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는 간단히 북엇국이다.
오늘은 약간 선생님들 스타일로다가 효*쌤이 준비했다.
뜨끈한 밥에 국 한 그릇 뚝딱하고 나는 설거지를 한다.
고생한 선생님들의 고마움을 표현할 기회여서 얼른 고무장갑을 낀다.
간단히 아침 식사 뒷정리를 하니 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커피를 내려주신다.
선생님들의 아침 조회라고나 할까?
매일 따뜻한 커피를 나눈다.
따뜻한 마음과 함께.
아침 뉴스에서 오늘은 비도 오고 바람도 많이 분다던데 챙겨서 나가니 역시나 바람이 세다.
오늘 큰 주제는 '다크 투어리즘'이다.
'다크 투어리즘'이란 전쟁, 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하여 떠나는 여행을 일컫는 말이다.
그 첫 장소인 대정읍에 있는 알뜨르 비행장으로 향한다.
이곳은 일본 해군에서 구축한 제주도 항공기지로 1926년부터 계획하고 1930년대 중반까지 20만 평의 비행장을 건설하는 중에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국민당 정부의 수도인 난징 대포격의 발전기지로 활용되었다.
이후 알뜨르 비행장은 상하이의 해양 폭격 지점이 되었다.
전망대에 오르고 지하 벙커에 직접 들어가며 그 시대 역사의 현장을 마음과 몸으로 느낀다.
비행기 격납고에 직접 들어가고 비행기 구조물을 만져보며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여 앞으로의 평화를 기원한다.
바로 옆 섯알오름은 4.3 사건의 흔적지다.
여기는 대학살을 감행한 후 증거인멸을 위해 유품들을 불태웠던 장소이다.
예비검속 구금장소는 협소했다.
"넓은 장소로 간다." 고 유인하여 희생자들은 생활 소지품들을 모두 트럭에 실었다.
1950년 8월 20일(음력 7월 7석) 새벽 트럭에 실려 가며 고향마을을 벗어나 이곳 길을 향했을 때, 그제서야 자신들의 죽음을 예측했었는지 신었던 검은 고무신들을 벗어 던지며 가는 길을 가족에게 알리려 했었다.
길 위에 검은 고무신들을 따라 유족들이 달려왔을 때는 이곳에서 담요, 베개, 옷가지, 허리띠, 쌀, 부식 등 희생자들의 소지품이 모두 불에 타고 있었다.
이이제 검정 고무신을 보면 4.3사건의 슬픔과 아픔이 생각날 것 같다. 사연이 깊은 검정 고무신이다.
섯알오름 전망대에 이르니 한자가 쓰여있다.
이 한자 읽어볼 사람 하니.
초성 퀴즈 ㅊㅁㅈ.
진훈이가 손을 들더니 추모정이요.
와 대박.
한문 시간에 열심히 공부했나 보다.
선생님들이 진훈이를 많이 칭찬하니 기세가 등등하다.
제주 더 남쪽 송악산으로 이동한다.
여기도 아픈 역사의 흔적인 동굴 진지가 있다.
송악산 외부 능선 해안에 있는 이 시설물은 당시 일본군의 군사시설로서 1943~1945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송악산에는 이처럼 크고 작은 진지동굴이 60여 개소나 되며, 이 진지동굴은 태평양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이 제주도를 저항 기지로 삼고자 했던 증거를 보여주는 시설물 가운데 하나로서 주변에는 섯알오름 고사포 동굴 진지와 해안동굴 진지, 알뜨르 비행장, 비행기 격납고, 지하 벙커, 이교동 군사시설, 모슬포 군사시설 등이 있다.
송악산에 오르니 저 멀리 서귀포의 먼바다와 함께 넘실대는 큰 파도와 갯바위에 부딪히는 포말이 보인다.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유독 파도가 높고 세다.
그 파도 사이로 산방산도 보인다.
산방산은 조용히 엎드려 있다.
송악산에서 내려와 차로 돌아왔더니 효*쌤이 안절부절못한다.
차 문을 열다가 옆 차에 문콕을 해버렸다.
바람이 너무 세서 문이 갑자기 확 열려버렸다.
이는 다 바람 때문이다.
효*쌤 잘못이 아니다.
배가 슬슬 고파온다.
근처 모슬포에 전복 돌솥밥을 잘하는 맛집을 찾았다.
으 이럴수가.
휴일이다.
지난번 신창에서도 그랬는데 이번에 또?
아쉽다.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숨겨둔 나의 맛집을 추천한다.
모슬포에 들르면 항상 찾는 우리 가족의 맛집 글라글라하와이.
오랜만에 다시 찾으니 반갑다.
한편으로는 집에 있는 가족들 생각도 난다.
해물볶음밥과 덮밥을 시켜 하와이에 온 기분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맛나게 먹고 기분 좋게 나온다.
아까 송악산에서 바라본 산방산 용머리해안으로 이동한다.
초입에는 하멜의 스페르베르호가 있다.
네델란드인 핸드릭 하멜은 네델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원들과 함께 상선인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일본으로 항해 도중 풍랑을 만나 당시 대정현 지역에 1653년 8월 16일 표착되었다.
그는 13년간 우리나라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하멜표류기를 작성하였고, 유럽 여러 나라의 언어로 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우리나라를 유럽 세계로 최초로 알리게 되었다.
아쉽게도 오늘은 바람이 세 파도가 높아 용머리해안은 출입이 불가하단다.
어쩔 수 없이 사진만 찍고 돌아선다.
오늘 운이 좋지 않다.
아까 문콕도 그렇고.
넘실대는 파도 너머 저 멀리 형제섬과 가파도, 마라도가 희미하게 보인다.
근처에 서귀포가 다 보이는 군산오름이 있어서 올라간다.
다행히 차로 거의 올라가 실제 걷는 시간은 10분 남짓이다.
특이하게도 올라가는 찻길이 경사가 급하고 좁아서 차를 만나면 아주 곤란하다.
군산오름은 그냥 오름이 아니라 우리 역사의 아픔이 있는 오름이다.
오름을 오르다 보면 좌측과 우측에 진지동굴이 있다.
제주에 이런 역사가 남아있어 참 안타깝고 아쉽다.
진지동굴은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제주도에 들어온 일본군에 의해 우리나라 민간인을 강제 동원하여 만들어졌다.
일본군 정예 병력 70,000여 명을 제주도에 주둔시키면서 해안기지와 비행장, 작전 수행을 위한 도로, 각종 군사시설을 하게 되는데 이때 만들어진 것이 진지동굴이다.
미국의 폭격기에 대비해 일본군들은 이 진지동굴들을 군수물자와 보급품 등을 숨기고 일본군의 대피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여기 이 진지동굴들은 일제의 잔재물로 우리에겐 가슴 아픈 역사의 상처가 남아있는 현장으로 근대 전쟁 문화유산이기도 한 진지동굴을 평화교육의 장으로 활용한다.
급경사이긴 하지만 금방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 오르니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제주의 진정한 바람이다.
삼다도라고 하는데 바람 하나는 제대로 맞고 간다.
몸이 다 휘청거릴 정도다.
저 넓은 태평양의 바다와 서귀포 시내가 다 보인다.
이 확 트인 풍경을 보고 우리 학생들이 넓은 포부와 생각을 품었으면 좋겠다.
큰소리로 파이팅! 을 외치며 포부를 다진다.
학생들을 응원한다.
애쓴 모두를 위해 가까운 책방을 찾는다.
더리트리브 책방은 책방이라기보다는 북카페다.
책 판매보다는 카페에 중심이 기울여진 것 같다.
아마도 생활하기 위한 여기 사장님의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안타까운 현실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도 먹고 사는 데 크게 문제가 없으면 좋을 텐데.
내 꿈은 산골책방을 여는 것이다.
이 꿈을 생각만 해도 행복하고 마음이 막 설레오는데...
그 마음만으로 살 수는 없을까?
허름한 창고 컨셉의, 아니면 실제 허름한 창고를 매입해서 만든 거의 손대지 않고 그대로 살린 넓은 공간이 마음에 든다.
빈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이라고나 할까?
시원한 음료 한 잔씩 하고 숙소로 향한다.
숙소 들어가기 전 애월 맛집 수제 햄버거 피즈에 들러 저녁을 해결한다.
준수가 추천한 곳이다.
오늘 세 분의 선생님이 합류하셨는데 다행히 11명 모두가 들어가니 자리가 딱 맞다.
햄버거 주문하고 기다린 시간보다 먹는 시간이 더 짧다.
바다를 보면서 먹는 햄버거라니.
마냥 좋다 맛있어서...
식사를 마치고 애월농협에 들러 내일 한라산 등반에 필요한 재료를 준비한다.
선생님들은 힘들게 오를 학생들의 등반을 위해 전투식량, 사탕, 과일, 음료, 양갱, 주먹밥 재료, 쵸코과자 등을 구입하여 지퍼백에 나눠 담는다.
힘들 때 먹을 우리 지사 가족을 위해.
내일 한라산 등반 무사히 잘하겠지?
봉지 봉지에 그 염원을 담는다.
제주도 온 큰 목적이 바로 한라산 등반이기 때문이다.
내일은 새벽 일찍 일어나 5시에 숙소를 나서야 한다.
오늘은 일찍 자그라.
#제주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