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矣.
세상 사람들이 모두 어떤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알아차리거나, 아름다운 것으로 일삼는 일, 그것은 아름답지 못한 일이다.
太極, 雖至美, 然以其, 無聲臭. 故人, 不見其爲美焉. 若有聲有臭, 而可見. 則其美者, 又必有不美者存也.
(예컨대) 태극太極이 비록 지극하게 “아름다운” 것일지라도 그것은 (귀로 또렷하게 들을 수 있는 “아름다운”) 소리나, (코로 뚜렷하게 맡을 수 있는 “아름다운”) 냄새를 가지는 바가 없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일삼는 “아름다움”을 (또렷하고 뚜렷하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른바, (어떤 것이 귀로 또렷하게 들을 수 있는) 소리를 가지는 바가 있으며, (코로 뚜렷하게 맡을 수 있는) 냄새를 가지는 바가 있는 것일 때, 이른바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일삼는 “아름다움”을 또렷하고 뚜렷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어떤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또렷하게) 알아차리는 일은 이른바 반드시 “아름답지 못한” 것이 (뚜렷하게) 자리하는 바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皆知善之爲善, 斯不善矣.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선善한 것으로 알아차리거나, 선善한 것으로 일삼는 일, 그것은 선善하지 못한 일이다.
陰陽之始, 雖亦純粹之善, 然以其, 無形質. 故人, 不見其爲善焉. 若成形成質, 而可見. 則其善者, 又必有不善者存也.
(예컨대, 오행五行을 낳기 이전인) 음陰·양陽의 처음이 비록 또한 순수하게 “선善한” 것일지라도 그것은 (눈으로 또렷하게 살필 수 있는 “선善한”) 모양이나, (손으로 뚜렷하게 만질 수 있는 “선善한”) 모습을 가지는 바가 없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일삼는 “선善”을 (또렷하고 뚜렷하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른바, (어떤 것이 눈으로 또렷하게 살필 수 있는) 모양이나, (손으로 뚜렷하게 만질 수 있는) 모습을 이루고 있는 것일 때, 이른바 (세상 사람들은 그 모양이나 모습을 또렷하고 뚜렷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어떤 것을 “선善한” 것으로 (또렷하게) 알아차리는 일은 이른바 반드시 “선善하지 못한” 것이 (뚜렷하게) 자리하는 바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形, 高下相傾, 音聲相和, 先後相隨.
따라서 (세상에는) 있고 없음이 서로 생겨나고, 어렵고 쉬움이 서로 이루어지며, 길고 짧음이 서로 모양과 모습을 갖추고, 높고 낮음이 서로 뒤집히며, 내지르는 소리와 들리는 소리가 서로 어우러지고, 앞과 뒤가 서로 따른다.
歷擧氣機流行. 陽變陰合, 成形成質之後, 參差相對, 有萬不齊者. 以見道之本始眞一無對.
(이 문장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欲의) 기운이 흐르고, (그) 모양과 모습이 일삼아진 사례를 하나하나 들고 있다. (이른바, 양陽이 바뀌고, 음陰이 어우러지며, (오행五行이 생겨나고, 만물이) 모양을 이루며, 모습을 이루고 난 다음, (비유컨대 마음에 본래) 자리하던 바(參; 性·命·無爲·自然·太極)와 (그것을) 어긋난 바(差; 欲)가 “서로” 마주하게 되면, (몸이 그것에 대해) 가지런하지 못한 여러 가지(萬; 有爲)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알아차려야 한다. (비유컨대) 도道는 본래 (마음에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爲이) 참된 바(眞; 參)가 한결같은데, (따라서 마음이 본래 자리하던 바와 그것을 어긋난 바가 “서로”) 마주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으며, 몸이 그것에 대해 가지런하지 못한 여러 가지를 가지는 바가 없)다는 것을.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따라서 성인은 태극太極의 시작을 몸으로 따르는 바에 머물고, 처음의 음陰·양陽을 마음으로 지키는 바를 일삼는다.
無爲之事, 體太極之始也. 不言之敎, 法陰陽之初也.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이 일삼는 바無爲之事”는 태극太極의 시작(始; 無極)을 몸으로 따른다는 뜻이다. “(일부러 일삼아) 말하지 않는 가르침不言之敎”은 (오행五行을 낳기 이전인) 처음(初; 無爲·自然)의 음陰·양陽을 마음으로 지킨다는 뜻이다.
萬物作而不辭,
만물이 일어나지만, (일부러 일삼아) 말하지 않고,
不辭, 謂不煩辭說也. 此, 不言之敎也.
“(일부러 일삼아) 말하지 않는다不辭”는 말은 이른바 (일부러 일삼아 “만물”에게 이래야 한다는) 말을 하거나 (저래야 한다는) 말을 해서, (“만물”을 일부러 일삼아) 번거롭게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이 (앞 문장에서 일컬은) “불언지교(不言之敎; 오행五行을 낳기 이전인 처음初·無爲·自然의 음陰·양陽을 마음으로 지키는 모양과 모습)”이다.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不居.
(만물을) 살아가게 하지만, (그러한 자신의 공功을 오로지) 스스로 가지며, (만물을) 일삼지만, (그러한 자신의 공功을 스스로) 기대지 않는데, (이른바 그러한 자신의) 공功이 이루어지지만, (스스로 그것에) 머물지 않는다.
有, 謂自有其功也. 此, 無爲之事也.
“가진다有”는 말은 이른바 (오로지) 스스로 그러한 (자신의) “공功”을 가진다는 뜻(으로서, 오로지 스스로 그러한 자신의 “공功”을 가짐으로써, “만물”로 하여금 그러한 자신의 “공功”이나, 그러한 “공功”을 “가진” 자신을 일부러 일삼아 높이거나 받들게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이 (앞 장에서 일컬은) “무위지사(無爲之事; 태극太極의 시작始·無極을 몸으로 따르는 모양과 모습)”이다.
夫惟不居, 是以不去.
이른바, 오로지, (성인은 자신의 공功에 스스로) 머물지 않는데, 따라서 (성인의 이름이 저절로 만물로부터) 떠나가지 않게 된다.
惟其不居美與善之實. 所以不居美與善之名也.
“오로지” “성인”은 (비유컨대 자신이 일삼은) “아름답고” “선善한” 열매(實; 功)에 (스스로) “머물지 않는다.” 따라서 “아름답고” “선善한” (자신의) 이름이 (저절로 “만물”로부터) “떠나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右第二章.
여기까지가 제2장에 대한 풀이이다.
첫댓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모두 저의 부족함 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