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종주

계룡산 종주   새해 연초부터 올 가을에는 계룡산 종주를 꼭 해야곘다는 생각을 하며 늘 관심을 갖고 준비하고 있던 중 추석연휴 명절 다음 날이라 마음도 가볍게 계룡산 등산계획을 결행하게 되었다. 김밥 두 줄과 생수 두 병을 배낭에 담았다. 유성온천역 5번 정류장에서 107번 시내버스를 탑승하여 11시 20분경 동학사 주차장에 하차하니 평일이라 등산하는 인적이 없어서 참으로 한산하였다. 나는 시내버스를 타고 계룡산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대전시민만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을 맘껏 즐기기로 작정한 것이다.   계룡산 종주코스는 관음봉을 먼저 오르는 코스와 역방향 남매탑으로 가는 코스가 있는데 관음봉 코스는 매우 가파라서 힘들까 주저하고 망설이기도 했다.그러나 문제에 봉착했을 때 매사 정면돌파가 정답이라는 평소 소신대로 피하지 않은 내가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었다. 건강을 위하여 친구들과 가벼운 등산은 자주 하는 편이지만 고난도의 코스를 그것도 5시간은 족히 걸어야 하는 이번 계룡산 종주만은 선뜻 나서는 동행자가 없었다..   국립공원 동학사매표소를 지나며 직원에게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하니 무사 통과하란다. 10여 년 전 만해도 경로우대받는 분이 부러웠는데 이제 신분증 검사도 하지 않고 무료 입장시켜 주니 한편 아쉬움이 남는 까닭은 무엇일까? 인적이 텅빈 한가한 도로를 조금 걷다보니 홍살문이 보인다. 홍살문은 붉은 색을 칠한 창살을 세운 문으로 우리 나라 사찰중에는 유일하게 동학사에만 있는 문인데 이곳은 충신들의 넋을 모신 곳이 있어 이 문을 출입하는 누구나 충효의 경건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홍살문을 지나 조금 더 걷다보니 사찰임을 알려주는 일주문의 무게감이 느껴져 마음이 숙연해진다. 일주문은 사찰에 들어가는 첫번째 문으로 기둥이 한 줄로 있어 일심을 상징한다. 속세의 번뇌를 불법으로 씻고 오직 그 한마음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가르침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일주문 지붕 위로는 절묘하게 천왕봉이 보이고 앞 도로에는 젊잖으신 노부부가 다정하게 걸어오는 모습이 보기에 참 아름답다.   동학사 경내 초입에 길상암이라는 암자가 있는데 전면 여섯 기둥에 써내린 사찰의 성격을 알려주는 6주련이 아주 감동적인 내용이라 유명하다는데 글자는 읽어도 그 깊은 뜻은 알 수 없다. 그외에도 극락정토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이 모셔진 암자인 미타암과 관음암,상원암등이 있다. 동학사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은 법당의 중앙제단에 부처님을 모시고 좌우에 보살을 모신다. 그리고 동학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비구니 수련도장으로 동학강원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고려 충신 정몽주. 이색. 길재등의 초혼제를 지내는 삼은각과 단종과 사육신. 생육신외 280명의 충신을 모신 초혼각이 지금은 숙모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래서 충효절렬의 정려각이 있는 동학사에는 경내에 들어설때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하고자 사찰로는 유독 일주문 전에 홍살문을 세워 충효의 경건한 마음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그런 정기가 모아져 충청도 향토에는 충신,효자,열사,열녀가 많이 태어나는 것이 아닌가? 동학사 앞 동편에는 사철 동학천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는데 대학 학창시절 기억이 떠 오른다. 영하 20도는 됨직한 엄동설한 정월 초순의 이른 아침인데 꽁꽁 얼어붙은 시냇물 얼음판에 세숫대야 크기의 맑은 물이 있는 숨통이 보였다. 그 순간 저 맑고 청정한 시냇물로 발과 손의 때를 씻어내면 내면의 영혼까지 모두 순수해질 것 같아 얼음판 위에 태연히 앉아 세수를 하고 몸을 씻었던 기억이 새롭다. 물 묻은 얼굴과 발을 닦았던 손수건과 양말이 순간 동태처럼 얼어 붙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만 해도 인적이 전혀 없었기 참 다행이었단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동학사 윗쪽 뒷문격인 향아교 다리를 지나니 넓은 쉼터가 나타나고 은선폭포와 관음봉으로 오르는 본격적인 계룡산 산행이 시작된다. 향아교 이정표에는 향아교에서 은선폭포까진 0.9km 그리고 은선폭포에서 관음봉까진 1.1km를 더 걸어야 한다. 주차장에서 이곳 향아교까진 고즈넉한 산책코스로 2.2km를 걸어온 것 같다. 구간별 거리와 오르는 소요시간은 국립공원 자료가 거의 정확하고 하산하는 시간은 70%면 가능하단 생각이 든다. 관음봉 등정은 계룡산 산행중 최고의 난이도 코스로 경사가 급해 아주 가파른 오르막 길에 바위와 돌로 된 길을 걸었던 기억때문에 겁을 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돌계단이 잘 정비되어 있고 경사가 아주 급한 곳은 철계단까지 설치되어 있어 등반하기가 한결 수월하였다. 이렇게 국립공원 산악 세세한 부분까지 잘 관리되어 있는 것을 보며 나라가 많이 발전하여 부강해진 대한민국이 우리 나라임이 자랑스러웠다.   가파른 암반을 깍아 만든 계단을 힘들게 돌아올라 은선폭포에 도착하니 가믐탓으로 흐르는 폭포를 볼수 없어 허전했다. 관광지는 어느 곳이나 경치가 아름다운 곳은 예외없이 전망대가 있어 사진도 촬영하고 물도 마시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올가야할 길과 올라온 길 주변 모두가 아름다운 절경이다. 은선폭포 전망대에서 특히 잘 볼 수 있는 쌀개봉은 계룡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이다. 산의 움푹 들어간 곳이 마치 디딜방아의 쌀개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쌀개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쌀개를 닮은 곳에서 쌀이 나왔다는데 어느 한 스님이 너무 욕심을 부린 다음부터는 더 이상 쌀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산에 오르면서도 인간의 한없는 욕심을 경계하며 마음을 비우고 살라는 교훈인 것 같아 옛 사람들의 지혜가 놀랍기도 하다. 쌀개봉 능선은 지금은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탐방객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아쉽게도 올려다 볼 수만 있다.   은선폭포에서 조금 오르다 보면 평탄한 곳에 예전엔 대피소가 있었는데 그 인근에 한 고목 등컬이 수 많은 돌을 품어 안고 있는 모습이 왠지 옛 여인네가 연상되어 마음이 애잔하고 찡하였다. 드디어 관음봉 오르기 전 9부능선 계단에서 걸어 온 길을 뒤돌아 보니 길고 넓은 동학천 양편의 계룡산 계곡의 산세가 웅장하게 펼쳐지면서 저 아래에 동학사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벌써 세속을 떠나 먼나라같이 느껴진다. 앞을 바라보니 가파른 철계단이 보이는 걸로 볼 때 내가 어느새 참 높은 곳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니 앞으로의 여정에도 자신감이 생긴다. 관음봉으로 오르기 전 한 계단 한 발자욱은 수행 정진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예전 가파른 이곳 험한 돌밭을 걸어 오를 때를 생각하면서 그야말로 천상의 엘리베이터를 탑승한 기쁨으로 걸었다. 그래서 행복은 절대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으로 느끼는 사람만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드디어 계룡산 대망의 관음봉에 올랐다. 2017년 11월11일 지리산 천왕봉(1915m) 등정에 이어 3년만에 내가 이룬 아름다운 두 번째 쾌거이다. 방금까지 힘들었던 과정은 눈 녹듯이 모두 잊어버리고 어디서 새 힘이 솟아나는지 오직 힘든 목표를 달성한 기쁨만 가득하다. 정말 산은 높이 오를수록 내려다보이는 경치는 아름답고 산 모양과 골짜기는 새로운 모습으로 감동을 준다.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목표를 달성하면 힘든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더 높은 목표를 세워 성취하면서 무한 발전해 가는 가 보다. 관음봉(766m) 표지석에서 인증 사진을 촬영하는 이 기쁨의 순간은 생각만해도 온 몸에 전율이 느껴지고 힘이 불끈 솟아오른다! "하나님!!! 오늘 제게 힘차게 걸을 수 있는 모든 여건을 주시고 건강을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단군이래 가장 융성한 우리의 조국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도 사랑하여 오래오래 지켜 주시고 자손만대 무궁토록 번영케 하옵소서!"   관음봉에서 대전을 바라보며 오른쪽 능선엔 천황봉(845m)과 쌀개봉이 있는데 천황봉은 계룡산의 주봉으로 정상에 통신기지가 있어 출입금지 구역이라 지근거리이면서 오를 수 없어 후일의 기회를 기약할 뿐이다. 그리고 관음봉 정상에 정자가 있어 편히 쉴 수있다는 생각에 참으로 반가웠는데 그 곳까지 코로나 방역으로 통제구역이라니 수긍을 하면서도 마음은 펺지 않았다. 왼쪽으론 관음봉에서 삼불봉에 이르는 아름다운 자연성릉이 길게 뻗어 있다. 그리고 정상에 오르니 신기하게도 계룡산을 이루는 천황봉 연천봉,삼불봉,장군봉,황적봉,금수봉,도덕봉등 대표적인 봉우리들이 한가족처럼 한눈에 가까이 보여 자기분야 정상에 오른 사람들도 그들끼리 통하는 부분이 많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계룡산 자락 넘어 유성과 대전의 아파트 군락이 문명의 성처럼 아련하고 뒤쪽으론 논산의 평야지대와 공주 신도시도 산야 사이로 삐끔히 인사한다.   관음봉으로 오를때에는 몹시 힘들었지만 자연성릉으로 내려서는 철계단은 가파르고 엄청 길었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걸으니 걷기가 참 쉽고 편했다. 초년 고생은 사서 하라는 말뜻을 깨우치며 매사 이루기는 어렵지만 까먹기는 쉬우니 매사 겸손한 마음으로 절제하고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마치 능선 모습이 성벽 모양과 흡사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자연성릉 주변의 풍광은 참으로 아름답고 가슴이 시원하게 탁 트이지만 경사가 심하고 능선이 칼날같이 가파라서 안전에 절대 유의해야 하는 곳이었다. 바람이 세게 불던 십여 년전 그 때의 기억과는 다르게 지금은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천상을 걷는 상쾌한 발걸음이었다. 한참을 걷다 뒤돌아 보니 관음봉과 철계단이 한눈에 들어오는 너럭바위가 있어 자리를 잡았다. 푸른 하늘, 따스한 햇볕, 솔바람을 맞으며 김밥을 먹고 사진도 촬영하며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한시간여 충분하게 휴식을 하였다. 요즈음 좋은 휴식은 열심히 일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단 생각을 가끔 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아들과 화은 선생에게서 반가운 전화가 와서 대화를 나눈 유쾌한 산상 통화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능선 길을 나서니 갑사입구 계룡저수지와 누런 황금 벌판이 참으로 평화롭다. 자연성릉의 능선은 1.4km 정도로 하늘과 바람과 계룡산의 풍광을 만끽하며 천천히 걸으니 한시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천황봉이나 동학사에서 바라보면 마치 세 부처님의 형상으로 보인다는 삼불봉은 수년전 신년 원단 해맞이 때는 인파가 너무 많아 발 디딜 틈도 없었는데 오늘의 삼불봉은 적적하기만 하였다. 그래서 한참을 기다려서야 삼불봉(775m)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고 계단을 내려오니 삼불봉 고개는 자연성릉에서 금잔디고개로 가느냐, 남매탑으로 가느냐 하는 갈림길이었다. 나는 주저없이 남매탑으로 내려 왔다. 언제 찾아 와도 남매탑과 상원암은 낯익어 친근하게 느껴짐은 대전사람 누구나 갖는 공통된 생각이리라. 구도하는 수도승과 처녀사이의 세속적 사랑을 초월한 낭만적 사랑이 담긴 남매탑 전설을 읽으며 진실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나도 진실한 사랑을 한 적이 있었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남매탑은 오라버니(7층탑)와 누이(5층탑) 오뉘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랜 세월 탐방객들에게 무언가를 암시하며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자연성릉 너럭바위에서 한껏 여유를 부리며 휴식을 즐긴 탓에 남매탑을 내려서려하니 어두운 산 그림자가 산을 덮치기 시작하며 기온이 차가워진다. 익숙한 길이었지만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며 하산을 서둘렀다. 산은 일몰시간이 빠를 뿐아니라 기후변화도 예측하기 어려우니 늘 조심해야 한다. 남매탑 아래 능선 뒷 길을 걷다가 조금 오르면 큰배재인데 종주하면 장군봉이지만 고개에서 바로 하산하여 천정골 큰바위를 지나니 멀리 국립공원 천정탐방지원센타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여 안심이 되었다. 어둠이 내린 동학사 상가는 인적도 없이 가로등 붉은 불빛까지 스산해 보였지만 연초부터 계획했던 계룡산 종주코스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으로 어둠의 세상마져도 포근하게 느껴지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오늘 계룡산에 올 때는 분명 혼자 왔는데 시종 두 사람의 내가 나와 함께 동행하며 자연속에 담겨 있는 신비한 진리도 깨닿는다. 그리고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와 셋이서 계룡산을 걸으며 지난 날을 성찰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지난 날 삶의 궤적중 짊어졌던 무게도 조금은 가볍게 내려놓는 시간도 갖었던 것 같다. 나라는 존재는 항시 나 혼자가 아니라 가족과 친구 친지등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소중한 사람들의 격려와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새삼 생각해 보았다. 이제 예전보다 삶을 더 충실하게 그리고 내게 주어진 일도 오래도록 열심히 하는 것이 사명이다. 그리고 매사 감사하고 기뻐하며 기도하는 낮은 마음을 살겠노라고 다독여 본다. [중도문학 제28호 2022.3.19일 발행 251-258p 수록] (2020.9.29.화요일. 쾌청) *계룡산 - 무학대사가 조선 도읍지를 물색하던 중 계룡산을 바라보니 닭벼슬을 한 용이 웅크리고 있는 형상 같다 하여 명명하였다 함 (거리 총 9.6km. 11시20분~18시.  걸은 실제시간 : 5시간.) 주행거리 : 동학사주차장 =4.2km > 관음봉 =2.2km> 남매탑 =3.2km> 동학사주차장 동학사주차장 => 계룡산국립공원 동학사탐방지원센타 => 동학사 => 은선폭포 => 관음봉 => 자연성릉 => 삼불봉 => 남매탑 => 큰배재 => 갓바위 => 천정골 => 천정탐방지원센타 => 동학사 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