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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편
세상 사람들이 천주를 잘못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풀이
(第二篇 : 解釋世人錯認天主)
임금자 역
2-1 ◈ 중국 선비가 말한다.
玄論飫耳醉心 終夜思之忘寢 今再承敎 以竟心惑
현론어이취심 종야사지망침 금재승교 이경심혹
이제 선생의 현묘한 말씀을 흡족히 듣고 심취하여 밤새도록 생각하느라 잠자는 것을 잊었습니다. 오늘 다시 가르침을 받아 제 마음의 의혹을 다 풀려고 합니다.
吾中國有三敎 各立門戶 老氏謂物生於‘無’ 以‘無’爲道 佛氏謂‘色’由‘空’出 以‘空’爲務
오중국유삼교 각립문호 노씨위물생어‘무’ 이‘무’위도 불씨위‘색’ 유‘공’출 이공위무
우리 중국에는 예로부터 三敎가 있어서 각기 교파를 세우고 있습니다. 老子는 만물은 無에서 생겨나기에 無 를 道라고 합니다. 불교는 현상(色)은 空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여 空을 힘써야 할 일로 삼습니다.
儒謂‘易’有太極 故惟以‘有’爲宗 以‘誠’爲學 不知尊旨誰是
유위‘역’유태극 고유이‘유’위종 이‘성’위학 부지존지유시
유교는, 역(易)에는 太極이 있다고 하여 오직 有를 마루(宗)로 삼고 성(誠)을 배움으로 삼는다고 말합니다. 선생의 뜻으로는 어느 것이 옳다고 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二氏之爲曰 ‘無’ 曰 ‘空’ 於天主理 大相刺謬 其不可崇尙明矣
이씨지위왈 ‘무’ 왈 ‘공’ 어천주리 대상자류 기불가숭상명의
도교나 불교에서 無니 空이니 하고 말하는 것은 천주의 도리와는 크게 어긋나므로 그것을 숭상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夫儒之謂曰 ‘有’ 曰 ‘誠’ 雖未盡聞其釋 固庶幾乎!
부유지위왈 ‘유’ 왈 ‘성’ 수미진문기석 고서기호!
유교에서 말하는 有니, 誠이니 하는 것은 비록 그 해석을 다 듣지는 못하였으나 진실로 도리에 가까운 듯합니다.
2-2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吾國君子亦痛斥二氏 深爲恨之
오국군자역통척이씨 심위한지
우리나라의 ‘진실한 지식인(君子)’도 역시 도교나 불교를 통렬히 배척하고 그것들을 매우 통탄하고 있습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恨之不如辯之以言 辯之不如析之以理
한지불여변지이언 변지불여석지이리
통탄하는 것은 말로써 옭고 그른 것을 가리는 것만 못하고 말로 가리는 것은 이치로 분석함만 못합니다.
二氏之徒 並天主大父所生 則吾兄弟矣
이씨지도 병천주대부소생 즉오형제의
도교나 불교의 무리도 역시 천주이신 위대한 아버지께서 내셨으니 우리의 형제입니다.
譬吾兄弟病狂 顚倒怪誕 吾爲兄之道 恤乎恨乎?
비오형제병광 전도괴탄 오위형지도 휼호한호?
비유하자면 우리의 동생들이 미친병에 걸려 고꾸라지며 괴이한 짓을 하면 우리는 형 된 도리로써 불쌍히 여겨야 하겠습니까, 통탄만 하여야 하겠습니까?
在以理喩之而已
재이이유지이이
해야 할 도리는 이치로써 그들을 깨우쳐 주는 데 있을 뿐입니다.
余嘗博覽儒書 往往憾嫉二氏 夷狄排之 謂斥異端
여상박람유서 왕왕담질이씨 이적배지 위척이단
저는 일찍이 유교의 서적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왕왕 유교의 서적은 도교나 불교를 유감스럽게 여기고 미워하며 오랑캐들처럼 그들을 배척하고 이단으로 물리치고 있습니다.
而不見擖一鉅理以非之
이불견갈일거리이비지
그러나 저는 유교의 책 중에서 하나의 큰 이치로 그 잘못을 밝혀서 드러낸 것은 못 보았습니다.
我以彼爲非 彼亦以我爲非 紛紛爲訟 兩不相信 千五百餘年不能合一
아이피위비 피역이아위비 분분위송 양불상신 천오백여년불능합일
우리 유교가 저들 불교와 도교를 잘못이라고 하면 저들 역시 우리가 잘못이라고 하여 논쟁이 분분하여 서로 불신하였으니 천오백여 년 동안 하나로 합일될 수 없었습니다.
使互相執理以論辯 則不言而是非審 三家歸一耳
사호상집리이논변 즉불언이시비심 삼가귀일이
만일 서로 이치로써 옳고 그른 것을 논변하였더라면 서로 긴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옳고 그름을 명백히 알게 되니 三家는 벌써 하나로 귀결되었을 뿐입니다.
西鄕有諺曰 堅繩可繫牛角 理語能服人心
서향유언왈 견승가계우각 이어능복인심
서양 속담에 “단단한 밧줄은 쇠뿔을 묶을 수 있고, 이치 정연한 말은 사람의 마음을 감복시킬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敝國之鄰方 上古不止三敎 纍纍數千百枝
폐국지린방 상고부지삼교 루루수천백지
우리 서양 나라의 주변 나라들에도 상고시대에는 성교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종교의 지파가 얽혀 있었습니다.
後爲我儒以正理辨喩 以善行嘿化 今惟天主一敎 是從
후위아유이정리변유 이선행묵화 금유천주일교 시종
후대에 우리나라의 선비들이 바른 이치로써 분석하여 이해시키고 선행으로써 감화시켰기 때문에 지금은 오직 천주교 하나만을 따르고 있습니다.
2-3 ◈ 중국 선비가 말한다.
正道惟一耳 烏用衆? 然佛老之說 持之有故
정도유일이 오용중? 연불노지설 지지유고
바른 도리는 오직 하나 뿐입니다. 어찌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불교와 도교의 이론은 그것들을 밑받침해 주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凡物先空後實 先無後有 故以空 無爲物之原 似也
범물선공후실 선무후유 고이공 무위물지원 사야
모든 사물은 원래 처음에 ‘비어 있다가(空)’ 나중에 ‘채워지게(實)’되며, 처음에는 ‘없다가(無)’ 나중에는 ‘있게(有)’되므로 ‘空’과 ‘無’를 만물의 근원으로 삼은 것은 그럴 듯해 보입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上達以下學爲其 天下以實有爲貴 以虛無爲賤
상달이하학위기 천하이실유위귀 이허무위천
지고(上)한 이치의 통달에는 기초(下)적인 지식이 바탕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실제로 있는 것(實有)’을 귀한 것으로, ‘허망하게 없는 것(虛無)’을 천한 것으로 여깁니다.
若所謂萬物之原 貴莫尙焉 奚可以虛 無之賤 當之乎?
약소위만물지원 귀막상언 해가이허 무지천 당지호?
만물의 근원은 그것보다 더 존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면 어찌 ‘텅 비어(虛)’ ‘존재하지 않는(無)’ 천한 것이 그런 근원에 해당된다고 하겠습니까?
況己之所無 不得施之於物以爲有 此理明也
황기지소무 부득시지어물이위유 차리명야
하물며 자기 속에 없는 것을 결코 다른 존재들에게 있을 수 있게끔 베풀어 줄 수 없습니다. 이 이치는 자명한 것입니다.
今曰 空曰無者 絶無所有於己者也 則胡能施有性 形以爲物體哉?
금왈 공왈무자 절무소유어기자야 즉호능시유성 형이위물체재?
이제 空이니, 無니 하는 것은 절대로 그 자체 속에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만물들에게 형상(性, form)과 질료(形, matter)를 부여하여 물체가 되게끔 하겠습니까?
物必誠有 方謂之 有物焉 無誠則爲無物
물필성유 방위지 유물언 무성칙위무물
사물은 반드시 참으로 존재해야만 비로소 ‘사물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있지 않으면 사물은 없는 것입니다.
設其本原無 實無有 則是幷其所出物者 無之也 世人雖聖神 不得以無物爲有
설기본원무 실무유 즉시병기소출물자 무지야 세인수성신 부득이무물위유
가령 사물의 본원이 내용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면 그곳에서 나온 사물도 역시 없는 것입니다. 세속의 인간이 비록 아무리 성스럽고 신묘한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없는 것을 있게 하지는 못합니다.
則彼無者 空者 亦安能以其空 無爲萬物有 爲萬物實哉?
칙피무자 공자 역안능이기공 무위만물유 위만물실재?
그렇다면 저 空이니, 無니 하는 것 역시 그 空과 無로써 만물을 있게(有)하고 내용을 채울(實)수 있겠습니까?
試以物之所以然觀之 旣爲之空無 則不能爲物之作者 模者 質者 爲者
시이물지소이연관지 기위지공무 즉불능위물지작자 모자 질자 위자
개체들의 존재론적 소이연을 살펴봅시다. 일단 그것을 空이니 無라고 한다면 그 空과 無는 개체들의 운동인, 형상인, 질료인, 목적인이 될 수 없습니다.
此於物尙有何着歟?
차어물상유하착여?
이런 것들이 어떻게 개체들에게 아직도 붙어 있을 수 있겠습니까?
2-4 ◈ 중국 선비가 말한다.
聞敎固當 但謂物者先無而後有 是或一道也?
문교고당 단위물자선무이후유 시혹일도야?
선생의 가르침을 들으니 진실로 합당합니다. 그러나 사물은 처음엔 없었다가 나중에 생긴다는 말은 혹시 하나의 도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有始之物 曰 先無而後有 可也 無始之物 非所論矣
유시지물 왈 선무이후유 가야 무시지물 비소논의
"시작(태어남)이 있는 존재(즉, 피조물)’라면 처음엔 원래 없었다가 ‘나중에 존재하게 된다(後有)’고 말하는 것은 맞습니다. ‘시작이 없는 존재(즉, 조물주)’는 논의 할 바가 없습니다.
無始者 無始不有 何始先無焉?
무시자 무시불유 하시선무언?
‘시작이 없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점(始點)도 없었는데 어느 때에 그것보다 먼저 ‘없음(無, 무존재)’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特分而言之 謂每物先無後有 可耳
특분이언지 위매물선무후유 가이
다만, 어떤 부류를 구체적으로 분멸하여 말한다면 이들 개체 하나하나는 처음엔 ‘없었으나(無, 나중에 있게 되었다)’ 나중에 ‘있게 되었다(有)’는 말은 맞습니다.
若總而言之 則否也
약총이언지 즉부야
그러나 만약 그 부류 자체를 총괄적으로 말한다면 처음에 없었던 것으로부터 나중에 생겼다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譬如某人未生之先 果無某人 旣生而後有也
비여모인미생지선 과무모인 기생이후유야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아직 태어나기 이전에는 그 사람은 없었고, 일단 부모로부터 태어난 후에야 그가 존재합니다.
然未生某人之先 却有某人之親以生之
연미생모인지선 각유모인지친이생지
그러나 그 사람이 아직 태어나기 이전에도 도리어 그의 부모가 있어서 그를 낳아준 것입니다.
天下之物 莫不皆然
천하지물 막불개연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이와 같이 시간상 먼저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혼돈하여 아무것도 없었던 맨 처음에 있어서는 반드시 천주께서 계셔서 만물의 근원을 열었습니다.
2-5 ◈ 중국 선비가 말한다.
人人有是非之心 不通此理 如失本心 寧聽其餘誕哉?
인인유시비지심 불통차리 여실본심 녕청기여탄재?
사람은 저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도리를 터득하지 못하고서 만약에 사람들이 본마음을 잃게 된다면 오히려 찌꺼기 같은 황탄한 말에 귀 기울이지 않겠습니까?
借如空 無者 非人非神 無心性無知覺 無靈才無仁義 無一善足嘉
차여공 무자 비인비신 무심성무지각 무령재무인의 무일선족가
가령 ‘공’이니 ‘무’니 하는 것은 인간도 귀신도 아니며, 마음의 본성도 지각도 없고, 이성적 추리력도 인의의 마음도 없으니 칭찬할 만한 좋은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卽草芥至卑之物 猶不可比 而謂之萬物之根本 其義誠悖
즉초개지비지물 유불가비 이위지만물지근본 기의성패
이런 ‘공’과 ‘무’는 바로 하찮은 풀잎과 같이 지극히 비천한 것조차도 오히려 대비될 수 없는데 그것을 만물의 근본이라고 말한다면 그 뜻은 참으로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겠습니다.
但吾聞 空無者 非眞 空無之謂 乃神之無形無聲者耳 則于天主何異焉?
단오문 공무자 비진 공무지위 내신지무형무성자이 즉우천주하이언?
그러나 불교나 도교의 ‘공’이니 ‘무’라는 것은 실제로 ‘공’과 ‘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물질적인 형체나 소리가 없는 정신을 말한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의 천주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此屈於理之言 請勿以斯稱天主也 夫神之有性有才有德 較吾有形之彙
차굴어리지언 청물이사칭천주야 부신지유성유재유덕 교오유형지휘
益精益高 其理益寔
익정익고 기리익식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천주를 함부로 부르지 말아 주십시오. 神이란 본성도 재능도 덕도 있으며 우리 인간들처럼 육체를 가진 부류들에 비하여 더욱도 정통하고 더욱더 고매하며, 그들의 도리는 더욱더 합당합니다.
何得特因無此形 隨謂之無且虛乎?
하득특인무차형 수위지무차허호?
그런데 이런 神적 존재들이 어찌하여 다만 물질적 형체가 없다는 점을 이유로 하여 ‘없음(無)’
이니 ‘공허(空)’니 하고 멋대로 말합니까?
五常之德 無形無聲 執謂之 無哉?
오상지덕 무형무성 집위지 무재?
‘오상(五常)의 덕(五倫)’이 물질적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으나 언 누가 없다고 말합니까?
無形者之於 無也 隔霄壤矣
무형자지어 무야 격소양의
‘물질적 형체가 없다는 것(無形)’과 ‘무존재(無)’는 마치 하늘과 땅처럼 절재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以此爲敎 非惟不能昭世 愈滋惑矣
이차위교 비유불능소세 유자혹의
이 ‘무’나 ‘공’으로써 가르침을 삼는 것은 비단 세상을 밝힐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더 착각을 조장합니다.
2-6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吾有言太極者 是乎?
오유언태극자 시호?
우리 유가(儒家)에서는 태극을 말하는데 그것은 옳은지요?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余雖末年入中華 然竊視古經書不怠
여수말년입중화 연절시고경서불태
저는 비록 나이가 들어 중국에 들어왔지만 저는 옛 중국의 경서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但聞古先君子恭敬于天地之上帝 未聞有尊奉太極者
단문고선군자공경우천지지상제 미문유존봉태극자
그러나 저는 고대 중국의 옛날 군자들이 천지의 하느님을 공경했다는 말은 들었으나 태극을 높이 받들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如太極爲上帝 萬物之祖 古聖何隱其說乎?
여태극위상제 만물지조 고성하은기설호?
만약 태극이 하느님이요, 천지 만물의 시조라면 옛 성인들이 무엇 때문에 그런 이론을 숨겨두고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2-7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古者未有其名 而實有其理 但圖釋未傳耳
고자미유기명 이실유기리 단도석미전이
옛날에는 아직 그런 명칭은 없었겠지만 그 도리는 실제로 있었습니다. 다만 태극의 그림과 풀이가 그 옛날에는 아직 전하여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凡言與理相合 君子無以逆之
범언여리상합 군자무이역지
말이 도리에 합당하면 올바른 지식인(君子)은 그 말을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太極之解 恐難謂合理之
태극지해 공란위합리지
태극에 대한 풀이는 아마도 도리에 합당하다고 말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吾視夫無極而太極之圖 不過取奇偶之象言
오시부무극이태극지도 불과취기우지상언
제가 보기에 ‘무극이면서 태극(無極而太極)’의 그림은 단지 홀수와 짝수의 형상을 취하여 말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而其象何在?
이기상하재?
그 홀수와 짝수의 형상이 어느 개체에 존재하고 있습니까?
太極非生天地之實 可知已
태극비생천지지실 가지이
태극은 하늘과 땅의 실체를 강조하지 못함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天主之理 從古實傳 至今全備無遺
천주지리 종고실전 지금전비무유
천주의 도리는 예로부터오늘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전해 와서 완전무결합니다.
而吾欲誌之于冊 傳之于他方 有不敢不擖其理之所憑
이오욕지지우책 전지우타방 유불감부갈기리지소빙
우리는 이 도리를 책에 기록하여 다른 나라에 전하고자 하니 또한 그 도리가 의거하는 바를 감히 지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況 虛象無實 理之可依耶?
황 허상무실 리지하의야?
하물며 태극은 ‘추상적인 개념(虛像)’이기에 ‘실제적 내용(實)’이 없는데도 천지 만물의 근원으로서 믿을 만한 ‘이치(理)’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2-8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太極非他物 乃理而已 如以全理爲無理 尙有何理之可謂?
태극비타물 내리이이 여이전리위무리 상유하리지가위?
태극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성리학에서 말하는 ‘이(理)’일 뿐입니다. 만일 완전한 ‘이’를 가지고 도리가 없다고 한다면 그 이상 어떤 도리를 더 말할 수 있겠습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嗚呼! 他物之體熊 不歸于理 可復將理以歸正議
嗚呼! 타물지체웅 불귀우리 가복장리이귀정의
아하! 여러 다른 사물들의 형태가 그들의 관념(理, ousia)에 부합되지 않으면 다시 그들의 관념에 따라서 그것들의 올바름(正)에 귀결시켜 논의하게 됩니다.
若理之本體定而不以其理 又將何以理之哉?
약리지본체정이불이기리 우장하이리지재?
만일 관념의 실체가 확정되었는데 그 관념으로 따져나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을 관념화(理之)할 수 있겠습니까?
吾今先判物之宗品 以置理於本品 然後明其太極之說不能爲萬物本原也
오금선판물지종품 이치리어본품 연후명기태극지설불능위만물본원야
지금 저는 모든 사물의 존재 양식의 범주를 먼저 판별하여 놓고 그 관념을 해당 범주(本品)에 대입하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태극이 만물의 본원이 될 수 없음을 명확히 밝히겠습니다.
夫物之宗品有二 有自立者有依賴者
부물지종품유이 유자립자유의뢰자
사물의 범주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실체(自立者)가 있고, 속성(依賴者)가 있습니다.
物之不恃別體以爲物 而自能成立 如天地鬼神人鳥獸草木金石四行等是也
물지부시별체이위물 이자능성립 여천지귀신인조수초목금석사행등시야
다른 개체에 의뢰하지 않는 사물로서 자립적인 개체로 존립할 수 있는 것, 예로 들면, 하늘과 땅, 귀신, 사람, 새와 짐승, 초목, 쇠와 돌, 사행(四行) 등입니다.
斯屬自立之品者
사속자립지품자
이런 것들은 실체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物之不能立 而託他體以爲其物 如五常 五色 五音 五味 七情等是也
물지불능립 이탁타체이위기물 여오상 오색 오음 오미 칠정등시야
스스로 설 수 없는 사물로서 다른 물체에 의탁하여 존립하는 것, 예를 들면 오상, 오색, 오음, 오미, 칠정 등입니다.
其屬依賴之品者
기속의뢰지품자
이런 것들은 속성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且以白馬觀之 曰 馬 馬乃自立者 白乃依賴者 雖無其白 猶有其馬
차이백마관지 왈 마 마내자립자 백내의뢰자 수무기백 유유기마
이제 예로 ‘흰 말’을 살펴보면, 흰색(白)을 말하고 말(馬)을 말합니다. 말은 실체요, 흰색은 속성입니다. 비록 그 흰색이 없을지라도 말은 그대로 존재합니다.
如無其馬 必無其白 故以爲依賴也
여무기마 필무기백 고이위의뢰야
만약 그 말이 없으면 필연적으로 흰색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에 속성이 되는 것입니다.
比斯兩品 凡自立者先也貴也 依賴者後也賤也
비사양품 범자립자선야귀야 의뢰자후야천야
이 두 가지 사물의 범주를 존재의 형식에서 비교해 보면 실체가 속성보다 앞서 있어서 더 귀중하고 속성은 실체가 있고 난 나중이어서 천한 것입니다.
一物之體 惟有自立一類
일물지체 유유자립일류
하나의 사물 자체에 실체는 오직 한 종류뿐입니다.
若其依賴之類 不可勝窮
약기의뢰지류 불가승궁
속성의 종류에 이르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如人一身固爲自立 其間情 聲 貌 色 彛倫等類 俱爲依賴 其類甚多
여인일신고위자립 기간정 성 모 색 이륜등류 구위의뢰 기류심다
예를 드렁 진실로 사람의 한 몸을 실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의 감정, 목소리, 용모, 얼굴 색, 윤리 습관 등과 같은 종류들이 모두 속성이기에 그 종류는 매우 많습니다.
若太極者止解之以所爲理 則不能爲天地萬物原矣
약태극자지해지이소위리 즉불능위천지만물원의
태극이라는 것이 단지 理라고 한다면 그 태극은 천지 만물의 근원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盖理亦依賴之類 自不能立 曷立他物哉?
개리역의뢰지류 자불능립 갈립타물재?
理 역시 속성의 부류이니 스스로 자립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물을 존재케 할 수 있겠습니까?
中國文人學士講論理者 只謂有二端 或 在人心 或 在事物
중국문인학사강론리자 지위유이단 혹 재인심 혹 재사물
중국의 문인들이나 학자들이 理 를 따져서 말할 때에는 두 가지 경우 : 혹시 理는 ‘마음속에 있음’을 말합니다.
事物之情 合乎人心之理 則事物方謂眞實焉
사물지정 합호인심지리 칙사물방위진실언
사물의 실정이 마음속에 있는 理와 합치면 그 사물은 비로소 참으로 실재한다고 말합니다.
人心能窮彼在物之理而盡其知 則謂之格物焉
인심능궁피재물지리이진기지 즉위지격물언
사람의 마음은 마음 밖의 사물 속에 있는 그 理들을 끝까지 파고들어가 그것을 다 알아낼 수 있으면 그것을 ‘사물에 나아가 인식함(格物)’이라고 합니다.
據此兩端 則理固依賴 奚得爲物原乎?
거차양단 칙리고의뢰 계득위물원호?
理가 오직 이 두 경우에 의거한다면 理는 진실로 속성입니다. 그 속성이 어떻게 사물의 근원이 되겠습니까?
二者皆在物後 而後豈先者之原?
이자개재물후 이후개선자지원?
두 경우 모두 사물(실체)이 있은 뒤에 나중에 理가 있음을 말한 것인데 어떻게 나중 것이 먼저 것의 근원이 되겠습니까?
且其初無一物之先 渠言必有理存焉
차기초무일물지선 거언필유리존언
또한 원래 우주에 아무것도 없었던 원초에 스스로 존립할 수 없는 속성에 불과한 理가 어떻게 필연적으로 존재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不理在何處 依屬何物乎? 依賴之情 不能自立 故無自立者以爲之託 則依賴者了無矣
부리재하처 의속하물호? 의뢰지정 불능자립 고무자립자이위지탁 즉의뢰자예무의
그 理가 어느 곳에 있었으며 어떤 사물에 종속해 있었습니까? 속성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존립하지 못하기 때문에 만일 의탁할 만한 실체가 없다면 속성이란 존립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如曰 賴空虛耳 恐空虛非足賴者
여왈 뢰공허이 공공허비족뢰자
만일 아무것도 없는 것(空虛, mothingness)에 종속해 있었다고 말한다면 아마도 ‘아무것도 없는 것’은 理가 의탁하기에 충족한 것이 못되지 않을까 합니다.
理將不免于偃墮也
이장불면우언타야
‘아무것도 없는 것’에 의탁했다면 理는 장차 떨어져 나갔음을 면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試問 盤古之前 旣有理在 何故閑空 不動而生物乎?
시문 반고지전 기유리재 하고한공 부동이생물호?
한 발 양보하여 물어 봅시다. 반고(盤古) 이전에 일단 理가 있었다고 인정한다면 어찌하여 그 때는 理가 가만히 있고 움직여 만물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其後誰從激之使動? 況理本無動靜 況自動乎?
기후수종격지사동? 황리본무동정 황자동호?
그 뒤에 누가 그 理를 격동하여 움직이게 하였습니까? 理는 본디 움직임도 고요함도 없다(無動靜)고 하는데 하물며 理가 스스로 움직였다고 하겠습니까?
如曰 昔不生物 後乃願生物 則理豈有意乎?
여왈 석부생물 후내원생물 칙리개유의호?
만약 理가 예전에는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않았으나 뒤에 만물을 만들고 싶어졌다고 말한다면 理에 어찌 의지(will)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何以有欲生物 有欲不生物乎?
하이유욕생물 유욕불생물호?
본래 동정도 의지도 없는 理가 어찌하여 만물을 만들어 내고 싶은 적도 있고 만물을 만들고 싶지 않은 적도 있는 것입니까?
2-9 ◈ 중국 선비가 말한다.
無其理則無其物 是故我周子信理爲物之原也
무기리칙무기물 시고아주자신리위물지원야
그것의 ‘이’가 없으면 그런 사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주자는 ‘이’가 만물의 근원이라고 믿었습니다.
◈ 서양선비가 대답한다.
無子則無父 無誰言子爲父之原乎? 相須者之物情恒如此 本相爲有無之也
무자칙무부 무수언자위부지원호? 상수자지물정항여차 본상위유무지야
자식이 없으면 아버지가 없긴 하지만 어느 누가 자식이 아버지의 근원이라고 말합니까?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사물의 실정은 항상 이와 같으므로 본래 서로가 서로의 있고 없음의 근거가 됩니다.
有君則有臣 無君則無臣 有物則有物之理 無此無之實 卽無此理之實
유군칙유신 무군칙무신 유물칙유물지리 무차무지실 즉무차리지실
임금이 있으면 신하가 있고, 임금이 없으면 신하도 없습니다. 경험 세계에 사물이 실재하면 그 사물의 ‘이’가 있게 되고, 경험 세계에 실재하지 않으면 바로 그 ‘이’도 실재함이 없게 됩니다.
若以虛理爲物之原 是無異乎佛老之說
약이허리위물지원 시무이호불노지설
만약 경험 세계에 없는 ‘관념적인 이’를 만물의 근원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붓다나 노자의 말과 다름이 없습니다.
以此攻佛老 是以燕伐燕 以亂易亂矣
이차공불노 시이연벌연 이란이란의
이러한 이치를 가지고 붓다나 노자의 말을 공격하는 것은 마치 연나라로 같은 연나라를 정벌하고 어지러운 정치를 또 다른 어지러운 정치로 바꾸려는 것과 같습니다.
今時實理 不得生物 昔者虛理安得以生之乎?
금시실리 부득생물 석자허리안득이생지호?
지금 사물 속에 ‘실재하는 이’(實理)도 사물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데 먼저 사물 속에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인 이’(虛理)가 어찌 사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겠습니까?
譬如今日有與人於此 有此車理 具于其心
비여금일유여인어차 유차거리 구우기심
예를 든다면 지금 여기 경험 세계에 실재하는 수레를 만드는 사람이 있고 그의 마음속에는 이 수레의 ‘이’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고 합시다.
何不卽動發一乘車 而必待有樹木之質 斧鉅之械 匠人之工 然後成車?
하불즉동발일승거 이필대유수목지질 부거지계 장인지공 연후성거?
그런데 그 理는 어찌하여 수레 한 대를 작동하여 즉시 만들어 내지 못하고 나무라는 재료나 도끼와 톱 같은 도구(즉, 질료인), 기술자의 노동(즉, 운동인)을 기다린 다음에야 수레를 이루어 냅니까?
何初之神奇 能化天地之大 而今之衰敝 不能發一車小耶?
하초지신기 능화천지지대 이금지쇠폐 불능발일거소야?
원초에는 신묘하고 기이한 관념적인 이가 어찌하여 하늘과 땅의 거대함을 조화해 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쇠퇴하고 미미해져서 한 대의 수레라는 작은 것조차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입니까?
2-10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吾聞 理者先生陰陽五行 然後化生天地萬物
오문 리자선생음양오행 연후화생천지만물
제가 이해하기로 ‘이’는 먼저 음양과 오행을 낳고 그런 후에 천지 만물을 조화 생성합니다.
故生物有此第言 使於須臾車 非其譬矣
고생물유차제언 사어수유거 비기비의
그러므로 만물을 낳는 데에도 차례가 있는 법인데 만약 감자기 수레를 만들어 내라고 한다면 적절한 비유가 아닙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試問於子 陰陽五行之理 一動一靜之際 輒(輙)能生陰陽五行
시문어자 음양오행지리 이동일정지제 첩(첩)능생음양오행
선생님께 묻고 싶습니다. 음양과 오행의 ‘이’는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교요한 때에 따라서 곧 음양과 오행을 낳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則今有車理 豈不動而生一乘車乎?
즉금유거리 개부동이생일승거호?
그렇다면 지금 수레의 ‘이’가 없으면 어찌하여 작동하여 수레 한 대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입니까?
又理無所不在 彼旣是無意之物 性必直遂 任其所發 自不能已
우리무소부재 피기시무의지물 성필직수 임기소발 자불능이
또한 ‘이’는 있지 않는 곳이 없으며 그 ‘이’는 일단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의지도 없는 것이기에 본성상 반드시 곧바로 나아가기만 하고 작동되는 대로 자신을 맡기고 스스로 멈출 수가 없을 것입니다.
何今不生陰陽五行於此? 執禦之哉?
하금불생음양오행어차? 집어지재?
그런데 어찌하여 지금 여기에 음양과 오행을 낳지 않습니까? 누가 그것을 막고 있습니까?
且物字爲萬物實總名 凡物皆可稱之爲物
차물자위만물실총명 범물개가칭지위물
더욱이 여기서 ‘물’(物)이라고 하는 글자는 실재하는 모든 것의 총체적 명칭으로 모든 사물은 다 ‘물’(物)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太極圖註云 理者非物矣 物之類多 而均爲之物
태극도주운 리자비물의 물지류다 이균위지물
태극도의 주해에서 ‘이는 사물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물의 종류는 많으나 우리는 이것을 똑같이 ‘물’이라고 부릅니다.
或爲自立者 或爲依賴者 或有形者 或無形者
혹위자립자 혹위의뢰자 혹유형자 혹무형자
그것은 혹은 실체도 되고, 혹은 속성도 되고, 혹은 물질적인 형체가 있는 것도 되고, 혹은 형체가 없는 것도 됩니다.
理旣非有形之物類 豈不得爲無形之物品乎?
이기비유형지물류 개부득위무형지물품호?
‘이’는 일단 물질적인 형체가 있는 사물의 부류가 아니라고 한다면 어찌 무형적인 존재의 부류가 아니겠습니까?
又問 理者靈覺否? 明義者否?
우문 이자영각부? 명의자부?
또 묻겠습니다. ‘이’는 ‘이성’능력과 ‘지각’능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올바름을 환히 알고 있습니까. 모르고 있습니까?
如靈覺明義 則屬鬼神之類 曷謂之太極 謂之理也?
여영각명의 칙속귀신지류 갈위지태극 위지리야?
만일 ‘이’가 이성 능력과 지각 능력이 있고, 올바름을 알고 있다면 귀신의 부류에 속합니다. 어찌 태극이라 말하고 ‘이’라고 말합니까?
如否則上帝鬼神夫人之靈覺 由誰得之乎?
여부칙상제귀신부인지영각 유수득지호?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하느님과 귀신과 뭇사람들의 이성 능력과 지각 능력은 누구로부터 얻은 것입니까?
彼理者以己之所無 不得施之于物 以爲之有也
피이자이기지소무 부득시지우물 이위지유야
저 ‘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사물에게 베풀어 ‘있게’할 수는 없습니다.
理無靈無覺 則不能生靈生覺
이무영무각 즉불능생령생각
‘이’가 이성 능력도 지각 능력도 없다면 이성 능력도 지각 능력도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請子察乾坤之內! 惟是靈者生靈 覺者生靈耳
청자찰건곤지내! 유시영자생령 각자생령이
선비님, 이 우주 안의 사물을 잘 관찰해 보십시오. 오직 이성 능력이 있는 존재만이 이성 능력을 만들어 내고 지각 능력이 있는 존재만이 지각 능력을 만들어 낼 뿐입니다.
自靈覺而出不靈覺者 則有之矣
자령각이출불령각자 칙유지의
이성 능력과 지각 능력이 있는 존재로부터 이성 능력과 지각 능력이 없는 존재가 나오는 일은 있습니다.
未聞 有自不靈覺而生有靈覺者也
미문 유자불령각이생유영각자야
그러나 이성 능력과 지각 능력이 없는 존재가 이성 능력과 지각 능력이 있는 존재를 만들어 낸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子固不踰母也
자고불유모야
태어나는 자식은 참으로 출산하는 어머니의 능력을 넘어서지 못하는 법입니다.
2-11 ◈ 중국 선비가 말한다.
靈覺爲有靈覺者所生 非理之謂 旣聞命矣
영각위유영각자소생 비리지위 기문명의
이성 능력과 지각 능력은 이성 능력과 지각 능력을 가진 존재로부터 생겨나는 것이요, ‘이’가 아니라는 말씀은 이미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但理動而生陽 陽乃自然之靈覺 或其然乎?
단이동이생양 양내자연지영각 혹기연호?
그러나 ‘이’가 움직여서 陽을 낳았으니 ‘陽’이 바로 자연의 이성 능력과 지각 능력이다 하고 혹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反覆論辯 難脫此理 吾又問
반복논변 난탈차리 오우문
반복하여 논변하여도 이 ‘이’를 벗어나기가 어렵군요. 제가 또 묻겠습니다.
彼陽者 何由得靈覺乎?
피양자 하유득영각호?
저 ‘양’이라는 것이 무엇을 통하여 이성 능력과 지각 능력을 얻었습니까?
此于自然之理 亦大相悖
차우자연지리 역대상패
이런 것들은 무생명체인 자연의 이치와는 또한 서로 크게 배치되는 것입니다.
1-12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先生謂天主無形無聲 而施萬象有形有聲
선생위천주무형무성 이시만상유형유성
선생께서는 천주는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으나 형체와 소리가 있는 천지 만물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則太極無靈覺 而能是物之靈覺 何傷乎?
즉태극무영각 이능시물지영각 하상호?
그렇다면 태극이 이성 능력과 지각 능력은 없으나 이성 능력과 지각 능력을 만들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何不云 無形聲者 精也 有形聲者 粗也下也?
하불운 무형성자 정야 유형성자 조야하야?
어찌하여 형체와 소리가 없는 것은 정묘하고 위에 있으며, 형체와 소리가 있는 것은 거칠고 아래에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以精上能施粗下 分不爲過
이정상능시조하 분불위과
정묘하고 위에 있는 존재가 거칠고 아래에 있는 존재에게 베풀어 줄 수 있다는 것은 분수에 지나침이 없습니다.
以無靈覺之粗下 爲施靈覺之精上 則出其分外遠矣
이무영각지조하 위시영각지정상 즉출기분외원의
이성 능력도 지각 능력도 없는 거칠고 아래에 있는 존재가 이성 능력과 지각 능력이 있는 정묘하고 위에 있는 존재에게 베풀어 줄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런 주장은 분수에 벗어남이 지나칩니다.
又云 上物能含下物 有三般焉
우운 상물능함하물 유삼반언
또 말씀드리자면 위에 있는 사물이 아래에 있는 사물을 자기 속에 가질 수 있는 것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或窮然包下之體 如一丈載十尺 一尺載十寸之體示也
혹궁연포하지체 여일장재십척 일척재십촌지체시야
첫째, 어느 것은 아랫것의 몸체를 전부 다 자기 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한 길이 열 자를 포함하고 한 자가 열치를 포함하는 것과 같은 그런 것입니다.
或渾然包下之性 如人魂混有禽獸魂 禽獸魂混有草木魂是也
혹혼연포하지성 여인혼혼유금수혼 금수혼혼유초목혼시야
둘째, 어느 것은 자기 속에 아랫것의 성질을 혼연히 함축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동물의 각혼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동물의 각혼은 초목의 생혼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或粹然包下之德 如天主含萬物之性是也
혹수연포하지덕 여천주함만물지성시야
셋째, 어느 것은 아랫것의 덕성을 빼어나게 자기 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천주께서 만물의 본성을 자기 속에 가지고 계시는 것과 같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夫天主之性最爲全盛 而且穆穆焉 非人心下測 非萬物可比倫也
부천주지성최위전성 이차목목언 비인심하측 비만물가비륜야
무릇 천주의 본성은 가장 완벽하고 성대하며 지극히 돈독하여 사람의 마음이 그것을 헤아려 볼 수 없으며 만물로서는 비교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雖然 吾姑譬之 如一黃金錢有十銀錢 及千銅鐵價
수연 오고경지 여일황금전유십은전 급천동철가
비록 그렇지만 우리들이 잠기 그것을 비유한다면 금전 한 닢은 은전 열 닢이나 동전 천 닢의 값을 가지는 것과 같습니다.
所以然者 有黃金之性甚精 大異於銀銅之性 故價之幾倍如此
소이연자 유황금지성심정 대이어은동자성 고가지기배여차
그리되는 까닭은 오직 황금의 본성이 지극히 정묘하여 은이나 구리의 본성과는 크게 달라 몇 배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과 같습니다.
天主性 雖未嘗截然有萬物之精 而以其精德 包萬般之理 含衆物之性 其能無所不備也
천주성 수미상절연유만물지정 이이기정덕 포만반지리 함중물지성 기능무소불비야
천주의 본성은 비록 확연하게 만물의 실정들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그 정묘한 덕성 안에 만반의 이치를 내포하고 모든 만물의 성질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그 능력은 온갖 것을 갖추지 않은 바가 없습니다.
雖則無形無聲 何難化萬象哉?
수즉무형무성 하난화만상재?
비록 형체가 없고 소리가 없다 해도 모든 것들을 조화해 내는 것이 어찌 어렵겠습니까?
理也者則大異焉 是乃依賴之類 自不能立 何能包含靈覺 爲自立之類乎?
이야자칙대이언 시내의뢰지류 자불능립 하능포함영각 위자립지류호?
‘이’라고 하는 것은 이와 크게 다릅니다. ‘이’는 곧 속성의 범주로서 제 스스로 자립할 수 없는데 어떻게 이성 능력과 지각 능력을 가질 수 있고 실체의 범주가 될 수 있겠습니까?
理卑於人 理爲物 而非物非爲理也
이비어인 이위물 이비물비위리야
‘이’는 사람보다도 비천합니다. ‘이’가 사물을 위한 것이지 사물이 ‘이’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故仲尼曰 人能弘道 非道弘人也
고중니왈 인능홍도 비도홍인야
그러므로 공자는 ‘사람이 도를 널리 펼칠 수 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널리 펼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如爾曰 理含物之靈 化生萬物 此乃天主也 何獨爲之理 爲之太極哉?
여이왈 이함물지영 화생만물 차내천주야 하독위지리 위지태극재?
만약 선비께서 ‘이’가 만물의 이성 능력을 함유하고 만물을 조화 생성 한다’ 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은 바로 천주입니다. 어찌 유독 ‘이’라고만 말하고 ‘태극’이라고만 말하십니까?
2-13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如此則吾孔子言太極 何意?
여차칙오공자언태극 하의?
만일 그렇다면 우리 공자께서 말씀하신 태극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造物之功盛也 其中固有樞紐 然此爲天主所立者
조물지공성야 기중고유추유 연차위천주소립자
만물을 창조하는 공력은 진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그 속에 참으로 핵심적 기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천주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物之無原之原者 不可以理以太極當之
물지무원지원자 불가이리이태극당지
만물들의 원인 없는 원인 이라는 것에 ‘이’나 ‘태극’은 해당될 수 없습니다.
夫太極之理 本有精論 吾雖曾閱之 不敢雜陳其辨
부태극지리 본유정론 오수회열지 불감잡진기변
무릇 태극의 도리에 관하여는 본래 정밀한 이론이 있어서 저는 비록 그것을 일찍이 책에서 읽었습니다만 여기서는 그에 대한 분석을 번잡하게 늘어놓지 않겠습니다.
或容以他書傳其要也
혹용이타서전기요야
혹 제가 다른 책을 지어서 그 요점을 전하도록 해 주십시오.
2-14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吾國君臣 自古迄今 惟知以天地爲尊 敬之如父母 故郊社之禮以祭之
오국군신 자고흘금 유지이천지위존 경지여부모 고교사지례이제지
우리나라의 임금과 신하들은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직 천지의 존귀함을 알아서 마치 부모와 같이 공경했고, 그래서 그것들에 교사(郊社)의 예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如太極爲天地所出 是世之宗考妣也 古先聖帝王臣祀典 宣首及焉
여태극위천지소출 시세지종고비야 고선성제왕신사전 선수급언
만약 태극이 천지가 나온 곳이라면 태극이야말로 이 세상의 으뜸가는 부모일 것이며, 옛날에 돌아가신 성인과 제왕, 신하들은 마땅히 태극에게 으뜸으로 제사를 지냈을 것입니다.
而今不然 此知必大極之解非也
이금불연 차지필대극지해비야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으로도 태극에 대한 해석이 반드시 잘못되었음을 알 만합니다.
先生辯之最詳 于古聖賢 無二意矣
선생변지최상 우고성현 무이의의
태극에 대한 선비님의 논변은 아주 상세합니다. 옛날의 성현들에 대비하여도 두 가지 뜻은 분명히 없을 것입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雖然 天地爲尊之說 未易解也 夫至尊無兩 惟一焉耳 曰 天 曰 地 是二之也
수연 천지위존지설 미이해야 부지존무양 유일언이 왈 천 왈 지 시이지야
비록 그렇다 해도 하늘과 땅이 다 존귀하다는 말씀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지존하신 분은 둘이 아니라 오직 한 분 뿐 입니다. “하늘이다, 땅이다”라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은 둘로 하는 것입니다.
吾國天主卽華言上帝 與道家所望玄帝玉皇之像不同
오국천주즉화언상제 여도가소망현제옥황지상부동
우리나라의 천주는 곧 중국말로 ‘하느님(上帝)’입니다. 도교에서 만들어 놓은 현제옥황(玄帝玉皇)의 조상과는 같지 않습니다.
彼不過一人修居于武當山 俱亦人類耳 人惡得爲天帝皇也?
피불과일인수거우무당산 구역인류이 인악득위천제황야?
현제옥황은 武當山에서 수도하며 살던 한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역시 다 같은 인간인데 인간이 어떻게 하늘의 임금님이 될 수 있겠습니까?
吾天主 乃古經書所稱上帝也
오천주 내고경서소칭상제야
우리나라(서양)의 천주는 바로 중국의 옛 경전에서 말하는 하느님(上帝)입니다.
中庸孔子子 曰 郊社之禮 以事上帝也
중용공자자 왈 교사지례 이사상제야
중용에서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郊社의 예는 상제를 섬기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朱註曰 不言后土者 省文也
주주왈 불언후토자 성문야
주자의 주해에서는 ‘상제 다음에 후토(后土)를 말하지 않은 것은 문장을 생략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竊意 仲尼明一之 以不可爲二
절의 중니명일지 이불가위이
그러나 공자께서 지존은 하나이지 둘이 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라고 저는 생각됩니다. 어찌 유독 문장이 생략된 것이겠습니까?
周頌曰 執兢武王 無兢維烈 不顯成康 上帝是皇
주송왈 집긍무왕 무긍유열 불현성강 상제시황
주송(周頌에서 말했습니다.
쉬지 않고 노력하는 武王이여
쉬지 않고 애쓰셔서 그 공로는 비할 데 없이 크도다.
成王과 康王의 덕행이 어찌 빛나지 않으리오.
하느님이 그들을 왕으로 부르셨다.
又曰 於皇來牟 將受厥明 明初上帝
우왈 어황내모 장수궐명 명초상제
또한 말했습니다.
오, 밀과 보리여! 잘도 자랐구나.
장차 잘 익어 풍년이 들리니
하느님의 은덕이 밝게 빛나도다.
商頌云 聖敬日躋 昭假遲遲 上帝是祇
상송운 성경일제 소가지지 상제시기
상송(商頌)에서 말했습니다.
상탕의 성덕과 경건함은 더욱 증가하여
하늘에 다다른 지 오래어도 그치지 않으니
일심으로 하느님을 공경했네.
雅云 維此文王 昭心翼翼 昭事上帝
아운 유차문왕 소심익익 소사상제
대아(大雅)에서 말했습니다.
아, 이 文王께서는 오직 마음을 조심하고 행동을 삼가며
밝은 은덕으로 하느님을 섬기셨네.
易曰 帝出乎震
역왈 제출호진
주역(周易)에서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진(震:동방)에서 나왔다.
夫帝也者 非天地謂 蒼天者 抱八方 何能出於一乎?
부제야자 비천지위 창천자 포팔방 하능출어일호?
이 하느님은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푸른 하늘은 팔방(八方)을 포함하고 있는데 어찌 하나의 방향에서 나올 수 있겠습니까?
禮云 五者備當 上帝其饗
예운 오자비당 상제기향
예기(禮記)에서 말했습니다. 다섯 가지 조건을 알맞게 갖추면 하느님께서 그 제사를 흠향하신다.
又云 天子親耕 粢盛秬鬯 以事上帝
우운 천자친정 자성거창 이사상제
또 말했습니다. ‘천자께서 친히 농사를 지어 자성 거창으로 하느님을 섬긴다.’
湯誓曰 夏氏有罪 子畏上帝 不敢不正
탕서왈 하씨유죄 자외상제 불감부정
(상서,尙書), 탕서(湯誓)에서 말했습니다. “하나라 걸왕이 죄를 지음에 나(탕왕)는 하느님이 두려워 감히 그의 죄를 바로잡지 않을 수 없었도다.”
又曰 惟皇上帝 降衷于下民 若有恒性 克綏厥猷 惟后
우왈 유황상제 강충우하민 약유항성 극수궐유 유후
또 탕고(湯誥)에서 말했습니다. “위대한 하느님께서는 이 땅의 백성들에게 올바른 마음을 내려 주셨고 언제나 변치 않을 사람의 본성을 따르게 하였다.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법도를 제정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임금이다.”
金縢 周公曰 乃命于帝廷 敷佑四方
금등 주공왈 내명우제정 부우사방
금등에서 주공이 말했습니다. “무왕은 마침내 하느님의 조정에서 명을 받아 천하의 백성을 다스리고 돌보았다.”
上帝有廷 則不以蒼天爲上帝可知
상제유정 즉불이창천위상제가지
하느님께서 조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곧 ‘푸른하늘(蒼天)’을 하느님이라고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歷觀古書 而知上帝與天主 特異以名也
역관고서 이지상제여천주 특이이명야
이와 같이 옛날의 경서들을 살펴보면 하느님과 천주는 단지 이름만 다를 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2-15 ◈ 중국 선비가 말한다.
世人好古 惟愛古器古文 豈如先生之據古理也?
세인호고 유애고기고문 개여선생지거고리야?
세상 사람들이 옛것을 좋아한다지만 오직 옛날의 기기들이나 옛 글만을 애호하는 것이지 어찌 선생께서 옛날의 도리에 의거하여 말씀하시는 것만 하겠습니까?
善敎引人 復古道焉 然猶有未暗者
선교인인 복고도언 연유유미암자
선생께서는 훌륭한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이끌어서 옛날의 도리에 되돌아가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도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古書多以天爲尊 是以朱註解帝爲天 解天惟理也
고서다이천위존 시이주주해제위천 해천유리야
옛 경서에서는 하늘(天)을 존귀하게 보는 곳이 많습니다. 그리하여 주자는 그의 주석에서 帝(하느님)을 하늘(天)로 풀이했고, 하늘(천)을 또 理로 풀이했습니다.
程子更加詳曰 以形體謂天 以主宰謂帝 以性情謂乾
정자경가상왈 이형체위천 이주재위제 이성정위건
정자는 더욱 자세하게 풀이하여 형체로 말하면 하늘(天)이요, 주재(主宰)면에서 말하면 하느님(上帝)이요, 본성의 실정(性情)으로 말하면 으뜸(乾元)이라고 말했습니다.
故云 奉敬天地 不識如何?
고운 봉경천지 불식여하?
그러므로 ‘천자를 받들어 공경하라’고 말한다면 어떨른지요?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更思之 如以天解上帝 得之矣 天者一大耳
경사지 여이천해상제 득지의 천자일대이
더욱 깊이 사색하여 만일 하늘(천)을 하느님(上帝)으로 이해한다면 말이 됩니다. 본래 하늘(天)이라는 글자는 하나(一)와 크다(大)일 뿐입니다.
理之不可爲物主宰也 昨已悉矣
이지불가위물주재야 작이실의
성리학에서 말하는 理가 사물의 주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어제의 논의로서 이미 분명히 아셨을 것입니다.
上帝之稱甚明 不容解 況妄解之哉?
상제지칭심명 불용해 황망해지재?
하느님이라는 명칭의 뜻은 아주 분명하여 어떤 풀이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망령된 풀이를 할 수 있겠습니까?
蒼蒼有形之天 有九重之析分 烏得爲一尊也?
창창유형지천 유구중지석분 오득위일존야?
‘푸르고 푸른 형체가 있는 하늘’은 아홉 겹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물리적 의미의 저 푸른 하늘이 어찌 하나의 지존이 될 수 있겠습니까?
上帝索之無形 又何以形之謂乎?
상제색지무형 우하이형지위호?
‘하느님’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물리적인 형체가 없는데 어떻게 형체로써 말할 수 있습니까?
天之形圓也 而以九層斷焉 彼或東彼或西 無頭無腹 無手無足
천지형원야 이이구층단언 피혹동피혹서 무두무복 무수무족
물리적인 하늘의 형체는 둥글고, 아홉 층으로 잘려집니다. 저 하느님은 어느 때는 동쪽에, 어느 때는 서쪽에 존재하며, 머리도 없고, 배도 없고, 손도 없고, 발도 없습니다.
使與其神同爲一括體 豈非甚可矣訝者哉?
사여기신동위일괄체 개비심가의아자재?
만일 하느님이 이런 그의 정신성과 함께 육채를 가진 하나의 활동체라고 가정하게 된다면 어찌 가소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況鬼神未嘗有形 何獨其最尊之神爲有形哉?
황귀신미상유형 하독기최존지신위유형재?
하물며 귀신도 물리적인 형체는 없는데 어찌 홀로 하느님의 가장 존귀한 정신성이 형체를 가지고 있겠습니까?
此非特未知論人道 亦不識天文及各類之性理矣
차비특미지론인도 역불식천문급각류지성이의
천주를 멋대로 풀이하는 이런 것들은 특히 정신과 육체가 결합되어 있는 사람의 이치도 아직 모를 뿐만 아니라 또한 천주에 의해 창조된 물리적인 ‘하늘의 천문 형상’ 및 각종 사물의 본성에 대한 이치도 모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上天旣未可爲尊 況于下地乃衆足所踏踐 汚穢所歸寓 安有可尊之勢?
상천기미가위존 황우하지내중족소답천 오예소귀우 안유가존지세?
높은 하늘도 존경 받을 수 없거늘 하물며 아래에 있는 땅은 여러 사람들의 발에 짓밟히고, 온갖 오물이 모이는 곳인데 존경 받을 수 있는 형세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要惟此一天主化生天地萬物 以存養人民
요유차일천주화생천지만물 이존양인민
요컨대 오직 이 한 분 천주께서 천지 만물을 조화, 생성하고, 사람을 생존시키고, 양육하시는 것입니다.
宇宙之間 無一物所以育吾人者 吾宣感其天地萬物之恩主 可誠奉敬之 可耳
우주지간 무일물소이육오인자 오선감기천지만물지은주 가성봉경지 가이
우주 안에는 우리들 인간을 양육하기 위한 것이 아닌 새물들은 하나도 없으니 우리는 마땅히 천지 만물의 은혜로운 주인이신 천주께 감사드리고 더욱 정성스럽게 받들어 공경하여야 마땅할 뿐입니다.
可捨此大本大原之主 而反奉其役事吾者哉?
가사차대본대원지주 이반봉기역사오자재?
이와 같이 위대한 근본이며 위대한 근원인 천주를 버리고 거꾸로 우리 인간들에게 부림당하고 봉사하는 것들을 받들어야 하겠습니까?
2-16 ◈ 중국 선비가 말한다.
誠若是 則吾儕其猶有蓬之心也
성약시 즉오제기유유봉지심야
진실로 그와 같다면 우리 중국인들은 아마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하여 마음이 아직도 혼란스럽다고 하겠습니다.
夫大抵擡頭見天 遂惟知拜天而已
부대저대두견천 수유지배천이이
대저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고는 이윽고 오직 하늘에 절할 줄만 알뿐입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世有智愚差等各別 中國雖大邦 諒有智 亦不免有愚焉
세유지우차등각별 중국수대방 량유지 역불면유우언
세상 사람들은 슬기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등이 있어서 각기 다릅니다. 중국은 비록 큰 나라이지만 진실로 지혜로운 사람이 있겠으나 또한 어리석은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以目可視爲有 以目不能視爲無 故但知事有色之天地 不復知有天地之主也
이목가시위유 이목불능시위무 고단지사유색지천지 부복지유천지지주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있다고 하고, 볼 수 없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만 형체가 있는 하늘과 땅은 섬길 줄 알면서도 천지의 주인이 있음을 더 알지 못합니다.
遠方之氓 忽至長安道中 驚見皇宮殿宇 巍峩嶻嶪 則施禮而拜 曰 吾拜吾君
원방지맹 홀지장안도중 경견황궁전우 외아절업 칙시예이배 왈 오배오군
예를 들어, 먼 변방에서 온 사람이 갑자기 長安의 길 한복판에 이르러서, 웅장하고 호화찬란한 궁전을 보고 깜짝 놀라 예를 갖추어 절하고 나서 “나는 임금을 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今所爲奉敬天地 多是拜宮關之類也
금소위봉경천지 다시배궁관지류야
오늘날 하늘과 땅을 받들고 공경하는 것은 대부분 궁궐을 보고 절하는 부류와 같습니다.
智者乃能推見至隱
지자내능추견지은
지혜로운 사람은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 지극히 은밀한 것도 추리하여 알 수 있습니다.
視批天地高廣之形 而遂知有天主主宰其間 故肅心持志 以尊無形之先天
시차천지고광지형 이수지유천주주재기간 고숙심지지 이존무형지선천
그는 이 천지의 높고 넓은 모양을 보고 마침내 천주께서 계시어 그 사이에 있는 것들을 주재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엄숙한 마음과 굳은 뜻으로 형체는 없으나 ‘하늘보다 앞서 있는 존재(하느님)’을 받듭니다.
執指玆蒼蒼之天而爲欽崇乎?
집지자창창지천이위흠숭호?
어떻게 저 푸르고 푸른 물리적인 하늘을 지목하여 흠숭하겠습니까?
君子如或稱天地 是語法耳
군자여혹칭천지 시어법이
올바른 선비가 만약 천주를 말하지 않고 혹시 천지를 일컬었다면 그건 말투일 뿐입니다.
譬若知府縣者 以所屬府縣之名爲己稱 南昌太守 稱爲南昌府 南昌縣大尹 稱爲南昌縣
비약지부현자 이소속부현지명위기칭 남창태수 칭위남창부 남창현대윤 칭위남창현
비유하자면 지부(知府)나 현감(縣監)이 소속된 府나 縣의 이름을 가지고 자기의 호칭을 삼는 것과 같습니다. 남창의 태수는 南昌府라 부르고, 남창현의 대윤은 남창현이라 부릅니다.
比此 天地之主或稱爲天地焉 非其以天地爲體也 有原主在也
비차 천지지주혹칭위천지언 비기이천지위체야 유원주재야
이런 경우에 대비되어 천지의 주인을 혹시 천지라고 불렀다면 그것은 천지를 천주의 실체로 본 것이 아닙니다. 천지 만물의 原主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吾恐人誤認此物之原主 而實謂之天主 不敢不辨
오공인오인차물지원주 이실위지천주 불감불변
저는 사람들이 이 만물의 원래 주인을 잘못 알게 될까 염려되어서 실제로 그 원래의 주인을 천주라고 말해야 함을 변별하여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7 ◈ 중국 선비가 말한다.
明師論物之原始 旣得其實 又不實其名
명사논물지원시 기득기실 우부실기명
선비님은 ‘분명히 아시는 스승(明師)’으로 만물의 ‘근원적 시작(原始)’을 강론하시어 이미 그 실제 효과를 거두었고, 또한 그 이름도 잃지 않으셨습니다.
可知 貴邦之論物理 非苟且踈畧之談 乃割開愚衷 部留疑處
가지 귀방지론물리 비구차소략지담 내할개우충 부류의처
이로써 귀국의 선비들이 사물의 이치를 논함에 대충대충 하거나 엉성하고 소략하게 담론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마음을 갈라서 열어 주고 의문의 구석이 남지 않도록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天主之事 又加尋篤 愧吾世儒彷彿要地 而詳尋他事 不知歸元之學
천주지사 우가심독 괴오세유방불요지 이상심타사 부지귀원지학
천주에 관한 사실들에는 또한 심오함과 돈독함을 더했습니다. 우리의 당대 선비들은 요긴한 문제들에 관해서는 요점이 모호하고 다른 일에 관해서는 상세히 따지지만 삶의 ‘근원에 귀결되는 학문(歸元之學)’을 알지 못하니 부끄럽습니다.
夫父母授我以身體髮膚 我固當孝
부부모수아이신체발부 아고당효
부모는 우리에게 신체와 머리털, 피부를 주셨으니 우리는 참으로 효도를 해야 마땅합니다.
君長賜我以田里樹畜 使仰事俯育 我又當尊
군장사아이전리수축 사앙사부육 아우당존
임금이나 수령들이 우리들에게 전담과 거처할 동네를 내려 주어 우리들로 하여금 곡식을 심고 가축을 길러서 위로는 부모를 섬기고 아래로는 처자를 양육하게 하였으니 우리가 그들을 마땅히 높이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矧此天主之爲大父母也大君也 爲衆祖之所出 衆君之所命 生養萬物 奚可錯認而忘之?
신차천주지위대부모야대군야 위중조지소출 중군지소명 생양만물 해가착인이망지?
하물며 천주는 부모보다 더 큰 부모요 임금보다 더 큰 임금이며, 모든 만물의 시조를 내신 분이고, 모든 임금을 명령하는 분이며 만물을 낳고 기르시는 분인데, 우리들이 어찌 천주를 알지 못하고서 그분을 망각 할 수 있겠습니까?
訓諭難悉 願以異日竟焉
훈유난실 원이이일경언
선생께서 가르쳐 주시고 깨우쳐 주신 것을 다 이해하기 어려우니 다른 날에 다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子所求非利也 惟眞道是問耳
자소구비리야 유진도시문이
선비께서 구하시는 바는 이욕(利慾)이 아니라 오직 진리에 대한 물음입니다.
大父之者 將必佑講者以傳之 祐聽者以受之
대부지자 장필우강자이전지 우청자이수지
크신 아버지(하느님)의 사랑이 반드시 강론하는 사람을 도와서 그 진리를 전하게 할 것이며, 듣는 이를 도와서 그 진리를 받아들이게 할 것입니다.
吾子有問 吾敢不惟命
오자유문 오감불유명
선비께서 물어주시면 제가 감히 그 말씀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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