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부코스키 소설, 체코 극작가 뻬뜨르 젤렌카의 시선으로 연극화
▲ 연극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연출 서지혜)' 공연모습. (뉴스컬처) ©사진=잘한다프로젝트
현대 미국문학에서 ‘위대한 아웃사이더’로 불리는 작가 찰스 부코스키. 정제되지 않은 듯한 그의 거친 문장과 생각은 미국 문단계에서 새로운 독자층을 만들어냈고, 투박한 듯 정확한 그의 표현과 묘사에 많은 독자들은 열광했다. 찰스 부코스키의 시와 에세이, 소설 등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그대로 대변하는 듯 금기로부터 자유롭다.
소설 ‘발기, 사정, 노출, 그리고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소통할 수 없는 현대인의 고독을 그린 이 작품은 체코 극작가 뻬뜨르 젤렌카를 매료시켰고, 작가 뻬뜨르는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을 연극으로 새롭게 각색했다. 연극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연출 서지혜)’다.
뻬뜨르 젤렌카가 각색한 이 작품은 고독한 현대인의 광기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며 지난 2001년 체코에서 초연을 선보인 바 있다. 초연 이후 작품성을 인정받아 알프레드 라독(Alfred Radok)상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2005년 영화로 제작돼 모스크바국제영화제 평론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품 안에는 원제가 갖고 있는 도발과 금기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발기, 사정, 노출, 그리고 일상의 광기’ 라는 요소를 현대인의 고독과 재치있게, 동시에 독특하게 연결시키고 있기에, 덕분에 관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현대인의 외로움을 웃음 가운데 밀접히 느낄 수 있다.
작품은 애인 야나와 헤어진 뻬뜨르의 집에서부터 시작한다. 야나와 헤어진 뻬뜨르는 직장도 그만 둔 채 집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과거 시를 썼고, 자신이 쓴 시를 출판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시를 쓰는 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야나와 다시 만나고 싶어 그녀의 집에 찾아가지만 새로운 연인과 함께 있는 옛 애인을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뻬뜨르에게는 친구 모카가 있다. 성 도착증인 모카는 집안에 틀어박힌 채 온갖 사물을 이용해 자신의 성욕을 해결한다. 가정부 안나를 만난 후 그녀와 진정한 사랑에 빠졌다고 느끼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안나가 자신을 떠나 버리자 마네킹을 자신의 파트너로 구입해 온다.
▲ 연극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연출 서지혜)' 공연모습. (뉴스컬처) ©사진=잘한다프로젝ㅌ
뻬뜨르의 부모님은 서로 대화가 단절된 지 오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대화를 하고 있으나 소통이 되지 않는 상태다. 어머니는 남편이 치매 증상이 있다고 걱정하며 직접 증세를 진료하고, 그 가운데 아버지는 낯선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무기력한 부모님과의 대화 안에서 자신도 무기력함을 느끼는 뻬뜨르는 우연히 알게 된 옆집 커플의 사생활을 ‘보는’ 역할을 맡게 되고, 그 일을 부업삼아 생활비를 충당한다.
모두가 사회와 단절된 인물들이다. 자신을 둘러싼 ‘발기’와 ‘사정’ 그리고 ‘노출’ 안에서 뻬뜨르는 자신 안의 광기를 만나게 된다. 침대 위의 담요가 춤을 추고 멈춰있던 마네킹이 일어나 제 발로 산책을 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일상과 비일상의 혼재다. 사회 안에 살고 있지만 사회 안에 속하지 못하는 인물들의 광기의 시선. 서지혜 연출은 이러한 광기의 시선을 고독의 시선으로 풀어놓아 인물 각각의 내면이 잘 보일 수 있도록 작품을 매만졌다.
작품은 배우의 역할이 상당한 무게를 차지한다. 광기와 금기 사이의 오묘한 경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배우의 역할이 특히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뻬뜨르 역을 맡은 남동진 배우는 과하지 않은 연기로 일상으로부터 한 걸음 뒤로 물러선 무기력한 인물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
독특한 에너지를 풍기는 인물이 곳곳에 포진돼 있기 때문에 배우 간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극 중 배우들은 에너지를 골고루 배분해 서로 간 적당한 거리유지를 놓치지 않았다. 덕분에 결과적으로는 작품과 객석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졌다. 사회에 적응 못하는 인물들의 엉뚱함 속에서 바닥까지 내려가는 현대인의 고독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오는 9일까지 서울 대학로 선돌극장.
[공연정보]
공연명: 연극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극작: 뻬떼르 젤렌카(Petr Zelenka)
연출: 서지혜
공연기간: 2017년 6월 29일~ 7월 9일
공연장소: 대학로 선돌극장
출연: 남동진, 김귀선, 강애심, 남미정, 최무인, 신문성, 김지성, 임정은, 조예현, 지남혁, 김윤희, 이승우
관람료: 전석 2만 5천원
(뉴스컬처=황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