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 옛 절에서 인연을 만났습니다/박종인
--인연 찾아 떠난 양평과 민기남-사충성 부부
경기도 양평 지평면에는 망미리(望美里)가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논리와 섬부리와 신대리를 합쳐서 지은 이름이니 오랜 지명은 아니다. 중심 마을은 섬부리다. 섬부리는 '석불리(石佛里)'가 바뀐 지명이다. 예로부터 마을 어딘가에 돌부처가 있다고 했으나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1967년 11월 15일 마을에 철도역이 생겼다. 이름은 석불역(石佛驛)이다. 이용 주민이 줄어들면서 석불역은 2010년 열차가 서지 않는 무정차역으로 변했다. 첫차를 타고 서울 경동시장으로 가서 야채를 팔던 농민들과 그 돈으로 학교에 다니며 자라난 농민의 아이들이 반대했다.
2012년 2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아비의 아비와 그 아비의 아비들이 소문만 듣고 자랐던 그 돌부처가 망미산 기슭에서 발견된 것이다. 잊혔던 돌부처가 환생한 데 이어 2013년 12월 28일 원색 페인트칠을 한 장난감 같은 석불역 새 역사가 문을 열었다. 부처와 역이 돌아오더니 하루 네 차례 석불역에 서는 열차에서는 앙증맞은 석불역을 찾는 여행자들이 쏟아졌다. 부처님 가피라고 해도 좋고 주민들 애정이라고 해도 좋고, 관계 당국의 주민 위주 행정이라고 해도 좋았다. 땅과 땅 이름과, 땅에 사는 사람들이 맺은 인연은 그렇게 이어졌다.
因緣, 어비계곡 민기남과 사충성
민기남은 경기도 가평 설악면 가일리 여자고 사충성은 서울 남자다. 1948년생 동갑이다. 두 사람은 지금 양평 옥천면 용천리 어비계곡에 산다. 어비계곡은 '물고기가 날아다니는(魚飛)' 계곡이다.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남편과 아내를 떠나보낸 두 영혼이 부부가 된 지 24년이다.
어릴 적 민기남은 등산객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일부러 산에 간다고? 나는 먹고살려고 나물 캐러 저 험한 산을 헤맸어. 여기가 전쟁터였잖아. 산에 가면 지뢰밭인데 그것도 모르고 막 다녔어. 빨간 지뢰밭 표시판 보면 쓰레받기 삼겠다고 서로 뜯어서 가곤 했지. 그러다 지뢰 터져서 허벅지며 넓적다리 잘라진 애들 많았어. 그런데 그 산을 놀러 간다고? 성렬이 아버지는 저기 바위 옆에서 호랑이를 만났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담배 물고 천천히 집으로 도망 왔더니 바지에 똥이 한 바가지더라나, 호호호."
삶은 둔탁했다. 모진 시련도 없었고 날카로운 행복도 없었다. 이북에서 피란 온 아버지는 나이 오십에 외동딸 민기남을 낳고서 딸이 열세 살 때 하늘로 갔다. 민기남은 엄마 손 잡고 양평장에서 소금이랑 간고등어 사서 집으로 걸어올 때 정도가 행복했다. 남자를 만나 사랑도 해봤고 살림도 꾸려봤지만 삶은 시종일관, 고단했다. 그러다 1992년 서울에서 얼굴 시커먼 남자가 민기남을 찾았다. 남자 이름은 사충성이다.
사충성이 말했다. "나, 젊은 날 좀 놀았다. 영등포에서 이름 좀 날렸지. 그때 아내가 죽었다. 세상 별건가 싶어서 검은 시절 청산하고 양평에 사는 친구한테 갔다. 거기에서 이 여자를 만났다. 이 여자 아니면 안 되겠다 싶더라." 훗날 민기남이 말했다. "딱 보니까 몸 함부로 굴려서 얼마 못 살겠더라. 그런 남자 살려내면 얼마나 보람이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여자와 아무것도 없는 남자가 마흔넷에 사랑을 했다. 가일리에서 산 너머 나오는 양평 땅 어비계곡 물가에 집을 짓고 살았다. 여전히 여자는 지뢰밭에 올라가 나물을 캤다. 남자는 개를 키웠다. 여자는 오가피며 당귀며 몸에 좋은 온갖 것들 캐 와서 가마솥에 펄펄 끓여 병든 남자에게 먹였다.
그러다 1994년 인생이 바뀌었다. 민기남이 말했다. "나물을 다듬고 있는데 등산객 부부가 집에 와서 밥 좀 달란다. 그래서 닭도리탕 드시라 했더니 내 몰골을 빤히 보더라. 머리는 산발에, 먼지로 얼굴은 새카맣게 해서 식칼을 들고 있으니, 나라도 못 믿었겠지." "정말 맛있냐"는 거듭된 물음에 "잡숫고 맛없으면 그냥 가시라"고 답하곤 부부는 닭 한 마리를 잡아서 내놨다.
먹으면서 남자가 웃고, 여자가 웃었다. 그걸로 둔탁했던 삶은 멈췄다. 어느 틈에 주말이면 '닭도리탕' 달라는 사람이 쇄도했다. 사람들이 그저 '민기남집'이라 부르기 시작한 부부네 산중 살림집에서 연일 닭들이 죽어나갔다.
남자가 말했다. "젊을 때는 '(주먹) 한 방에' 모든 일을 해결했다. 무책임했다. 내 나이 이제 칠십인데, 절반은 책임 있게 또박또박 살아왔다. 이 여자 덕이다." 봄비 내리는 계곡에서 여자가 숲을 바라봤다. "저 새싹들 봐라. 평생 저 숲을 보고 살았다. 참 지루했었는데, 지금은 사랑스럽다. 다 이 남자 덕이다." 서로가 서로를 덕이라 하니, 과연 인연이다.
*** 생각하기***
현실을 플롯, 현실의 서사, 스토리텔링이다.
박종인의 글에서 현실을 서사로 구성하는 모범을 본다.
박종인은 현실의 사람들과 사물들의 구체성과 객관성을 유지한 체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낸다.
박종인은 추상화시키지 않는다.
관념과 추상이 박종인의 글에서 몸을 얻는다.
석불역은 돌부처의 역인데 무정차역으로 바뀌었다.
농민과 아이들이 반대한다.
돌부처가 발견됐다. 부처의 환생이다.
역이 다시 열렸다. 부처의 가피다.
박종인이 석불역을 이해한 방법이다.
작품의 구조를 고민하기 전에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공감해야 한다.
사유와 의미보다. 이해와 공감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