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의 휴휴암좌선문 05
지극한 자리에 이르러 깨어있음 ①
휴휴암좌선문은 중국 원(元)나라 때 스님인 몽산 덕이(蒙山德異: 1231~1308) 선사가, 평강(平江)에 휴휴암(休休庵)이라는 암자를 짓고 이 글을 지었다고 하며, 고려시대 나옹(懶翁) 스님이 이 글을 가지고 와서 우리나라에 알려졌다고 합니다.
그럼 본문으로 들어가서 어떤 내용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夫坐禪者는 須達乎至善하야 當自惺惺이니
(무릇 ‘좌선’이라는 것은 지선(至善)에 이르러 마땅히 스스로 성성(惺惺)해야 하는 것이니)
옛 경전의 가르침이나 법문이 대개 그렇듯이 이 글도 두괄식(頭括式)입니다.
문장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좌선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좌선이란, 지선(至善)에 이르러 스스로 깨어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그냥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지선(至善)’이라는 글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두 글자는, 그야말로 비롯함이 없는[無始] 과거로부터 우리 마음이 갖추고 있는 본디 궁극적인 상태 - 수도(修道)하는 이가 반드시 다시 회복해야할 마음의 세계를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아시는 것처럼, 우리 대종경 성리품 3장에도 이 말씀이 나옵니다.
대종사께서는 “선과 악을 초월한 자리를 지선(至善)이라 이르고, 고와 낙을 초월한 자리를 극락이라 이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지선’은 유교(儒敎) 경전인 대학(大學)의 첫 머리에 나와 있는 글자로서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대인(大人)이 배워야할 道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선(至善)에 머무는 데에 있다)
여기서 지선(至善)이란 문자 그대로 보면 ‘지극한 선(善)’인데, 이 뜻을 어떻게 새기느냐가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즉, 지선(至善)의 뜻을 올바로 안다면 성리(性理)에 아무런 걸림이 없을 것이며, 대학(大學)이라는 경전의 핵심도 이미 꿰뚫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극한 선(善)이 무엇일까요.
선의 반대말은 악(惡)인데, 그렇다면 지선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극악(極惡)’이라는 말과 반대되는 뜻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예전에 어디선가 이러한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진짜 선한 사람은 자기가 선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즉, 참으로 선하다는 것은, 스스로 선(善)이라는 상(相)마저 없다는 것이지요.
진짜 선함은 그 속에 ‘선하다’고 하는 속성(屬性), 곧 ‘상대적인 선(善)’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참으로 지극한 선은 선악이라는 양자(兩者)의 비교가 끊어진 ‘절대적인 선’이라는 것인데, 우리가 과연 이러한 자리에 이를 수 있을까요.
이처럼 상대가 끊어져버린 절대(絶對)의 경지는 논리적으로 사유(思惟)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이른바 형이상학으로써 관조(觀照)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전혀 갈 수 없는 그런 세계는 아니지요.
예를 들자면, 아직 ‘나[我]’라는 상(相)이 생기지 않은 어린아이의 마음세계가 그와 같은 세계입니다.
이른바 ‘착하다’고 표현할 수조차 없는, 선함도 뛰어넘은 세계인데, 그러한 마음자리가 이미 우리 안에도 갖춰져 있습니다.
라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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