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동아서울국제마라톤(2019.3.17) 기록/3:59:43 정진우
"I CAN ONLY IMAGINE"
(들머리)
마라톤, 즐겁게 달리기가 기술이고 능력이다.
"마라톤은 장거리 경주의 연장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올림픽의 꽃"이라는 수사가 단순히 그코스의 길고 짧음 때문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마라톤은 그어떤 반칙이나 편법이 통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그의미가 각별하다. 온몸으로 전과정을 빈틈없이 관통해야 하는 것이 마라톤이다.
어떤 물리적인 공간,시간적인 여백도 개입할 수 없는 것이 마라톤의 진수이자 정체다. 이런 점에서 마라톤은 스포츠의 일반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스포츠인 셈이다.
"I CAN ONLY IMAGINE" 절대 뒤돌아 보지 말자.
"난 이순간 부터 피니시 라인을 힘차게 통과하는 내 자신만을 상상하며 뛸거야."
오늘 만큼은 그냥 바람이 되어 공기 속을 흐르며 열린 공간을 통해 달려 나갈 것이다. 하늘 저 높히 날아올라 즐기면서, 그렇지만 단호하게~
이미 해 보았던 걸 그리워 하는 것과 해 보지 못한 것을 상상하는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면 7학년2반의 나는 후자를 선택하고 싶다. 현재의 내가 처한 여건은 누가 보아도 전자이지만 과거에 머물러 추억하고 안주하기 보다는 고통 속에서 꿈을 선택하고 싶다.
한때는 3시간16분의 고수도 해 보았고, 3~4년전만해도 3시간30~40분대가 좀 빡신 달리기였다가 어느덧 서브4도 벅차서 작년에는 4시간12분으로 후퇴하기에 이르렀다.
2년간의 기록이 인정되어 금년까지 B 그룹에 서지만 이번에 서브4를 못하면 C그룹으로 강등된다.
서브4를 탈환해야 다시 새로운 꿈의 불 쏘시개를 지필 수 있는 교두보가 마련된다.
금년 겨울에는 겨울같지 않은 온화한 날씨였지만 미세먼지가 건강수명을 위협하는 수준의 공포로 주위를 맴돌았음에도 불구하고 역경을 뚫고 여기 이자리에 모두 서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마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인간승리인 셈이다.
00~10k 구간/58:53
드디어 출발.
봄을 대표하는 엹은 박무,이른 아침의 가느다란 햇살,종 잡을 수 없는 바람.
동마는 봄을 온몸으로 맞이하게 해준다.봄은 몸이다. 봄의 마음은 혼자 싹트지 못한다.
몸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해마다 동마에서는 아름다운 몸꽃들이 피어난다.
지난 밤의 불안함,설레임은 스타트와 동시에 사라진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무작정 손을 흔들어 본다.
지난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뛸 수 있게 해주어서 감사하다고~
남대문로를 돌아 동대문 역사문화공원까지의 5km 구간을 워밍업으로 풀어가며 달린다.
오늘 레이스의 희망목표기록은 서브4다. 20k 구간까지 서브4 페이스로 달리다가 몸이 따라주면 피니시까지 밀어 부치고 안되면 바로 꼬리를 내려서 '아니면 말고'이다. 나날이 허접스럽게 변화하는 몸을 구동시키는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시작구간의 죠깅페이스가 결과적으로는 크게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것은 최근이다.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을 돌아 나가면서 슬슬 '김밥부인 옆구리 터지기' 시작하는 구간이다. 혼잡한 주로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치고 나가면서 살짝 짜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나도 치고 나가면서 질주의 본능으로 가느냐 마느냐로 갈등을 일으킨다.
이구간을 잘 억제하면 두번째 구간부터는 호흡도 터지고 적당히 땀도 나면서 순탄한 괘적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몸을 아끼고 속도를 제어한다.
10~20km 구간/56:52/1;55:34
비록 인공으로 조성하였지만 시내에서 청계천의 맑은 물을 바라 본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그렇지만 서울에 와서 유유자적으로 거닐어 보는 외국 관광객이나 데이트 족들에게 해당되는 운치다.
많은 인파에 뒤섞여 달리는 사람들에게는 청계천도 그다지 눈에 안들어 오고 주로도 협소하여 신경이 많이 쓰인다. 몸은 이제부터 풀려서 이페이스로 달려도 좋다고 신호를 보내온다.
아직은 28분30초 정도의 절제된 페이스로 뛰면서 몸이 보내오는 신호를 조심스럽게 체크해야한다.
청계천 중간지점에서 18k의 보신각을 돌아 종로로 진입후 흥인지문 직전구간이다. 이구간까지만 잘 끌고가면 서브4의 주사위가 잘 던져진 셈이다. 전구간에서 조금 빨랐던 페이스를 절제된
레이스로 바꾸면서 레이스 조정이 잘 되었다.
두번째 파워젤을 배 고프기 전에 미리 공급하여 에너지 관리에도 신경쓴다.
20~30km 구간/56:29/2:52:01
Not Bad!
20km 구간까지의 레이스나 체력안배가 잘되어 나머지 구간의 레이스 전망을 밝게 해준다.
지금부터 레이스페이스로 28분/5km 스피드로만 끌고가면 서브4다. 오버하거나 평정심을 잃지않고 내몸의 소리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외로운 질주.여기까지 오는동안 내가 아는 주자를 한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페이스 감각에 의존하여 스피드가 오버하거나 모자라지도 않게 제어해 나간다.
종로의 넓은 주로가 몸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시간은 발끝에서 흘러간다. 종로통의 넓은 주로에 약간의 내리막 경사가 가미된다. 하프를 지났다는 안도감에 방심까지 자극하면서 레이스를 흐트려 놓기 안성맞춤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마의 구간이기도 하다.
종로통을 빠져나와 군자역과 어린이대공원 4거리를 ㄷ자형태로 돌아 나간다. 부담스럽지 않은 잔잔한 오르막내리막이 어차피 길에서 비기기 때문에 오르막도 신경쓰지 않고 달릴 수 있다.
휴대하고 있던 에너지음료를 모두 먹어 버리고 오로지 주로자봉의 꿀물을 기대하면서 이븐페이스로 달려 나간다.
이구간은 풀코스의 거리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낼 수있는 분수령이다.
나머지 12km를 잘 달리려면 다리근육의 힘도 잘게 쪼개서 분산시켜야 하고 팔도 흔들어 보고 어깨도 돌리면서 근육을 한번 이완시키고 긴장감도 완화시켜야 한다.
작년에는 초반의 오버페이스로 28km지점에서 퍼졌는데 이번에는 미토콘드리아의 근육세포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고 호흡도 안정되어 숨이 덜 찬다.
30~40km/55:59/3:48:00
아직까지는 스피드감이 나쁘지 않고 하체에도 탄력이 남아있다.
지금까지 제어하고 있던 4단기어를 5단으로 올리고 더욱 스피드를 가속시킨다. 34~36km의 잠실대교 입구까지 오르막 진입구간을 힘들게 달려 온 주자들에게는 에너지 고갈의 시련 속에서 목표포기라는 악마의 유혹에 빠지게 만드는 구간이다.
조금 후 36km구간을 지나면 잠실대교 밑을 흐르는 강물의 반짝임을 볼수있다.
새롭게 맞이하는 봄의 강물에서 자연의 신비를 맛 보면서, 몸을 수레바퀴처럼 굴려서 살아있슴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은 생의 가장 큰 축복이다.
길에는 본래 주인이 없어 그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지금 이순간 이길의 주인공은 나다. 몇초 차이로 서브4를 놓칠 수도 있는 절대절명의 순간이 시시각각 밀려온다. 잠실대교 하단의 내리막 구간에서 몸의 모든 세포에 총 동원령을 내린다.
잠실대교 위,동호회의 꿀물 공급장소에서는 매의 눈으로 달리면서 컵을 정확히 잡아, 동시에 흘리지 않게 반으로 접으면서, 살이 들지 않게 호흡을 조절해 마셔야 하는 마지막 생명선이다.
오기와 인내가 교차하면서 호흡은 시시각각 턱밑을 파고든다. 주로에서 응원하는사람들의 모습도 순간적으로 끊겼다가 돌아가는 스틸화면 같이 스쳐 지나간다. 38k 지점,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박혔던 물집이 어느 순간,작은 폭탄파편 처럼 살을 헤치고 나오면서 팍~하고 터진다.
40km~피니시 구간/11:43/3:59:43
지금까지의 메이저대회에서 피니시 구간의 최고기록을 수립하는 순간이다. 발은 무의식적으로 둥둥 공중에 떠 있듯이 허우적 거리면서 달려 나간다. 마지막까지 인내로 버텨온 한계와 고통을 피니시 라인은 엑스터시로 맞이해 준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희열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날머리)
이번 대회의 결과에 대한 주윗분들의 격려가 대단하다. 훈련을 열심히 했다기 보다는 주로 페이스계획을 잘 짰을 뿐인데 격려와 덕담이 쏱아지니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쑥스럽다.
암튼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더욱 처신을 잘 해서 보답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정진우:48.5.22.생 01.10.21 춘천마라톤에서 처음으로 풀코스 완주후
울트라 해외마라톤을 비롯하여 여러대회에서 빠른 주력으로
년대별입 상들을 계속하며 곧 300회 완주의 위업을 달성예정.
최고기록은 3시간16분23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