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왔슈
우리 모두의 핸드폰 바탕 화면에 둥그스름한 네모 안에 검정 말풍선이 있고, 그 속에 영어 대문자로 TALK라고 쓰여진 아이콘이 있다. 스마트폰 대화 창구인 카톡이다. 카카오톡이라는 그 이름은 10여 년 전에 그게 처음 생겨났을 때 모바일 의사소통이 주는 즐거움과 달콤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초콜릿의 열매인 카카오(cacao)라고 이름 지었는데, 그 영문 표기의 도메인을 누군가 이미 사용하고 있어서 cacao의 독일식 표기인 Kakao를 사용했다고 한다. 어쨌든 유쾌한 대화를 주고받는 채널이라는 건데, 실제로도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즐거운 대화의 창인가는 의문이다.
내 핸드폰에도 카톡 대화방이 여럿 있는데, 대부분은 휴화산이나 사화산 상태이고 두어 개 활화산이 있다. 그중에는 매일 무슨 소식(?)이 솟아오르는 가장 활발한 단톡방이 대학 동기들 친교 모임 방이다. 명절이나 제사 등 집안일이 있을 때만 잠깐 활성화되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의 형제자매들 간의 대화방도 있다. 그밖에는 어떤 순간적인 필요에 의해서 생겨나 일시적으로 열렸다가 그 필요가 사라지자 헌신짝처럼 버려진 사회적 관계망들, 중년을 넘어가면서 불현듯 솟아난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해 들불처럼 타올랐다가 삶의 현실이라는 비바람에 저절로 꺼져버린 국민학교 동창들 카톡방 등이 있다.
카톡방에서는 대체 무슨 말들이나 정보들이 오고갈까? 분명한 것은 초콜릿처럼 달콤하거나 노란 말풍선처럼 명랑한 대화가 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구성원이 9명인 대학 동기들 단톡방은 생긴지가 7-8년은 된 것 같은데,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잡다한 말이나 글, 사진이나 인터넷 링크들이 올라온다. 한 가지 사실은 거기에 의미 있는 대화는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게시물들이 완전히 일방적이다. 무슨 말인가를 올리면 읽은 사람의 숫자가 줄어들지만, 대부분 아무도 그 게시 내용에 대꾸나 반응을 하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인터넷 포탈사이트나 유튜브, 또는 다른 단톡방에 떠도는 온갖 내용의 말들과 이미지들, 동영상들을 마구 퍼 나른다. 무작위로 살포한다. 그중에는 뭘 먹으면 몸의 어디에 좋고, 어디를 지압하면 정력에 좋고, 어떻게 하면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등의 건강과 장수 비법에 관한 내용이 가장 많다. 그 다음으로는 세상에 만연한 죽은 지혜의 말씀들이다. 넘쳐나는 지혜의 말씀들이 공해가 되고 쓰레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예증한다. 몇 년 전에 한동안은 어떤 구성원이 어딘가에서 야동(음란동영상)을 조달해 와서 시도 때도 없이 올려주니 남몰래 그걸 확인(감상)하느라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가족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서 무심코 그 카톡창을 열었다가 개망신을 당하는 경우가 발생해서 몇몇 구성원들이 강력히 항의하는 바람에 그 음란 영상의 현상이 사라졌다. 영구히 사라졌는지는 의문이지만. 그것을 살포했던 친구는 그렇게 항의하는 녀석들이 내심 즐기면서 겉으론 점잖은 척한다고 확고히 믿고 있어서, 항의하는 친구들을 위선자라거나 내숭을 떠는 녀석들이라고 비난하곤 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 단톡방에 올라오는 또 다른 종류의 지속적인 내용은 자랑질이다. 오승근의 가요 “내 나이가 어때서”의 가사에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는 내용이 있는데, 나는 자랑을 일삼는 친구들을 보면 머릿속으로 “‘자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는 표현이 떠오르곤 한다. 자랑의 종류는 주로 자식 자랑, 며느리나 사위 자랑, 손주 자랑, 체력 자랑, 골프 자랑, 착한 일 했다는 자기 자랑, 술자리 자랑, 여행 자랑, 맛집 탐방 자랑 등이다. 심지어 날마다 즐겁고 행복해서 미칠 것 같다는 자랑도 드물지 않다. 그러려니 하면서도 자랑질의 본질이 일종의 가학적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자랑한다는 것은 자기가 그 자랑질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보다 자랑하는 내용에 있어서 우월하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바꾸어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못하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자랑질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금송아지를 가진 사람은 금송아지나 다이아몬드 송아지를 가진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쇠송아지나 흙송아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자랑한다. 쇠송아지를 가진 사람이 금송아지를 가진 사람에게 자랑할 수는 없다. 혹은 80점 맞은 학생이 100점 맞은 학생에게 자랑할 수 없다. 그렇게 자신의 우월을 확신하는 사람이 열등한 사람들에게 자랑하여 열등한 사람들의 마음을 괴롭게 만들고, 자신이 그만큼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자랑질은 일종의 가학적 성격을 띤다. 아무튼 친구들 간의 카톡 때문에 가끔 빈정이 상하기도 하고, 삐치기도 하고, 기분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그건 결코 즐겁고 의미 있는 대화가 아니다. 그런데도 시도때도 없이 그 방을 들여다보게 되는 이유는 뭘까?
첫댓글 아~
가학적.
본인이 우월하다는 인식.
음란동영상 올리는 친구는 없었던 것을 제외한다면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이렇게 맛깔나게 쓸 수는 없는 것이 호미님과 저의 차이라고 할까요?^^
그 자랑이라고 하는 게 아무에게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정말 친한 사이에만 할 수 있지 않나요? 자랑이 많은 단톡방은 구성원들이 서로를 절친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ㅎㅎㅎ
예, 정말 친한 사이입니다. 친하다는 게 복잡미묘한 감정이기도 하고요.
친한 친구들 단톡방에 늘 무언가를 올리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 덕에 단톡방이 활성화된 건 사실이지만, 가끔 귀찮은 것도 사실이고^^ 야동 올리는 친구는 없어서, ㅎㅎㅎ.
업무 톡이 거의 다예요. 게다가 자발적 '아싸(아웃사이더)'라 ㅎ그런 톡이 없긴한데 근데 불행을 전파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긴해요. 갑좌기 ~100일 글쓰기 톡에 자랑질 좀 해볼까 생각이 문득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