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짓> 영화 발제
2024.1.22.(월) 창작세미나 발제자 박은희
예전에 우연히 이동진이 영화 이야기하는 방송을 보고 이 영화를 보았다.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 멍하니 끝까지 본 기억이 난다.
발제를 위해 다시 영화를 봤다. 우선 첫 장면이 이상했다. 주인공 게오르그와 친구가 나누는 대화는 긴박하고 위험한데 주변 환경은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가는 것을 제외하면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이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시간적 배경은 1940년대지만 공간적 배경은 현재라고 한다. 건물, 경찰 복장, 뒷골목에서 키스하는 남녀, 가정집 거실, 기차 안에서 본 바깥 풍경 등은 모두 현재의 모습이다. 페촐트 감독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 현재도 일어나고,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도 했다. 그의 말처럼 과거의 전쟁과 난민 문제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는 모습은 곳곳에 실재한다.
이 영화는 동독의 여성 작가 안나 제거스가 1944년에 쓴 ‘통과 비자’라는 소설이 원작이다. 프랑스에서 출국 비자를 받으려면 도착할 목적지를 증명하는 통과 비자를 제출해야 한다. 통과 비자를 받으려면 우선 체류 비자를 받아야 하고, 재산 유무나 사상검증을 통과해야 받을 수 있다. 체류, 통과, 출국 비자를 모두 받으려고 기다리다 보면 어느덧 출국 비자가 만료되어 버려서 다시 체류 비자부터 재발급을 받아야 하는 무한 루프가 반복된다. 이것이 원작 소설의 내용이라고 한다.
게오르그가 마르세유의 호텔에 숙박하려고 할 때 호텔 주인이 체류 허가증이 없으면 숙박이 곤란하다는 투로 말하자 게오르그가 “여기서 머물려면 머물지 않을 걸 증명하란 얘기네요?”라고 되묻는다. 즉 여기에 머물 거면 여기서 머물지 않을 거라는 증명을 경찰서에서 받아오라는 뜻이다.
내가 알고 있는 비자는 해외여행 갈 때 비자가 필요한 나라에서 받는 것이다. 예전에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여행사에서 단체로 발급을 해줬기 때문에 별 어려움 없이 받을 수 있었다. 요즘은 비자 발급 면제된 나라들이 많아서 정해진 기간을 넘지 않고 머물렀다가 오면 어려움과 불편함 없이 다녀올 수 있다.
전쟁이 없고 난민이 아닌 나는 난민의 불안과 고통을 헤아릴 수는 없다. 영화를 통해 불합리한 절차에 항변하지 못하는 답답함,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 떠나야 한다는 불안, 낯선 곳으로 가야 하는 막막함, 떠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리는 무력감 등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게오르그가 하인츠 아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에서는 뭉클했다. ‘물고기도 집에 가고 코끼리도 쿵쿵대며 집에 가고 개미도 서둘러 집에 가고 등불이 켜지고 날이 저무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며 돌아갈 집이 없어 떠돌거나 낯선 나라에서 살게 되는 그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에 온 적이 있다. 이때 뉴스에서 흘려듣기만 했었는데,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지낼 수 있도록 애를 써준 분이 계셨다. 이희수 교수님. 연수에서 예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학부모들을 만나서 설득했다는 이야기가 기억난다. 난민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배척하고 비난하고 공격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중에 무관심한 사람인 것 같다.
사족 하나. 게오르그가 하인츠 아들 드리스 집에서 고장난 라디오를 고쳐주는 장면을 보고 옛날 생각이 났다. 발령 초기 90년대 후반 학교에서는 과학 경진대회를 했다. 그중에 납 땜을 하면서 라디오를 만드는 종목도 있었다. 장갑을 끼고 인두를 이용해 흘러내리는 납 방울을 전선에 연결해서 붙였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납 중독의 위험으로 없어졌다. 그런데 영화에서 숟가락에 납을 녹이는 장면을 보고 조마조마했다. ‘그 숟가락으로 밥을 먹으면 안 될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걱정이 되었다.
이 영화는 시 같다. 마르세유 술집 바텐더가 내레이션 하는 소리, 게오르그가 다리를 다친 하인츠와 함께 몰래 탄 기차 안에서 여러 날을 지내는 장면, 하인츠 아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 바이델 아내 마리가 남편을 찾으러 다니는 장면, 대사관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 모습, 게오르그가 드리스와 축구도 하고 놀아주는 장면, 미국 대사와 게오르그가 대화하는 장면, 게오르그와 마리가 사랑하고 손잡고 떠나는 장면, 마리의 죽음을 알았지만 게오르그가 하염없이 기다리는 장면 등등. 대사는 별로 없는데 은유적이고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내용을 중첩적으로 표현한 영화이다 보니 모두 다 이해할 수 없어 아쉽다.
다리를 다친 하인츠와 함께 기차를 타고 가면서 게오르는 ‘지루함에 작가의 글을 읽었다.’ 그가 어렸을 때 엄마가 사용했던 친숙한 모국어로 된 소설이었다. ‘작품에는 수많은 미친 사람들이 나왔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 모두가 끔찍하고 모호한 일들에 연루돼 있었다. 미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조차... 소설 속의 사람들은 그와 닮은 사람도 있었는데 실제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행동의 동기와 필연적인 결말까지 모두 이해가 됐다. 그였어도 그랬을 것이다. 죽은 작가의 묘사 방식 덕분에 인물들이 덜 악랄하게 느껴졌다.’
왠지 모르지만 이 내레이션이 마음에 남는다.
맨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가 의외였다. 활발하고 밝고 신나는 리듬이었다. 토킹 헤즈의 ‘Road to Nowhere’ 하지만 노래 제목과 가사는 영화와 잘 맞는 것 같다.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글쎄,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알아
Well, we know where we're goin'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모른다
But we don't know where we've been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있어요
And we know what we're knowin'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
But we can't say what we've seen
그리고 우리는 어린아이가 아니예요
And we're not little children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And we know what we want
그리고 미래는 확실해
And the future is certain
우리에게 해결할 시간을 주세요
Give us time to work it out
우리는 아무데도 갈 수 없는 길 위에 있어
We're on a road to nowhere
안으로 들어와
Come on inside
그 차를 타고 아무 데도 갈 수 없어
Takin' that ride to nowhere
우리가 그 차를 탈 거야
We'll take that ride
오늘 아침에는 기분이 괜찮아요
I'm feelin' okay this mornin'
그리고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And you know
우리는 천국으로 가는 길에 있어요
We're on a road to paradise
간다, 간다
Here we go, here we go
우리는 어디로도 가고 있지 않아
We're on a ride to nowhere
안으로 들어와
Come on inside
그 차를 타고 아무 데도 갈 수 없어
Takin' that ride to nowhere
우리가 그 차를 탈 거야
We'll take that ride
어쩌면 당신은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 할 것입니다
Maybe you wonder where you are
난 상관없어
I don't care
여기는 시간이 우리 편이에요.
Here is where time is on our side
거기로 데려가 주세요, 거기로 데려가 주세요
Take you there, take you there
우리는 아무데도 갈 수 없는 길 위에 있어
We're on a road to nowhere
우리는 아무데도 갈 수 없는 길 위에 있어
We're on a road to nowhere
우리는 아무데도 갈 수 없는 길 위에 있어
We're on a road to nowhere
내 마음 속에는 도시가 있어요
There's a city in my mind
와서 그 차를 타세요
Come along and take that ride
그리고 괜찮아, 자기야 괜찮아
And it's all right, baby it's all right
그리고 아주 멀리 있어요
And it's very far away
하지만 나날이 성장하고 있어
But it's growing day by day
그리고 괜찮아, 자기야 괜찮아
And it's all right, baby it's all right
같이 가실래요?
Would you like to come along?
그리고 당신은 내가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도와줄 수도 있어요
And you could help me sing this song
그리고 괜찮아, 자기야 괜찮아
And it's all right, baby it's all right
그들은 당신에게 무엇을 해야할지 말해 줄 수 있습니다
They can tell you what to do
하지만 그들은 당신을 바보로 만들 거예요
But they'll make a fool of you
그리고 괜찮아, 자기야 괜찮아
And it's all right, baby it's all right
내 마음 속에는 도시가 있어요
There's a city in my mind
와서 그 차를 타세요
Come along and take that ride
그리고 괜찮아, 자기야 괜찮아
And it's all right, baby it's all right
그리고 아주 멀리 있어요
And it's very far away
하지만 나날이 성장하고 있어
But it's growing day by day
그리고 괜찮아, 자기야 괜찮아
And it's all right, baby it's all right
같이 가실래요?
Would you like to come along?
내가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도와줄 수도 있어요
You could help me sing this song
그리고 괜찮아, 자기야 괜찮아
And it's all right, baby it's all right
그들은 당신에게 무엇을 해야할지 말해 줄 수 있습니다
They can tell you what to do
하지만 그들은 당신을 바보로 만들 거예요
But they'll make a fool of you
그리고 괜찮아, 자기야 괜찮아
And it's all right, baby it's all right
우리는 아무데도 갈 수 없는 길 위에 있어
We're on a road to nowhere
우리는 아무데도 갈 수 없는 길 위에 있어
We're on a road to nowhere
우리는 아무데도 갈 수 없는 길 위에 있어
We're on a road to nowhere
우리는 아무데도 갈 수 없는 길 위에 있어
We're on a road to nowhere
첫댓글 거슬를 수 없는 운명,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운명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잔잔하게 표현한 후기가 영화를 다시 떠오르게 하네요. 앤딩 음악가사까지 참 좋네요. 발제문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