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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이동 - A -
by 佐野 洋(Sano Yo)
"만약 그 전화가 녹음되어 있었다면..."
오이카와 류이치로는 나중에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 전화가 녹음 되었고 테이프가 보관되어 있었다면, 사건은 분명 다른 식으로 설명 되었을 것이다.
그 전화란 10월 4일 월요일 밤 10시 20분경, 이나무라 가즈히꼬한테서 걸
려온 전화를 말한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한동안 이 전화에 대해서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물론 친구에 대한 의리 때문이었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신문기자의 윤리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전화가 걸려왔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상당히 시간이 흐른
뒤니까, 이 기록을 그 전화에서 시작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 같다.
여기에 하나의 자료가 있다. 월간지 '분류(奔流)' 4월호에 실린 대담이
다. 그 일부를 발췌해 보자.
아나무라: 산이라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요전에 좀 묘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강연을 하러 어느 지방 도시에 갔을 때였는데, 역에 도착해 보니 주최측에서 강연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면서 부근을 자동차로 안내해 주더군요. 지방 도시에서 흔히 겪는 일이지만, 시내를 조금만 달리면 금방 산 속으로 들어가버리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시노다: 그래요. 게다가 행정구역으로는 산도 시에 포함되어 있고.
이나무라: 도로는 포장되어 있었지만, 다른 자동차와 엇갈린 건 두세 번뿐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어쩌면 이 산 속에는 시체가 수없이 잠들어 있을 게 아닐까....
시노다: 시체가요? 그곳이 전국시대 때 전쟁터였나요?
이나무라: 아니, 그렇게 오랜 옛날 시체가 아니라 현대, 즉 자동차가 인간의 발이 되기 시작한 뒤의 시체를 말하는 겁니다.
시노다: 교통사고 말인가요?
이나무라: 과연 시노다 씨는 선량하시군요. (웃음) 아마 지금까지 남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웃음)
시노다: 아아, 살인을 해서 시체를 산 속에 버린다는 뜻이로군요.
이나무라: 그래요. 한 예로 오쿠보라는 사람이 있었지요. 젊은 여자를 드
라이브시켜 주겠다고 꾀어서는 산 속으로 끌고가 폭행한 뒤에 죽이고, 시체를 묻어버린 사람 말입니다. 그런데 그 시체가 어떻게 발견되었지요?
그 사람이 자백했기 때문입니다. 오쿠보가 체포된 뒤 현장에 끌려가서 이 근처라고 말하길래 파보았더니, 비로소 거기에 시체가 있더라는 식이지요.
저절로, 즉 행인이나 개가 발견한게 아닙니다. 그걸로 유추해 보면, 일본 전역에 흩어져 있는 산 속에는 수많이 시체가 묻혀 있다 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시노다: 그렇군요. 어느 삼나무 숲 속에 이파리가 유난히 푸르고 무성하게 자라는 나무가 한 그루 있다. 그것을 수상쩍게 여긴 형사가 뿌리 근처를 파보았더니 시체가 있었다. 이런 추리소설은 어떻습니까? (웃음)
이나무라: 어때요, 우리 둘이서 함께 써보지 않겠습니까? (웃음)
하지만, 소설이라면 그걸로 통할지 몰라도,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히 발견
되진 않을 겁니다. 설사 삼나무 한 그루가 유난히 푸르고 싱싱하다 해도, 거기에 주목할 형사가 과연 있을까요? 설령 주목했다 해도 산림 소유자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고, 사람도 동원해야 합니다. 확신도 없이 땅을 파헤칠 수는 없는 겁니다. 따라서 완전범죄란 건 뜻밖에 간단하지 않을까....
시노다: 하지만 아까 얘기한 오쿠보처럼 지나가는 여자를 산 속으로 끌고 가서 죽이는 건 이른바 완전범죄와는 좀 다른 것 같은데요. 아니, 이야기가 아무래도 이상한 방향으로 빗나가버린 것 같군요. (웃음)
이나무라: 상관없으니까 계속합시다. 인간에게는 완전범죄가 하나의 꿈이
니까 '여행과 꿈'이라는 이 대담 주제에서 크게 벗어난 건 아니예요. (웃음) 그러니까 요컨데 시노다 씨는 계획 범죄가 아니면 안된다는 겁니까?
시노다: 꼭 계획범죄여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정신이상자의 우발
적인 범죄여서는 곤란하다는 얘기지요.
이나무라: 알겠습니다. 그러면 가령 내가 누군가를 죽여서 시체를 산 속에 묻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나한테도 죽이고 싶은 인간이 한 두 명은 있으니까요.
시노다: 그럴 경우, 어디서 그 사람을 죽이겠습니까? 현장까지 데려가서
죽인 다음 시체를 파묻어버리면 간단하지만, 현장에 데려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피해자가 친구한테 그 얘기를 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내일 토요일, 이나무라 선생이 드라이브 시켜 준다고 했다'든가...아무리 입막음을 해두어도 여자라면 친구한테 그만 자랑하고 싶어지는 법이니까요.
이나무라: 하아, 상대는 여잡니까? 이거 영광이로군요. (웃음) 상대가 여
자라면 확실히 그런 위험은 있습니다.
시노다: 그렇다고 해서 시내 아파트에서 죽인 다음 시체를 운반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도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이나무라: 밤이면 어떻습니까? 설사 일제검문이 있다 해도 트렁크까지 열
어보라고 하진 않겠지요? 죽인 직후라면 냄새도 나지 않을 테고.
시노다: 신호등 앞에 서 있을 때 뒷차가 부딪치는 바람에 트렁크가 열리면 어떻게 합니까? 또는 그날 우연히 과격파가 무기를 운반한다는 정보가 경찰에 들어와서, 트렁크까지 조사한다든가...
이나무라: 완전범죄를 저지르려면 그런 것까지 생각지 않으면 안되겠군요.
시노다: 그래요. 경찰 검문에 걸린다 해도 교묘히 속여넘길 수 있을 만한 대책이 서있어야겠죠. 경찰이 거수경례를 하고 보내줄 만한 대책이 말입니다.
이나무라: 그게 아주 좋은데요. '그럼 부디 안전운전하십시오.'하고...(웃음)
...
월간지 '분류'는 종합잡지로 분류되어 있다. 그렇다고 난해한 논문을 중심으로 한 딱딱한 종합잡지가 아니라, 정치와 스포츠, 때로는 섹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내막 기사나 로포등으로 취급하는 잡지다.
그리고 이 '여행과 꿈'이라는 제목의 대담기사에서는 참석자의 이름 옆에 괄호를 치고 직함을 적어놓았는데, 거기에 따르면 이나무라 가즈히꼬는 자운대 사회심리학 교수, 시노다 료스케는 문학평론가였다.
이나무라 가즈히꼬의 직함이 대학교수로 되어 있는 것은 결코 거짓이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의 모습을 정확이 전달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시노다 료스케에 관해서는 이 기록과 특별한 관계가 없기 깨문에 생략하겠다.)
대학교수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학자를 연상한다. 이나무라도 학자임에
는 틀림없지만, 훌륭한 학자라고 이유만으로 <분류>편집자가 그를 대담에 끌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나무라는 ...아니, 이건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여기서는 그의 직함이 대학교수만은 아니라는 사실만 지적해 두고 넘어가자.
지루하게 인용한 대담의 마지막 부분에서 '경찰이 거수경례를 하고 보내줄 만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시노다 료스케가 말하고, 이나무라가 거기에 맞장구를 치고 있다.
필자는 이것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 즉 '마네킹 파티 사건'에 바로 그런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담에 나온 그 말이 땅에 뿌려진 씨앗처럼 싹이 트고 자라서 그
사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두번째 자료로 '중앙일보' S현 지방판 기사(10월 7일자)를 제시 하겠다.
S현 지방판 왼쪽 아래 귀퉁이에는 '일방통행'이라는 고정란이 있다.
* 6일 오후 6시 10분께, 254번 국도 옆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잠시 쉬고 있던 현경기동순찰대 T순경(24세)은 황급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 T순경의 눈앞을 지나쳐간 세 대의 승용차에 발가벗은 여자들이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T순경이 당장 뒤따라간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 도쿄 번호판을 단 문제의 자동차를 뒤따라간 T순경은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발가벗은 여자인 줄 알았던 것은 실은 마네킹이었기 때문이다. 운전하고 있던 학생의 이야기로는 가루이자와의 별장에서 열리는 파티에 장식품으로 쓸 인형이라고 한다.
* 마네킹이라면 '외설물 진열죄'도 '정원초과'도 되지 않는다. T순경은 그 차들을 보내고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무심코 중얼거렸다. '감기 걸리지 않을까....'
이 기사를 쓴 사람은 '중앙일보' S지국에 근무하는 사쿠라이 고지 기자였
다.
사쿠라이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금년 4월에 중앙일보사에 들어와 2주일
동안 수습기자로 일한 뒤 S지금에 배속되어, 지금은 주로 경찰을 담당하고 있다.
이 사쿠라이한테 도쿄 본사에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10월 7일 오후 1시
30분경이었다.
그가 근처 식당에서 배달해온 튀김국수를 다 먹고 젓가락을 놓았을 때, 마침 눈앞에있는 전화가 따르릉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자 여자의 목소리가 물었다.
"중앙일보 S현경 기자실이죠? 거기에 혹시 사쿠라이 씨 계십니까?"
"내가 사쿠라이인데요."
"여긴 본사 교환이에요. 논설위원실 오이카와 씨의 전회입니다."
"네? 나한테요?"
사쿠라이는 당황해서 되물었지만, 그때는 이미 전화가 연결되어 있었다.
"여보세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사쿠라이입니다만."
그는 의자에서 자세를 고쳐 앉으며 대답했다. 논설위원은 직속상관은 아니다. 하지만 갓 입사한 풋내기 기자한테는 구름 위의 존재라 해도 좋았다.
게다가 오이카와 료이치로는 '중앙일보'논설위원이자 사회평론가로서 다른 잡지나 주간지에도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사쿠라이는 입사하기 전부터 그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었다.
"논설위원인 오이카와라고 합니다."
"네, 존함은 익히 알고..."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네."
오이카와는 사쿠라이가 무심코 입밖에 낸 아첨에 기분이 상한 듯 쌀쌀하게 대답했다. 수화기를 쥔 사쿠라이의 왼손에서 진땀이 배어 나왔다.
"S현 지방판에 실린 '일방통행'이라는 고정란을 읽고, 지국에다 그 기사를 쓴 사람이 누군지 물어봤더니 자네라고 하더군. 그래서 전화했는데...."
"네, 쓰긴 제가 썼습니다만, 데스크가 많이 고쳐버려서..."
사쿠라이는 변명조로 말했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그가 쓴 기사의 마지막 부분은 "T순경은 그 차들을 보내고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중얼거렸다.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사고 내는 차가 없었으면 좋으련만.'이었는데, 정작 발표된 지면에는 '감기 걸리지 않을까.'로 나와 있었다.
아마 데스크는 '지켜보다'와 '바라보다'로 하면 '보다'가 겹친다고 생각하여 고쳤겠지만, '감기 걸리지 않을까'는 너무 장난스러운 것 같아서 사쿠라이는 불만이었다.
그런 불만이 있었기에, 오이카와의 질문을 받자 그만 변명조의 대답이 튀어나와 버렸을 것이다.
"고쳤다 해도 줄거리까지 바꾼 건 아니겠지?"
"네, 그건 그렇습니다."
"그런데 운전하고 있던 학생의 주소나 이름을 알고 있나?"
"아뇨, 못 들었는데요."
"못 들었다면, 자네가 듣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순찰경관은 알고 있지 않을까?"
"글쎄요. 그건 잘..."
"으음." 오이카와는 헛기침을 했다. "선배로서 충고하겠는데, 기사에는 이름을 내지않는 경우에도 그런 사실 관계는 정확히 짚어두어야 돼. 훗날 무엇에 도움이 될지 모르니까. 가능하면 방금 내가 말한 것을 조사해 주지 않겠나? 즉, 그 학생의 주소와 이름, 또는 어느 대학 학생인가..."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들한테 뭔가 수상한 점이라도..."
"그런 건 아닐세. 다만 마네킹을 사용한 파티라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싶을 뿐이야."
"네, 즉시 조사해 보겠습니다. "
사쿠라이는 전화를 끊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나중에 사쿠라이는 오이카와의 날카로운 통찰력에 감탄하곤 했다.
"과연 달라요. 그렇게 짧은 기사를 읽고도 뭔가를 냄새맡았으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일부러 본사에서 전화를 걸어 조사해 보라고 하셨겠지요."
그러나 오이카와가 발표한 공식 논평을 믿는다면, 사쿠라이의 칭찬은 지나친 것 같다.
오이카와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때는 아직 사건 냄새 따위는 전혀 맡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 마네킹
이 일종의 죽부인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러나 이 논평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오이카와는 앞으로도 잠깐 언급했듯이 10월 4일 밤에 이나무라 가즈히코한테서 전화를 받았고, 그 전화 때문에 어떤 심증을 이미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이카와는 그런 심증이나 선입관으로 움직였다고 여겨지는 것을
싫어하여,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죽부인'이라는 핑계를 생각해냈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모든 편견과 선입관을 버리고 사실만을 중시하는 것이 저널리스트로서 그의 신조였다.
사쿠라이가 T순경, 즉 도모니가 헤이고 순경을 만난 것은 그날 저녁이었
다.
도모나가는 현경 경찰관 숙소에 거처하고 있었지만, 그날은 마침 비번이어서 사쿠라이가 찾아갔을 때는 이미 외출한 뒤였다. 그래서 숙소에 돌아오면 전화해 달라는 전갈을 남겨두었더니, 6시쯤 기자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사쿠라이는 지국 옆에 있는 '쓰카사'라는 작은 식당으로 도모니가를 초대
하여 이야기를 들었다. '쓰카사'라면 외상이 통하니까,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면서 술을 마실 필요는 없었다.
도모나가는 처음 얼마 동안은 웬지 자리가 불편한 것 같았다. 사쿠라이가 그와 말을 나눈 것은 이번이 두번째였다.
사쿠라이는 어제 현경 순찰대 당직실에 잠깐 얼굴을 내밀었다가 도모나가
가 동료한테 마네킹 자동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우연히 엿들었다. 그래서 그는 도모나가를 직접 면담하여 다시금 그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썼지만, 그 전에는 도모나가와 아무 교제도 없었다.
그래서 도모나가는 사쿠라이의 초대를 기분나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술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술을 두 잔쯤 단숨에 쭉 들이키더니 굳어 있던 태도도 풀리기 시작했다.
"글쎄요...." 도모나가는 사쿠라이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소나 이름까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요."
"면허증은 봤을 거 아닙니까?"
"그건 봤지만...하지만 정규 면허증이고, 사진도 틀림없이 본인 것이었기 때문에 기록해 두진 않았습니다."
"차가 석 대였다고 했는데, 세 사람 모두 면허증을 봤습니까?"
"일단 봤습니다. 하지만 무리예요. 면허증을 보았다고 사람 이름을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야 그렇겠지만...그래도 색다른 이름이라든가..."
"잠깐만요."
도모나가는 술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보니, 히라바야시라는 이름이 있었어요. 우리 대장과 성이 같구나 하고 생각한 기억이 납니다. 그게 두번째 차였던가?"
"자동체 세 대에 살아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타고 있었습니까?"
"한 대에 한 사람씩, 운전자뿐이었아요. 나머지는 모두 알몸이었습니다.
그게 참 묘하더군요. 선두차를 들여다봤을 때는 움찍했어요. 마네킹도 그
렇게 발가벗고 앉아 있으니까 묘하게 요염하고."
"마네킹은 몇 개나 되던가요?"
"앞좌석에 두 개, 뒷좌석에 네 개였을 겁니다. 앞좌석 뒷좌석 모두 비좁아 보였으니까...."
"그러면 전부 합해서 열여덟 개인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도모나가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왜요? 확실치 않습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 앞차에는 분명 여섯 개가 실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대째와 세대째는 꼼꼼히 세어보질 않아서..."
이 말을 들었을 때 사쿠라이는 얼핏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두 대째나 세 대째에 진짜 여자가 섞여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사쿠라이는 물어보았다.
"사타구나께가 검은 건 없었나요?"
"검다니요?"
"그러니까 장난으로 털을 그려넣은 마네킹이라든가..."
"털 같은 게 그려져 있으면 일단 외설물이라는 혐의가 걸리니까, 그대로
돌려보내진 않습니다."
"아아, 그런가요?"
사쿠라이는 웃었다.
"아무리 마네킹이라도 털이 있으면 외설물이 되는군요."
"그렇게 되지 않나요? 나도 잘은 모르지만, 그런데 세번째 차 뒷좌석에 탄 마네킹은 허리에 수건 같은 것을 걸치고 있었어요. 어쩌면 털이 그려져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조사해 보진 않았습니까? "
"그것 참 이상하더군요. 왠지 그 수건을 벗겨보라고 말하기가 어려웠어요. 상대는 인형이니까 전혀 거리낄 게 없는데 말예요."
"아깝군요. 그중에 진짜가 섞여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설마..."
도모나가는 놀란 듯이 사쿠라이를 쳐다보았다. 그런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어제는 날이 흐렸고, 여섯시라면 벌써 어둑어둑해질 때가 아닙니
까? 게다가 도모나가 씨는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진짜와 마네
킹을 구별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요?"
"글쎄요, 아무리 날이 어두웠다 해도..."
도모나가는 자신없는 듯이 대답했다.
사쿠라이는 도모나가와 헤어진 뒤, 도쿄에 있는 오이카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쯤 집으로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하여 사원명부에 실려 있는 자택 전화번호를 돌리자, 오이카와가 전화를 받았다.
사쿠라이의 보고를 다 듣고 나더니 오이카와는 "그거 참 재미있군" 하고
중얼거렸다.
"그 세번째 차에 탄 인형이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있었다는 점 말일세.
자네 생각은 어떤가?"
"어쩌면 거기에 진짜 여자가 섞여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
다."
"흐음, 진짜 여자라...왜 그런 생각을 했지?"
"별장에서 열리는 파티에 남자만 셋이선 간다는 게 왠지 부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요즘 학생들은 대개 여자친구가 있으니까, 파티를 열 때는 여자도 데려가지 않을까요?
그리고 여자도 참가하는 파티라면, 그 여자들도 당연히 차에 태워 데려갈 겁니다."
"그러니까 세번째 차에는 그 여자친구들이 타고 있었다는 건가?"
"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 여자들은 왜 알몸이 되어야 했지?"
"경찰관을 놀려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요? 아니면 단순히 엉뚱한 짓을 해서 남의 눈을 끌고 싶었는지도 모르지요. 요즘 학생들 중에는 그런 생각을 가진 애들도 많은 모양입니다."
"학생의 심리는 젊은 자네가 더 잘 알겠지만..."
오이카와는 거기서 말을 끊고,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이렇게 물었다.
"그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 이름은 알아봤나?"
"아뇨, 경찰관도 그것까지는 물어보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사실은 학생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군."
"네, 그건 그렇지만...."
사쿠라이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오이카와에게 꾸중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때? 자네가 한번 조사해볼 생각은 없나?"
"네, 그야 물론..."
"신문에 실을 수 있는 것인지 어떤지는 몰라. 하지만 주간지용 기사는 될
지도 모르지. 그럴 경우에는 내가 주간지에 소개해 주겠네. 주간지용으로 긴 기사를 써보는 것도 문장 연습이 되니까. 어떤가, 해볼 텐가?"
"네, 하겠습니다."
사쿠라이는 의욕적으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우선 목격자부터 찾아봐야 돼. 주유소라든가 국도변 식당 같은데 가서 물어보고, 택시나 정기적으로 그 길을 지나다니는 트럭 운전수들한테도 물어보게, 그런 사람들 중에는 차 번호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런 증언을 모으다보면 그 자동차들이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도 알 수 있을 걸세.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하던 대로 계속하지 않으면 곤란해."
오이카와는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N현의 R읍에 '학자촌'이라는 동네가 있다. 원래는 R읍의 공유지이지만,
별장용으로 임대한 곳이다. '학자촌'이라는 명칭은 임차인을 모집할 때 대학강사와 조교수및 교수와 명예교수로 자격을 제한 했기 때문이다.
학자와 그 가족들이 찾아와 조용히 휴식을 취하거나 집필할 때 사용하는
별장이라면, 전국 각자에서 볼 수 있는 신흥 별장지처럼 도시의 번잡함이 묻어 들어오지도 않을 거라고 읍 당국이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땅을 분양하지 않았던 것도 다른 사람에게 전매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토지사용료는 시가의 절반 정도라고 한다. 조용한 별장지로 개발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빌려준 것은 아니었다.
그 '학자촌'A26호의 주인은 국립대학 조교수인 다도코로 준이었다.
10월 8일 오후 5시경, 다도코로는 승용차를 운전하여 '학자촌'으로 들어갔다.
9일이 토요일이고 10일이 일요일에다 체육의 날이어서 11일이 휴일이기 때문에, 사흘동안 계속되는 연휴 기간을 이용하여 오래 전부터 재촉받고 있던 논문을 마무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마을 입구에 관리사무소가 있는데, 우편물이나 신문도 이 사무소로 배달
되고, 호별 배달은 하지 않는다. 이 언저리부터 오르막길이 계속되어 자전거로 배달하려면 무척 힘이 들기 때문이다.
전화를 걸 때도 이 사무소까지 내려와야 한다. 그 점이 부동산회사가 조성한 별장지와 다른 점이었다.
불편한 점도 있기는 하지만, 그 대신 전화에 시달리지 않아도 좋았다. 하루에 한 번 우편물을 가지러 사무소까지 내려가는 것도 좋은 운동이 되었다. 다도코로는 여기에 별장을 지은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다도코로는 관리사무소 앞에서 차를 세우고 경적을 울렸다. 관리인이 창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지금부터 11일까지 별장에 머물겠다고 말한 뒤, 그는 다시 차를 움직였다.
도로는 간이포장되어 있었는데, 승용차 두 대가 간신히 엇갈려 지날 수 있을 정도의 폭이었다. 무척이나 가파른 비탈이고, 게다가 시야도 좋지 않았다.
다도코로는 충돌사고가 날까봐 차를 천천히 몰았다.
물론 그럴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마주오는 차는 한 대도 없었다. 어느덧 10월에 접어들어 있었으므로, 별장 주인들은 거의 다 대학이 있는 도시로 돌아가버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다도코로는 차의 속력을 높이려고 하지 않았다. 이 언저리에서는 천천히 달리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어버린 것일까.
나무들은 벌써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별장을 '녹풍정(綠風亭)'이라고 이름지었는데, 이렇게 단풍이 짙어지면 녹풍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핸들을 쥐고 있었다.
다도코로가 그것을 발견한 것도 이렇게 천천히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을 '발견'한 순간, 그의 오른발은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밝고 있었
다.
도로 왼쪽은 완만한 비탈을 이룬 잡목립인데, 그 나무 틈새로 하얀 여자
다리가 보인것 같았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그는 나중에 읍사무소 직원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다리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남잔지 여잔지 알 수가 없는데, 순간적으로 여자 다리라고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인간의 판단력이란 창졸간에도 그렇게 확실한 걸까요? 아니면, 내가 남자여서 여자 다리라고 생각한 걸까요. 이건 제법 재미있는 현상인데요."
다도코로는 자동차 엔진을 끄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비탈이니까 들어갔다
기보다 내려갔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처음에는 다리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점점 확실한 모습을 나타냈다.
분명히 발가벗은 여자였다.
이 단계에서 그가 곧바로 사람을 부르러 가지 않은 것은 용기보다 오히려 호기심 탓이었을 것이다.
다도코로는 가까이 다가가면서, 저 여자는 아마 죽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
다.
"물론 한쪽 다리가 하늘을 치켜올라가 있어서 시체라고 하기에는 좀 이상
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어요. 생물이라기보다 물체 같은 느낌이었으니까요."
다도코로는 나중에 이렇게 설명했다.
2미터쯤 떨어진 곳까지 다가갔을 때에야 비로소 다도코로는 그것이 마네킹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커다란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오고,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무의식중에 온몸을 바싹 긴장시키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어서 그는 마네킹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거기서 약 1미터쯤 아래쪽에 또 하나가 있고, 더 아래쪽에는 대여섯 개의 마네킹이 하얀 알몸을 드러낸 채 누워 있었다. 누워 있는 방향과 모양도 가지각색이었다.
다도코로는 혀를 차면서 자동차까지 돌아왔다.
도대체 누가 저런 곳에 묘한 것을 버렸을까. 다도코로는 두 손을 두드려
더러운 것을 털어낸 뒤 핸들을 잡았다. 그리고는 엔진을 걸고 곧장 '녹풍정'으로 향했다.
이 도로는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막다른 길이었다.
따라서 이 길을 지나가는 차가 싣고 있던 마네킹을 떨어뜨린 거라고는 생
각할 수 없다.
그리고 어쩌다 실수로 떨어진 거라면 그렇게 깊은 숲속까지 들어가 버릴
리도 없었다.
결국 누군가가 '마을'에 몰래 숨어들어와 그것을 버리고 갔다고밖에는 생
각할 수 없다.
그러나 다도코로는 관리사무소까지 되돌아가서 그것을 알리려고는 생각지 않았다.
인간의 시체라면 급히 알릴 의무도 있겠지만, 단순한 물체가 버려져 있을 뿐이다. 게다가 그것들은 도로의 일부에 가로놓여 통행을 방해하는 것도 아니고, 별로 미관을 해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나중에 관리사무소에 내려가는 길에 알려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중앙일보' S지국 기자인 사쿠라이 고지는 10월 8일과 9일 이틀 동안 문제의 마네킹을 실은 세 대의 승용차에 대해 어느 정도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이틀 동안 그는 상당히 무리를 했다. 논설위원인 오이카와 류이치로는 '틈이 나면 조사해 보라'고 말했지만, 사쿠라이는 그 틈을 일부러 만들어냈던 것이다.
석간 마감시간인 2시까지는 출입처를 떠날 수 없었지만, 기사 마감이 끝나고 잠깐 쉴 시간이 되면 그는 취재용 오토바이를 타고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도모나가 순경한테도 세 대의 자동차에 대한 정보를 모아서 전해
달라고 부탁해 두었다.
"아아, 그 차요? 봤어요."
이렇게 말한 것은 어느 주요소 종업원 이었다.
"처음엔 깜짝 놀랐어요. 발가벗은 여자들이 차에 가득 타고 있었으니까요.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더군요. 솔직히 말하면 가까이 다가가기가 겁이 났
어요. 뭔가 엉뚱한 일이 일어나는게 아닌가 해서요. 아니, 정말이예요. 이런 장사를 하고 있으면 벼라별 일이 다 생기거든요. 과격파가 폭탄이라도 싣고 오면 큰일이라고 전에도 우리끼리 얘기한 적이 있으니까, 그런 걸 연상했는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가까이 가봤더니 인형이잖아요? 어이구 맙소사."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까?"
"그야 물론 했지요. 무엇을 할 작정인지, 흥미가 있었으니까요. 별장에서 난교 파티를 열 거라고 하길래, 설마 했더니 '이건 죽부인 이에요' 하더군요.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에요. 죽부인이라면 그렇게 여봐란 듯이 운반할리가 없는걸요. 내 생각엔 아르바이트인 것 같아요. 대학생처럼 보였으니까요. 그런 인형을 만드는 공장이 있잖아요? 거기서 백화점이나 양장점 같은 데 배달하러 가는 길이었을 거예요."
"학생이라고 말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