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새 이름의 숫자는 아쉽게도 열 손가락으로 셀 정도에 그친다. 혹시 그보다 더 많다 해도 발가락까지 동원하면 충분할 것이다. 더군다나 울음소리를 듣고 그 새의 이름을 식별할 수 있는 숫자는 그에 훨씬 못 미친다. 어찌 된 일인지 요즘은 사철 동네마다 까치의 친척뻘 되는 물까치가 너무 흔하다. 예전에 까치는 귀한 소식을 전하는, 그래서 길한 새로 반겨졌었는데, 지금은 날마다 곳곳에서 물까치떼가 시끄러울 정도로 께엑 께엑 울어댄다. 실제로 물까치는 까마귀과 물까치속의 새라고 한다. 어쨌든 까치 울음소리는 내 귀에 노래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고, 뭔가 비웃거나 꾸짖거나 야유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께에에엑~ 께엑~ 께엑~ ! 긴 꼬리를 상하좌우로 까닥거리며 목에서 밭은소리를 낸다.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담배 피우고 길바닥에 가래침을 뱉으려고 카악 카악 목구멍을 가다듬는 불량 청소년들 같다. 게다가 녀석들은 늦가을이면 푸른 하늘에 홍옥처럼 세팅된 감들을 떼 지어 몰려들어 먹어치운다. 먼저 먹는 놈이 임자니까.
또 한 종류의 흔하게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새가 산비둘기이다. 녀석들은 주로 봄부터 여름까지 열심히 운다. 이 녀석들도 노래한다고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낸다. 발정기의 수컷 산비둘기가 암컷 산비둘기를 유혹할 땐 몸을 한껏 부풀리며 국→ 구욱↘국↑국↑을 반복한다. 요즘 이 독특한 울음소리는 농어촌에서뿐만 아니라 도시 외곽, 심지어 도시 한복판 주택가 등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다. 12년 전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딸아이가 한동안 거주한 적이 있어서 가끔 거길 갔는데, 그때 앞집 마당 위 전봇줄에 앉아서 줄곧 그 구슬프면서도 한탄하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나는 딸아이 방 창문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울어대는 녀석을 바라보며 그의 한탄에 공감해주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무안군 일로면 청호리에는 앞산 뒷산 할 것 없이 여름날이면 노상 녀석이 울음을 울었다. 어느 날 나의 할머니께서 그 새 소리는 가난한 집 며느리가 빈 돌절구(돌확)를 드륵드륵 갈아대는 소리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그 설명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배고팠던 시절이라 허기진 며느리가 오죽했으면 곡물이 담기지 않은 빈 절구통을 갈았을까 생각하니 슬펐었다. 그리고 거의 30년 넘는 기간 동안 산비둘기 소리를 잊고 지냈다. 그 청장중년의 기간 동안 내가 산비둘기 울음소리를 들었는지 혹은 듣지 못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나의 의식에는 없었다. 그러다가 18년 전에 지금 살고 있는 부용산 한새봉 옆 동네로 이사 와서 다시 산비둘기 소리를 듣고 너무 반가워서, 녀석의 울음소리에 관해 할머니께서 들려주셨던 말씀이 순간적으로 생생하게 재생되어 아련하고 황홀한 감정에 빠졌었다.
내가 지금 사는 곳으로 처음 이사 왔던 해와 그 후 몇 년간은 한새봉과 그 주변 야산에서 딱따구리가 망치질하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고 꿩들이 요란한 경고음을 내는 것도 자주 듣곤 했다. 산길을 산책하다 보면 숲속의 공명판을 야무지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그곳을 쳐다보면 거무스름한 조그만 딱따구리가 나무줄기에 거의 수직으로 붙어 앉아서 머리를—초당 15번 정도의 속도라 한다—앞뒤로 세차게 흔들면서 부리로 나무를 쪼아대고 있었다. 그 경쾌한 소리가 숲을 난타했다. 그 정도 충격이라면 부리는 물론 머리에도 큰 충격이 전해져 뇌진탕이 발생할 수 있을 텐데도 정작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다. 나는 딱따구리의 울음소리를 들은 적은 없고 다만 녀석이 전동 망치질하는 소리만 들었다.
한편 그 무렵 수꿩인 장끼가 산의 이쪽 기슭에서 저쪽 기슭으로 약 몇 십 미터를 부랴부랴 날면서, 혹은 멀리뛰기를 하면서 나지막이 솟구쳐 올랐다가 다급히 하강하는 동안 목청껏 고함을 질러 마치 꽹과리를 난타하는 듯한 소리를 냈었다. 녀석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하늘을 나는 기능이 심각하게 퇴화하여 다만 숲 머리를 급하게 차고 올랐다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내리면서 그 다급한 상황에 장쾌한 소리를 지른다. 장끼의 그 당찬 울음소리와 화려한 무늬의 깃털은 마치 중국 소수민족인 묘족이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한바탕 신나는 공연을 펼치는 듯하다. 꿩이 우리에게 국민 간식인 K치킨을 제공해주는 닭의 조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녀석에게 진정성 있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게다가 수탉이나 그의 조상인 장끼의 당찬 울음소리는 테너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최고음을 내지르는 걸 듣는 것만큼이나 우리의 기운을 돋운다.
딱따구리와 꿩은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자 사람들을 피해 아마도 더 먼,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것 같다. 하지만 뻐꾸기는 동네 뒷산에서 이사 나가지 않고 아직까지 버티고 있다. 아마도 뻐꾸기는 사람들에게 가장 정겨운 울음소리를 선사하는 새인 것 같다. 물론 아름답고 영롱한 소리로 노래하는 다른 새들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정겹게 느껴지기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으뜸일 것 같다. 그래서 뻐꾸기에게는 울음소리가 녀석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가장 두드러진 요소이다. 그래서 녀석은 이름도 울음소리를 그대로 차용해서 붙여진 것 같다. 그리고 녀석의 이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발음으로 표기하여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녀석이 ‘뻐꾹 뻐꾹’ 우니 이름이 뻐꾸기이고, 서양 각국에서는 ‘쿠우쿠우’(Cuckoo)하고 우는지 주로 쿡쿠이며, 일본에서는 ‘캇코오’(カッコウ)하고 우는가 보다. 어쨌든 녀석은 그처럼 정겹고 친숙한 울음소리를 가졌기 때문에 산속에서만 사는 게 아니라 도시 광장의 시계탑이나 가정집의 벽시계 속에서도 살고 있고 요즘은 심지어 전기밥통 속에서도 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비교적 최근에, 아마도 10년쯤 전에야, 녀석이 붉은머리오목눈이 새 둥지에 알을 낳고 그 새로 하여금 남의 알(뻐꾸기 알)을 품어 부화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어미 새가 남의 새끼(뻐꾸기 새끼)가 다 자랄 때까지 먹이를 잡아다 먹여 지극정성으로 키우게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뻐꾸기에 대해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게다가 붉은머리오목눈이 새는 뻐꾸기보다 몸집이 훨씬 작은 딱새나 뱁새 정도의 크기여서, 조그만 어미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더 큰 뻐꾸기 새끼 입에 먹이를 넣어주는 모습을 보면 기가 찬다. 그뿐만이 아니다. 먼저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아직 털도 나지 않은 불그스름한 몸뚱이에 눈도 뜨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저보다 먼저 태어난 새끼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다른 알을 등으로 밀어내 둥지 밖으로 떨어뜨려 제거하는 것이다. 제 생존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그 둥지의 본래 주인인 붉은머리오목눈이 새의 알이나 새끼를 죽이는 것이다. 그 정도면 얌체나 사기꾼의 차원을 넘어서 날강도, 아니 그것도 모자라 악마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다 뻐꾸기와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본능인 걸 어떡하겠는가? 모든 뻐꾸기 종이 다 그런 악랄한 짓을 하는 건 아니고 그중 4분의 1 정도가 그런 짓을 한다지만 그래도 녀석에 대한 나의 증오는 쉽게 가시지 않는다. 하긴 티비 드라마에서 보면 간혹 그런 짓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여성이 다른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 가진 자식을 배우자의 혈육으로 속인 채 기르는 사태 말이다. 요즘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쉽게 친자의 진위를 밝힐 수 있으니 좀 덜 하겠지만,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그런 일이 가끔 있었을 법하다. 내가 늘어놓는 이런 사설은 생각의 차원에서 행하는 뻐꾸기에 대한 평가이고, 어쨌든 나에게 동네 뒷산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울음소리는 여전히 정겹기만 하다. 무도덕이 원칙인 자연법칙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기적인 정서적 반응은 그처럼 조화되지 않는다.
어렸을 때 내가 봄여름에 흔히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정겨운 울음소리를 가진 새들도 여럿이다. 뜸부기와 쏙독새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모를 갓 심어놓은 논 위를 스칠 듯 날며 뜸뜸뜸 울던 뜸부기, 하루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동네 앞산에서 쏙쏙쏙 울던 쏙독새 소리가 그립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옛 시가에 종종 등장하는 소쩍새는 다행히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 변두리 뒷산에서 올봄에도 밤마다 울었고, 나는 아파트 뒤쪽 베란다 문을 열어놓고 멀리서 들려오는 녀석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 새가 고려 말 이조년이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라고 노래했던 바로 그 녀석이다. 나는 이 시조를 우리나라 고시가 중 백미라고 생각한다.
그후 700년도 더 지난 올봄에 나는 소쩍새를 이렇게 느꼈다.
더는 잃을 게 없는 듯
빈 가슴속 사경(四更)이면
외곽 검은 덩어리 뒷산에서
밤마다 송출되는
소쩍새 소리 한 가닥
검뿌연 하늘 가장자리에서
가물가물 연주되는
도시의 별 한 다스
첫댓글 새벽이면 쏟아지는 별 한 다스
하늘 빛을 두른 산까치 한 다스..
우리나라 시에서는 '형식주의'라고 하던 가요? 소리를 기호로 표시하시는 데 ㅎ 잘 읽혀요.
호미 님의 동네가 저희 동네보다 숲세권이 월등한 것 같습니다. 운암산에는 '아 유 레디?'의 운율로 우는 새가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