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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겨울축제가 화려한 막을 올렸습니다. 분단된 땅에서 한반도기를 맞잡고 함께 입장한 남과 북의 선수들, 대한민국이 세계인들에게 보내는 한반도 평화의 메시지는 전세계인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었습니다.
전통과 첨단 기술이 집약된 개막식, 조명을 달고 밤하늘을 날아오른 1200여대의 드론은 기네스북에 올랐으며 IT강국 대한민국의 저력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주었습니다. 하지만, 개막식 만큼이나 화재가 됐던 것은 식전 행사에서 보여준 남북태권도 합동시범이었습니다. WT시범단 (World Taekwondo) 같은 태권도 라는 이름을 쓰지만, 각자 다른 길을 걸어왔던 남북태권도가 한 자리에 모인 겁니다. ITF시범단(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
최태영: 신기했어요. 북한이 같이 나온다는 게
칠리/미국 관광객: 육체적 재능, 힘, 민첩함을 필요로 해서 재미있었어요.
한반도 고유 스포츠종목인 태권도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 한반도 처럼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는 유일한 스포츠종목입니다. 하지만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 태권도가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태권도-하나를 위한 도전.
남북태권도 시범단이 오늘은 서울시청에서 시범을 보입니다. WT-ITF태권도 합동시범 공연(서울시청 다목적홀 2018.2.12). 음악을 가미해 품새동작을 선 보이는 남한팀, 스포츠로 발전한 남측태권도는 화려한 발기술과 점프력 등 고난도의 기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시범단의 송판은 두께부터가 우리와 다릅니다. 무술로써의 태권도를 강조하고 있는 북측 시범단은 동작이 크고 직접적이며 강한 파괴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승현/계명대 태권도학과 교수: 우리는 기술적으로 특히 발기술을 많이 발전시켰죠. 그러다 보니 가벼워졌고 북한은 위력적으로 정확한 목표를 향해서 정확한 파워를 전달하는 것이 계속 남아있죠. 이번 공연에서 남북 시범단은 동시에 한 무대에 올라 동작을 하고 함께 격파를 했습니다. 남북코치가 함께 격파를 하는 태권도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상황을 연출했습니다. 남북으로 태권도가 갈라진 지 45년, 남북 시범단이 한 무대에 함께 선 건 처음있는 일이었습니다.
남북 태권도 시범단이 처음 만난 건 4년전 러시아였습니다. (옴스크시 러시아 사할린주).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행사(2014.7)에 남북태권도 시범단이 함께 초청된 것입니다. 이날 행사는 고려인들이 마련한 비공식적 만남이었습니다. 남측 시범단의 수석코치는 김상명 사범, 북측 시범단의 송남호 감독은 이번에도 평창에 왔던 반가운 얼굴입니다.
송남호: 그 다음에 송일이 거하고, 기석이 거 이름을 겉에 써라. 너희도 이쪽으로 와서 너희가 알 수 있게 써라.
시범을 앞두고 꼼꼼히 준비를 합니다.
송남호: 방문 열어진 곳 있다니까 가서 신발이랑 옷 다 갈아입고 시범할 수 있게 준비하고 나와.
남북의 선수들이 같은 운동장에서 몸 풀기를 시작합니다. 멀리 보이는 북한 선수들, 남한과 달리 북한은 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파견했습니다.
제작진: (북측 송남호 감독에게) 감독님 긴장되세요?
송남호: 아니오
제작진: 긴장 안돼세요? 여러 번 해보셔서 괜찮으세요? 남한 선수들 연습하는 거 보셨죠? 어떤 것 같으세요?
송남호: 우리 훈련할 때 외부 사람들이 도관이나 도장에 와서 훈련 도중에 말 못시키게 돼 있습니다. 이거 끝난 다음에 물어보시든지,
이번 남북 태권도 합동 공연에는 남북화해와 통일을 위해 고려인들이 마련한 자리입니다. 남한과 북한의 태권도가 만나서 한 무대에서 차례로 시범을 보이는 건 태권도 역사상 처음있는 일, 처음 마주한 남북선수들의 표정에 어색함이 감돕니다. 대회가 시작되고 남한팀이 먼저 시범을 보입니다. 북한 선수들의 눈빛에선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긴장되는 건 먼저 시범을 보이는 남한 선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작진: (남한 김상명 수거코치에게) 잘 하신 것 같아요?
김상명: 아니요 잘못한 거 같아요. 처음이라 항상 처음에 해외시범 나오면 첫 시범은 항상 좀 잘 안된다고 해야 하나, 제 경험상,
이어서 북한팀의 시범입니다. 위력격파와 강한 태권도를 보여주기 위한 북측의 시범은 그 만큼 위험도가 높습니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승패가 없는 축제라지만 남북코치의 표정에 긴장감이 감돕니다.
제작진: 잘했어요?
송남호: 네 잘했습니다.
제작진: 실수없이?
송남호: 좀 실수가 있었죠. 저희가 너무 실수 없이 하면 또 그렇죠. 송판이 젖어 있으니까.
제작진: (북측선수들에게) 다리 안아파요?
북한선수: 일 없습니다.
제작진: 한번 보여줘 봐요.
북한선수: 괜찮습니다.
제작진: 여기 다쳤네, 여기
북한선수: 괜찮습니다.
제작진: 여자 선수들 괜찮아요?
북한 여자선수: 괜찮습니다.
제작진: 아까 넘어졌는데 괜찮아요?
대회 두번째 날이 밝았습니다. (네웰스크 러시아 사할린주). 한 무대에서 남북선수들이 함께 몸을 풉니다. 어제 보단 분위기가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김상명: 그냥 같이 무대에서 시범할 수 있다는 거, 서로 보고 비교하고 연구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관객들 앞에서 김상명 사범이 남측 시범단의 주특기인 고난도 격파시범을 선보입니다. (김상명 수석코치 태권도 외교단).
남측 태권도는 태권도의 기술적인 면을 강조하기 때문에 동작이 화려하고 다양합니다. 북한 송남호 감독도 몸을 풉니다. 송판의 두께가 10센치미터 (송남호 감독 ITF시범단). 스포츠로 발전한 남측 태권도와 달리 북측 태권도는 무도로서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시범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달라도 같은 태권도를 하는 것이기 때문인지 선수들은 어느새 가까워졌습니다.
김상명: 송남호 감독이 악수하고 들어가면서 저한테 한마디 하더라고요. “우리 꼭 만납시다” 근데그 말이 약간 저한테 가슴으로 다가 왔어요. 사실은 언제 만날지 기약없는 약속이잖아요.
남북 태권도 시범단의 공식적인 첫 만남은 지난해(2017년) 7월 무주세계태권도 선수권대회에서 열렸습니다.
김상명: 연습하는 거 보러갑니다. 지금 북한 선수단은 여기 없는 것 같네요.
러시아에서 북한 선수들과 만났던 김상명 사범이 무주태권도원을 찾았습니다. 김상명 사범이 복도에서 누군가를 발견했습니다.
김상명: 감독님, 안녕하세요 오셨어요?
송남호 감독/ITF 시범단: 오래간만입니다. 안녕하세요.
최명철/ITF시범단 주장: 오늘 내려 왔어요.
제작진: 알아보시네요?
김상명: 그러니까요. 너무 반갑네요. 지금 시범 들어가야 되니까 짧은 거 같은데 일단은 시범 끝나고 한번 더 만나볼 수 있으면 만나 보려고요.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무주를 방문했습니다. 10년만에 처음 재개된 남북교류를 특별히 축하하기 위해섭니다. 183개국 17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한 태권도인들의 축제가 시작됐습니다. 세계태권도 선수권대회는 세계태권도 연맹 WT가 주관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입니다. 남한에 이어 시범을 시작하는 북한선수단들 ITF 한국에서 치러지는 WT태권도 행사에서 북한태권도 선수들이 시범을 보이는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오늘의 하일라이트는 송남호 감독의 격파, 격파실패, 다시 도전하는 송감독, 격파실패, 송판을 잡은 선수를 교대해 3차 시도를 합니다.
김상명: 아이고, 그래도 ITF 시범단이 가지고 있는 위력적인 부분은 충분히 보여주는 것 같애요.
남북 태권도 통합논의는 2007년 남북태권도 통합조정위원회가 결성되면서 곧 성과를 내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남북의 정치적인 이유로 십여년을 표류한 끝에 다시 무주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김상명: 수고하셨습니다.
송남호: 다음 번에는 더 멋있게 합니다. 아직 세번의 공연이 남아있으니까요.
제작진: 오늘 왜 잘 안됐어요?
송남호: 피곤했나, 내가
김상명: 내일 시간 어떻게 되세요?
송남호: 글쎄 모르겠어요.
리용선/ITF 총재: 한 자리에서 함께 하는 게 쉽지 않은데 참 훌륭한 시범이었어요. 둘이 합하면 더 위로 갈 거 아니에요.
민간교류마저 끊긴 채 극단으로 치닫던 남북관계에 평화의 물꼬를 튼 건 태권도였습니다. WT와 ITF의 역사적인 만남이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우리에겐 어려운 만남을 잘 이어가야 하는 과제가 남겨졌습니다. ITF 대표단이 도착하던 날, 북측시범단 초청공연에 물꼬를 튼 1등 공신을 만났습니다. 맨발에 태권도 도복까지 갖춰입고 서있는 백발의 노사범 (정우진 사범/태권도타임스 발행인), 그는 ITF 대표단을 마중하기 위해 미국에서 날아왔습니다.
정우진: 나는 이 사람들 일행입니다.
경찰: 일행이라고 말씀하시는 데 맞아요?
정우진: 네, 맞아요.
경찰: 그러면 언제 들어가시면 돼요? 저희가 안내를 해 드려야 하니까
정우진: 지금 들어가야 헤요.
한때 ITF 기술고문으로 활동한 적이 있는 정우진 사범은 그동안 WT와 ITF 사이에서 가교역활을 해왔습니다. 정 사범은 두 차례에 걸친 북측 시범단의 미국 방문을 성사시켜 남북 태권도 교류에 큰 진전을 가져온 주인공입니다. 사실 ITF는 한국에서 생겨났습니다. 1972년 캐나다로 본부를 옮긴이래 지난 세월 ITF 대표단의 한국 방문은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조지 비탈리/ITF 대변인: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45년 만에 ITF 태권도가 생겨난 곳으로 돌아왔어요. 정말 좋아요.
제작진: 기분이 어떠세요?
정우진: (가슴이 벅차서) 말 못해 지금
ITF 가 해외로 나긴지 45년, 그래서 정우진 사범은 ITF의 방문을 귀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태권도 국제연맹 45년 만의 귀향).
인구 10만명의 작은 도시, 미국 시더 래피즈(미국 아이오와), 이곳이 정우진 사범의 태권도 도장입니다.
정우진: 준비! 기마자세 중단 공격, 준비! 하나 둘, 하나 둘,
우렁찬 목소리로 기합을 넣는 정우진 사범, 이 도장에서 대부분 ITF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무도로써 태권도 정신을 강조하는 ITF는 모든 수련생들이 동작에 이름과 의미를 외우고 암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우진: 너, 도산의 이름과 의미를 아느냐?
수련생1: 도산은 24개의 동작이 있습니다. 애국자 안창호의 호이며 그는 일생을 한국의 교육증진과 독립에 힘쓰는 데 바쳤습니다.
정우진: 중근의 의미는?
수련생2: 중근은 32개의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중근의 이름은 애국자 안중근의 이름을 따라 붙여졌으며 중근은 한국의 첫 일본인 총독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였습니다. 32개 동작은 그가 1910년 뤼순 감옥에서 처형됐을 때 그의 나이를 상징합니다.
정우진: 율곡의 의미?
수련생3: 율곡은-----
정우진: 브랜디, 팔굽혀 펴기 실시, 카운터,
수련생3: 하나, 둘, 셋, 넷, 다섯,---
정우진: 오케이 일어서서 차렷! 태권도 정신은 뭐야?
수련생3: 예의, 인내, 진실, 자기조절 그리고 불굴의 의지입니다.
한국어로 구령을 부치고 한국어 역사를 알아야 함에도 미국인들은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태권도의 매력에 푹 빠져 있습니다.
중근(32개동작)-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애국자 안중근을 기려 명명
주디 브루너 제자: 태권도는 저에게 가족입니다. 이 사람들은 41년 동안 저와 친구였고 지금 살고 있는 남편과 여기서 만났어요. 그래서 태권도는 제 가족입니다. 정우진 사범님은 저의 두번째 아버지입니다.
밥 맥도웰 사범: 한 단어로요? 태권도는 제 인생이고 제 전부입니다. 가슴에 문신이 있어요. 이 태권도 패치도 이 안에 있고요. 그리고 이쪽에 있는 패치는 오른쪽에 있어요. 태권도는 저의 모든 것이에요.
이들에겐 정우진 사범이 도복 기슭에 써주는 한글 이름이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들은 태권도가 왜 좋을까요?
브라이언 하프/경찰: 15살 때 저는 자신감이 없었어요. 한 단어로 말하면 자신감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태권도를 하면서) 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어요.
정 사범은 무도로서의 태권도 정신을 강조합니다. 실패하면 성공을 맛볼 때까지 격려해서 자신감을 심어줍니다. 미국의 태권도 수련 인구는 약 1800만명, 태권도는 미국인들에게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정우진 사범/태권도 타임스 발행인: 태권도는 남쪽 것도 아니고 북쪽 것도 아니에요. 이제는 한국에서 태어난 건 맞아요. 태권도가 그런데 꽃은 외국에서 더 많이 피웠어요. 특히 미국에, 미국의 태권도는 보석입니다. 태권도는 내 인생이다 라고 하는 사람이 가장 많았을 거예요. 미국인들 자기 일생에서 태권도는 하나의 보물입니다.
정우진 사범의 삶은 미국 태권도 역사와 함께 했습니다. (1972년 시더 래피즈에 태권도 도장 개관). 1972년 태권도장을 연 정 사범, 이미 자리잡은 가라테와의 경쟁을 위해서 이 도시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45년간 19만명 지도 검은띠 5천여명 배출). 빈손으로 미국에 와서 지금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강한 태권도 정신이었습니다. (제자들이 47개 태권도장 운영).
태권도장 옆에는 그의 집무실 겸 태권도 타임스 사무실이 있습니다. 태권도를 알리겠다는 목표 하나로 지인들과 의기투합해 창간한 잡지, 세월이 흘러 함께 했던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났지만 정우진 사범은 홀로 태권도 타임스 발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태권도가 뿌리내린 37년의 역사가 담긴 잡지는 그의 보물입니다. (태권도 타임스-영어로 발행되는 유일한 태권도 잡지).
정우진: 여기 태권도 역사가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30년전에 운동을 어떤 식으로 했고 그게 다 들어가 있어요. 어떻게 태권도가 진화됐는지 다 들어가 있죠.
정우진 사범은 전세계 사람들이 태권도 타임스를 볼 수 있도록 전산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정 사범과 함께 해온 직원들은 태권도에 대한 그의 열정에 놀랍니다.
빌샛 캠/태권도 타임스 직원: 태권도에 대한 그의 열정을 보여줄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태권도를 통해 세계를 통합하는 거예요. 한반도의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 북한 ITF시범단을 2007년에 미국으로 다 데려오셨는데 그 모든 비용은 사비로 지불했어요.
미국 ABC 방송국에서 찾아왔습니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북한 태권도 시범단의 3차 미국 공연에대해서 취재하기 위해서 입니다. 정 사범은 태권도가 남북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북한 ITF시범단 미국투어(2007. 2011년) 뉴욕, LA 등 다섯 개 도시에서 태권도 시범공연). 그것이 사비를 들여 북한 시범단을 미국으로 초청하는 이유입니다.
정우진: 남북태권도가 하나가 돼야 해요. 나라는 분단돼 있는데 태권도만은 하나가 돼야해요. 어찌 됐든, 분단된 나라도 빨리 합치면 좋겠지만 일차적으로 태권도가 하나가 되면 나라도 하나가 되기가 쉽지 않아 싶어요.
수원에 있는 한 도장에서 수십명의 외국인들이 모여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강인철 사범/남창도장). 이들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태권도 사범들입니다. 종주국 한국에서 정통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일부러 한국까지 찾아온 겁니다. (근기 세미나/남창도장).
마크 사범/독일에서 태권도장 운영: 저는 사범님의 훈련 방식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제자들의 실력을 전문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 주시거든요.
그런트 사범/두바이에서 태권도장 운용: 가장 순수한 정통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서요. 정신과 육체에 대한 강한 연습과 훈련이 요즘 태권도에는 없는 이곳 남창도장에서는 그것들이 잘 보존되고 있어요.
강신철 사범은 태권도 기본동작의 원리인 근본기술을 정확하게 익히는 것을 태권도 수련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합니다.
강신철: 몸을 앞으로 이렇게 올리는 건 태권도 발차기가 아니야. 옆차기 할 때는 반드시 옆차기 동작이 나오게 해서 발이 올라가게-옆차기 발을 직선으로, 뿌리가 되는 근본 기술을 익혀야 태권도를 제대로 오래도록 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신철 사범/남창도장: 현재 시스템에 맞는 규칙을 적용한 발놀림을 포함을 시키고 손동작도 그런 형식으로 계속 응용, 발전해 나가는 그런 기술체계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1988-현재(2017년) 남창도장 관장).
80년대부터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강신철 사범, 이란을 태권도 강국으로 만든 주역으로 이란의 태권도 영웅으로 불립니다. (1985 이란 국가대표 감독, 1985~현재 이란 태권도 협회 기술위원장). 품새 최고수로 지금도 젊은 시절 못지않은 실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태권도 고수회 회장, 2004 아시아 품새대회 국가대표 감독).
강신철 사범의 도장 지하에 있는 태권도 갤러리 (수원 남창도장), 강 사범의 태권도 인생 40년 역사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무덕관 총관장을 지낸 홍종수 관장의 수제자였던 강 사범, 돌아가신 스승의 도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故홍종수 사범의 도복).
이건 내가 입던 거고, 진짜 오래 입은 건 이 옷이지 이게 더 오래된 거예요? 내가 스무살 되던 해에 입던 도복을 지금도 입었으니까 42년 됐다.
강신철(姜信哲) 사범이 입었던 무덕관 도복(예전 무덕관 도복), 당시 해방이후 만들어 진 무덕관은 당시 서울 장안에 이름을 날리던 5대 무도관중 하나였죠.
강원식 前국기원 원장/태권도 50년사 편찬위원장: 1945년 민족해방을 맞이하면서 만주에서 무예를 수련한 사람, 일본에서 가라테를 수련한 사람, 이런 사도계 전문가 몇 분들이 고국에 돌아오셔서 사설 도장을 운영해 나간 것이 태권도의 발단을 이룬 것이다. (당수도 연무대회).
당수도 공수도 등 당시 수많은 무술단체가 성행하기 시작하자 정부가 유사단체 통합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각 무술단체 대표들이 모였습니다.
강신철 사범/남창도장: 각 관의 관장님들께서 끊임없이 토론하고 난장도 벌어지면서 서로 자기 관에 유리하게 만들려고 애쓴 그런 역사적인 사실이 있고,
강원식: 협회 명칭으로 태권도를 주장하는 사람과 공수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절충해서 태수도 협회가 발족이 됐죠.(1961년 9월 16일 대한 태수도 협회 창립/1965년 8월 5일 대한태권도협회로 개칭).
몇 개의 무술단체들이 모여 출범시킨 태수도 협회가 대한 태권도 협회의 시작이었습니다.
한규인 사범/도산 태권도장: 최홍희 장군이 3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태수도 협회를 태권도 협회로 명명하고, 그때부터 새로운 품새들을 개발하고 지금의 태권도를 만들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故최홍희(1918~2002)/前ITF총재).
육군 소장출신인 최홍희, 그는 통합과 개명을 주도해 태권도란 이름을 짓고 대통령으로부터 국기태권도란 명칭도 받습니다.
故최홍희/前ITF총재(2000년 촬영): 발로 뛴다, 찬다, 밟는다, 막는다 이것이 ‘태’ 자입니다. 손은 손인데 그 손의 작용이 그렇게 많다고 해서 ‘권’, ‘도’라는 것은 물론 무도니까.
최홍희는 태권도의 이론정립도 시작합니다. (1959년 태권도 교본저술), 태권도를 가라테와 완전히 분리하기 위해서 기술 명칭 등을 제정해 독자적으로 한국형 품새도 개발했습니다. (1983년 태권도 백과사전 15권 발간).
최홍희: 너무 가깝다 그러면 피하면서 또 찬다 이렇게 태권도는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가라테는 나가는 것 밖에 없어요. 그런데 태권도는 들어오면서 공격하고 나가면서 공격하고 옆으로 피하면서 얼마든지 된다 이거야. 그가 개발한 품새가 창헌류입니다. (故최홍희가 개발한 태권도 품새).
이후 대한태권도협회에서 물러난 최홍희는(1966년 국제태권도연맹(ITF)창설), 1966년 서울에서 국제태권도연맹 ITF를 설립하고 (國際跆拳道聯盟) 해외 태권도 사범을 파견하는 등 (최홍희와 박정희 前대통령) 태권도 보급에 힘씁니다. 하지만,
한규인: 최홍희 총재가 3선개헌 반대를 주장하는 바람에 어떤 면에서 이념적으로 박정희 정부와 조금 차이가 있었죠. 그래서 해외로 나가셔서 사실 ITF(국제태권도 연맹)를 WT(세계태권도 연맹) 보다 국내에서 먼저 만드셨는데 그걸 가지고 캐나다로 가셨죠.
정치적인 이유로 망명한 최홍희 총재는 북한을 오가며 ITF 태권도를 보급했고 이때부터 ITF는 북한 주도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 사이 남한에서는 WTF가 창설됐고 태권도는 두 갈래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겁니다.
양진방 WT기술위원장/용인대학교 태권도학과 교수: 1973년에 WTF가 만들어지면서 두 단체가 대립하게 되면서 북한에 자기들의 중심점을 갖다 놓게 되었고 그래서 태권도가 ITF 태권도가 발전을 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최홍희 총재의 태권도 출발점은 대한 태권도 협회이고 한국에서 활동을 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기술적인 뿌리는 똑같습니다.
장웅 북한 IOC위원/前ITF총재: 태권도 뿌리는 하나입니다. 뿌리는 하나고 그 다음에 이 정치적 역량에서 태권도도 벗어날 수가 없어서 분열이 돼서 이제는 40년이 이렇게 됐는데 그건 어쩔 수 없이 택한 길입니다.
ITF태권도의 특징은 무엇일까? 일본에는 ITF도장과 수련인구가 많습니다. 김상명 사범이 일본에 있는 ITF 태권도 도장을 찾았습니다.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태권도를 수련 중입니다.
김상명: 처음 뵙겠습니다. 김상명입니다. 페이스북으로 뵈었습니다.
황수일 사범/現ITF일본대표팀 감독, 現일본태권도 세계선수권 맞서기 금메달, 2009년 ITF 기술위원
ITF 일본대표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황수일 사범, 그는 태권도 세계 선수권대회 금메달 리스트입니다. 인기 격투기 게임 철권에서 태권도 기술을 구사하는 캐릭터 화랑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죠 (게임(철권3) 화랑 캐릭터 실제모델).
황수일: 태권도 정신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래서 정신적인 것이 없으면 우리 무도라고 말을 못하기 때문에 이런 걸 꼭 명심해서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주로 연습할 때나 사생활에서도 그렇게 익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태권도정신-禮義(예의) 廉恥(염치) 忍耐(인내) 克己(극기) 百折不屈(백절불굴). 이 다섯 가지가 ITF 태권도 수련자들이 신조로 삼는 태권도 정신입니다. WT태권도의 품새와 같은 동작을 ITF에서는 틀이라고 부릅니다. (ITF 태권도의 틀(품새)-총24개로 단군 도산 충무 등 한국위인들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음). 틀의 종류는 총 24가지, 명칭은 한국 위인들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습니다. (중근, 퇴계, 화랑, 충무).
황수일 사범/ITF태권도 6단: 6단 받기까지가 30년 더 넘게 걸리기 때문에 다 배우려면 아마 30년 쯤은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상명 사범이 도복을 갈아입었습니다. 한국에서 WTF태권도를 수련했습니다. 오늘 ITF 태권도를 수련하는 것을 보고 열심히 따라해서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상을 막기 위해 몸부터 풀고 본격적으로 ITF 태권도 수련을 시작합니다. 먼저 기본동작 돌려차기입니다. 주먹을 사용하는 기본동작, 찌르기입니다. WT와 ITF, 두 태권도는 동작을 부르는 명칭과 종류가 다를 뿐 동작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기본동작을 할 땐 확실한 차이가 있습니다. ITF 태권도는 주먹을 지를 때 신체를 아래로 움직입니다. 사인 웨이브(sine wave)-동작을 할 때 신체를 위 아래로 움직이는 것, 그리고 숨을 내쉬면서 동작을 합니다.
황수일: 동작이 힘을 발휘할 때 숨을 내쉬는 게 더 세게 나오고 저는 그렇게 배웠어요. 사인 웨이브 같으면 직선운동이 빠를 수도 있지만 사실 힘의 원리로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는 게 좀 더 힘이 나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원리도 맞는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훈련하고 있습니다.
발차기 역시 기본동작의 명칭만 다를 뿐 힘을 쓰는 원리는 같습니다. 그렇다면 겨루기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김상명 사범: 우리하고 비슷해요. 거의 스텝, 그 다음에 겨루기도 비슷하고 ITF는 손으로 얼굴을 타격할 수 있다는 것 뿐이지 같고 훈련하는 방식도 다 비슷한 거 같아요.
북한 태권도 시범단이 보여준 위력적인 격파 역시 초기에 남한태권도에서 했던 수련법입니다.
한규인 사범: 그때 저희가 운동할 때는 태권도는 일격필살이다 그렇게 배우면서 운동을 했습니다. 이북에서 ITF시범단이 하듯이 두꺼운 송판 격파하고 그런 것들 다 했죠. 그러니까 연세든 분들은 그거 보면 옛날엔 우리도 저렇게 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죠.
WT와 ITF의 차이는 경기운영방식과 판정법입니다. ITF 태권도 맞서기-손으로 얼굴을 가격할 수 있음. (연속적으로는 두번까지 허용) 심판 네명의 과반수 판정으로 승자결정. ITF는 손과 발로 얼굴을 가격할 수 있고 심판의 판정에 의해 승자가 결정됩니다. 올림픽 스포츠로 발전해 온 WT는 손으로는 몸통만 가격을 허용하고 전자 호구로 승자를 결정합니다. WT 태권도 겨루기-손으로 몸통만 가격할 수 있음, 전자 호구 방식으로 승자결정.
장웅: ITF 태권도 전문가한테 ‘당신들 태권도 ITF하고 WT하고 통합돼서 기술통합 먼저 하자 그러면 어떻게 되나?’ 물으니 “3일 걸리겠나” 그럽니다. 뭐 되려면 일사분란하게 며칠내에 후다닥 되고 안되려면 될 것 같은 조그만 것도 1년, 2년 끈단 말이에요. 이게 지금 현실인데 태권도도 같습니다. 지난해(2017년) 6월 ITF 대표단 이용선 총재와 장웅 前총재가 국기원을 방문했습니다. 방명록을 남기는 ITF대표단, ITF가 공식일정을 이용해 태권도의 본산인 국기원을 방문함으로써 남북태권도 교류에 청신호가 켜졌습니다. 국기원을 방문하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태권도는 하나! 국제태권도 연맹 리용선 서명 2017.6.28. 방문기간 내내 ITF 북측 대표단은 태권도 통합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리용선/ITF 총재: 태권도가 하나인데 하나로 빨리 돼야죠.
제작진: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했나요?
이용선: 지금 문이 열렸다니까요. 이제 들어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들어오면 한 집안에 하나로 같이 있는 셈이죠.
천해성/통일부차관: 과거에 좋은 선례들이 많이 있고 새로운 시대에 맞춰서 또 새롭게 우리가 해나가야 할 것들이 많이 있으니까 이전에 선배들의 경험도 살리고 또 새롭게 같이 해 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회자: 두분(김운용, 장웅)이 길을 틔워놨으니까 우린 그 길 따라,
장웅: 기반은 싹 닦아져 있지
이용선: 그 길로 달려만 나가면 됩니다. 우리는
45년을 갈라져 발전한 남북한 태권도가 쉽게 합쳐질 수 있을까-(고려인 이주 150주년기념 태권도 시범 2014.7). 남북 시범단이 처음 만났던 4년전, 러시아 합동공연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습니다. 러시아 고려인들이 주관하는 행사이다 보니 고려인들의 유적지 답사 같은 견학행사들이 있었습니다. 남북선수들이 함께 찾은 곳은 한국인 피살자 추념비 (한국인 피살자 27인 추념비-1945년 패망한 일본군에 의해 무고하게 학살당한 조선인 27명을 추모하기 위한 비석). 1945년 이 동네에서 살던 조선인 27명이 패망한 일본군들에 의해 희생당한 비극적인 일이 벌어진 곳입니다. 남북선수단 모두에게 분단이전의 역사는 하납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남북 선수들의 표정이 숙연해집니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게 생기면서 남북선수들의 마음이 한발짝 더 가까워졌습니다.
김상명: 선대에 대한 이야기들, 그런 역사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건 지금 남과 북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같은 민족으로서 공유할 수 있는 것 들이니까. 그런 것 때문에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거고 그러면서 서로 대화를 이어갔고,
숙소로 가는 버스 안, 남북선수들 사이 어색한 침묵이 흐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버스 안에서 대화가 시작됩니다.
김상명: 해외 나갈 때 송판 안가져가세요?
북한선수: 준비해 갈 때도 있고 가서 준비할 때도 있어요.
김상명: 아, 준비할 때도 있고 그냥 가서 거기서 직접 받아서 쓰는 경우도 있고 그럼 여기는 어디서 받는 거예요, 송판을?
북한선수: 감독님이 하셔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김상명: 어저께 뭐 했어요? 어디 가서 놀았어요? 아니에요? 그냥 주무셨어요? 아무것도 안하셨어다고요?
러시아 시범공연 일정 중 후반 3일은 남북선수들이 한 버스를 타고 한 숙소에 묵게 됐습니다. 버스 트렁크 짐을 두고 숙소로 먼저 들어간 북한 선수들 때문에 송남호 감독이 난감해졌습니다. 부탁을 받은 것도 아닌데 남한 선수들이 말없이 북한 선수들의 짐을 옮겨줍니다. 같은 공간에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남승현/태권도 외교단 단장: 다 알잖아 이제? 나이 많으면 형이라고 하고, 누나라고 하고 또 어리면 동생이라고 해도 돼. 저희 친구입니다. 감독이 친구야? 감독님이야, 인사 드리고 29살, 29살 이래 관심 있는 사람은 잘 봐놔. 28살 손들어 여기가 28살 이래 형인 줄 알았잖아.
남승현/계명대 태권도학과 교수: 우리 시범단 한테 태권도 선배기 때문에 너희가 인사를 드릴 분에게 인사를 드리고 받을 사람은 받고, 그래서 제가 그런 체계를 자꾸 잡아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런 데에서 그 사람들이 서로 태권도 위계질서 속에서 서로 존중해나가는 모습을 제가 봤거든요.
북한 선수들의 격파를 위한 기와 상자는 장정 둘이 들어도 벅찰 정도로 무겁습니다. 이 기와를 북한팀은 평양서부터 준비해 왔습니다. 함께 하는 게 이제는 익숙해진 남북선수들입니다.
제작진: (송남호 감독에게) 900명이 더 오면 서서 봐야 한데요.
송남호: 잘 하겠습니다. 내일 시범.
북측임원: 900명이고 9000명이고 다 와도 좋아요.
북한 대기실을 기웃거리는 김상명 사범, 북한 선수들도 더 이상 어색해 하지 않습니다. 가까워졌기 때문일 겁니다. 마지막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각목이 부러지지 않습니다. 북한선수의 부상이 염려되는 상황,
제작진: 안다쳤어요? 누구도 선뜻 말을 걸지 못한다. 송판을 격파하는 북한선수들의 위력은 언제봐도 감탄할만 합니다. 남한팀도 끝까지 최선을 다 합니다. 경기를 보기 위해 나란히 선 남북선수의 모습이 자연스럽습니다. 북한선수들은 남한선수들의 공연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김상명 사범: 맛깔스럽다, 멋지다, 화려하다 이렇게 대체적으로 평을 하더라고요 다만 호신술 같은 걸 할 때는 조금 더 무섭게 해야 한다 실제로 터치가 돼야 한다. 이런 것들에 대한 조언도 줬고,
남북선수들이 함께 바다 구경을 나왔습니다. 남북선수들이 카메라 앞에서 스스럼 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포즈를 취합니다. 송남호 감독은 남북선수들의 모습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행사가 모두 끝난 후 남북선수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 며칠전 처음 만났을 때 어색했던 표정과 경계심은 어디로 갔는지 오래된 친구처럼 자연스럽습니다. 3일 이었습니다. 남북 시범단이 40년만에 어색함을 푸는데 필요한 시간은 3일이면 충분했습니다.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같은 언어를 쓰고 태권도 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남북시범단이 서로의 마음을 여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남민호/태권도 외교단 시범단: 우리가 따로 따로 찢어져 있어도 마음은 하나라고 언제나 잊지말라고 얘기해 줬는데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뭔가 가슴 속으로 많이 뭉클하더라고요.
이현재/태권도 외교단 시범단: 사는 곳까지 알았어요, 모란동? 평양 모란동, 꼭 오래요. 그래서 못잊을 거 같애요. 휴대폰으로 사진도 찍고 같이 여기 있으면서 추억거리도 남겼는데 참 좋네요.
태권도는 지금 변화와 개혁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젊은 태권도 지도자들과 원로 사범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새로운 품새를 연구하고 개발하기 위한 모임입니다. 그 동안 태권도는 올림픽 경기 위주로 진화돼 왔습니다. 경기규칙의 변화에 의해서 태권도는 발기술에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다.
전민우/경희대 태권도 품새부 감독: 그 동안 경기현장이나 수련현장에서 굉장히 개발되고 발전되어온 기술들을 다시 시대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해서 새롭게 품새를 풀어내야 되지 않겠나
전세계 태권도 인구는 약1억명, 선수뿐만 아니라 일반 수련자가 즐길 수 있는 성인용 유급자 품새가 강화돼야 태권도가 사랑받는 스포츠가 될 수 있습니다.
이종관 사범: 태권도가 그 동안 표현보다는 겨루기 경기에 모든 집중을 하다보니까 품새로 표현됐을 때는 조금 약하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거든요. 그래서 최상의 표현방법을 쓸 수 있는 그런 것을 찾아내고
올림픽 정식종목으로서 전세계인의 스포츠가 된 태권도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일본의 가라테가 2020년 도쿄 올림픽에 초청종목으로 채택됐습니다.
양진방 WT기술위원장/용인대학교 태권도학과 교수: 태권도와 가라테가 유사한 종목이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보이게 될 것이고 그 경쟁적으로 보이는 것이 결국은 한 종목의 퇴출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하고도 관련이 있는 것이고 그 다음에 전세계 무술시장에서 태권도가 그 동안 상당히 빠른 발전을 보여 왔는데 그런 부분에서 어떤 견제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이런 두 가지 점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본의 정통 무술 가라테는 태권도와 함께 동양무술의 양대 산맥으로 손꼽힙니다. 확보하고 있는 전세계 수련 인구도 비슷하죠. 가라테는 두 손이 주요 공격수단입니다. 겨루기를 할 때는 손가락 관절과 손날을 주로 사용하고 머리 목 복부를 공격해 점수를 얻습니다.
김상명: 태권도는 발을 많이 쓰는데 가라테는 그렇지 않은거 같아요. 상대적으로 그게 어떤 민족문화적인 특성이 있는 것 같아요.
태권도와 달리 가라테는 자세를 겨루는 경기에 두개의 금메달을 배정했습니다. 가라테 가타(품새). 모두에 기본을 보여 줌으로서 가라테만의 장점을 부각시키겠다는 겁니다.
구리하라 시게오/일본 가라테 협회 부회장: 세계에는 다양한 격투기가 있어서 겨루기만으로는 다른 무술과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라테는 역시 품새죠. 그런 품새 경기를 올림픽에 포함시킨 것은 가라테에게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1960년대까지 전세계 무술의 대명사로 불리며 전성기를 누려왔던 가라테는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되면서 그 위상이 쇠퇴해 왔습니다. 일본은 올림픽을 통해 가라테의 옛 명성을 되찾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구라하시 시게오: 가라테가 영원히 올림픽 종목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앞으로 지금 이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고 그런 홍보활동들을 좀더 넓은 범위에서 지속해 나가려고 합니다.
강원식 前국기권 원장/태권도 50년사 편찬위원장: 跆拳道人이건 政府건 정신 차리지 않고서는 아마 모름지기 2020년 도쿄 올림픽만이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그 동안 태권도를 통한 국위선양 외화획득 이런 것에도 많은 손상을 가져오지 않을까 싶어요.
남북 태권도 시범단이 평창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러시아와 무주에 이은 세번째 만남, 나한 시범단이 북한 선수단에게 ITF 태권도의 품새 틀을 배웁니다. 남북 시범단이 무대에서 같은 동작을 선보이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루 만에 새로운 동작을 외우기란 쉽지 않은 상황, 남북은 함께 무대에 올라 동시에 각자의 품새를 선보이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습니다. 대신 남과 북이 머리를 맞대 상징적인 시범을 준비했습니다. 화합을 상징하는 의미로 남북한 감독이 짝을 이뤄 송판격파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최초로 한 무대에서 각자의 품새와 틀을 선보인 남북선수단, 남북코치의 송판격파도 첫 시도였습니다. 만남이 거듭될수록 가까워지는 남북한 태권도 시범단,
남승현: 그쪽(ITF) 태권도 속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우리 태권도 속에서 저들이 배워야 할 게 분명히 있기 때문에 서로가 조화만 잘 이룬다고 하면 아까 말씀드린 무도 태권도와 경기 태권도가 더 크게 더 멋지게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남북한 태권도 시범단은 실향민의 분명히 있을 것이고 마을 속초에서도 감동의 합동시범을 펼쳤습니다. (WT-ITF 태권도 시범단 합동공연, 강원도 속초 2018.2.10). Peace is more precious than triumph. 이제는 벽을 허물고 진짜 하나가 되기 위한 첫발을 내딛는 겁니다. One world, one Taetwondo.
리용선/ITF총재: 말이 국제태권도연맹 총재고 세계태권도연맹 총재지 우린 구체적으로 놓고 보면 조선민족, 우리민족의 한 성원이 아니요. 마음 속엔 늘 민족통일을 위해서 무언가 하고 싶은 그런 마음뿐이죠.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당 태권도를 통해서 이바지 해보자 이거예요.
이대순/WT명예 부총재: 태권도를 통해서 남북의 교류를 활발해져서 우리가 평화스러운 서로간의교류 발전을 통해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그런 하나의 큰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닌가.
태권도는 분단된 우리의 현실과 닮아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서로 많은 것이 달라졌어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태권도는 남북관계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가 되기 위한 태권도의 도전을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끝. (KBS스페셜 11회, “태권도, 하나를 위한 도전”에서 정리).
① 1945년 민족해방을 맞이하면서 만주에서 무예를 수련한 사람, 일본에서 가라테를 수련한 사람 들이 고국에 돌아와서 사설 도장을 운영해 나갔다. 당시 당수도 공수도 등 수많은 무술단체가 성행하자 정부가 유사단체 통합을 시작하였다. 각 무술단체 대표들이 모였다.
② 1961년 9월 16일 태권도와 공수도를 절충해서 태수도 협회가 발족됐다. 1965년 8월 5일 최홍희 장군이 태수도 협회 3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태수도 협회를 대한태권도협회로 명명하였다. 그 때부터 새로운 품새들을 개발하고 지금의 태권도를 만들었다. 육군 소장 출신인 최홍희는 통합과 개명을 주도해 태권도란 이름을 짓고 대통령으로부터 국기태권도란 명칭도 받았다.
③ 최홍희는 대한태권도협회에서 물러난 후 1966년 서울에서 국제태권도연맹 ITF를 설립하고 해외에 태권도사범을 파견하였다. 하지만, 최홍희 총재가 박정희의 3선개헌(1969.10.21)을 반대함으로써 박정희와 정치적으로 틀어졌다. 1972년 그는 ITF를 가지고 캐나다로 건너 갔다. 그는 북한에다 ITF 태권도를 보급했고 이때부터 ITF는 북한 주도로 발전해 왔다. 남한에서는 WTF가 창설됐다.
④ ITF본부가 캐나다로 옮긴이래 ITF 대표단의 한국 방문은 허가되지 않았다. 그런데 ITF가 해외로 나간지 45년 만에 ITF태권도가 탄생한 곳으로 돌아왔다. 다들 ITF의 방문을 귀향이라고 표현했다.
⑤ 태권도는 미국에서 더욱 꽃을 피웠다. ITF 태권도 정신은 예의, 인내, 진실, 자기조절 그리고 불굴의 의지이다. 중근(32개동작)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애국자 안중근을 기려 명명했다. 일본 ITF 태권도정신은 禮義(예의) 廉恥(염치) 忍耐(인내) 克己(극기) 百折不屈(백절불굴)의 다섯 가지이다.
⑥ WT 태권도의 품새와 같은 동작을 ITF에서는 틀이라고 한다. ITF 태권도의 틀(품새)은 총24개로 단군 도산 충무 등 한국 위인들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틀의 종류는 총 24가지, 명칭은 한국 위인들의 이름을 따서 중근, 퇴계, 화랑, 충무. 그런데, 올림픽 정식종목으로서 전세계인의 스포츠가 된 태권도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⑦ 일본의 가라테가 2020년 도쿄 올림픽에 초청종목으로 채택됐기 때문이다. 태권도와 가라테가 유사한 종목이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보이게 될 것이고 결국은 한 종목의 퇴출로 이어지지 않을까. 가라테와 태권도는 동양무술의 양대 산맥이다. 확보하고 있는 전세계 수련 인구도 비슷하다.
⑧ 박정희와 최홍희, 둘은 장군 출신이다. 1969년 박정희의 3선개헌이 결국은 1972년 유신헌법으로 이어졌고 박정희는 그로 인하여 1979.10.26이라는 비극적인 사태를 맞이하고 말았다. 3선개헌을 반대했던 사람으로 김종필, 채명신, 박태준 등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