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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감곡 매괴 성모순례지 성당 원문보기 글쓴이: 윤재/프란치스코
11. 同人之元若望 有一老婢 常來顧視 陳說家中情景 反復誘說 若望不爲動
동인지원약망 유일노비 상래고시 진설가중정경 반복유설 약망불위동
有一次語甚酸切 若望有戚戚志意 瑪爾定睨視之 老婢惧怕 不敢畢其說而退 後遂不往曰
유일차어심산절 약망유척척지의 마이정예시지 노비구파 불감필기설이퇴 후수불왕왈
李生員眼光可畏 不能復往矣 獄中常鈔書念經 講道勤人 獄卒一人 勤心信從 亦爲熱心之人
이생원안광가외 불능복왕의 옥중상초서염경 강도근인 옥졸일인 근심신종 역위열심지인
함께 갇혀있던 원(경도)요한에게 한 늙은 여종이 있었는데 그 여종이 늘 옥에 찾아와 돌보아
주면서 집안 사정을 늘어 놓고는 배교 하도록 유혹 했으나 요한은 조금도 동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번은 여종의 말이 하도 간절하여 요한도 번민하며 마음의 동요를 느꼈습니다.
이것을 알아챈 마르티노가 그 여종을 노려보았더니 여종은 겁이나서 말을 다 끝내지도 못한채
물러가 그 뒤에는 다시 옥에 찾아 오지도 않았고 “이생원의 눈빛이 무서워 다시는 못가겟다고”고
하였습니다. 마르티노는 옥중에서도 늘 책베끼고 경문을 외우며 진리를 설명하여 사람들을
권유하였습니다. 옥졸 한 사람이 감화되어 믿고 따랐으며 열심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權哲身者 南人(卽東人) 大家之裔 居京畿道楊根郡 表以經禮
권철신자 남인(즉동인) 대가지예 거경기도양근군 표이경례
12 之學 爲世名儒 聖敎到東 全家信從本係名家 謤謗亦甚 其弟日身 死於辛亥之窘
지학 위세명유 성교도동 전가신종본계명가 표방역심 기제일신 사어신해지군
自此以後 不敢顯然守誡 而仇嫉者之憎恨愈深 己未夏本鄕怪鬼輩 搆誣告官 權家子第
자차이후 불감현연수계 이구질자지증한유심 기미하본향괴귀배 강무고관 권가자제
亦爲對卞 事將張大 賴本官明良 調停解釋 惡謀不遂 詭計愈秘 締結京中惡官 庚申五月
역위대변 사장장대 뢰본관명량 조정해석 악모불수 궤계유비 체결경중악관 경신오월
面奏先王曰 楊根一鄕 邪學識盛 無人不學
면주선왕왈 양근일향 사학식성 무인불학
13 無材不爲 而本官佸然 不加査察 該郡守 合當警策 先王可其奏 楊根守引咎自退
무재불위 이본관괄연 불가사찰 해군수 합당경책 선왕가기주 양근수인구자퇴)
新官到任 舊案復起 逮捕多人 而哲身則年老胆怯 上京姑避 官將其子代因之
신관도임 구안복기 체포다인 이철신즉연노단거 상경고피 관장기자대인지
其子屢請代受父罰 而本官不許 必欲招致哲身 事久不決 先王雖甚疑惧 然每事本不欲張大
기자루청대수부벌 이본관불허 필욕초치철신 사구불결 선왕수심의구 연매사본불욕장대
且釋德之事 關係兩國 萬一顯著 則處置
차석덕지사 관계양국 만일현저 즉처치
14 極難 故乙卯後 群臣多請 嚴禁聖敎 而一幷委之於有司 若司欲干涉者 然外鄕窘難
극난 고을묘후 군신다청 엄금성교 이일병위지어유사 약불욕간섭자 연외향군난
莫非暗命 而佯若不之 盖欲緩敎友之心 潛捕神父 暗地結果 計未成 而遽沮落
막비암명 이양약부지 개욕완교우지심 잠포신부 암지결과 계미성 이거저락
권철신은 남인(즉 동인) 대가의 자손으로 경기도 양근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원래 경학과
예학으로 세상에 이름난 유학자가 되었는데 성교회가 이 나라에 들어오자 온 가족이 믿고
따랐습니다. 본래 이름난 집안이라 남들의 비방도 대단하였습니다. 그 아우 권일신이 신해박해
(1791년)에 죽고 나서부터는 감히 드러내놓고 신앙을 지키지는 못하였으나 그를 원수같이
여기고 시기하는 자들의 미움과 원망은 점점 심해갔습니다. 기미년(1799년)여름 그의 고향에서
귀신같이 고약한 무리가 터무니없는 일을 꾸며 관가에 고발하였고 이에 권씨 집안의 자제들도
맞서 대항하게 되었으므로 사건은 장차 크게 벌어지게 되었는데 마침 그 고을 군수가 현명하게
조정하고 정당하게 밝혀내어 간악한 모함은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간교한 계획은 더욱
비밀히 진행되어 서울에 있는 간악한 관리는 그들과 결탁하여 경신년(1800년) 5월에 선왕을
직접 뵙고 “양근 온 고을에 사학이 한창 성행해서 아니 배우는 사람이 없고 아니 믿는 동리가
없는데도 군수란 자는 태평으로 들어앉아 조금도 사찰하지 아니하니 이 군수를 마땅히 징계해야
한다”고 아뢰었습니다. 선왕이 그 보고를 듣고는 옳다고 판단 하였으므로 양 근 군수는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습니다. 새 군수는 부임하자마자 묵은 사건을 다시 끄 집어내어 많은 사람들을 체포
하였습니다. 그러자 늙고 겁이 많은 권철신은 서울로 올라가서 잠시 몸을 숨겼습니다.
관가에서는 그의 아들을 대신 잡아다가 가두었는데 아들이 아버지의 벌을 대신 받겠다고 여러 번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군수는 이를 허락 하지 않고 기어이 권철신을 잡아들이려고 하여 사건은
오래토록 결말이 나지 않았습니다. 선왕은 성교회에 대하여 몹시 의심하고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본래 무슨 사건이든 크게 확대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주문모) 신부 사건은 두 나라 사이에
관계되는 일이라 만일 드러나면 그 처리가 매우 곤란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을묘년(1795 년)
이래 여러 신하들이 성교회를 엄금하라고 여러 번 청하였으나 일체를 해당 관청의 관리들에게
내맡기고 자신은 간섭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하였습니다. 그러나 각 지방의 박해는 비밀 지령이
아닌 것이 없었고 일부러 모르는 체한 것은 교우들의 마음을 느슨하게 하여 몰래 신부님을
체포하여 암암리에 결말을 지으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런데 미처 그 계획을 이루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金汝三者 本係湖中人 第兄三人 皆領聖洗 爲避窘難 移居都下 近年汝三冷談背敎 交結匪類
김여삼자 본체호중인 제형삼인 개영성세 위피군난 이거도하 근년여삼냉담배교 교결비류
兩兄不能禁 有李安正者
양형불능금 유이안정자
15 亦係湖中人居京者 畧有家産 而爲汝三之姻親 汝三貧寒 常望其週給 而安正不能偁其意
역계호중인거경자 략유가산 이위여삼지인친 여삼빈한 상망기주급 이안정불능칭기의
因而結恨 尋常切齒 時安正恒受聖事 汝三揣知之 妄以爲若神父勤他施財 則他不敢不從
인이결한 심상절치 시안정항수성사 여삼췌지지 망이위약신부근타시재 즉타불감부종
而因神父不勤 故他不施財 遷怨於神父 生謨害之心 遂將神父之事 密告於捕盜部將
이인신부불근 고타불시재 천원어신부 생모해지심 수장신부지사 밀고어포도부장
部將輩廉察五六年 終不能得 及聞
부장배염찰오륙년 종불능득 급문
16 此言 如何不喜歡 許以事成 則當薦汝爲厚祿之任 究問此人 方在何處
차언 여하불희환 허이사성 즉당천여위후록지임 구문차인 방재하처
김여삼은 본래 충청도 사람으로 삼 형제가 다 세례를 받았는데 박해를 피하려고 서울로 이사와
살고 있었습니다. 근년에 와서 그는 냉담을 하고 배교까지 하더니 나쁜 무리와 어울려 돌아다녔
는데 두 형도 이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안정이라는 사람도 역시 충청도 사람으로 서울에
살고 있었고 재산이 약간 있었는데 김여삼과는 사돈간 이었습니다. 가난한 김여삼은 이안정에게
늘 보태주기를 바랐지만 이안정은 그가 달래는 대로 다 들어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김여삼은
이안정에게 원한을 품고 이를 갈고 있던중 그가 늘 성사를 받고 있음을 눈치채고는 망령되게
“만일 신부님이 그에게 재물을 좀 나눠주라고 권한다면 순종아니하지 못 할것인데 신부님이
권하지 않았으므 로 재물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그 노여움을 신부님에게 옮겨 꾀를 써서
해칠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드디어 신부님의 일을 포도부장에게 밀고 하였습니다.
5, 6년 동안이나 수사를 해도 알아내지 못했던 신부님의 정체가 알려지니 그 말을 들은 포도부
장이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그들이 “일이 성공하면 너를 봉급이 많은 관직에 추천해주겠다”
고 하며 “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時神父住葛隆巴家 汝三亦能猜測 遂與部將約曰 某日你來我家 我堂告之 約日來到
시신부주갈륭파가 여삼역능시측 수여부장약왈 모일니래아가 아당고지 약일래도
汝三適往他人家 忽然得疾不能還 約日部將到家空還 幸有一敎友 探知此事 告于神父
여삼적왕타인가 홀연득질불능환 약일부장도가공환 행유일교우 탐지차사 고우신부
神父避往別所 命李安正備錢數十貫 往見和解之 汝三恨怨暫緩
신부피왕별소 명이안정비전수십관 왕견화해지 여삼한원잠완
17 不多日 國王棄世 各司多事 事得不起 然汝三旣有密告之後 亦不能自己 常與惡輩
불다일 국왕기세 각사다사 사득불기 연여삼기유밀고지후 역불능자기 상여악배
綢繆謀議 必欲肆毒而後已
주무모의 필욕사독이후이
그때 신부님은 강완숙 골롬바의 집에 있었는데 김여삼은 이것까지 짐작하고 있었으므로 포도부장
과 약속하기를 “아무날 당신이 우리 집에 오면 알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김여삼은
약속한 날이 오기 전에 다른 사람의 집에 갔다가 갑자기 병이 나서 돌아올 수 없게 되어 약속한
날에 (포도)부장은 헛걸음만 하였습니다. 다행히 한 교우가 이 사정을 알고 신부님에게 알려
신부님은 다른 곳으로 피했고 이안정에게 돈 수십 관을 가지고 가서 김여삼과 화해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김여삼의 원한과 분노는 잠시 누그러졌고 또 며칠 안되어 국왕이 세상을
떠나 각 관청에 일이 많아졌으므로 사건이 더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여삼은 이미
신부님을 밀고한 뒤였고 또 자기 스스로 그만 둘 수도 없었으므로 늘 못된 무리와 함께 용의
주도하게 서로 의논하여 기어코 신부님을 해치려고만 하였습니다.
本國士大夫 二百年來 分黨各立 有南人 老論 少論 少北 四色之目 先王末年
본국사대부 이백년래 분당각립 유남인 노론 소론 소북 사색지목 선왕말년
南人又分而爲二 一邊則李家煥丁若鏞李承勳洪樂敏等若干人 皆從前信主 偸生背敎之人
남인우분이위이 일변즉이가환정약용이승훈홍낙민등약간인 개종전신주 투생배교지인
外雖毒害聖敎
외수독해성교
18 中心尙有死信 而同黨鮮少 勢甚孤危 一邊則洪義浩睦萬中等眞心害敎之人 十年以來
중심상유사신 이동당선소 세심고위 일변즉홍의호목만중등진심해교지인 십년이래
兩邊結怨甚深
양변결원심심
우리나라의 사대부들은 200년 이래 당(黨)이생겨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남인, 노론, 소론,
소북의 네 당이 있는데 선왕의 말년에 남인이 또 두 파로 갈라져 그 한파는 이가환,정약용,이승훈,
홍낙민 등 몇몇 사람들로서 이들은 모두 이전에는 천주교를 믿었으나 목숨을 아까워하여 배교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몹시 성교회를 해쳤지만 마음 속에는 항상 믿음을 위해 죽을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의 사람 수가 아주 적어서 그 세력이 몹시 외롭고 위태로웠습니다.
또 한편은 홍의호, 목만중 등 진심으로 성교회를 해치는 자들인데 십 년이래 양편에 맺힌 원한이
매우 깊어졌습니다.
老論又分而爲二 曰時派 皆承順上意 爲先王心腹之臣 曰僻派 皆力守黨論 抗拒上意
노론우분이위이 왈시파 개승순상의 위선왕심복지신 왈벽파 개력수당론 항거상의
與時派如仇讐 而黨衆勢大 先王畏之 近年擧國而聽之
여시파여구수 이당중세대 선왕외지 근년거국이청지
노론도 또 두파로 나뉘었는데 시파는 임금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여 선왕에게 심복하는 신하가
되었습니다. 벽파는 모두 당론을 고수하여 임금의 뜻에 항거 하였으므로 시파와는 원수같이
지냈는데 당의 형세가 매우 커서 선왕도 이를 두려워하였고 근래에는 온 나라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李家煥文章盖世 丁若鏞才機過人 乙卯以前 先王寵任之 乙卯後
이가환문장개세 정약용재기과인 을묘이전 선왕총임지 을묘후
19 漸見疎棄 然此二人爲僻派之所深忌 必欲中害 家煥等雖背敎害敎 僻派諸人
점견소기 연차이인위벽파지소심기 필욕중해 가환등수배교해교 벽파제인
常指斥爲邪黨 譖駁備至 先王每掩護之 僻派不得肆害
상지척위사당 참박비지 선왕매엄호지 벽파불득사해
이가환은 문장으로 세상을 뒤덮었고 정약용은 재주와 기지가 누구보다도 뛰어났기에 을묘년
(1795년) 이전에는 선왕이 총애하고 신임하였으나 을묘년 이후에는 차차 소외 당해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두사람은 벽파가 몹시 꺼려하여 반드시 해치려고 하였습 니다. 이가환
등이 배교하여 성교회를 해쳤는데도 벽파의 여러 사람들은 그를 사당으로 지목하고 배척하여
헐뜯고 따지며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왕은 번번이 그들을 감싸주었으므로 벽파가 마음대로
해칠 수 없었습니다.
及先王薨 嗣君幼冲 大王大妃金氏垂廉聽政 大王大妃 卽先王之繼祖母 本係癖派中人
급선왕훙 사군유충 대왕대비김씨수렴청정 대왕대비 즉선왕지계조모 본계벽파중인
本家會爲先王所廢 因此積年懷恨 而莫能泄 意外臨朝 遂挾僻派而肆毒 庚申十一月
본가회위선왕소폐 인차적년회한 이막능설 의외임조 수협벽파이사독 경신십일월
20 先王葬禮纔過 卽將一班時派 盡行放逐 朝內半空 從前害敎之惡黨 素與僻派相連
선왕장례재과 즉장일반시파 진행방축 조내반공 종전해교지악당 소여벽파상연
見時勢大變 譁然並起 有大擧之勢
견시세대변 화연병기 유대거지세
그런데 선왕이 돌아가시자 그 뒤를 이은 임금은 나이가 어려서 대왕대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였습니다. 대왕대비는 선왕의 계조모로서 본래 벽파에 속하는데 친정이 일찍이 선왕에게
폐가를 당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대왕대비는 여러 해 동안 원한을 품고 있었으나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있다가 뜻밖에 정권을 잡게되자 마침내 벽파를 끼고 독한 성미를 함부로 부렸습니다.
경신년(1800년) 11월 선왕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시파 사람들을 모조리 몰아내어 조정 안이
절반은 비게 되었습니다. 전부터 성교회를 해쳐 오던 못된 무리가 벽파와 계속 연락을 취해
왔었는데 세태가 크게 변하자 요란스럽게 들고 일어나서 크게 일을 저지를 형세가 되었습니다.
庚申四月 明會報名之後 諸友勸於神工 會外之人 亦從風而動 皆以化人爲務 秋冬之間
경신사월 명회보명지후 제우권어신공 회외지인 역종풍이동 개이화인위무 추동지간
蒸蒸向化 日甚一日 而婦女居其二 愚鹵賤人居其一 士大男子 惧怕世禍 信從者狼少
증증향화 일심일일 이부여거기이 우로천인거기일 사대남자 구파세화 신종자랑소
경신년(1800년) 4월 여러 교우들이 명도회에 가입한 후로 신공을 부지런히 하였습니다.
회원 아닌 사람들도 역시 이 분위기를 따라 움직여 모두 남을 감화 시키기에 힘썼으므로 그해 가을
과 겨울 사이에 무럭무럭 감화되어 하루하루 불어났는데 부녀자가 삼분의 이요 무식한 천인이
삼분의 일이었습니다. 양반 남자들은 세상의 화가 두려워 믿고 따르는 자들이 극히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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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감곡 매괴 성모순례지 성당 원문보기 글쓴이: 윤재/프란치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