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
비 개인 긴 언덕에는 풀빛이 푸른데
그대를 남포에서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은 그 언제 다할 것인가,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핵심 정리
• 지은이 : 정지상
• 형식 : 7언 절구의 한시
• 성격 : 애절하고 우수적임
• 운자 : 다, 가, 파.
• 구성 : 시상의 전개상 '기 - 승 - 전 - 결'으로 해야 자연스러울 것다. 그러나 칠언절구는 1,2,4구에 압운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운자를 맞추기 위해 전구와 결구를 서로 바꿔 배열했음을 알 수 있다.
• 주제 : 임을 보내는 정한
시어 구절 풀이
• 우헐 : 비가 그침. 비가 내리다 잠깐 그침
• 초색다 : 풀빛이 많다. 비가 갠 뒤 싱싱한 푸르름을 지칭함
• 동비가 : 슬픈 노래가 복받쳐 나옴
• 하시진 : 어느 때에 다 마르겠는가?
• 년년 : 해마다
• 첨록파 : 물결에 더해지다. 곧, 이별의 슬픔이 끝이 없음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 서럽도록 아름다운 이 시의 기구이다. 비극적 정서를 자아냈던 비도 그치고 강 언덕 긴둑에 한결 짙어진 풀빛은 백 년이 가도 다함이 없음을 나타낸 한의 길이의 상징이다.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승구의 비가는 이 시의 주제이기도 하고, 효과음이기도 하다. ‘동’은 강나루에 은은히 울려 퍼지는 뱃노래의 구슬픈 가락이 심금에 와 부딪히는 울림이요, 떨림이요, 흔들림인 동시에 걷잡을 수 없는 설움의 북받침이고, 흐느낌이다. 따라서 그러한 이별의 정을 돋우는 슬픈 노래에 강나루는 싱그런 풀빛까지도 서러운 이별의 무대이다.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 전구와 결구이다. 이 두 구의 핵심은 인간사와는 아랑곳 없이 유유히 흘러가기만 하는 푸른 강물에 대한 애꿎은 원망이며, 이별의 눈물이 보태져서 수량이 증가해 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하는 탄식이다. 여기에서 ‘첨록파’의 ‘록파’는 수심을 시사하는 한편, 초록의 반영인 봄의 강물의 색감으로서, 벽파나 창파보다 한결 정감적이다. ‘첨'’ 덧붙이는 첨가의 뜻이다. (과장법이 사용됨)
해설과 감상
정지상의 「송인(送人)」은 우리 나라 한시 중 송별시(送別詩)의 최고작이다. 님이 떠나지 못하도록 계속 와야 할 비도 개고 말았다. 항구의 긴 둑엔 비에 씻긴 풀들이 푸르름을 더하고 있으니 이별의 애달픔이 더 고조된다. 전구(轉句)에서 시상은 전환되어 대동강물이 이별의 눈물로 마를 날이 없다고 했다. 자기의 사연을 일반화하면서 동시에 대동강의 사정을 그려 일방적인 자기 슬픔의 토로에서 벗어났다.
이 작품은 대동강에서 친한 벗과의 이별을 하는데 대한 슬픔을 노래한 작품으로 김만중의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고려 정사간의 '남포' 절구는 곧 해동의 위성삼첩이다. 끝구의 '별루년년첨작파(別淚年年添作派)'를 '첨록파'라 하기도 하는데, 익재는 마땅히 '녹파(綠波)'를 좇을 것이라 했고, 사가는 '작(作)'자가 낫다고 했다.
생각건대 심휴문의 '별부'에 이르기를 '春草碧色 春水綠波 送君南浦 像如之何''라 했으니, 정사간의 시가 바로 심휴문의 말을 썼으므로 '녹파'로 바꿀 수가 없다고 말했으며, 허균은 그의 '성수시화'에서 정지상의 '서경시(西京詩)'는 아직도 절창이다. 누선(樓船)의 제영(題詠)들을 조사(詔使)가 올 때마다 철거하고 이 시만을 남겨둔다고 말했으며, 이인로는 그의 '파한집'에서 '서도는 고구려의 서울이었다. 산을 끼고 강을 둘러 기상이 수이하여 예로부터 기인(奇人)이 많이 났다. 예왕 때에 정성을 가진 이름모를 준재가 있었는데, 소년 때에 '송인'을 지었다. …… 그말이 표일(飄逸 : 빼어나게 훌륭함)하고 속세를 벗어난 것이 다 이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이렇게 해석을 하고 있다.
이 시는 고래(古來)로 한시(漢詩)의 명품(名品) 가운데의 명품으로 꼽힌다. 특히 한시를 짓는 소객(騷客) 가운 데 이 시를 평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 시는 많은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작품이라고 한다. 또한 이 시는 대동강의 부벽루(浮碧樓) 정자에 걸려 있는데, 이 부벽루에는 고려, 조선 시대의 숱한 시인들이 부벽루에 올라 대동강의 아름다움을 읊었다고 한다.
따라서 부벽루에는 많은 사람들의 시가 적혀 있다. 명(明)나라의 사신이 올 적에는 반드시 평양을 들렸고, 평양을 들리면 반드시 찾는 명소가 바로 이 부벽루이다. 중국의 사신을 맞이하는 접빈사들은 미리 먼저 부벽루의 모든 시들을 치우고 오직 정지상의 이 '送人'이라는 시구만 걸어 놓는다. 중국의 사신들이 '送人'을 보면 모두 신품(神品)이라고 극찬한다고 하였으니 이 '送人'의 시가 어떻게 빼어난 것인지 조금만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기구(起句: 제 1구로 시상詩想을 일으키는 역할)와 승구(承句: 제 2구로 起句를 이어 받아 시를 전개)를 살펴보자. 지금은 바야흐로 봄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모든 만물이 봄비가 온 뒤로 생기 발랄함을 얻었다.
특히 긴 둑에 풀들은 파릇파릇 돋아 봄날의 정취를 돋구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님의 손을 붙잡으며 희망과 부푼 꿈을 않고 인생을 설계하며 상춘(賞春)을 하고 있다. 바로 곁에 사랑하는 님과 봄날의 정취(情趣)를 만끽하면서 보내니 이 세상의 무엇을 더욱 바라리요. 그러나 나는 지금 어떠한가. 남포에서 사랑하는 님을 떠나 보내는 나의 처지는 무엇과 비교하리요. 차라리 비라도 주룩주룩 내린다면 나의 심사를 달래주렴만. 비가 그친 뒤의 맑은 하늘과 이 비를 머금고 싹을 틔운 풀잎들은 모두 나의 이별을 조롱하는 듯하다. 아 세상과 불일치를 무엇으로 감당하리요.
이 시의 묘미(妙味)는 바로 전구(轉句: 제 3구로 시상을 변환시키는 역할)에 있다고 하겠다. 난데없이 갑자기 '대동강 물이야 언제나 마르리'라는 구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아니 지금 사랑하는 님과 헤어지는 판국에 대동강 물이야 어찌 되든 무슨 상관인가. 더욱이 대동강 물이 왜 마른다고 하는가. 강물이 마른다니 이 무슨 표현인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가 막히게 한다. 이런 어리둥절함은 결구(結句: 제 4구로 시상을 맺는 구)에 가서 해결된다.
대동강 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가 이 곳에서 해마다 연인(戀人)들이 모여 석별(惜別)의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고 이 눈물이 바로 대동강 물에 보태어져 마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참으로 전구의 기발(奇拔)함이 이 곳의 재치에 이르면 모든 이가 수긍을 하며 동시에 무릎을 치며 감탄(感歎)을 금(禁)치 못한다. 이런 재치와 표현의 기발함은 정지상의 한시가 몇 편 전해지지 않지만 다른 사람 수백 편의 시를 감당할 만하다고 하겠다.
한자를 살펴 보면 많은 글자들이 유음을 사용하여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긴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모음으로 끝나고, 받침 글자도 'ㄹ, ㅇ, ㄴ, ㅁ' 등의 부드러운 자음을 끝난다. 이러한 유음의 사용은 봄날의 부드러운 분위기를 잘 나타내 주고 이는 나의 불행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세상이 아름답고 살만할수록 나와 세상의 거리감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참고 : 정지상
고려시대의 문신 ·시인으로 본관 서경(西京). 호 남호(南湖). 초명 지원(之元). 서경 출생. 1114년(예종 9) 문과에 급제, 1127년(인종 5) 좌정언(左正言)으로서 척준경(拓俊京)을 탄핵하여 유배되게 하고, 1129년 좌사간(左司諫)으로서 시정(時政)에 관한 소를 올렸다. 음양비술(陰陽?術)을 믿어 묘청(妙淸)·백수한(白壽翰) 등과 삼성(三聖)이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서울을 서경으로 옮길 것과 금(金)나라를 정벌하고 고려의 왕도 황제로 칭할 것을 주장하였다.
1130년 지제고(知制誥)로서 《산재기(山齋記)》를 지었으며, 뒤에 기거랑(起居郞)이 되었다. 1135년(인종 13) 묘청의 난 때 이에 관련된 혐의로 김안(金安)·백수한과 함께 김부식(金富軾)에게 참살되었다. 시(詩)에 뛰어나 고려 12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혔으며 역학(易學)·불전(佛典)·노장철학(老莊哲學)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림 ·글씨에도 능했으며 저서로는 《정사간집(鄭司諫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