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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훈/문명여행작가: 이제 저는 튜더 왕조의 이야기를 따라 히버성과 파운틴 수도원을 찾아떠납니다. (히버성 Hever Castle-불린가(家) 소유의 성으로, 헨리 8세가 아내 앤불린에게 구애했던 장소로 유명함), 런던 남부의 히버성은 그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 곳입니다. 이곳이 바로 Hever Castle 이라고 앤불린과 헨리 8세(1491~1547)가 사랑을 나눴던 곳입니다. 헨리 8세의 두번째 부인이자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의 어머니인 앤불린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입니다. 이 성은 중세기에 지어졌는데 규모는 작지만 갖추어야 될 것은 다 갖추었네요. 해자(성주위의 연못)도 있고 성문에 내려오는 방어벽도 있어요. 원래는 13세기의 성채였던 것을 15세기에 당시 지역의 유지였던 불린 가문이 저택으로 개조해 살았습니다. 바깥 양식은 중세 초창기 형식인데 안으로 뜰 안쪽으로 들어와 보니까 튜더 양식 쪽으로 완전히 보수가 되었는데요 (Tudor Style-튜더 왕조시대에 성행한 건축양식으로 목재 프레임을 이용한 흑백 외관이 특징), 역시나 블랙 앤 화이트를 강조한 튜더 양식 특유의 목재 프레임이 멋스러움을 자아냅니다. 감탄~~ 감탄~~ 이게 바깥에서는 못느꼈던 아늑하고 화려하고 정교함이 느껴지는 데요. 역시 바깥은 옛날 성채의 모습이지만 안쪽은 왕이 머물렀던 곳 답게 개조가 싹 되어 있네요. 그 한편에 세계의 스캔들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이 분이 바로 헨리 8세죠 (헨리 8세 Henry VIII (1491~1547)-튜더 왕조의 강력한 군주로 종교개혁을 통해 가톨릭을 해산시키고 영국 국교회를 설립함), 우리에겐 여섯번의 결혼으로 유명하지만 그는 사실 튜더 왕조의 두번째 왕으로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절대왕정을 확립한 강력한 군주입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 히버 성의 여주인이었던 앤불린 입니다. (앤불린 Anne Boleyn(1507?~1536)-헨리 8세의 두번째 왕비이자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다), 독특한 매력과 세련된 매너로 궁전의 스타였던 앤불린은 헨리 8세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 사랑의 증거로 집 곳곳엔 헨리 8세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말로만 듣던 특수 잠금장치가 여기 있네요. 이건 헨리 8세가 자신의 암살위협을 걱정을 해서 본인이 이동할 때마다 가지고 다녔던 특수한 장치이거든요. 여기 보면 이게 왕실의 문장과 튜더 왕조의 장미가 새겨져 있어서 헨리 8세가 전용으로 썼다는 걸 알 수 있구요. 이 잠금장치가 이 문에 달려 있다는 것은 그만큼 헨리 8세가 이곳을 자주 방문했다는 이야기죠.
이렇게 견고한 헨리 8세의 사랑으로 앤불린은 그의 두번째 부인이 됩니다. 지금 이 방은 앤불린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방이거든요. 그녀가 소장했던 성경 두권이 있습니다. 앤불린과 헨리 8세, 두 사람의 사랑이 종교개혁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영국에 종교개혁을 가져온 장본인입니다. 원래 헨리 8세는 아라곤의 캐서린 (에스파냐 왕국의 공주)과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한 부인에 대한 불만이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앤불린을 만나면서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통해서 후계자를 얻겠다는 욕심 때문에 이혼을 추진하고 새롭게 결혼을 할려고 하는데 교황이 이혼을 허락해 주지 않는 겁니다. 결국은 반드시 앤불린과 결혼하겠다 라고 하는 헨리 8세의 결심이 영국의 종교를 가톨릭에서 국교회로 바꾸게 한 계기가 되는 겁니다. 그 당시에 왕들의 초상화가 쭉 걸려 있는데요. 여기 헨리 8세와 앤불린의 딸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도 있네요. 굉장히 화려한데요. 위엄도 느껴지고요. (엘리자베스 1세 Elizabeth I (1558~1603)-헨리 8세와 앤불린의 딸로 영국 절대주의의 전성기를 이루고 국민으로부터 훌륭한 여왕 베스라 불림),
엘리자베스 여왕은 헨리 8세와 앤불린 간의 사랑의 결실이죠. 앤불린의 영광과 사랑이 머무는 히버성, 이곳에서 시작된 세기의 로맨스, 역사의 반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리폰 Ripon-잉글랜드 노스요크셔주에 위치한 마을로 스터들리 왕립공원과 파운틴스 수도원으로 유명함), 앤불린의 결혼을 위해 헨리 8세가 이뤄낸 종교개혁은 또 다른 세상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노스요크셔주에 자리한 파은틴스 수도원은 1539년 헨리 8세의 종교개혁의 일환으로 수도원 해산조치를 하면서 문을 닫은 곳입니다. (파운틴스 수도원 Fountains Abbey-노스 요크셔주에 위치한 1132년에 설립된 수도원 유적, 1539년 헨리 8세의 해산조치로 문을 닫으며 폐허가 됨),
처음 13명의 수사가 생활터전으로 시작한 수도원은 점점 규모가 커져서 해제되기 전에는 잉글랜드 북부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지만 그 흔적만으로도 과거 부유했던 수도원의 모습을 짐작케 합니다. 이곳이 파운틴스 애비 라고해서 파운틴스 수도원이죠. 한 5백년 정도 11세기부터 16세기 초까지 북잉글랜드 지역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장 막강했던 어떤 위세를 떨쳤던 그런 수도원입니다. 야~~ 규모가 엄청난데요. 이게 지금 다 불타서 무너지고 폐허가 됐는데요. 이 회랑의 규모라는게 생각보다 정말 엄청납니다. 진짜 북잉글랜드 최고의 수도원이었다는 그 얘기가 실감이 나네요.
많은 분들이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합니다. 왜 굳이 오래된 폐허를 찾아다니느냐고 말이죠. 그건 이것이 바로 역사적인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라는 게 결국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데 지금은 무너졌지만 5백년 전 이곳에 펼쳐졌던 그 풍광들을 생각해서 보면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 멋진데요. 감탄~~ 감탄~~ 이 수도원의 천년 세월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폐허 속에서 우리는 역사적 사건의 중요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수도원들이 중요한 의미가 있는게 종교개혁으로 영국 국교회를 만들어낸 헨리 8세는 그 다음에는 수도원의 해산이라는 절차에 들어갑니다.
결국은 영국 전역에 흩어져 있었던 수백개의 수도원은 교황을 우두머리로 한 조직이거든요. 근데 이제 더 이상 교황을 떠받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런 수도원들은 존립의 근거를 잃게 된 겁니다. 헨리 8세는 그 법적인 헛점을 이용해서 수도원을 해산하고 그 과정에서 수도원이 갖고 있었던 어마 어마한 재산을 독점하게 됩니다. 그걸 혼자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재산들을 자신을 지지했던, 종교개혁을 후원했던 사람들에게 헐값에 넘기게 되죠. 결국 수도원 해산을 통해서 부의 재분배가 일어났던 겁니다. 이 부의 재분배를 통해서 수도원의 죽어있는 재산들을 가져가게 된 중산계급 이상의 Gentry 계급은 이 막대한 부를 바다에 교역에 산업에 투자합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런던은 유럽 최고의 도시로 성장하게 되고 영국은 끊임없이 바다로 great로 대표되는 해양을 개척하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게 되는 겁니다.
대영제국을 건설하고 세계의 바다를 지배했던 영국, 포츠머스 항에서 도버로 향합니다. 12세기에 건설된 포츠머스 항은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해군기지입니다. (Portsmouth-오래 전부터 영국의 주요 해군기지 역할을 함), 수백명의 선원과 함께 침몰한 헨리 8세의 기함 메리로즈호와 트라팔가 해전 때 넬슨 제독의 기함이었던 빅토리호가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HMS 빅토리호 Victory-트라팔가 해전 때 넬슨 제독이 승선하여 나폴레옹의 해군에게 이기고 전사한 함선), 8백여명의 선원과 백여문의 대포를 실었던 빅토리 호는 19세기 영국 해군의 힘을 대표하는 함선입니다. 빅토리 호 만큼이나 유명한 함선이 있습니다. 바로 헨리 8세의 기함 메리로즈 호입니다.
1545년 프랑스와의 전투 때 수백명의 선원과 함께 침몰했던 메리 로즈 호는 1982년 인양되어 현재 이곳에서 복원 중입니다. (메리로즈 박물관 The Mary Rose Museum-포츠머스에 자리한 역사 박물관으로 헨리 8세가 건조한 전투함 메리로즈 호에 관련된 박물관), 영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배를 지금 찾아가고 있습니다. 바다를 향한 헨리 8세의 꿈이 집약된 메리로즈 호는 침몰되기 전까지 30여년간 전투에 사용됐던 함선입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네요. (메리로즈호 Mary Rose-헨리 8세의 명령으로 만든 영국 해군 함선, 1511년에 완성하여 1545년 침몰, 1982년 발굴됨), 1982년 건조된 이 배는 올해 (2020년)말까지 건조작업을 마치고 수세대에 걸쳐 복원할 계획이라고 하는데요. 메리로즈호에 대한 영국의 자부심과 깊은 애정이 느껴집니다.
사실 유럽 역사에서 바다를 가장 먼저 개척한 나라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시대를 대항해 시대라고 부르죠. 영국은 후발주자였어요. 그러나 헨리 8세가 이렇게 거대한 배를 만들었듯이 헨리 8세의 아버지였던 헨리 7세, 그리고 헨리 8세, 그리고 헨리 8세의 딸 엘리자베스 1세, 이 3대가 바다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바다를 개척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을 합니다. 결국 이 배는 어떤 거대한 사업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3대에 걸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 끝에 영국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제치고 세상의 바다를 장악하는 어떤 기반을 마련했다 라는 사실을 우리한테 잘 알려주고 있는 그런 공간입니다.
이 배를 보고나니 비극적인 스캔들의 주인공 헨리 8세가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헨리 8세라는 사람이 정말로 강대국에 대한 욕망이 있었던 사람이구나. 이 사람이 결혼을 여섯번 씩이나 해가면서 참으로 사랑하는 앤불린의 목을 쳐가면서 까지 얻고자 했던 게 아들이었거든요. 아들을 통해서 그는 강력한 국가를 만들고 싶어했던 거에요. 저는 그게 잘 이해가 안되었는데 여기에 와서 보니까 아~~ 이 정도 배를 만들어서 정말로 내가 세상의 바다를 한번 움직여보고 싶다. 그런 강대국의 꿈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런 아들을 원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꿈을 이룬게 딸 엘리자베스 1세라는 아이러니도 생각이 나네요. 3대에 걸쳐 해상 강국의 꿈을 실현함으로써 대영 제국을 건설하고 세계의 바다를 지배했던 영국,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만날 수 있었던 포츠머스 항을 뒤로 하고, 영국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너뜨렸던 도버로 향합니다. (도버 Dover-해안의 흰 절벽이 유명한 항구 도시, 영국 해협으로 유럽 대륙과 분리되며 가장 가까운 거리는 33킬로미터),
바로 저 건너 편이 프랑스이거든요. 불과 30여 킬로에 불과한 정말로 좁은 해협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 이 바다에서 엘리자베스 1세의 군대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불사르고 그리고 또 넬슨의 군대가 나폴레옹의 침공군을 저지함으로써 영국이 대영제국이 되도록 하는데 초석이 된 바다이거든요. 영국은 이 좁은 해협을 지켜냄으로써 세계를 지배하게 됩니다. 정말로 위대한 해협에 와 있습니다. 역사적 수많은 해상전투가 벌어졌던 도버 해협은 영국이 세계의 바다를 지배할 수 있게 한 바다이기도 한 동시에 위대한 정복자들이 패배를 맛봤던 바다죠. 파란만장한 핏빛 역사와 백악 해안의 아름다운 풍광에 만감이 교차합니다. 끝. (EBS 세계테마기행 2644회 제2부를 정리).
① 영국의 헨리 8세(1491~1547)는 두번째 부인 앤불린과의 결혼으로 유명, 가톨릭을 해산시키고 영국 국교회를 설립, 동기는 아들을 얻기 위해 첫째 부인과 이혼하고 두번째 부인 앤불린과 결혼하겠다고 교황에게 요청하였으나 교황이 반대함으로 헨리 8세는 가톨릭을 탈퇴하고 영국 국교회를 설립, 그게 영국의 성공회다. 그리고 두번째 부인 앤불린과 결혼을 했지만 딸을 낳자 앤불린을 간통죄로 런던 탑에 가두어 죽인다. 앤불린은 영국에 종교개혁을 가져온 장본인이다.
② 헨리 8세의 종교개혁은 다른 세상을 열었다. 노스요크셔주에 파운틴스 수도원은 1539년 헨리 8세의 종교개혁의 일환으로 수도원 해산조치로 문을 닫았다. 처음 13명의 수사가 생활터전으로 시작한 수도원은 잉글랜드 북부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지금은 폐허로 남아 그 흔적만으로도 과거 부유했던 수도원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파운틴스 수도원은 11세기부터 16세기 초까지 5백년간 북잉글랜드 지역에서 가장 화려하고 막강했던 위세를 떨쳤다.
③12세기에 포츠머스 항은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해군기지다. 메리-로즈호와 빅토리호가 여기에있다. 메리로즈호는 헨리 8세의 명령으로 만든 영국 해군 함선이다, 메리로즈호는 침몰되기 전까지 30여년간 전투에 사용됐던 함선이다. 1545년 프랑스와의 전투 때 수백명의 선원과 함께 침몰했던 메리-로즈 호는 1982년 인양되어 현재 포츠머스에서 복원 중이다. 수세대에 걸쳐 복원할 계획, 빅토리호는 트라팔가 해전 때 넬슨 제독이 승선하여 나폴레옹의 해군에게 이기고 전사한 함선인데, 8백여명의 선원과 백여문의 대포를 실었던 빅토리 호는 19세기 영국 해군의 힘을 대표하였던 함선이다.
④ 유럽에서 가장 먼저 바다를 개척한 나라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대항해 시대다. 영국은 후발주자, 그러나 헨리 7세, 헨리 8세, 엘리자베스 1세(1533~1603), 이 3대가 바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바다를 개척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 3대에 걸친 관심과 노력 끝에 영국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제치고 세상의 바다를 장악하는 기반마련, 헨리 8세는 강대국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사랑하는 앤불린의 목을 쳐가면서 까지 아들을 원했다, 아들을 통해서 강력한 국가를 만들고 싶어했다. 영국은 스페인 무적함대를 도버에서 무너뜨렸다. 그 꿈을 이룬게 딸 엘리자베스 1세, 강대국의 꿈을 실현, 대영제국을 건설하고 세계의 바다를 지배했던 영국, 포츠머스에서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만났다,
⑤ 도버 건너 편이 프랑스다. 불과 30여 킬로에 불과한 좁은 해협, 지금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이 바다에서 엘리자베스 1세의 군대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불사르고 넬슨의 군대가 나폴레옹의 침공군을 저지함으로써 영국이 대영제국이 되도록 하는데 초석이 된 바다가 도버다. 영국은 이 좁은 해협을 지켜냄으로써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정말로 위대한 해협이다. 역사적 수많은 해상전투가 벌어졌던 도버 해협은 영국이 세계의 바다를 지배할 수 있게 한 바다이다. 파란만장한 핏빛 역사와 백악 해안의 아름다운 풍광에 만감이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