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맞는 첫 아침이다.
집이 아니라 잠자리가 불편하고 실내 온도가 평소와 맞지 않았는지, 일어났는데 코가 막히고 목이 아팠다.
여행 징크스인지는 몰라도 장기간으로 여행을 가면 꼭 시작 며칠 즈음엔 이렇게 한 번씩 홍역을 치른다.
아침은 간단하게 어른은 햇반과 김치로, 자녀들은 지들이 좋아하는 우유에 씨리얼을 말아 먹는다.
원래 오늘은 호텔에 있는 목욕탕과 수영장에 가려고 했는데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가까운 곳으로 나가자고 한다.
어제 호텔 맞은편에 보았던 황룡원의 건물을 보고 오늘은 황룡사지에 가기로 한다.
황룡사는 경주시에 있던 사찰로 서기 553년(신라 진흥왕 14년)에 창건되었다.
불국사와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며 백제의 미륵사, 고구려의 정릉사와 함께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호국사찰이었다.
이름이 같은 절이 은근히 있지만 보통 '황룡사'라고 하면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320-1번지에 있었던 신라 시대의 대규모 사찰을 가리킨다.
지금은 터만 남았기 때문에 문화재청 등에서 부르는 공식 명칭은 황룡사지(皇龍寺址).
이렇게 터만 남은 자리를 가리키는 접미사처럼 쓰이는 '지'를 땅 지(地)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터 지(址)이다.
한국 전근대 역사상 최대급이었던 80m 가량의 황룡사 9층 목탑이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출처: https://namu.wiki/w/%ED%99%A9%EB%A3%A1%EC%82%AC)
황룡사라는 절이 현재 존재하고 그 절 안에 있었던 9층 목탑만 소실되었다고 생각하고 갔는데 아니었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황룡사가 아니라 황룡사지였다.
절터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위대한 절과 9층 목탑을 보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쉬웠다.
남아 있었다면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고 기억할 수 있었을 텐데...
적군과 아군을 떠나 문화재를 후손을 위해 보존하지 못한 조상들이 원망스러웠다.
원나라에 의해 침입을 받아 소실되었다던데 원나라의 위정자들의 참으로 밉기도 하고 무식하기도 하다.
전쟁을 하더라도 법도가 있기 마련인데.
역사적으로도 보면 백제와 고구려의 평양성 전투에서 고구려의 왕 사유가 전사하자 전쟁을 멈추고 백제 왕 구는 이런 말을 했다.
“아무리 우리 백제가 고구려와 적대적 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인륜에 어긋나는 일을 삼가야 하느니라. 만약 고구려왕의 흉거가 사실이라면, 태자 구부는 상제가 된다. 상제에게는 예의를 다 갖춰야 하거늘, 그를 상대해 싸우겠다고 덤비는 패악을 저지를 수야 없지 않겠는가? 그러고서 어디 군자국이라 할 수 있겠느냐?”
(출처: 담덕2. 엄광용. 새움. p44.)
또한, 수곡성 전투에서 고구려의 왕 구부는 이런 말을 했다.
“짐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이 아니오. 국내성에서 기병을 이끌고 올 때만 해도 수곡성을 탈환하면 한수까지 밀고 나갈 결심이었소. 그런데 백제왕 구가 병상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바뀌었소. 5년 전 평양성 전투에서 부왕이 전사했을 때 백제왕 구는 순순히 군사를 물려 돌아갔소. 이번에 백제왕이 투병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것을 약점으로 이용해 백제를 칠 기회로 삼는다면 우리 고구려는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오. 절호의 기회인 것은 사실이나 군사를 일으키는 것도 때가 있는 법, 이번에는 수곡성을 탈환한 것으로 만족합시다.”
(출처: 담덕2. 엄광용. 새움. p293-p.294)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전쟁에도 법도와 예의가 있었다.
군자국이라 그랬을까?
이에 비하면 원나라는 군자국은 아니었나 보다.
누가 봐도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을만한 황룡사와 9층 목탑에 불을 지른걸 보니.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과욕이 되어 후세를 위한 역사적 유물이 훼손되고 소실된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아쉽고도 아쉽다.
아래 사진은 그 당시의 황룡사 9층 목탑을 1/10로 축소하여 만든 모형이다.
이 모형만으로도 대단해 보이는데 실제였다면 얼마나 웅장하고 위대했을까?
조상들의 기상과 문화에 대한 식견 및 건축기술을 목격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나도 아쉽다.
인간의 욕심은 언제나 그 끝이 좋지 않다.
욕심보다는 배려와 베풀 줄 아는 넓은 아량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행을 가면 꼭 도서관을 찾는다.
우리 가족 모두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황룡사지에서 그리 멀지 않는 경주 시립 도서관을 찾았다.
여기서 두 자녀들은 책을 보고 큰 녀석을 매일 해야 하는 공부를 하고 아빠와 엄마는 평소 읽던 책을 꺼내든다.
우리는 경주에 관광을 목적으로 온 게 아니라 지내러 왔기 때문에 평소의 삶이 연속된다.
장소만 남원에서 경주로 바뀔 것이다.
역사적인 도시에서 책을 읽으니 감회가 참 새롭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어서 한참을 책을 읽다가 아이들이 배가 고프단다.
처음으로 밖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
가까운 기사식당 ‘경화식당’을 찾았다.
기사식당을 찾는 이유는 가격이 저렴하기도 하고 여행 중일지라도 따뜻한 집밥을 먹고 싶기 때문이다.
3시가 조금 넘은 시간 식당에 갔더니 사람은 우리뿐이다.
정식을 시켰는데 가격은 6,000원이다.
너무 저렴해서 깜짝 놀랐다.
준비된 테이블에 있는 여러 반찬을, 먹고 싶은 만큼 가져다 먹을 수 있다.
여쭤보니 매일 반찬은 바뀐단다.
오늘은 음식은 두부조림에 시원 칼칼한 무국이다.
두부조림은 특히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한다.
게다가 아이들이 있다고 계란 프라이에 김도 주신다.
와 대박이다.
여행 중 이런 좋은 식당을 만날 수 있다니...
배부르게 완삭을 하고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첫째가 경주에서 가장 보고 싶다고 한 첨성대를 보러 출발한다.
막내가 유치원생인데 선덕여왕 드라마를 봐서 그런지 “첨성대는 선덕여왕이 하늘을 보기위해 만들었어요.”란다.
깜짝 놀랐다.
미디어 학습의 효과인가?
예전에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와서 본 첨성대인데 어찌된 건지 기억이 하나도 없다.
이번에야 제대로 첨성대를 보고 관찰한다.
“하늘을 알면 세상이 보일 것이다.” - 선덕여왕
지나가다 만난 선덕여왕의 저 말 앞에서 한참을 서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현존하는 첨성대 중 대표적인 것은 신라시대 경주에 있었던 것이다.
별을 보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의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국가의 길흉을 점치기 위하여 별이 나타내는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역법(曆法)을 만들거나 그 오차를 줄이기 위하여 별이나 일월오성(日月五星:해와 달 그리고 지구에서 가까운 금성·목성·수성·화성·토성의 다섯 행성)의 운행을 관측하는 것이다.
(출처: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6197)
그 당시 선덕여왕은 첨성대 축조를 위해 후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이 오래된 건축물에서 우리는 어떤 조상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까?
시간이 지나 해가 지니 첨성대에 달이 걸렸다.
한 폭의 그림이다.
경주에서 야경 하면 동궁과 월지다.
첨성대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있기에 길을 재촉했다.
동궁은 통일 신라 왕궁의 별궁으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도 쓰였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문무왕 14년(674년)에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연못이 바로 월지인데, 조선 시대에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어 '안압지'라 부르기도 하였다.
연못과 어우러진 누각의 풍경이 아름답고, 밤에는 화려한 조명에 비친 야경이 더욱 유명하다.
(출처: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87XX74500157)
유적지를 둘러보며 언제나 아쉬운 점은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동궁과 월지에도 단 3채의 누각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보존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또 남는다.
후손들을 위해 가치 있는 무언가를 남기는 일은 중요하다.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아내며 미래를 대비할 수 있기에.
보존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오늘 하루였다.
[초3의 일기]
오늘 황룡사지 문화체험관에 갔다. 거기서 그림도 보고 엄청 큰 나무 9층 목탑도 봤는데 정말 멋있었다. 그리고 얼굴무늬 수막새와 치미도 멋있었다. 그 다음 3D 영상을 봤는데 슬프고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본 후에 동궁과 월지와 첨성대를 갔는데 야경이 정말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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