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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May(일)
오늘은 일요일. MAY DAY(노동절)이기도 하다. ‘No Work'라고 Port Control에서 알린다. 느닷없이 동방호가 부른다. 지금 Lome항내에서 작업중이란다. Free Town입항 7시간 전에 항로변경. 이곳으로 왔단다. 아직 3일 정도는 더 걸리겠단다. 그 다음이 본선이 될 것 같다고. 그러면 Wari에서 전부 양하해도 됐을 것 아닌가. 갈수록 뭔가 안 맞는 것 같다. 연락이 그렇게 안 될리는 없었을 게고, 아무래도 이해가 안 간다. 하기야 나보담 저네들이 훨씬 복잡한 사정이 있을테지 -.
Saloon Class 및 식사위원으로 선임된 2/E. H/Q. Botsn. No.1등의 회합을 두어시간 갖다. 여기서도 결과는 같다. 서로가 좀 더 믿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데서 기인한 것이다. 人和, 그것이 결여된 곳엔 원칙밖에 없다. 인간생활에 있어서 융통성이 있는 원칙이 성립될 수 있을까. 士官들은 입이 없고 몰라서 말이 없는 줄 아는가. 쉰밥 보리밥을 먹어도 맛이 좋을 때가 있고 흰쌀밥만 줘도 미운 사람이 있다. 그 원인을 좀 더 숙고해봐라. 서로 이해하고 위해주자. 그것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고 곧 자신을 위해서다. 공동생활에서는 반드시 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것도 지켜야 본래의 목적을 이룬다. 앞으로는 개인의 뜻을 주장하지 말고 공식적으로 구성한 위원을 통해서 건의하고 개선하고 시정을 하자, 廚者(주자)는 하나고 우리는 여럿이다. 어떤 대열에서 이탈은 곧 낙오를 의미한다. 여기서 낙오는 곧 자기 인생의 낙오라고 간주할 수 있다.
회합의 성과가 만족하단다. 그래 잘해보자. 이제 겨우 두 달이 채 못됐는데 앞으로 10달이 남았지 않은가.
오후 Life Boat를 내려 동방호를 찾으니 아무도 없다. 인근 백사장에 해수욕을 가다. 끝없는 대서양에서 꿈틀거리며 밀려오는 파도, 그리고 보드라운 모래벌. 조금도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순수함이 또한 좋다. 그러나 그만큼 위험성도 있다.
파도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한 힘, 육체는 정말 보잘 것이 없다. 오후면 대개 바람이 일고 나불이가 생긴다. 일찍 귀선했으나 보트 달기가 무척 어렵고 위험하다.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가급적 쓰지 말아야겠다. 저것은 그야말로 Life Boat, 생명을 위한 보트다. 비상시 우리들이 타야할 배다. 이미 낡았고 그래서 여기저기 손을 보고 있으나 험한 곳이 많다. docking시 좀 더 완전하게 수리해야한다. 법정 비품이기도 하니까.
저녁에 Poop Deck에서 Whisky 한잔씩을 했다. 김성동 갑판장 영감님의 중공 피납 7년간의 얘기가 인상 깊었다. 어선에서 작업중 영해침입이란 죄목으로 피납, 7년만에 석방 귀국했단다. 수용소에 있으면서도 동료간의 쟁투, 귀국하면서 고기값내라고 억지 부린 일, 저들 말대로라면 ‘인민이 노력한 대가는 인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면 그 고기값만은 마땅히 우리에게 돌려줘야 하지 않는냐’고 했단다. 말이 된다. 그러나 상부의 지시라면 모른다고 하더란다. 귀향했을 때의 동네잔치, 10살 먹었던 딸애가 다 큰 처녀가 되어 ‘아버지’하고 달려들었을 때 가졌던 무감각과 오히려 이상했던 느낌. 18명중 자기를 포함한 3명 이외엔 모두 아내들이 개가를 해버렸다는 사실. 그러나 지금은 또한 대부분 재결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불가사의 한단다. 그러면서도 귀국 후 3개월이 못되어 승선하려고 부산으로 와서 헤맸고 기어이 이렇게 타고 있단다. 50평생 마누라하고 산 것은 2년이 될 까말까, 그런데도 애들 다섯은 입항 때마다. 용하게 생기더라고-. 어쩌면 한국 선원의 한 전형적인 모습을 보는 듯도 하다.
그러면서도 2년을 계속 버틴다. 육상에 있을 때마다 당국에 의해서 Check당하는 그 씁쓸함. 지금도 입출국시에는 반드시 관활 관서에 신고해야 하는 불편함. 그것은 분명히 우리 민족의 불운의 한 끝이기도 하다. 송환된 후 관계기관 및 미군당국에서 행한 그의 진실한 답변, 그래서 남 보담 좀 더 일찍 가족의 품안으로 보내줬을 때의 그 감사함과 고향의 따뜻함. 그리고 자신의 양심이 통했을 때의 기쁨이 7년간의 고생을 잊게 해주기도 했단다. 인생의 길이란 시작하기 어렵고 바꾸기 어렵고 또한 물러서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재승선하기 위한 그 절차상의 고충 또한 컸었다고 -. 당연했겠지. 염체고 체면은 아예 생각하질 않았단다. 그 결과 뜻은 이루었으나 아직도 이곳에까지 흘러왔고 흘러가고 있다고 끝을 맺는다.
그 자신의 일인 것만 같지 않다. 우리 모두가 숙연해진다. ‘고기값 안 주고 가다마이값 안주면 안 간다고 버티어 보지 그랬오?’ 농담은 했으나 3년 동안 계속된 그 심문에는 차라리 매질을 해서 자백을 받으라고 말했다는, 그러면서도 묻는 중국인보다 통역하는 같은 한국인이 그냥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고 한다. 금년 52세인 그의 앞날에 다시는 그런 불운이 없기를 마음속으로 빌 뿐이다. 전남 완도 사람이다.
다시 시작된 새달, 5월의 첫날. 서서히 녹음이 다가서는 초하의 부산일 게다. 앞마당의 줄장미는 피었을까? 개나리와 황매화은 벌써 꽃잎을 지우고 파란 잎을 꽤나 무성히 돋았을 게다.
2nd. May(월)
아무래도 안 되겠다. 무언가 안심이 안 된다. Mr. Hose라도 만나고 와야 할 것만 같다. 만일 여기서 Las가라든지 아니면 2-3일 후에 다시 출항해야 할 경우 준비해야할게 너무 벅차다. 어쨌던 부식을 위해 T.C(여행자 수표. Travel Check)라도 바꿔둬야 한다. 지난번에 겪었던 사실이 훤히 떠오른다. Life Boat로 식사위원들을 데리고 International Shipchandler의 Boss인 Loktrale를 찾다. 동방호도 들렀다. 본선도 Sadia Fishing으로 용선자가 변경됐고 한국선 1척이 더 온다고 Mr. Hose가 말했단다. 본선에는 아무 연락도 없었는데 -. Hold 내의 Broken Carton에 대한 Reparking(재포장)에 관해 허 선장과 이견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본선은 본선 나름대로의 규정에 따라야 한다.
Mr. Emmanuel이 지기를 만난 듯 반긴다. Boss를 만나자고 했다. 그의 Bar인 Mini Braseler에서 기다리다 만나다. T.C교환을 그 자리에서 OK. 곧 해주겠단다. $1대 230Fr이라더니 235F까지 해주겠단다. 아무턴 고맙다. 얄팍한 체면을 위해 조금 신청한 부식이 차라리 민망스럽다. 그는 검둥이이지만 백인들과 교우가 좋고 Lome의 有志란다. 사실인지는 몰라도 이곳 Togo대통령과도 친분이 있고 부자랬다. 그의 양손에는 낀 테가 굵고 뭔지는 몰라도 기념일 것 같은 반지가 4개나 끼어 있다. 정식 입항을 하면 다시 거래키로 하고 얼른 나와 시장으로 가다. 오전 마감시간 직전이라 서둘렀다.
노천시장. 이곳 아낙네들의 끈질긴 권유가 지겨울 정도다. 그러면서도 농촌의 투박한 꾸밈새 없는 억순이 아줌마 같은 인정미가 풍긴다. 상치, 오이, 가지 근대 등 야채가 제법 싱싱하다. 전번보다 훨씬 좋다. 역시 배추밭체로 구입할 길을 터 보았으나 없다. 겨우 한군데 약속을 해뒀다. 마침 동방호도 구입해야 함으로 겹치면 곤란하므로 다른 데는 절대로 팔지 말라고 다짐도 두었다. 아마 두 배가 배추밭 두서너개 야채가게 몇 개를 통채로 사버리면 이곳 Lome의 야채가격이 하룻밤에 뛰어버릴 것만 같다. 그래서 이곳 경제장관의 항의(?)라도 받는 것은 아닐는지. 엉뚱한 생각도 든다. 거들어 주고, 날라주고 지켜주고 몇푼씩 받아가는 꼬마들의 간청이 야채장수 아줌마 이상이다. 마치 6.25이후 미군을 따라다니며 ‘할로’를 거듭 외쳐대던 우리들 자신을 연상케한다. 마치 그때 그 점잖고 거드럼을 피우며 줄 듯 줄 듯 하면서도 주지 않고 멋적게 웃으며 가던 미군들의 기억이다. 어쩌다 얻는 껌 한 조각 초코렛 한 개의 감격을 되새겨 본다. 지독스럽게 먹고 싶고 배도 고팠지만 그 자리서 언뜻 입에 까넣지 못할 만큼 용기가 없었던가 보다. 가련한 생각도 든다. 그러나 반면 그래서 한 잎 동정해 주는 것이 곧 근본적으로 그를 위해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시 시장을 찾았을 때 대하고 억지같이 간청하는 모습에서 그렇다. 아직 정식 입항도 아니다. Gate의 눈을 피해 겨우 싣고 귀선하다. 저녁상에는 오른 상치쌈에 모두들 입이 터지도록 밀어 넣는다. 마치 자식들 먹여 살리는 엄마의 심정이다. 역시 채소는 우리 동양인들에게는 고기보다 제격인가 보다. 승선 후 처음 시작되는 야식. 비록 빵 한 조각에 우유한잔이지만 기분이 좋다. 한 두 사람의 노고와 정성으로 여러 사람이 그처럼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결코 그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다. 老 通信長에게 매월 40-50달러정도의 현금을 줘서 제 구미에 맞는 것이나 음료수라도 사들도록 해주었다. 고맙단다. 마음도 외로울 텐데 음식마져 입에 맞지 않아 식사 때마다 마주 앉기가 미안하다. 또 내겐 일본어 선생인 동시에 일본 선주와의 관계를 이어주는 좋은 이음새가 되기도 한다. 환경이 여건이 그렇다보면 도리 없는 일이긴 하지만 꾹 참고 말없이 먹어주는 그 마음씨가 고맙다.
물론 국적은 다르고 특히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우리들이지만 현재는 한 운명의 테두리 속에 얽메여 있다. 내가 겪는 일본인 통신장으로서는 그가 네 번째다. 山中(야마나까), 村岡(무라오카), 渡辺(와타나베) 그리고 또 한 놈 한국여자를 데리고 산다는 젊은 녀석이 있었다. 그중 山中와 이번의 渡辺가 가장 심성이 좋고 나이 값을 한다. 다행한 일이다.
며칠간 책을 놓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스스로의 뉘우침이 있으면서도 쉬이 잡히지 않는다. 아무래도 불확실한 일정에 마음이 너무 쓰인다. 오늘도 Mr. Hose를 만나지 못했다. 만약 여기서 입항하지 않고 바로 Las행을 Order받았을 때 부수적으로 행해야 할 일들. 부식구입, 창내에 산재한 부서진 상자들의 정리를 위한 빈 상자의 수령. 그로 인한 지체가 발생할 경우의 처리문제 등등이 너무 질서없이 널려져 있다. C/P(용선계약서)도 없고 전문도, 지시도 누구의 것이 올바른 것인지 도무지 가늠이 가지 않는 형편. 저기 떠있는 배들도 그럴까? 그럴 리가 없지. 3$에 사서 7-8$에 파는 것만 생각하는가. 도시 이해가 안가는 점이 많다. 그거야 어쨌든 정작 그 때문에 골탕을 먹고 안정을 앗기는 것은 내 자신이니 말이다.
둥근달 보름이다. 대서양을 거쳐 오는 산들바람에 굵직한 너울 가운데서도 반짝이며 부서지는 물결. 가까운 육지의 찬란한 불빛, 그리고 둥둥 떠 있는 이곳 선박들의 살아있는 모습이라고는 잘 뵈지 않는. 오직 있다면 해진 뒤 켜지는 Deck위의 작업등들의 명멸. Wari 정박중 귀찮스레 날라들던 하루살이 벌레들도, 뵈지 않는 개구리 소리마져도 없는 이 고요함들이 가슴 답답하도록 짓눌러 오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게 휩싸고 먼 고국으로 향해 날아가게 하는 가도 싶다. 한국과는 9시간의 차이다.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부지런한 사람들 좀 더 젊어지려고 아침 일찍 등산 하는 노인들은 벌써 기침하고 대문을 나섰을 시간이고, 나같이 게으런 사람은 아직도 코를 골며 입을 헤벌리고 피로에 젖어 깨어나질 못했을 시간이다. 같은 지구위에 살면서도 한쪽은 하루의 끝을 내리고 한쪽은 시작을 한다. 그러면서도 서로 따라 붙일 수도 뒤쳐질 수도 없이 질서정연한 간격으로 틀림없이 가고 있다. 그만큼의 차이를 둔체 -.
아내의 살결이 그립다. 온 세상을 그리고 만사를 나 자신까지를 잊게 하면서도 하나를 갈구하며 파고들던 一念. 그걸 다시 갖기에는 너무나 많은 낮고 밤이 남았다. 그 따뜻하던 손길하며 마음 써 줌이 자꾸 그립다. 그렇게 미운 듯 하면서도 진짜로는 밉지 않다는 나. 해주면 줄수록 더 잘해 주고 싶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사랑을 누구는 주는거라 했고 누구는 받는 거라 했다는데 나는 받기만 하고 그는 주기만 한다. 그것도 사랑은 사랑인가? 정화 정주 정현이, 아침잠에서 부시시 일러났을 지도 모른다. 아빠 없는 쓸쓸함을 느낄거다. 어딘가 핵심이 빠진 허느적한 느낌이 감도는 분위기가 되고 있지는 않을까? 등외의 남편이고 아빠다. 금년에는 Piano라도 한 대 사드리려나. 애들을 위해서 -. 어쩌면 새벽꿈을 꾸었을 지도 모른다. 내가 그를 향한 이 시간. 이 사실을-.
낮에 시장에서 북적거릴 때 그 앞뒤를 구별키 어려울 만큼 뚱뚱한 아줌마의 유달리 큰 젖무덤의 물컹하던 탄력이 팔꿈치에 오래 남는다. 미련스럽고 불경한 수캐의 모습을 닮는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좀 더 마음을 졸라매자. 어떤 경우가 닥쳐도 움직이지 않도록 -.
3rd. May (화)
09시경 동방호을 통해 Mr. Hose로 버터 연락이 왔다. 행선지 변경이란다. 이미 예상했던 터라 새삼 놀라거나 당황하지는 않았다. 곧 Life Boat로 가다. 그의 아버지가 관광차 스페인에서 왔단다. Spain 산 코냑 한 병을 선사했더니 Very Good! 이랬다. 줘서 싫다는 놈 없지럴. Senegal의 Dakar로 가란다. 가는 것은 좋으나 현재의 부식이 부족함으로 금일 오전 구입하여 오후에 떠나겠다니 OK란다. 그리고 Empty Carton은 Lome에서는 불가능하니 다시 Dakar에 수배해 주겠단다. 이러다 결국 못하고 마는 게 아닐런지. 근거 서류를 장만했으니 저들도 무슨 대책이 있겠지. 말로는 믿기 어려우니 Sailing Instruction(항해지시서)을 써 달랬다. Las의 Mavacasa에서는 왜 본선에 직접 타전하지 않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어제 돈도 잘 바꿨고 얼마간이라도 잘 구입을 했었다. 식사위원 및 1갑. C/E를 동원, 시장에 보냈다. 마침 Socopao에서 그 젊은 친구가 Telex를 가지고 왔다. 함께 그의 사무실에 가서 다시 한 통의 Telex를 더 받았다. 역시 다카의 입항예정 시간을 알려 달란다. 몇 가지 의문사항이 있었는데도 Socopao측에서 도리어 본선의 양적하 톤수 및 일자를 묻는다. 거꾸로다. 내가 물어야 할 사항이고 그들이 답해야 하는 일들인데 -. 그만두다. 곧 출항하고 조사한 후 직접 Dakar에 Cable하겠다니 좋아들한다. 원참.
마치 전쟁 같은 부식구입. 오후 7시경 귀선했다. 그놈의 Shipchandler의 횡포 때문에 두 번 걸음을 했다. 다소 미안한 감이 없질 않으나 그런 걸 따질 지금이 아니다. 외항의 파고가 제법 높아 보트 올리는데 다시 위험을 겪었다. 세관 Gate의 두 놈들 300F에 기분좋게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어쩌면 지금의 우리들에겐 이것이 다행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가만히 앉아서 술 얻어 먹어가며 구입해 들일 것을 여기선 내 돈 주고 내가 사정하고 와이로까지 줘야 하니 완전히 역행이긴 하지만. 정식으로 한다면 몇 배의 비용이 작살날 것이니까 말이다.
19:15시 닻을 올리다. 온몸에 피로가 퍼진다. 가보자. 다카라는 곳은 또 이보다 사정이 좋은 곳이라니 다시 기대를 건다. Senegal. 어쩌면 한국대사관이나 영사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출국직전에 우리 대통령의 특사로 김종필 국무총리가 순방해간 나라다. 그긴 한국어선 및 일본선박도 많이 드나드는 곳이라 했다. West Africa에서는 가장 크고 현관격인 항구며 세련된 곳이라고도 했다. Mr. Hose 가 그긴 예쁜 아가씨도 Capt.를 기다릴 것이라 했겄다. 그래 고맙다. 너 나마 생각해줘서 -. 다카까지 1500마일. 약 5일반이 걸리면 9일 오전 중에 닿을 것이다. 다음은 또 다음으로 받아드리고 처리하자. 이제는 믿을 수도 믿지도 말아야 한다. 항상 어떤 변화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수배하는 것이 상책일 뿐이다. Las는 가게 될는지 그만둘는지 모른다. Mr. Hose의 말에 의하면 간다고 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 근거는 없다. 서류에 의해 짜여진 일정도 밥먹듯이 달라지는데-. 가면 다행이고. 안가도 별수 없지 않은가. 저녁바람이 시원하다. 히끄무레한 달빛이 그래도 온 바다를 밝게 해서 좋다. 항해! 그것도 Seamen에게는 당연한 길이다. 영원을 두고 이루어지는 인간사와 같은 것일 것이다. 서부 아프리카 연안을 따라 올라간다. 처음길이지만, 더구나 Radar도 Loran 마져도 없이 다소 부담이 크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다. 예정보다 몇시간 늦긴했으나 무사히 부식을 싣고 출항하게 된 것이 무척이나 다행스럽다. 運이라기보다 그만큼 노력들을 한 결과이다.
4th. May(수)
Laspalmas의 Mavacasa 그리고 德丸. 입항지 Agent인 Socopao Dakar. 부산 대아해운에 각각 타전하다. 아울러 Owner에게는 Docking(선거작업)관계를 물었다. 안항을 계속한다. 2일째다. 좋은 날씨! 잔잔한 바다. 적당히 부는 바람. 항해를 위한 최적의 海狀이다. 오전 10시부터는 구름이 끼어 Sun sighting(천측)을 전혀 못했다. 그냥 D.R(추측위치)로만 가는 수뿐이다. 가까이 아련히 육지가 보인다. 아직 Gahna를 지나고 있다. 17:00시경 Three Point를 正橫통과. 변침하다.
옆에서 추월하던 Blue Yokohama에서 태극기를 게양했다. 아마 우리 배를 알아보고 교신하고 싶거나 반가운가 보다. ‘UW'를 게양해줌과 아울러 VHF로 불러본다. 역시 연락이 닿는다. 한성해운에서 나왔다고. 일본 Nitsei Line으로 London과 Lagos를 Liner로 뛴단다. 1년에서 2개월이 남았단다. 서로 반가운 마음이지만 피차 목소리에 기운이 없다. 3월달에 교대했다니 최근 한국의 뉴스가 없느냐고 묻는다. 목마름이겠지. 누구나 집 나서면 그렇듯이 외국에 나오면 느끼는 조국강산이 그리움이요, 그것이 곧 애국심이 아닐까? 안전항해를 빌다. 속력이 좋으니 저녁땐 벌써 보이지 않을 만큼 수평선 저 너머로 사라져 간다. 선명하던 태극기가 눈에 뚜렷이 남는다. 德丸에서 회신이 왔다. dock에 대한 확실한 결정이 없는가 보다. 계속 Contact중이란다. Mavacasa에서도 왔다. 다카에서 200톤 양하에, 2,000톤 적하 예정이나 Disport(양하항)는 미정이랬다. Owner의 내용으로 보아선 Italy로 갈 공산도 있다. 어디를 가든 좋다. 그러나 배의 안전이 문제다. 받아야 할 검사. 수리해야 할 Radar 등등. Laspalmas를 넘어서면 지중해 파도가 거칠다고 한다. 내일쯤 다시 연락, 어쩌면 Dakar에서 몇 가지 수리를 의뢰해야겠다. 한번쯤 Las 입항해서 Mavacasa의 Mr. Tikam도 만나보고 Owner측 공무감독도 만나서 뭣인가 좀 알고 갔으면 좋겠는데-.
종일 편안히 쉬었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휴식이다. 우선 정신적으로 간장이 다소 풀린다. 모래 아침부턴 다소 어려운 항해가 될런지 모르겠지만 하늘만 뵌다면 천측이 가능하니 크게 어려움 것도 없으리라본다. 흐리던 하늘이 밤엔 다소 별빛을 보인다. 내일 새벽 천측이 되면 된다. 아직 내 손을 Sextant를 잡지 않는다. 그렇게 절실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시 익히자면 몇 차례 반복연습이 필요하겠지. 육분의를 잡아본지도 4년이 지났는가. 모처럼 낮잠도 한숨 잤다. 결코 편안하지는 않군. 그러나 오후의 졸음이 없어 좋다. 부근을 항행하는 선박들이 제법 많다. 입항할 Senegal에 대한 자료를 찾았다. Africa 대륙의 서쪽 끝. 면적이 19만 7161평방키로미터. 프랑스에서 독립한 나라란다. 공용어는 프랑스어이며. CF(프랑)가 통용되는 곳이기도 한단다. 이곳은 프랑스가 서부 아프리카에서 설립한 최초의 식민지이자 프랑스 제4공화제 아래서의 佛領서부 아프리카의 수도 다카의 소재지이기도 해서 이 부근에서 가장 서구화된 나라이기도 하단다. 인종은 수단아 인종에 속하는 볼로프족이 약 30%로서 가장 많단다. 어디간들 Lagos나 Wari 만 못하랴. 위도가 올라갈수록 서구문명권이 가까워지니까 무엇인가 나아지리라 믿어진다. Nigeria에서 겪은 일들이 너무나 참담한 것 같기도 해서다.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자만 그래도 얼마간 기대를 가져보자. 낯선 항구를 찾는 그때마다 가져지는 기대, 막상 가보아야 별 수는 없을망정. 새로운 곳을 찾는다는 이 기대가 없으면 뱃생활은 정말 지루하다. 속속들이 그들의 문명을, 생활을 접하고 알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고 그저 곁만 훑어도 무엇인가 짐작은 할 수 있다. 어쩌면 Lome에서 만난 Mr. Hose의 말대로 예쁜 백인 아가씨라도 정복(?)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래 백인아가씨도 흑인아가씨도 Nigeria처럼 그렇게 추한 곳이 아니면 한번쯤은 기념으로라도 대결해보자.
5th. May.
이틀째 오수를 즐기다. 즐긴다고 했으나 실은 즐겁지가 않다. 오후의 졸음을 없애기 위해서 잠간 쇼파에서 눈을 붙이기로 한 것이 쇼파가 너무 낡아 불편했다. 온몸이 오히려 아플 지경이다. 그래서 아예 침대에 누워 자기로 했다. 단 10분이라도 숙면을 원했는데 그게 아니다. 가수(假睡)상태. 무엇인가 읽다만 책 속의 글들인가 아니면 얼토당토 안는 온갖 잡념들이 잠시도 끊이질 않는다. 시간상으로는 근 1시간을 넘었는데 -. 도리어 머리가 팅하고 미열마져 있는 듯 다다. 실내온도가 맞지않아서인가? 오후의 졸음은 없어졌으나 그 잡념에 쫒기던 기분 나쁜 현상은 오래토록 무겁게 남는다. 그 때문인가 오후 내내 머리가 개운칠 못했다. 낮잠이 아직 몸에 익질 않아서 인가보다. 시간은 보내는 게 아니고 쓰는 거라고 했는데 오늘도 내가 쓴 시간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 쓰지 못하고 그냥 보냈다고 보는 게 맞다.
5일, 어린이날이구나. 정화가 한창 까불며 좋아했겠다. 어쩜 엄마도 하루를 쉬었을 게고 -. 갑견 강 군이 마라리아 증세가 있단다. 洋上에서는 별로 모기나 곤충들이 없는데 아마 Lome나 Wari에서 잠복기간을 지났단 말인가? 시작할 때 그놈의 주사를 쓰는 수뿐이다. 배가 Rolling를 시작한다. 남쪽에서 밀려오는 긴 Swell의 영향이다. 오랫만에 배타는 기분이 든다. 적당한 흔들림은 오히려 전혀 없는 것보다 실감이 있어 좋다. 또한 배가 살아서 움직이는 생동감이랄까 그런 것도 있다.
역시 오후의 흐림 때문에 천측을 못했다. 자정쯤 Ivory Coast와 Liberia 경계부근인 Cape Palmas 등대가 확인될 것 같다. 오늘밤은 이걸 확인하고 적당한 위치를 Fix 해야한다. 변침도 해야하고-. 여기서부터는 찾아야 할 등대도 없다. 오직 하늘만 쳐다보고 의지해야 한다. 낮에 처음 Sextant를 잡았다. 완전히 잊지는 않았다. 기억에 아련히 되살아난다. 긴가민가 하는 것은 참고서적을 찾는다. 항해사들에게 천측에 대한 원리를 다소나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천측! 그것은 역시 앞서간 賢者들의 노력의 소산물이다. 무수히 반짝이는 별, 달, 태양이 모두 외로운 항해자들에게는 다시없는 길잡이가 되고 등대가 되어주고 있다. 옛날 범선 해적선 시대 거칠고 사나운 얼굴에 텁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 짐승가죽으로 만든 조끼 같은 것을 걸치고 옆구리에 짤막한 칼만 차고 단지 돛을 펴고 내림으로서 자의대로 오대양을 누비면서 새 영토를 찾고 부를 탐하며 목숨을 걸었던 선원들이 선상반란을 일으켜도 선장과 항해사만은 살려두지 않을 수 없었던 그 이유가 바로 이 천측 때문이었다고 했다.
넓은 바다위에 뜬 배, 그것은 문자 그대로 일엽편주가 아닌가. 현존하는 모든 뛰어난 것이 독창력의 결실이라면 이 항해술도 분명히 뛰어난 창의력의 소산이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수백년을 겪으며 잃으며 얻은 결실이리라. 한 입 베어 먹고 버린 송편 같은 달이 느즈막이 뜬다. 음력으로 삼월 열여드레군. 아련히 수평선이 보인다. Las의 Mavacasa엔 Next Port를, 德丸에는 Radar수리를 의뢰하는 Telex를 띄우다.
6rh. May(금)
새벽 1시. 한밤중이다. 두어 시간 잤을까 2/O가 깨운다. 예의 등대가 확인된단다. 수평선 끝에 아련히 몇 개의 불빛과 함께 6초간의 주기를 가지고 점멸한다. Cape Palma의 Cawally강을 사이에 두고 Ivory Coast쪽의 Kablake항 등대다. 강 저쪽은 Liberia의 Harper항이다. 거기 다시 24마일까지 비치는 등대가 있다. 두 등대가 확인되면 된다. 변침점과 시간도 측정된다. 수심을 Check했다. 78미터. 예상보다 육지쪽으로 압류되어 있다. 02시반. Harper의 등대 확인. 변침점을 당직사관에게 명하고 다시 자리에 들다.
예상보다 속력이 없다 겨우 10Kn't다. Dakar의 대리점으로부터 어제 ETA을 바라는 전보가 있었다. 08시 현재 910마일. 앞으로 3일하고도 19시간은 가야한다면 10일 04시경에 외항에 닿겠다. 항로는 300도. Africa의 눈이 되는 부분을 지나 툭 불거긴 이마 위로 올라가는 참이다. 오늘밤 자정쯤은 라이베리아의 수도 Monrovia 앞을 항과할 것 같다. 한차례 소나기가 쏟아지더니 내내 짙은 구름이 깔려있다. 진로가 바뀌니 한결 Rolling이 심해졌다. 풍력 3. 극히 평온한 바다인데도 긴 너울을 옆에서 받는데다 현재 본선은 거의 공선이나 다름없고 Double Bottom Tank(2중저)의 연료유가 약간 지우쳐 우현으로 3-4도 기울어진 탓으로 약 10-13도가량 계속 횡요를 한다. 그러나 지장은 없는 순항이다.
종일 통신장이 무전실에서 Contact 해봤으나 어제 친 전보의 회신이 없다. 다시 내일을 기다려 본다. 달이 뜨려면 아직 멀었는가 칠흑이다. 이곳 특유의 현상인 Thunder Storm의 섬광이 온누리를 열었다 닫는다. 또 소나기라도 내리려는가. 우기(雨期)가 가까워 온다. Radar를 수리하기기까지 날씨라도 좋아야 할텐데.
오늘도 낮잠을 설쳤다. 잠 속에서 많은 글을 읽고 써 내려갔다. 밑도 끝도 없고 물론 제목도 줄거리도 없다. 非夢似夢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역시 골치가 무겁고 으시시하게 춥기까지 한다. 무엇인가 정신적으로 차분히 안정돼지 못한 듯하다. 그럴만한 이유도 없는데 -. 자그만 일들이야 남아있다. 차항을 위한 제반 계획, 현재 부족한 식수. 입항지에 필요한 海圖(Chart)도 없다는 사실. 또한 지금 가고 있는 D.R(추측)항법 등등. 그러나 이런 것들 때문에 나 스스로를 잃을 만큼 큰 문제는 아니다. 뭔가 허황한 꿈, 구름을 잡던 예의 그 꿈들이 가끔씩 떠오를 때도 있다. 대화가 없어서 일까? 그렇지 않으려고 무엇인지도 모를 일을 이렇게 써 갈기고 있질 않는가. 또 어떤 때엔 아내를 향해 난필을 긁적이고도 있는데 -. 오후부턴 다소 맑은 정신 속에서 뜻한바 책도 몇 장 읽었다. 자신도 꼭 집어 말할 수 없다. 짜증! 그렇다. 짜증 때문이다. 읽어도 읽어도 자꾸만 잊어버리는 그 건망증 때문에 생기는 짜증이다. ‘건망증 3기는 미치광이 1기’라고 했다만 -. 그게 사실일 것만 같다. 진짜 어떻게 안 될까? 분명히 병적이다. 될 수 만 있다면 머리통을 열고 죄다 꺼내어 저 맑은 바닷물로 싹 한번 씻고 행군다음 다시 어디 잘못된 곳이라도 없는지(분명히 있을거다.) 있으면 잘 고쳐서 넣었으면 싶다. 얼마 전에도 이 때문에 며칠간 책을 완전히 덮어버렸을 만큼 짜증을 냈고 기어이 자신의 회의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영 포기해버리기는 너무나 억울하고 내가 처량하다. 뭐 좋은 처방이 없을까? 답답하기만 하다. 하나도 적어둔 것이 없으면서도 날짜까지 기억해내고 설명하던 아내의 그 기억력에 신통력을 느끼기 까진 하지 않았던가. 그게 지극히 정상이다. 뭔가 내가 잘못이다. 이럴 땐 그저 딱 거절하고 집어치우는 수가 제일이다.
8th. May. (일)
德丸에서 Radar 수리를 Dakar에서 수배하라는 회신을 받다. 계속 순항. 그리고 안항이다. 좌현으로 약간 기울었으나 현재 사정으론 도리 없다. Oil 이송펌프인 Transformer가 수리될 때까지는 -. 역시 Dakar에서 수리해야 한다.
다음 항차에 대한 회신은 아직 없다. ETA 9일 밤 9시로 변경 연락하다. 어제밤 Siera의 Freetown을 항과. 계속 북서로 방향을 잡고 올라간다. 오늘밤 10시에는 正北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한밤중에 또렷한 별들이 보일만큼 맑았다가 아침저녁엔 구름이 낀다. 낮으로 강한 일광이 없어 다소 지내기는 좋으나 Sun Sighting이 안 된다. 겨우 오늘 저녁에 Star Sighting으로 Position Fix(위치확인)를 했다.
올 때 2/O가 사온 Air Almanac을 써보다. 아주 간편하고 좋다. 항해사들에게 일러주다. 이런 것을 보면 역시 미국이란 나라의 사고방식을 알 수 있다. 부단한 노력. 그리고 그 결과 다소나마 개선되고 발전된 것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고쳐나가고 만들어내는 그 정신이 곧 오늘의 미국을 건설한 개척정신이리라. Lome 출항하던 날 VHF를 빌리기 위해서 잠시 올라가본 Delta Line사(社)의 New Orleans 선적의 배. 조타실을 船首에, Eng. Room를 船尾에 둠으로서 중간의 넓은 폭을 화물창으로 쓸 수 있도록 설계한 실용성과 유효성에 탄복했었다. 물론 그만한 기술적 능력의 배경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겠지만 일단 인정된 사항에 대한 과감한 실천력 또한 쉬운 일은 아니라 여겨진다.
Freetown 앞 바다가 다소 이상하다. 潮流탓인가. 수심의 차이가 심하긴 하다. 가끔 거창한 돌고래 떼와 어군이 보인다. 그런데도 부근에 한 척의 어선도 뵈지 않는다. 어딘가 부근에 일본 Trawl선들이 있나보다. 통신장의 수신 결과 Dakar의 일본 니찌노(日魯)수산 소속선이란다. Dakar에도 그 VHF ch16으로 항내 연락이 가능하단다. 바람도 북서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Swell의 방향도 그렇다. 어제까지의 Rolling이 Pitching으로 따라서 바뀐다.
어제 오늘 연이어 신한국문학전집 3권 째와 America구어 교본의 一讀을 끝내다. 무엇이 남았냐고 묻는다면 아무 것도 없다. 그냥 읽을 당시의 재미 그뿐이었다. 세권 째를 읽었으나 역시 어렵다는 생각뿐이다. 그러나 소설인 이상 큰 바램을 갖고 읽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대로 읽혀져 나간다. 30대 작가들이 현대사회를 보는 눈이 과연 기성세대들과는 완연히 다르다는 것을 조금 느낀다. 그 표현방법이 그렇고 속도가 그렇다. 긴 설명대신 직선적인, 그러면서도 깊은 뜻을 가졌음직한 함축성이 있는 것도 같다. ‘同行’, ‘돌’, ‘삼포로 가는 길’ 등등. 새파랗게 젊은 작가 녀석들이 칠순이 된 노인의 심정을 기막히게 그렸다. 마치 자신의 늙어 본 듯이 -. 다음은 수필집을 택했다. 수필, 그것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가장 어려운 문학의 한 장르란다. 어떤 것이 어렵고 장르가 뭔지. 가치가 어떻고 -. 하는 것은 덮어두고 우선 내 자신이 한번쯤 써보고 싶은 게 바로 이 수필이다. 그렇게 간절하게까지 써봐야겠다는 의욕도, 욕망도 가져보지 못했지만 능력이 닿으면 한번 써 봤으면 하는 정도의 마음을 자주 가진 것은 사실이다. 감나무 밑에 가지도 않고 그나마 입을 벌리지도 않고 홍시 떨어져 입에 들어오길 기다리는 격이 아닐까?
아래층에는 매일 마작, 바둑이 왕성하게 진행된다. 바둑, 마작, 당구 같은 잡기(雜技)는 현대인이면 꼭 마스터해야 하는 필수과목일는지 모른다. 싫어도 배워두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달려들지 못한다. 성미에 맞지 않은 탓도 있다. 우선 내가 취미로 하는 書道도 이 배에 와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았으면서도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넘쳐흐르는 왕성한 의욕. 닥치는 대로 배우고 해보고 먹어보는 실천력이 내겐 분명히 모라자라거나 없나보다.
‘인생의 큰 목적은 지식이 아니고 행동이다.’라고 Huxley는 말했다. 그렇다 지식이란 한갓 도구이거나 수단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요즘 내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뭔가? 하루의 전부 가운데 행동으로 내 욕구를 만족시키고 있는 것은 하루 네 끼 먹는 행위뿐이다. 특히 오늘은 웬일인지 아침부터 배가 영 쫄쫄하다. 양을 너무 줄였던가. 똥개가 부엌에서 누가 나오기만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며 쳐다보듯이 책상머리의 시계만 쳐다보고 밥 때만 기다렸으니 -. 그렇찮아도 때 되면 식사하라고 공손히 절까지 하면서 알리러 온다. 낮에는 맥주를 반주로 곁들여 사시미까지 단 5분도 못되는 사이에 게눈 감추듯 했다. 그러고서도 종일 앉아 무얼 했던가. 하나 남지도 않고 제자리걸음이면서도 영어책 소설책과 눈싸움을 하고 말았으니 -. ‘You are a bag'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하루를 쪼개고 쪼개서 그기에 다시 2개로 나누어 쓴다는 사람들이 봤으면 영 환장을 할 지금의 내 생활이 아닌가. 종일 책상에 앉아 물 마시고도 이쑤시게 입에 문 체 좀 싫증나면 졸고, 좀 더하면 침대 위에 벌렁 자빠지면 되고. 그래도 하루 기만원씩 월급주니 말이다. 하기야 이놈의 짓도 근본적으로 따지면 그것은 너무 싸다. 우선은 그렇다. 닥쳐오고 스치고 자나가는 하루를 주체하지 못해서 갈팡질팡하는 자신을 어쩌면 처량하기도 하다. 오늘 겨우 1독을 마친 ’America구어’다. 천신만고다. 눈으로 읽었건, 눈이 스쳐지나갔건 한 번씩 베껴 썼던 한번은 훑었다. 45일만이다. 다시 두 번째 시작해보다. 첫 번째보다 다소 혀끝이 돌아가는 것이 가볍다고 할까 부드러워 졌다고 할까 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처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제가 무슨 통뼈라고 -. 머리에 안 남으면 눈에라도 남든지 하다 못해 입술이나 혀끝에라도 버릇이 들여질테지 -. 노는 입에 염불하는 식으로 해보자. 과거 백두산호랑이 였던 김종원이란 고향사람은 출세한 후 변소간에 앉아서 일보며 큰 소리로 영어단어 외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Las에 가면 Tape Record라도 한 개 사서 늘 틀어두고 이번에는 귀마져 동원해보자. 남만큼 제 역할을 못하는 내 양쪽 귀이지만 분명히 내거니까 익혀두면 쓰이겠지.
사실상 사람이란 생각해보면 참으로 묘하기도 하다. 우선 자기 몸부터가 모두 자신의 것이면서도 마음대로 못하니 말이다. 딸꾹질이나 기침은 안 하려고 참으면 더 나온다. 염통과 허파는 그 임자의 의도와는 전연 상관없는 양 뛰고 움직인다. 어떤 땐 그놈의 情蟲마져 임자의 뜻을 거역하고 아무데서나 튀어 나오기도 한다. 속에 든 것이니 또 그렇다고 하자. 밖에 나와 있는 손발, 입, 눈 그것 마져도 제멋대로 할려니 볼일이 많아질 수밖에 -. 가장 세밀하고 가볍게 그리고 예민하게 움직인다는 혀끝마져 제뜻 같지 못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가. 한편 그 만큼 간사하기도 한 것이 사람의 5관이고 정신이니까 억지로라도 습관화시키면 제 놈도 따라 움직이겠지. 머리도 제법 길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렇게 기른 적이 없었다. 양귀가 그의 절반이상 덮었으니 -. 깎아야겠다. 멋이고 뭐고 가렵고 귀찮아서 죽을 지경이다. 멋도 부지런한 놈이나 할 일이지 나 같이 게으르고 움직임이 적은 놈에겐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다. 위도가 11도나 됐다. 차츰 대기가 싸늘해지는 느낌도 든다. 시간도 한 시간 늦춘다. 아프리카의 맨 서쪽 끝을 곧바로 올라간다. 내일은 최종 ETA를 알려야겠다. 다음 기항지가 없으니 모든 계획에 순서를 붙이질 못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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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견디기 어려운 날이 안타깝다.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몸도 마음도 지랄같다.
허나 내 것인 것을 , 내가 해결해야하고, 내가 참아야 하고, 내가 인내해야하고, 모든 것은 나로 인해 발생한 일.
" 모두가 내탓이로소이다"
연기법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