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치의 댄스일기1 [입문편] 5.왕초보한테 여성이 접근
2003년 4월 13일. 일요일. 화창하게 맑은 날씨
필라는 역쉬나 오늘도 아무도 없고 썰렁했다.
나 혼자 걸음마 연습하기에는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부담 없어서 좋았다. 당근 음악도 나오지 않았다.
카운터에 앉아있던 예쁘장하고 깜찍하게 생긴 여주인이 들어와서 음악을 틀어줄까요 했다. 난 괜찮다고 했는데 맨날 듣는 그 음악을 그녀가 멋대로 틀어놓고 나갔다.
사실 나야 음악이야 나오든 말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발 스텝을 자꾸 잊어버려서 스텝 외우는 게 목적이니까. 물론 왈츠는 자세훈련이 목적이구.
뻔한 수순에 따라 모던 홀딩자세 혼자서 잡아보다가, 자이브 기본 스텝을 별 발광스럽게 해보다가, 혼자서 홀 전체를 전세 낸 양 마음대로 폼을 잡았다.
나는 정신무장을 하고 이를 악물고 폼이야 개폼이든 말든 혼자서 자이브 스텝을 막 뛰었다.
팔짝 팔짝 뛰다가, 고수들 모양을 딴에는 흉내 낸다고 엉덩이를 실룩실룩 움직여도 보고, 해도 이상하고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조금 있으니까 젊은 커플이 와서 둘이서 탱고며, 왈츠를 연습하는 바람에 홀이 나 혼자 있을 때보단, 그래도 덜 썰렁했다.
혼자서 왈츠 자세 훈련과 자이브 기본 스텝연습에 몰두했다.
근데, 자이브 베이직 땜에 정말 미치고 팔딱 뛰겠다.
아무리 해도 어설퍼 보이고, 어색하고, 둔하고, 이상하고, 한마디로 개판이다.
정말 해도 너무 한다. 어떡케 이렇게 안 될까. 머릿속에는 어떻게 해야 폼이 난다는 걸 연상되면서도 몸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건너편 의자에 앉아있던 30 중반쯤의 젊은 언니가 나 있는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내가 연습하는 곳은 이젠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다. 필라의 가장 안쪽 의자가 없어 발끝까지 보이는 거울이 있는...
그리고 그 언니는 나 있는 근처 뒤쪽에서 자기 혼자 자이브 스텝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내가 거울을 통해 슬쩍 보니까 자이브는 엄청 고수인 것 같았다.
내가 의자에 앉으니까 (사실 난 그 언니가 하는 걸 보고, 기가 팍 죽어 버려서... 더 이상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도 그만 두고 내가 앉은 가까이 앉았다.
글구 내 쪽을 힐끗힐끗 보더니 먼저 말을 붙였다.
자기랑 자이브 한 번 해보자고 했다.
난, 아직 기초 연습중이라 할 수준이 아니라고 말하고, 화장실로 담배를 갖고 도망가 버렸다.
그 언니는 조금 무안한지 내가 앉았던 자리에서 좀 떨어져 앉아서 젊은 커플이 연습하는 것만 쳐다보았다.
난, 담배를 한 개 다 피고도 나가기가 좀 뭐해서 그냥 화장실에서 어슬렁거리니까 지겨웠다.
그래서 또 담배를 피우고, 그렇게 세 개를 피웠다.
그리고 다시 나오니까 아직도 그 언니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멋있고 잘 생긴 젊은 남자가 한 명 더 들어와서 왈츠 베이직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 남자의 폼은 되게 멋있었다. 난, 같은 남자라도 멋있는 남자가 보기 좋았다.
그 남자가 하는 걸 보고 나도 왈츠 자세와 기본 스텝 연습을 그 남자 흉내 내며 했다.
나 혼자 연습하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바보 같고, 어리석은 것 같았다.
고수가 해보자는데, 그것도 숙녀가 먼저 해보자는데, 개뿔도 실력도 없는 게 거절을 했으니. 얼마나 바보인가...
내가 먼저 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못해도 그냥 해보면 혼자서 연습하는 것 보단 훨씬 효과적일 텐데.... 싶은 생각.
용기를 내어 그 언니한테 다가가서 저 좀 잡아달라고 했다.
그 언니는 되게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얼른 내게로 와서 홀딩 모션을 취했다.
난, 속으론 떨렸지만 프린트물을 왼쪽 손에 쥔 채로 그 언니를 잡고, 자이브 기초반 코스를 해봤다.
기초반은 그런대로 진행 스텝은 흉내 낼 수 있었다.
동작이나 리드가 너무 안 되서 그 언니가 어떻게 여자에게 해야 하는지 몇 개 갈켜줬다.
그렇게 몇 번 하다가 내가 미안해서 그만 했다.
내가 의자에 앉아서 쉴 동안에 구석 거울의 내 연습자리를 그 언니가 아예 차지하고 있었다. 내 정면에서 혼자 자이브 베이직이며, 룸바인지 차차차인지를 스텝 연습했다.
난, 아직 룸바와 차차차를 구분 못한다.
그냥 그런 폼이 나오면 룸바이거나 차차차 둘 중의 하나일 거라고만 짐작할 뿐이다.
그래도 그 정도를 아는 것만 해도 어딘감....ㅎㅎ...
전에는 룸바가 뭔지 차차차가 어떤 폼인지를 몰랐으니까.
난,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씹었다.
그런데 나 혼자 씹으니까 그 언니에게 좀 미안했다.
속으론 한 개 주고 싶었지만, 혹시 그 언니가 수작 거는 걸로 오해할까봐 망설여졌던 게다.
그래도 바로 면전에서 방금 전에 나한테 한 수 갈쳐준 분인데 비록 껌 하나지만 혼자 입에 달랑 넣으니까 아무래도 마음에 켕겼다.
그래서 다시 주머니를 뒤져 껌 한 개를 꺼내서 그 언니가 연습하는데 갖다 주니까, 고맙다면 받았다. 그리고 연습을 끝내고 다시 내 옆에 앉았다.
그걸 보고 껌을 건넨 게 되게 잘 했구나 싶었다.
난 혹시라도 쓸데없는 오해를 살까봐 조심했는데, 안 줬더라면 오히려 드럽게 인정머리 없는 남자가 될 뻔 한 것 같아서...
그 언니는 내 옆에 앉아서 나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어디 문화센터에서 배우느냐 등...
나는 동호회에서 배운다고 말하니까, 우리 동호회에 대해서 자세히 물었다.
난, 아직 잘 아는 게 없어서 별 대답해 줄 게 없었다.
그 언니는 자기는 어디에서 지금 차차차를 배우는데 선생님이 되게 잘 가르쳐 준다고 했다. 무슨 전철인가 어디로 와서 찾으면 된다고 했는데 난 메모를 안 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기 오면 같이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레슨비도 얼마 안한다고 했는데, 난 지금 배우는 것도 너무 무리라서 따라가지 못한다고 다른 거 배우는 걸 거절했다.
시간은 벌써 7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나가 버린 상태였다.
난, 다시 혼자서 왈츠 홀딩자세와 베이직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그렇게 혼자 연습에 열중하는데 그 언니도 너무 늦었다며 가버렸다.
이젠, 완전히 그 넓은 홀은 나 혼자만의 세상이었다.
혼자서 계속 연습하니까 주인한테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 때문에 문 닫아야 되는데 못 닫는 것 같은...
그래서 아쉬움이 남았지만...
눈 딱 감고 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