수아가 될 수 없습니다. 모세는 한 사람이면 됩니다. 여호수아도 한 사람이면 됩니다. 아론과 훌 같이 협력할 줄 아는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아론과 훌은 열두제자 중 안드레 같은 사람입니다. 바울을 도운 바나바 같은 사람입니다. 이들은 숨은 공로자들입니다.
한 대기업에서 세계 일류가 되겠다는 자신들의 각오를 담아, 기업 이미지 광고에 사용했던 카피 문구가 있습니다. “아무도 2등을 기억하지 않습니다.”사실 세상은 1등만 기억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1등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2등도 기억해주십니다. 심지어 최선을 다한 꼴찌도 기억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1인자였던 베드로나 바울 같은 사람을 보내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바나바, 가이오, 스데바나 같은 사람을 보내달라고 합니다. 누가, 디모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같은 사람을 보내달라고 합니다. 이들은 주연이 아니라 조연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세계 복음화에 위대한 기여를 했습니다. 협력자가 중요합니다. 협력하는 사람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협력하는 아론과 훌이 되어 승리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14-1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승리를 기록으로 남겨놓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쌓은 제단 이름이 여호와 닛시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 여호와는 나의 승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면 승리의 깃발을 흔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참된 승리자이기 때문입니다.
줄리안이 잠시 왕위에 올랐습니다. 원래 기독교 신자였으나, 황제가 된 후 권력과 영예와 영광을 누리게 되자, 예수님을 배교했습니다. 로마군과 페르시아군 사이게 전쟁이 발발해, 페르시아로 돌진해 갈 때였습니다. 쥴리안 황제는 길가에서 믿음이 독실한 군인을 비웃었습니다. “네가 믿는 그 목수 노릇하던 예수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그러자 군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그분이야 폐하가 말씀하시듯 목수이니까 목수일이나 하고 계시겠지요. 아마도 관을 짜고 계실지도 모르지요.” 그 후 쥴리안은 전쟁에서 부상해 죽기 전에, “오, 갈릴리 사람이여! 당신이 결국 승리하였습니다”라며, 자기의 배교행위를 괴로워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찰스 엘리웃이라는 아이가 얼굴에 큰 반점이 생겼습니다. 자라면서 친구들이 흉을 보았습니다. 하루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이 나와 놀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가 ‘얘야 걱정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기도하고 말씀을 읽으라. 그리하면 언젠가 너의 점이 내 생애 속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채워져서 귀한 점으로 반드시 바꾸어 주실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찰스 엘리웃은 후일에 미국에 하바드대학 총장이 되었습니다. 총장이 되었더니 모든 친구들과 사람들이 엘리웃의 저 반점은 복점이라고 했답니다. 여러분! 내 모습속에 내 인격속에 결함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이것이 큰 영광과 축복으로 바꾸어지기를 기도하기 바랍니다.
나치 수용소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던 코리텐 붐 여사는 음식이 없어서 바퀴벌레를 먹으면서 생명을 연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서전에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기차가 터널 속에 들어갔을 때 어두워졌다고 뛰어내리지 마세요.” 그렇습니다. 인생의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갈 때 포기하지 마세요. 환난과 고통의 어둠속에서 포기하지 마세요. 낙심하지 마세요. 뛰어내리지 마세요. 잠시후에 승리의 아침이 올 것을 믿습니다. 주님 영광의 찬란한 시온의 아침이 떠오를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영원히 싸워 주심을 믿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대신 싸워 주심으로 영원히 승리자가 되시는 것을 믿기를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한 사람, 기도하는 한 사람, 서로 협력하는 사람이 되어, 남은 삶 동안 여호와 닛시를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기 도 >
하나님 아버지, 죄인들을 부르셔서 여호와 닛시의 대상이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대대로 싸워 승리하여 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과 연합전선을 펴는 기도의 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오늘도, 내일도 먼 미래의 비전을 갖고 나아가는 성도가 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어렵고 힘들어도 낙심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대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영광의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