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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 1979 (토) :
일찍 Agent에 나가다. 송금했단 전보 그리고 수화주가 계속 거절하면 Charterer와 상의하여 NZ로 회항시키겠다는 JRC의 Telex와 더불어 지난번 실시한 법원의 검사 결과를 기다린다고 했다. Report 우송의뢰하다. Mr. Dawood 왈 ‘Consignee측이 Final Decision으로서 Refuse(거절)’ 하기로 했다고 들었단다.
Mr. Sadiq은 5명의 Surveyor.가 검사결과 ‘Fit for human consumption’이라고 판결을 받았으나 아직 document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나오는 데로 Mr. Humum이 가지고 Baghdad로 가게 되어있다고도 했다. 어느 놈이 옳을까? Cash 우선 $300을 받다. 다시 야채, 쌀 구입하고 Ship chandler를 시장에서 만나다. 주문양이 적은데다 우리가 직접 시장에서 구입하는 것이 못마땅한 눈치다만 부득이 한 일이다. 내가 살아야제. 씨팔 생각 없으면 그만두라지.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지. 이 한해를 마무리 하지도 못한 체 어물쩍 하다가는 여기서 헛깨비 기침하듯 넘겨야 하는 것은 아닌지.
O/Fresh호가 12월 4일 다시 입항이란다. 죽을 맛이다. 바람은 심한데 부식을 실은 Wagon 짐차의 뒷자리에 앉은 자신이 그처럼 처량할 수가 없다. 담배는 연이어 두 번이나 시도했으나 구입하지 못했다.
Dec. 2(토) :
어젯밤 11시경 Mr. 한이 방선. 또 한 차례 술을 마셨다. 그도 몹시 취한 듯 했고 나도 취했다. 사실은 숙면을 위해 한잔 생각이 있었던 참이긴 했다. 취중 그의 얘기 속에서 많은 것을 느낀다. 진의를 구별하기 어려우나 조심할 일이다. 새벽 6시 그를 보내고 11시까지 잤다. 종일 몸이 괴롭다. 술이 약이 되는 수가 있긴 해도 역시 해가 더 많다.
Dec. 3(월) :
Agent 가기로 했다가 포기.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잠으로 때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리도 피곤할까? 겨우 배 3바퀴를 도는 구보에도 숨이 차다니. 이래서 어떻게 땅위에서 발을 붙이고 살 것인가? 연일 바람이 불고 기온이 썰렁하다. 여기도 서서히 겨울이 찾아드는가 보다. 아무튼 이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강을 잃지 말아야 한다. 아무것도 안되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시간이 아깝다기 보다 지루하기 그지없다. 克己! 과연 그것은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야만 이루어지는 것인가?
Dec. 4(화) :
다시 Agent 가다. Ship's Money 나머지 $2880을 찾다. Mr. Sadiq과 전화통화. 결국 버림받았단다. ‘Fit for... ’이란 판결을 받았지만 Final Decision으로 수취거부를 했단다. 맥이 빠진다. 기어이 다시 싣고 NZ까지 가야한단 말이다. 도대체 그 분명한 이유가 뭔가? 밝혀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결국 이놈의 Iraqi들이 나를 불명예제대 시키고 마는 구나. 일간 서류가 되는 데로 바스라로 오겠다고 했다.
시팔놈의 Ship chandler놈 마져 제멋대로군. 내일까지 안 가져오면 Cancel 하기로 하고 Agent에 의뢰하다. 귀선 즉시 출항을 위한 모든 준비를 Order하다. 침통한 분위기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인 이상 받아드리고 새삼 부딛쳐 나가자. 몸과 마음이 보다 자유스러운 곳에서야 좀 더 내 소신 끝 해 나갈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Dec. 5(수)
각 Hold정리 및 출항 준비를 Order하다. C/O 또 정신 나간 짓을 했다. 그를 믿다가 당한 짓인데도-. 적접 No. 4. 1. 2. 3의 순으로 둘러보고 재 지시했다. 남은 기간 동안의 무사고를 위해서 꼭이 확인해야 한다. 사람이 공적 책임감이 부족한 듯하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성실성이 곧 재산인 것을 Motto로 하고 있는 내 자신과 많은 차이를 가진 사고방식이다.
Dec. 6(목) :
갑자기 심한 바람과 비가 뿌린다. 더 지체할 수 없어 Agent 및 시장을 둘렀다. Mr. Abudali가 내일쯤은 출항이 되겠단다. 역시 생각날 때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12월말까지를 기한으로 모든 식품을 준비하다. 그토록 없다던 달걀과 chicken을 너무도 쉽고 싸게 구입했다. 다른 곳보다 20%정도는 비싼 값이긴 하지만. Clearance와 Statement Fact를 아예 받아오다. Mr. Humum도 만났다. Report에 의하면 Cargo Condition은 좋았고 분명이 ‘Fit for .....’로 받았는데 Baghdad의 Receiver측의 수취거부 이유는 Mr. Sadiq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완전한 패배다. 앓던 이가 빠진 듯이 시원해 하던 Agent놈들의 표정에서 심한 역겨움을 느낀다. 그래 어서 가자. 또 다시 새로운 내일은 내일로서 받아드리고 부딪치자. 그러나 이놈의 나라는 내가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더럽고 치사한 곳. 각 Hold의 Cargo를 재정리하게 하다.
Dec. 7(금) :
06:00 예상외로 빨리 Pilot가 왔다. 서둘러 출항했다. 더 이상 머뭇거릴 건덕지가 없다. 가자. 패장(敗將)처럼 쓰디쓴 회항이다. 외항에는 거친 바람과 파도가 있다. 아무래도 이번 항차는 시작부터 끝까지 애를 먹일 모양이다. Pilot의 하선이 다시 문제. Kwait 외항에서 내리기로 하다. 18:30시 Kwait의 Mina Al Ahmadi 외항에서 도착 투묘하다. 지난밤의 강풍으로 인한 Bottom Touch 그리고 종일의 항해가 몹시 마음과 정신을 피로케 한다. Pilot의 얄삽하고 못된 수작을 늦게사 알아 차렸다. 결국 NZ까지 승선하려고 꾀를 쓴 것이다. Iraqi라면 모두가 이를 갈고 싶은데 너마져-.
Dec. 8(토) :
11:30 Agent 수배의 통선으로 Pilot 하선. 역시 한바탕 소란과 고함 끝에 내렸다. 개새끼! 어디 그따위 수단을 쓸려고-. 쫒아내다 싶이 했다.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 JRC로부터 긴 Cable은 남은 이번 항차의 여정을 얘기하는 듯. 괴롭다. 차라리 모든 것을 속히 잊어버리고 싶다. 긴급조치 9호의 해제소식을 듣다.
Dec. 9(일) :
오후 2시 Hormuz Strait를 통과하다. 예상외로 좋은 해상이다. 시원하게 트인 바다처럼, 출렁이는 물결처럼 해방감이 충만하다. 바스라 억류 80일만이다. 역시 움직이는 게 되어 있는 것은 제 능력 끝 움직여야 한다. 두 달 넘은 정박으로 인한 船底 Fouling 때문에 Speed Down를 염려했으나 별반 영향을 없는가 보다. 역시 해수가 아닌 강물이었기 때문일거다. 신나게 달리자. 그러나 아무래도 마음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패배의식은 저버릴 수가 없다. 아마도 꽤나 오래 갈 것도 같다.
Dec. 10(월) :
Aus의 Cramley로부터의 긴 전보를 받았다. 최대 40Tons까지 Lamb를 바다에 Dump 할 예상을 하는 모양. Tag를 모두 떼어 두란다. 두 번째 온 JRC 의 Cable도 많은 의아심을 갖게 한다. 아무튼 950여 개는 버려야 한다는 것들 고집할 수밖에 없다. Ocean Carries에서 짤막한 전보는 위도 24N을 넘으면 그 Passing Time를 알리라고 한다. 아무튼 가타부타 소리가 없는 걸 보면 단단히 뿔이 나긴 했나보다. 도리 없고...
아마도 손상된 양고기 및 Dumping 하는 분에 대해서는 JRC측에서 claim하는 것도 같다. 좌우지간 어서 가서 이놈의 Lamb(양고기)만은 빨리 양하 해버리고 싶다. 그리고는 그 원인이나 들어 보았으면 다소 속이라도 풀릴 것 같다. 우리가 잘못했다면 그걸로 책임소재를 밝히면 된다. 그 보다는 차라리 차항과 그 다음인 Docking, 교대 등의 일정이 궁금하다.
Dec. 11(화) :
JRC로부터 Damaged ccs는 다음 Inspection이 있을 때까지 잘 보관하라는 Cable이 있다. 왜 그럴까? 그냥 가지고 가지는 않을테지만...-. 아무래도 미심쩍다. 막상 Dump(바다에 버림) 한데도 그놈의 Tag는 남겨야 한다면 문제는 남는다. 이왕 Report된 바에는 닥치는 데로 무리없이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끝까지 Best를 다해보자.
Dec. 13(목) :
Diaship으로부터 모처럼 위로의 Cable가 왔다. 그리고 JRC로부터 다시 all damaged ccs는 Dump 하라는 전보가 오다. 더 이상 오락가락하기 전에 내일쯤 당장 버려야겠다. 계속 좋은 해상이다. 적도지방 특유의 후덥지근하고 습기를 덤뿍 품은 바람이 눅눅하게 휘몬다. 며칠간 계속 아내가 꿈에 뵌다. 무슨 일은 없는지?
Dec. 14(금) :
집 전화번호가 89-0692로 변경됐음을 알다. 집에 무선전화로 통화한 덕분이다. 인도양 양상. 남위 3도 40분. 동경 85도00분인 곳이다. Damaged ccs를 깨끗이 바다에 버렸다. 949ccs다. No.4 및 3 Hold의 현황으로 봐서 아무래도 NZ에서 Re-survey할 때 문제가 없을는지 걱정이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버릴 수도 없는 일.
에라 두고 보자. 될대로 되겠지? 제법 선명하게 들린 아내의 목소리가 무척 인상적이고 한결 마음이 가라앉는다. 별탈없다니 천만다행이다만 너무 보고 싶다.
참 편리한 세상이 되고 있다. 수십년전부터 선진국에서는 실시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과연 과학의 발달과 경제부흥은 편리한 사회를 점차 이룩하고 있다. 이곳 시간 밤 11시. 개각 뉴스를 듣다.
Dec. 18(화) :
계속 순항. 오후부터 미열이 있고 몸살끼가 있다. 아무런 한일도 없었는데 -.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서서히 긴장이 풀리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5개월 가까이 Air condition밑에서만 생활해온 것이 몸에 좋지 않은 탓인가? 섭씨 22도가 가장 적당한 생활온도라고 하더라만 내게는 다소 쌀쌀한 느낌을 주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몸이 정상적이 아닌 듯도 하다. 운동부족에서 오는 것일까? 식욕을 잃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다만 마음과 함께 머리도 무겁다.
Dec. 19(수) :
시작보다 물러날 때가 중요하다고 얘기해온 내가 이번 항차의 꼴이 말이 아니다. 미련! 그것은 저 부서져 가는 파도와 함께 영영 버려져야 한다. 그것이 곧 내가 땅을 딛고 내 가족과 함께 남은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허망한 바다위에 단 며칠간의 호기심을 위해서 수십일을 허비한다는 것은 너무나 밑지는 일이다. 내일쯤은 Next Voy.를 물어볼만 하겠지. 아껴 두었던 Jin병 마개를 따고 수면제로 쓰기로 하다.
Dec. 20(목) :
JRC에서 다시 damaged ccs 잔존여부를 확인하는 cable가 오다. 직접 No.3-4 Hold를 가보았다. 실상 어려운 문제다. 장기간의 저장으로 인한 Shrinkage라고도 볼 수 있다. 장말 끝까지 애를 먹일 모양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는 없지. 하는데 까지는 해서 누명을 벗고 순조롭게 끝내야 한다. 이제는 Dump하려고 해도 Tasman Sea밖에는 없다. 만약을 위해서 10여톤은 더 있을지 모른다는 엄포를 놓기로 했다. 해답은 다시 Angliss와 상의해야 한다고 했고, JRC측 P & I클럽에서 Suggestion할 것이라니 도데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Dec. 21(금) :
Aus의 남쪽 바닷가 예상외로 조용하다. 한창 긴 낮! 그리고 남쪽지방에서 밀려오는 긴 Swell에 모처럼 Rolling을 한다. 앞으로 5일의 한정이 계속 순조롭기를 빈다. 내일부터 방학이랬다. 많이 춥지는 않는지. 낡은 집에 불이나 잘 드는지? 궁금한 것도 많고 보고 싶기도 가고 싶기도 하다.
Dec. 22(토) :
종일을 엇비스듬히 불어오는 뒷바람에 격심한 Rollong. 머리가 뻐근하고 흔들흔들한다. 결국 Shipper측과 운송자측이 붙은 모양. London에서 P&I 검사관이 온다고 더 이상 Dump하지 말랬다. 아무래도 꽉 끼인 구름처럼 일이 순조롭지만 않을 것 같군. 심란한 기분. 불면으로 거듭 몸만 축나가고 있다.
Dec. 23(토) :
JRC로부터 Merry X-mas의 cable을 받다. 무슨 속셈들인가? 병주고 약주려나. Ocean Ca.에서는 꿀 먹은 벙어린데-. 오후 5시 Bank Strait를 빠지기는 했으나 N.Z의 서남부에서 서서히 동진하는 981mb의 저기압과 거기서부터 뻗어있는 전선과 높은 경도의 등압선들이 남은 이틀간의 항정에 먹구름을 치고 있다. 무사한 항해 그리고 안전한 양하가 금년을 보내는 최대의 선물이 된다.
Dec. 25(화) :
예상외로 쉽게 물러난 저기압. 그러나 뒤바람으로 격심한 횡요가 계속. 머릿속이 흐릿하고 휑하니 빈듯하더니 Bluff를 지난 오후 3시경부터 잔잔해진다. 東岸의 Dunedin항의 X-mas를 위한 휘황찬란한 가로등 장식이 별천지를 보는 듯 하게 한다.
Dec. 26(수) :
06:00 Timaru 외항에 투묘. 08:00 Pilot 승선. summer time으로 다시 한 시간을 당겼다. 10:00 접안했으나 성탄절 휴일이라 쉰다. 모처럼 시원스런 잔디 위를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평화로움을 갖는다. 여름이라지만 아직도 쌀쌀한데 털옷과 수영복 차림이 서로 어울려 휴일을 즐긴다. 목가적이고 평화스러운 분위기다. 집에 전화하다. 모든 시름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아내에게서 진정 고마움과 송구스러움을 느낀다.
Tauranga의 김진영 형에게도 전화했다. 그의 말에도 많은 위안을 얻는다. 그의 부인이 앓고 났다는 것이 퍽 동정적이다. 곧 마음의 병이였으리라. 낯선 객지에다 아무도 없는 후예. 그리고 외로움. 진작 삶의 의욕을 잃었다는 저번 때의 얘기가 상기된다. 모처럼 푸근한 마음으로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이 없질 않았으나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남아 있다.
Dec. 27(목) :
새벽 6시부터 바쁜 하루였다. 밀린 수당과 POB도 정리했다. 각 Hold의 온도가 너무 낮다고 하역거부 소동이 인다. 시팔 것. 언제는 온도를 높이라고 지랄이더니-. 역시 노동자들의 힘에 세다. 심한 바람도 성가신 일이다. 왜 이리 재수 없는 꽝철이가 붙어 다니나. 그러나 예상외로 Cargo상태가 좋아 다행이다. 농무성 검사관과 P&I Surveyor가 만족해 한다. 그러나 대관절 수취거부당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Agent는 그냥 시키는 데로만 할 뿐이라나. 더욱 답답하다. 편지 띄우고 대사관에 전화하다. 31일경 가기로 약속했다. 선원들의 편지가 있으나 내 것은 없었다. 다음을 기대해야지. 본선의 기사가 Timaru Herald에 Top 기사로, 그리고 TV에서도 방영한다. 양고기를 싣고 중동에 갔다가 도로 싣고 왔다는 내용이다. 이래저래 유명하게 되는군. 연 이틀을 극장구경으로 저녁 시간을 때웠다. 으시시하게 춥고 미열이 있다만.
Dec. 28(금) :
아침부터 Hold Temp. 때문에 다시 하역중지. 그러나 오후부턴 순조롭게 진행되다. Hold Cleaning 거절문제, Next Voy가 Fix 등 모두가 씁쓸한 News뿐이다. Sydney에서 일본이란 지레짐작은 역시 헛꿈. Red Sea(홍해)란다. 딱 싫어진다. 그놈의 Egyptian들의 끈덕진 구걸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질끈거린다. 더구나 더러운 배짱들을 또 보아야 한다니.
Dec. 29(토) :
참 쓸쓸하고 괴로운 저녁이다. Next Voy.가 그렇게 아득해 보일 수가 없다. 그냥 두고 Sydney에서 귀국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이곳 신문과 TV에 실린 Top기사는 시내를 향하는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그러면서도 누구하나 시원스럽게 그 원인을 밝혀주는 내용은 없다. 물러 설 수는 없다. 이 누명은 밝히고 말아야 한다. Loading Port가 4곳이란다. 양하는 어쩌면 Aqaba(요르단)이 될지도 모른다는 Telex가 다소 마음의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지루하기 그지없게 느껴지는 것은 도리가 없다. 31일 Wellington과 Tauranga행의 Ticket를 수배하다. 다소 생각을 정리한 필요가 있다. Diaship에서도 연락은 있다. 본선은 계속 manning한단다. 아마도 Anglo로 넘어가기로 한 모양이다. 반씩 나누어 교대할 예정이라는 내용도 문제다. 그래도 Owner인 大一海運에서는 일언반구의 코멘트도 없다. 어찌된 셈인가.
내가 가는 한이 있어도 Next Voy.를 위한 준비는 해주어야한다. Ship Store 청구서만 Ocean Ca.에 띄우다. 연 4일째 상륙을 안 했다. 아니 못했다. 그만한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다.
Dec. 30(일) :
계속 양하를 하다. No.4 Hold.의 Twin Deck Hatch Cover가 결빙으로 고착되어 요지부동. 새로운 문제거리로 발견된 셈. 더운 물로 녹여 겨우 열기는 했지만 전선원이 붙어 두어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Defrost시 특히 유의할 사항이다. Hold Cleaning도 결국 본선에서 하도록 교섭이 되는 듯하다. 남은 Cargo는 더 이상 탈없이 끝나주길 간절히 바란다.
Dec. 31(월) ;
한해를 마지막 보내는 날이다. 그러나 이곳의 표정으로서는 아무런 느낌도 동요도 없다. 7시20분 비행기로 곽 기관장과 함께 Wellington으로 향하다. 곽 기관장은 위로의 뜻이 담긴 것이다. 대사관 거치고 Mr. 박도 만나고 Zoo도 구경하고 저녁 7시50분 우중에 Tauranga 도착. 김진형 형의 영접을 받았다. 자정까지 얘기 속에서 보내다. 이 한해의 마지막 날. 그런대로 기억에 남을 만한 밤이다. 1979년! 그리고 70년대여 영원히 잠들어라. 내 30대의 젊음을 간직한 체 사라져 간다.
1980년 Jan. 1(화) :
대망의 80년대 1월1일을 이곳 NZ의 Tauranga 김진영형의 댁에서 맞다. 신년이라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이 그저 조용한 평일 같은 이곳의 풍경이 오히려 이상하다. 우중에도 불구하고 김형 내외의 안내로 Rotorua까지 가다. NZ에서 유명한 관광지다.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펄펄 끓는 물과 증기. 그리고 진흙이 팟죽처럼 보글보글 한다. Spring Town에서의 연어 양식장도 둘러보았고 석회성 온천에서 수영도 즐겼다. 양털로 된 요 하나를 사기도 했다. Tauranga와 Rotorua사이에서 자라는 싱싱한 조림지역들의 나무는 미래의 부를 약속하는 듯 하다. 김형이 고사리나무 둥치로 깎은 화병을 선물한다. 고맙다. 한때 함께 승선한 적이 있고 그 후에 그의 양자 김세락군에 대한 작은 협조가 있었을 뿐인데-. 늦게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Bangarow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Jan. 2(수) :
어제와는 달리 쾌청한 날씨다. 아침 비행기로 Wellington을 경유. Timaru에 도착했으나 일기관계상 착륙하지 못하고 Christchurch까지 가다. Bus편으로 오는 도중에 호우를 만나다. 그런 호우 속에서도 강물 빛 하나 변하지 않는다. 가만히 죽은 듯이 서 있는 우중의 양떼들이 신기하고 애처롭다. 곳곳마다 운전수 혼자서 친절하게도 짐들을 내리며 일일이 도와준다. NZ가 조용하게 살기 좋은 곳임이 분명하다.
Jan. 3(목) :
계속 양하. 심한 바람에 허연 황파가 방파제를 넘어온다. 다음 갈 길이 아득해 보인다. 대아에 Report하다. Owner가 원하면 하시라도 하선 교대시키라고-. 미련도 의욕도 없다.
Jan. 4(금) :
Bunkering Berth로 전묘 중 충돌. 우현 선미쪽에 약간의 Damage를 입었다. 낮에 No.3 hold에서 약간의 Cargo damage가 있더니-. 신경질 나는 일들이다. 6일 새벽 출항예정이다. 내일이 휴일인데 Surveyor나 Notary Public이 일 하려나?
Jan 5(토) :
아침부터 부산하게 서둘었다. 마침 NK Surveyor가 본선에 와 있었고 저녁 늦게는 공증인이 직접 본선에까지 와서 Sea Protest를 만들어 주었다. 이것이 곧 자유롭고 풍부한 민주사회의 능력이 아닐까? Surveyor Mr. Willkinson과 한잔 나누기로 약속했으나 너무 늦었다. 정박 중에 노고가 많았었는데-. 오후 3시 양하 마치다. 앓던 이를 뽑듯이 속이 후련하다. 그러나 더 이상의 화물에 관한 이상이 없었다는 것이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다음 항차는 또 어떻게 되려나? 그렇게 까다롭다는 Sydney라는데 -. 걱정이 따른다만 무사히 마침으로서 이번 항차를 메운다는 각오로 임하자.
Jan. 6(일) :
새벽 5시. 줄을 걷고 출항하다. 휴일 새벽인데도 Mr. Willkinson과 그의 부인. Mrs. Somerville가 출영해준다. 고마운 분들이다. 예상외로 바람이 잔다. Southern Island의 남쪽을 돌아가기로 하다. 푹신한 양털깔개가 등을 따습게 해서 그런가 숙면을 했다. 아늑한 아내와의 밤을 생각나게 한다. Hold Cleaning을 본선에서 시키다.
Jan. 7(월) :
Hold Drying. 오존소독. 그리고 Pre-cooling도 시작했다. 계속 좋은 날씨가 무엇보다 큰 도움을 준다. 마지막 항차의 행운을 빈다. Sydney Agent Cramley의 전보가 몹시 당황하게 한다. 아마도 Owner(JRC)의 Agent로서의 Order인 모양이다만. 이미 Charterer의 Inform되로 한다고 했다. 저네들의 요구대로 하긴 너무나 시간이 없다. OLB-2 김종을군과 야식문제가 다시 대두된다. 사람이 자기의 분수. 책임한계를 잊어서는 안 된다. C/E의 자기 책임전가는 옳지 못하다. 특히 시기, 조건 등이 너무 엉뚱하다. 그냥 보내든가 스스로 가든가 둘 중의 하나를 택일 할 일이다.
Jan. 8(화) :
예정보다 1시간 빨리 Sydney 외항 도착. 23:00 Pymont 10에 접안하다. 세계3대 미항이라는 시드니항의 야경이 정말 아름답다. 내일부터 작업개시한뎄다.
대리점 Mr. Cramley란 녀석이 시원시원하다. 내가 바스라에서 억류되었던 이유에 대해서 자기의 짐작으로는 Aus측 화주가 수화주측에 주게 되어 있는 Commission주지 않았기 때문이며, 되돌아 온 양고기는 그대로 창고에 넣어 뒀다 다시 중동으로 수출하므로 아무런 걱정이 없다고 한다. 뭣이라꼬?
“그럼 우리는 고래싸움에 새우 등터지는 식으로 억류만 당하다 온 것이 아닌가”. 그런 셈이란다. 물론 양고기의 손상이 있었음은 본선의 잘못이지만 그것이 주되 원인은 아니란다. 그래서 아무도 분명한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나.
허허참!!. 허탈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얼마나 많은 날들을 양심과 고민 속에서 보내고 괴로워 했던가. 됐다. 그렇게라도 원인을 알게 되었느니 속이 후련하다. 이미 지난 일. 잊자. 누굴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배를 타서 먹고사는 내가 근본원인이지 않은가?
Jan. 9(수) :
예상보다 쉽게 Survey마치고 Loading시작하다. Mr. A.P Cramley가 Owner의 Agent로서 협조가 많다. 선용금 $17,000받다. 의외로 Cargo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 골치 아프게 한다.
Jan. 10(목) :
Agent에 Cargo에 대한 Protest를 정식으로 하고 녹은 양고기는 수취거부를 하다. Shipper측은 개인별인 모양이다. 개개인이 찾아와서 야단이다. 그건 Agent에 가서 항의해라. 나는 조건에 맞지 않으면 적하하치 못한다. 왈가왈부한다.
Australia Aquaia에서 시내를 보다. 밤에 집에 전화. 마누라에 비해 힘없는 애들의 목소리가 무척 서글프게 들린다. Flying Angels에서 한잔. NKK Surveyor인 71살의 W. Fyffe씨가 인상적이다. 늦게 찾아간 Kings Cross! 마치 London의 Shoe나 Picadili Circus를 닮은 곳이다. 오랜만엔 눈요기라도 신나게 한 것이다.
Jan. 11(금) :
Cargo가 계속 말썽. 거기다 No.3 Hatch Cover Cylinder Rod Neck가 부러졌다. 이 무슨 변이람. 이번 항차도 재수 없게 굴려는가? NK와 P&I 검사관을 붙이고 수리 수배를 하다. 역시 제조상의 결함이다. 겉부분만 용접이 되어 있고 속부분은 생잽이다. 자세한 Report 보내기로 하고 수리하다. Anglo 서 사장의 서신 받고 답신 쓰다. 내일부터 2일간 휴무랬다. 잘 된 셈. 일항사. 갑판장, 통신장과 함께 새벽까지 Disco Bar. 그리고 한국인의 ‘삼일식당’을 거치며 울분을 풀었다.
Jan. 12(토) :
NK 검사관이 몹시 바쁘다. 그래도 친절하게 협조해 준다. 종일을 서성대다. 어서 수리가 되어야 하는데 -. 저녁 Oxford st.를 산보하다. Show가 인상적이다.
Jan. 13(일) :
Rod 부분의 용접이 불가능하단다. 대안을 의논하다. 구멍을 파서 나사형태로 하여 연결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하다. MDO 30tons 급유 중 우현선미 No.4 Hatch 외판에 약간의 Damage 발생. 짜증의 연속이다. 날아가는 돌에 대가리 터지는 꼴이다. 저녁때의 소나기, 그리고 산보, 그래도 가슴이 편하질 않다. 휘황찬란한 Show window의 모습들. 선정적인 아가씨들의 차림새. 부러운 중년 Couple들의 나들이 모양들이 그냥 속을 더욱 부글거리게 한다. Survey는 거의 마치다. NZ에서 산 양털깔개가 생각보다 따뜻하고 편안히 잠들게 해준다.
Jan 14(월) :
다시 Loading 시작. 그러나 잦은 소나기로 지장이 많다. No.3 hold가 계속 말썽이다.
Jan. 15(화) :
Stevedore들의 Strick로 하역 중지.
Jan. 16(수) :
오후 2시 다시 시작. 부두 노동자들의 Power가 너무 강한 것도 문제다. 저개발국가에서 노동문제는 정부에서 억제하는 것도 반드시 어느 정도까지는 필요하다고 본다. 결국은 자기네 수출품 생산자들이 손해를 보는 셈이다. C/K의 가정문제가 몹시 우울하게 한다. 다 같은 Seamen의 입장에서 비애를 느낀다. ABB-1의 태도가 근래 괫심한 바가 있다. 역시 시작보담 끝날 때가 그 사람의 본성이 더 잘 들어 난다. 어서 마치고 싶다.
Jan. 17(목) :
대아에 전화. 교대는 Egypt에서 예정하고 있단다. 볼펜. 면도기. 시계사다.
Jan. 18(금) :
모든 NK Survey 마치고 Endorse받다. LPR의 Mr. Mikael과 5-6명이 방선. Mr. Cramley와 입씨름했으나 결국 한 화차에서 Frozen 되지 않은 양고기가 발견됨으로 서로 이해가 된다. Statement Fact를 받기로 하고 적하하다. Anglo와 대아. Ocena Ca. 등에 교대에 대한 요청 Telex를 넣다.
지난번의 사건과 이번 적하시 Cargo의 상태에 대한 문제는 내게도 많은 시사를 주었고, 무엇보다 사전에 미리 기안을 작성하지 않고 바로 현장에서 영문으로 Typing해서 Protest 혹은 요구를 할 수 있게 된데 내 자신도 놀란다. 늘 그렇게 졸기만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영어가 늘어났을까?
Jan. 19(토) :
출항에 앞서 부산한 Documenting이 있었다. 결국 내가 요구한 것을 관철. Mr. Cramley가 대행 해 주었다. 14:10 출항. 내항에서 휴일을 즐기는 수많은 요트사이를 빠지다. 외항의 거센 파도가 가슴을 콱 막히게 한다.
Jan. 20(일) :
밤 9시 25분. Pilot 승선. Melbourn에 도착. 01시. 아침부터 적하 시작. 그러나 역시 인부들의 Strick가 있을 예정이라고 -.
Jan. 23(수) :
Stella Marina에서 집에 전화하다.(Aus $20.40) 이곳의 신부 Michael의 친절이 고맙다. 외로운 외국 선원들을 위해서 천주교 계통에서 설립. 제반 편의 시설을 갖추고 무료로 이용토록 하는 등 위안을 주는 곳이다.
Jan. 24(목) :
역시 Strick. 대아에 전화.
Jan. 26(토) :
450톤을 적하하는데 6일이 걸린셈이다. 이래서야 본전 찾겠나. 14:10시 출항. 다음은 Adelaide다.
Jan. 27(일) :
저녁때 Adelaide외항 도착. 투묘하고 기다리다.
Jan. 28(월) :
새벽 5시. Stand-By. 07:30시 No.5 Berth에 접안 즉시 적하 시작하다. 어느 항구보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시내가 너무 깨끗하다. 오늘이 Australia의 날이란다. Culture Centre에서 행해진 각국의 민속춤들 속에 우리 고유의 부채춤이나 고전무용이 없다. 여기도 분명히 한국사람들이 살고 있을 터인데-. 약간은 따가운 햇살아래 일광욕을 즐기는 이곳 사람들과 어울려 한가하면서도 즐거운 한낮을 보내다.
Jan. 30(수) :
Owner측 Agent인 Mr. Halse가 무척 친절하다. 우연히 알게 된 일본 오징어잡이선 선장 Mr. 澤田와 한잔하고 Stella Marine에서 Disco로 보내다. 선교사업이라고 하지만 자그만 항구에도 있는 Seamen’s Club로서는 더 할 나위 없이 고마운 곳이다.
Feb. 1(금) :
20:00 출항. 지는 해가 무척 인상적이다. 이제 갈 길이 7,600여마일. 약 16일간의 여정이다. 이걸 무사히 마치고 곧 바로 귀국과 연결되어야 한다. 어제는 OLB-2 김종을 군을 귀국시켰다. Seaman의 슬픔이 눈에 뵌다. 그런데도 그렇게들 매력을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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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Royal Lily의 기록이 끊어진다. 아마도 이 항해는 무사히 마친 것이다. 그 뒤의 기록이 없어 분명치는 않으나 인도양과 아라비아해 그리고 홍해를 거쳐 이집트의 Suez에 도착하여 접안함과 동시에 임무를 마치고 일부 기관부 요원을 남기고 교대, 귀국한 것으로 기억된다. 털털거리는 자동차로 공항까지 가는 도중의 누른 사막의 일부가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다. 어디를 경유했는지도 기억이 없다. 그 만큼 이 배의 승선 기간이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귀국하고 보니 대아에서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전연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억류되었다는 사실도 처음 듣는다고 신기해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내 능력이 탁월했다고 일본 선주로부터 듣고 있단다. 허허허!
허파에서 김 빠지는 소리다. 그러나 아무튼 또다시 능력은 인정받은 것이 됐다. 불행 중 다행한 일이었다. 비운의 “Royal Lili” 하선 후 거의 1년만에 다시 승선하게 된다. 그 사이 과연 1년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기록이 없다. 우선은 기록이 순서대로 남아있는 것을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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