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 108 –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사소)
AI의 문학적 글쓰기 결과물을 보고 글 쓰는 것에 회의적인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엄마들이 우리나라 특유의 근성을 발휘해 "이제는 글쓰기 교육이닷~!" 하고 김연아 키즈들 처럼 우르르 '한강 키즈'들 육성 바람이라도 한바탕 불었으면, 그리하여 출판 사업이 활성화되었으면, 여기저기 책 바람이 부는 계기가 됐으면 하고 바래본다.
어릴 때부터 휴대폰이 쥐어진 MZ.알파 세대들은 글밥이 거의 없는 웹툰이나 릴스. 쇼츠 등을 즐겨본 초 단위의 빠른 이미지 감각 세대들이다.이 세대들은 시각적 디자인이나 편집 음악 등 동영상이나 사진 등에 감각이 전 세대들 보다 뛰어나게 발달될 수 있다. 그런데 1차적이고 즉발적인 영역에 해당하는 자극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편도체에 영향을 받아 자극의 일상화로 집중력이 떨어지고 불안정한 정서로 클 가능성도 많아진다.
자극에 대한 지속적 갈증과 허기를 가진 아이들은, 텍스트를 다루는 연습이 적다 보니 섬세한 언어 표현력이나 이해력 발달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다른 세대나 지네들끼리도 소통에 문제가 되고 단절이 쉬워진다. 특히 자신을 이해하고 현재적 자기를 바라보는 자아성찰이 힘들어질 수있다. 대신 불안과 분노를 욕설등 자극적인 언어를 재생산하며 공격적으로 표출하게 된다. 그 사람이 쓰는 단어의 종류와 개수가 그 사람의 생각의 폭을, 듣는 언어가 사고의 질을 결정하는데 말이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 두 번의 노벨상이 5.18과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사는 역사의 좌표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오늘 기사로 오른 지난해 경기도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포함해 2528권을 '청소년 유해 성교육 도서'로 폐기한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이상문학상을 받은 최진영의 '구의 증명',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등 문학작품과 2013년 독일 올해의 과학도서상을 받은 성교육 책 '사춘기 내 몸 사용 설명서'와 영국 교육전문지에서 올해의 지식상을 받은 '10대들을 위한 성교육' 등이 함께 폐기된 사실은, 과연 어떤 기준으로 행해진 일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사건은 경기도 교육청이 지난해 11월 '성 관련 도서를 폐기하는 것을 권고 한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초. 중. 고 학교에 내려보낸 것으로 비롯됐다. 그런데 유해성 도서 목록을 명시하지 않은 채 '청소년 유해 매체물 심의 기준'과 '관련 기사 목록'을 참고하라고 한 것이 문제였다. 더군다나 첨부된 관련 기사가 보수 학부모 단체가 "학교 도서관에서 부적절한 성교육 도서를 폐기하라"며 연 기자회견을 다룬 기사들이었다. 결국 검증되지 않은, 태극기 부대 같은 단체의 요구에 의해 경기도 교육청은 지시를 내렸고, 그리하여 각 학교는 임의로 성, 인체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책들을 폐기하는 코미디가 무력히 이뤄진 것이다.
이에 누리꾼들은 "멀쩡한 성교육 책을 폐기하면 학생들이 성을 접하는 게 온라인 음란물밖에 더 되겠나" 라며 분통을 터트린다. 이 사건은 보수단체의 무식한 교육 개입의 실상을 확인하게 한다. 또한 학교 관계자, 공무원들의 판단력과 문해력도 위험하다는 바로미터로 여겨진다. 경기도 교육감이 무슨 생각이 있었을까마는 각 학교 사서들까지 이 같은 도서 폐기에 대해 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는지, 의아한 대목이다. 또한 분별력을 상실한 공직자의 무능과 무뇌의 상명하복의 관행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건으로도 해석된다.
우리가 웃지 못할 블랙 코미디 나라에 살고 있다는 반증이 하나 더 있다. 세계적인 수상을 한 문화예술인들 중 저들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이 많다는 것. 기생충의 봉준호,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송강호. 한강 등 이쯤되면 우리나라에선 블랙리스트는 아직 통과 의례인 것이다. 제3 세계 얘기가 아니다. 권력의 탐욕에 자유롭지 못한 국민이 사는 우리니라의 현 주소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블랙리스트에 오를 용기를 가르쳐야 할까? 결국 우리는,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 블랙리스트 없는 시대를 가져올, 건강한 시민정신을 가진 다수의 인간을 키워낼 당면 과제가 있는 것이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식은 그리하여 학부모들의 교육열과 함께 조금이나마 지식인과, 문인들이 일어날 힘을, 그 힘을 얻어 우리 아이들의 문해력은 물론이고 어휘력, 사고력과 표현력에 대한 생각에 똑!똑! 문두드려주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인간은 언어로 사고함에,
종국에는 그리하여 철학으로 이어지길,
생각하는 인간으로 살아남길,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을 경계하는 후대가 되기를,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첫댓글 노밸상으로 이루기는 좀 버거운 바램인듯 합니다만..
샘의 글이 기쁨을 더해주네요.
금서 목록에 낄 수 있는 책 한 권 쓰고 싶습니다만. 금서를 시켜주지 않네요. ㅜㅜ
호미님의 블랙 등극을 응원합니다.^^
수업 시간에 무기력한 아이들도 자기 표현의 글을 쓰라면 그 누구보다 열과 성을 다해 글을 씁니다만... 뭔가 자기 생각을 글로 담아내지 못하는거 같더라구요.. 그리고 글밥이 많아지면 약간 정신을 잃는 경향이.. 근데 그건 전 직장에서 예비 국어 교사들을 가르쳤을 때도 비슷하더라구요 예비 교사들도 책 한 자를 안 읽는 거 같아서 ㅎㅎ;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소님 닉네임은 사소단장의 그 사소인가요.. 좋아하는 시인데
ㅋ 글밥이 많아지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우리 아이들과 어른들을 위해서 어찌해야할까? 심히 고민중입니다.
네. 쌤!ㅎ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사소한 것에 토라지고, 사소한 것에 행복해하는 ㅎ아주 사소한 사람입니다.
꽃밭의 독백-사소단장(娑蘇斷章)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鷹)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치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