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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0 :
Pacific Reefer와 나란히 지중해를 항해하다. Algier에서 양하를 마치고 어제 저녁 출항했단다. 아직 Next Port는 Unfix이고 Gibraltar로 항해중이란다. 아마도 우리가 하루 출항이 빠른 바람에 Moroco행 Ticket이 돌아온 모양이다. 오랜만에 C/E 곽윤옥, 2/O 최태련군과 통화를 하다. 모두가 각박한 세상에 살아가기가 힘들어 한다. 누구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오후 Gibraltar 항과 전에 Loading Port가 Agadir로 변경되었다는 연락을 받다. Disport가 Rott. 혹은 Antwarp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Tentative(임시)이고 보면 가는 그날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11일 Midnight까지 Anchoring해 달랬다. Most Reduced Speed(최저속력)로 가도 11일 20:00면 닿겠다. 왠지 불안정한 정신적 상태가 계속된다. 9개월째 접어들고 있는 지금이 바로 그러한 방황을 할만한 시기적인 탓인가도 모르겠다. 그저 그날그날 억지로 끌려가고 있다. 1년은 무사히 마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차츰 해이해져 가기도 하는 반면 끝까지 안전운항을 성취해야한다는 긴장감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도 같다. 남은 기간이 짧아져 오는 만큼 다가오는 새로운 시간적 부담이 차츰 그 부피를 더해가고 있다. 남은 기간 뜻한데로 이루고 가야 할 텐데-. 걱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잖는가. 느긋한 여유 그리고 심호흡을 계속하면서 自身을, 그리고 自信을 갖고 찾아야 할 것이 아닌가.
Dec. 14 :
11일 밤 20:10시 Agadir Road에 투묘. LPR선이 한 척 접안, 적하중이다. 오늘 13:00 접안. 14:00부터 바로 Loading을 시작하다. Pallet로 된 Citurus(밀감). 작은 체구로 사람들이 양순하다. 모처럼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 그러나 늦게 온 Surveyor 때문에 상륙하지 못했다. ETD는 16일. 양하항은 북 France의 Dieppe라고 한다. 조금 바쁠 것 같지만 이대로 몇 항차를 계속했으면 좋으련만-.
뒤에 접안 중이던 이곳 국적선 ‘OUKAIMEDEN’이 출항중 본선 선미 Jack-staff에 Dammage를 입혔다. Owner측 Manager인 Mr. Chehtouf가 직접와서 출항전까지 수리해 준다고 한다. 그만해도 질서가 잡힌 곳 같기도 하다. Algeria나 Libya 같았으면 고스란히 피해를 보고 말일이다. 게 문어 오징어 등 생선장수들의 많이 온다. 부근에서 많이 잡히는 것들인 모양. 한국 트롤선 선장들이 현지 어선에 승선하고 있는가보다.
Dec. 15 :
생각보다 깨끗하고 아늑한 포구이다. 해변에 쭉 뻗은 모래사장과 Hotel, 방갈로 그리고 숱한 기념품 가게들은 이곳이 작지만 관광이나 피한지임을 말해준다. ONYX(얼룩瑪瑙)로 만든 기념품을 두 개 사다. 낮으로는 다소 더움을 느끼나 해진 뒤는 싸늘한 한기가 파고든다. R/O. C/E와 함께 보낸 이 날 저녁은 오래 기억될 것도 같다. Italy Style의 Restaurant에서 모처럼 Sea Food Pizza를 안주 삼아 맥주 한잔을 마신 후 아랍계인 듯한 세 아가씨와 모처럼 즐거운 저녁 한때를 보낸 것이다. 역시 자유경제체재가 갖는 자유스럽고 능동적인 상행위 및 기업운영이 우리들 생리에 맞는다고 할 수 있다.
Dec. 16(수) :
급수한 청수에 염분이 너무 많다. 반 해수 같다. 화물로 Tomato도 싣는 댔다. 저녁에 다시 상륙.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칼과 육혈포를 하나씩 쌌다. 결국 절반으로 에누리를 했으나 돈보다도 입고 있던 잠버를 벗어주는 촌극도 빚었다. 덕분에 가죽잠바를 사 입었다. 질이야 어떻건 가죽제품들이 싸다. 오랜만에 챠리 차플린의 영화를 보다. 내일 06:00 출항예정인데 양하항이 또 바뀌었다. Antwerp와 영국의 Sheerness다, 어제 오후에 Pine Crest에 Dieppe로 보고했는데-.
Full Loading를 못했다. Speed Instruction을 보면 그리 급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Pacific Reefer는 외항에서 기다린다. 금일 새벽에 도착했단다. 여기서 싣고 USSR행이란다. 뒤에 접안한 Salen社 船舶인 ‘Winte Reefer'를 방문. 그 배의 기관장의 안내로 두루 견학을 했다. 선박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하겠다. Mr. Hagen의 그 자만스럽던 표정에 이해가 쉽사리 된다. 기술의 개발과 창의력 그리고 발전을 시켜 나가는 과정을 아직도 일본의 지금보다 몇십년은 앞서 있을 것 같다. 인간 위주의 모든 설비들과 시스템은 정말 부럽기만 하다. 집에 간단히 서신을 띄우다. 제데로 갈는지. Salen, Pine Crest, Anglo 그리고 대아에 보내는 Report들을 매듭짓다.
Dec. 17 :
새벽 6시 Pilot승선. 출항하다. 지난밤 꼬박 all night하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도 느껴지는 피로는 무엇이 원인일까. 땅을 딛는 그 자체가 무리를 하는 것일까?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Documenting을 위해 남았던 Agent의 두 녀석이 기어이 그냥 가지 않고 책상 위에 둔 센누키과 라이타를 들고 가버렸다. 순간적인 방심이었다. 개새끼들이라 욕하기 전에 내 자신을 책할 일이다.
Dec. 21(월)
18일 저녁 Portugal의 Lisbon 앞에서 시작한 Gale과 황파는 꼬박 3일간을 계속하면서 온통 바다를 뒤집어 까 엎었다. 20-30도를 오르내리는 Rolling은 아무래도 면역이 안 되는 모양이다. 쩝쩝한 멀미기운까지 겹쳐서 생으로 사람을 잡는다. 유럽 코스에서 고약하기로 이름난 Biscay Gulf는 그런대로 순풍으로 건넜다. 만약 그 바람을 앞에서 받았더라면 엔간히 입에 신물께나 흘리고 눈이 쑥 들어가는 고역을 치뤘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행한 일이다. Le Havre 앞의 橫波와 영국해협 안에서의 심한 동요는 짜증스럽다 못해 신경질에 오기마져 생기게 한다. Dover Strait를 건널 때쯤은 진눈께비가 겹쳐 Deck위에 하얗게 쌓이기도 했다.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다. 춥고 으시시한 밤이었었다.
02:10시 무사히 외항착, Pilot Cutter에서 도선사를 수배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또 여남은 시간은 꼬박 밤을 새워야 한다. 그래도 육지 부근이라 한결 바람의 영향이 힘을 잃었다. 계속 눈이 쌓인다. 09:40 역시 전번과 같은 No.316 Fruit Berth 에 접안. 오후부터 양하 작업을 시작. 영국까지 가지 않고 여기서 모두 양하한단다. ETD가 내일 밤이라니 원참!. 과일은 생물이라 각 시장의 사정에 따라 수시로 양하항이 변한단다. 이해가 간다.
선용금. 소포, 청수 기타 모든 것이 내일이면 다 되겠단다. 오후 함박눈이 퍼붓는 Antwerp의 중심거리를 방황하다 말았다. 루벤스 하우스와 강변의 옛 성터도 마음뿐 들어가보지 못했고 동화 ‘프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엔터와프의 눈길이 실감을 상상하는 정도로 만족을 한다. 애들한테 띄울 카드 한 장 사지 못했음은 왠일인지 내 자신도 모른다. 춥고 눈 내리는 밤의 귀로가 더없이 푸근한 느낌을 주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내 침실이 그 어느 호화로운 Hotel 보다 아늑하고 마음 편히 느껴진다는 것도 새삼스레 알게 한다. 그저 습관화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해버리기에는 너무나 절실한 내 보금자리다. 눈이 발목까지 빠지게 한다. 12월에 이처럼 눈이 많이 내리는 것은 여기서도 십수년만의 일이랬다. 요즘은 어디가나 ‘異常’이 유행인가 보다. 그 눈 속에서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작업, 물론 진보된 장비가 뒷받침을 하고 있지만 역시 선진국일수록 인부들 자체가 부지런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빈틈없이 하고 있음을 절실히 느낀다. 고소득과 선진이란 우연히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알제리아나 리비아 혹은 중동의 여늬 국가들의 후진성을 결국 국민 개개인의 게으런 타성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이어 곧 Ballast만으로 이 거친 바다를 도로 항해해야 할 일이 아득하다. 연일 받는 Weather Report가 계속 저기압의 강세를 보이고 있다.
Dec. 22 :
눈을 그쳤으나 차운 날씨 속에 짙은 안개가 가뜩이나 짧은 낮을 더욱 음산하고 침울하게 한다. 50m 앞의 불빛이 안 뵌다. Owner가 보냈다는 Parcel은 모두 받았고 L.O도, 주부식도 물도 다 실었다. 늦게나마 Cash도 받았다. 염려하던 일들이 한꺼번에 시원히 풀린 셈이다. 마음이 푸근하다. 하룻밤을 더 묵었으면 깊은 숙면을 이룰 것만 같다. 아내의 편지, 세 아이들의 글도 받았으니 한결 든든함도 가진다. 벌써 글을 쓴다.
약도 보냈다. 아침에 문득 약을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눈앞에 나타났다. 분명히 무엇이 있긴 한가 보다. 靈感인가, 以心傳心인가. 아무튼 고마울 따름이다. 이 한해가 진정 아내를 괴롭힌 것만은 틀림없다. 그처럼 원하던 것 마져 외면하고 말았다. 거기다 큰집일 마져 미결인채-.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태부족이다. 그의 잔소리가 싫다고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내 자신의 너무나 주제너운 소리가 아니였을까. 그가 뭐래도 한마디의 대꾸도 할 수 없는 내가 아닌가. 커가는 애들의 모습 속에서도 더욱 마음이,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낀다. 남은 인생을 보다 뜻 깊게, 마음에 들게 만들어 가는 것이 오직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또 그를 위한 최선을 방법이다. 분발, 그리고 정진을 하자. 이제는 내 자신보다도 아내와 애들을 더 위해야 한다. 20:50 양하완료. 출항을 위한 준비가 완료했으나 너무나 짙은 안개로 항내의 전 선박이 출입항이 묶였단다. 내일은 어떨는지? 오늘밤은 다행이다.
Dec. 23 :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4시에 문득 잠이 깨였다가 다시 겨우 잠이 들려 하는데 거실의 불이 켜진다. 나가 보니 웬 검둥이 녀석이 책상쪽에서 문쪽으로 간다. 누구냐고 묻자 문을 열고 튄다. 펜티 바람으로 뛰쳐 나가 고함을 질러 겨우 맨 아래층에서 잡았다. Tanzania놈이랬다. 다소 술기운이 있고 자기도 선원이라며 배를 잘못 찾았다고 했으나 아무래도 거동이 수상하다. VHF로 Port control을 경유 경찰 순찰차를 불러 인계하고 같이 항만경찰서로 갔다. 조서를 꾸미고 정식으로 넘겼다만 녀석 영창에서 나온지 3-4일밖에 안 된놈이란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지만 아찔하다. 만일 칼이나 흉기라도 들고 들어와서 협박이라도 했더라면 어쩔뻔 했던가. 너무 믿었고 그러기에 방심한 것이다. 문조차 잠그지 않았으니 -. 그러나 세상 어디고 흠은 있게 마련이다.
경찰에서 취급하는 것을 보니 이미 알려진 놈인 모양이다. 개 패듯 했다. 역시 검둥이들이 옛날부터 백인사회에서 노예로 밖에 취급받지 못했던 것이 결코 우연에서 온 것이 아님을 알겠다. 지난날 Nigeria 등지에서 본 그들의 행동거지며, 생각하는 것은 마치 충실한 개만도 못한 것이 많았었다. 다른 침실을 두고 Capt. Room까지 올라온 것을 보면 반드시 유경험자임이 분명하다. 생각할수록 불쾌하고 설렁한 항만경찰지서에서 서너시간을 보낸 것이 으시시하게 한다. 10시반 출항. 그러나 Lock 도착직전에 다시 짙은 안개로 출입항이 통제. 벌판 속에 건설중인 No.762 Berth에 긴급 접안하고 Port Control의 지시를 기다린다. 마치 황량한 들판에 버려진 느낌이다. 이번에는 진짜 ‘White X-mas라고 했더니 이곳 사람들도 드문일이라며 기분은 좋다고 하던 Pilot의 길쑥한 얼굴이 인상에 남는다. 먹을 것, 마실 물 있겠다 안전한 곳에 접안했으니 마음을 푹 놓고 며칠을 기다리던 기분이 좋은 일이다. 아무래도 내려갈 일이 감감한데-, 일단 Casablanca로 가라고 했다.
Dec. 24. 1981 :
09:30 다시 도선사가 와서 줄을 끌렀다. 아직도 완전하지는 못하나 어제 보담은 시계가 2-3마일 정도로 뚫렸다. 오후 4시반에야 겨우 Sea Pilot를 하선시켰다. 유럽의 큰 항구들은 대부분이 그렇듯이 Antwerp도 출입항시 각각 7-9시간을 강을 오르내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특히 이 항구는 강 옆에다 거대한 못을 파고 그 못과 강을 연결하는 수문을 만들어 갑문식으로 항구를 만든 곳이다. 3번을 갈아타는 Pilot와 좁은 lock의 출입 등이 아무래도 간을 조마조마하게 하게 하기도 한다. X-mas. Eve. 그러나 Dover Strait를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꼼짝없이 Bridge에서 보냈다. 흐미한 시계속에서나마 오늘밤 육상의 영화와 거룩한 은총들이 눈에 뵈는 듯 하다. 12시간 계속된 Bridge keeping이 몹시 피로하게 한다. 내일부터 모래 낮까지 하루 동안이 Biscay만을 항과하는 시간이다. 제발 해상이 순조롭기만 간절히 빈다. Lock를 빠지기 직전에 Agent로부터 적하항이 Agadir로 변경, 확정 되었음을 알려왔다. ETA가 28일 아침이 된다. 순항에 된다면 -.
Dec. 26
새벽 3시경 뛰뚱거리다 가끔 한번씩 船底를 때리고 부서지는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아무래도 날씨가 시원찮다. 올라가 보니 역시 심한 해상에 강한 맞바람이 왼통 바다를 들끓인다. 공선인데다 Bunker(연료)마져 적고 보니 낡은 갑판상의 Pipe들이랑 염려가 앞서다. Eng.을 S/B시키고 선속을 낮추고 Drifting을 지시했다. 정상적으로 갔으면 앞으로 4시간만 가면 Biscay만의 Spain쪽 최북단에 닿을 것인데-. 보조 안테나가 축 늘어지고 뭣 하나 제데로 붙어 있는 게 없다. 예상외로 좋은 순항이라 했더니 기어이 그냥 보내지는 않는 모양. 위치도 엉뚱한 곳에 갖다 두었다. 10시 다시 정상 항해를 속행. 정오를 지나서 겨우 스페인 북단을 확인하고 다시 Zigzag으로 내려온다. 계속 심한 횡요가 있다.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몸뚱아리 하나만 균형 잡는 일에 온 신경이 곤두선 셈이다. 正南으로 향한 코스라 하루가 달라진다. 빠끔히나마 파란 하늘 조각이 보이니 분명히 ‘낮’ 같다고 느낀다. 아직도 한 항차를 더 해야 하겠지만 어서 마치고 더욱 남쪽으로 멀찌감치 내려갔으면 싶다. 역시 뱃놈에겐 이렇게 흔들림과 파도치는 날이 가장 싫다. 그리고 지루하다.
1982, Jan. 2 :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아니 여우를 피하고 나니 호랑이를 만난다더니 이렇게 생벼락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줄 곳 닷새동안을 회전그네라도 타듯이 굴렀다. 28일 12:30시 외항도착 투묘한 뒤부터 슬슬 시작한 Rolling이 자그만치 25-30도씩 쉴새없이 빈바가지 띄워 논 듯이 곤두박질 쳤다. 멀리 서쪽에서 밀려오는 걸죽한 swell과 육지에서 부는 풍향이 달라 비스듬히 선 탓이다. 정신이 없다고 하는 표현이 닿기나 할까? 다리가 뻐근하고 눈알이 빙글빙글 돈다. 아무래도 뱃놈은 정박이 좋다고 큰 수리 친 것을 비웃기라도 하는지. 정작 이렇다면 항해가 낫다. 연말연시를 온통 먹칠한 것이다. 모두가 멍청하다. 뭣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도, 놓아 둘 수도 없었다. 목욕물을 받을 수 있어야 목욕을 하지. 하다 못해 침실 바닥에 두 다리를 버티고 앉았으나 결국은 궁둥이의 날날이 뼈 끝부분이 껍질이 까졌다. 다다미 위에 앉았다가 심지어 발등을 깐 사람도 있다.
함께 있는 Palor Equadol, Cathinia, Ifin 모두가 꼭 같다. 같은 Reefer로서 모두 Ballast만으로 Loading을 기다리는 입장이다. 마치 넘어갈 듯하다가 일어나는 오뚜기꼴이다. 저절로 ‘우-우’하는 소리가 튀어 나온다. 저쪽에서 우리들을 보면 마찬가지이리라.
아무것도 안 했다. 않은 것이 아니고 못했다. 식사 때마다 그릇을 들고 춤을 추던 것이 그만해도 익숙해져 간다. 웃을 일이 아니다. 제기랄 놈들! S/B해서 들어 오라느니, 한시간만 기다리라더니, 결국 감감소식. 일어나 보니 우리 보다 늦게 온 Ifin이 접안했고, 어제는 영국선박이 먼저 접안 해버렸다. 도대체 아무런 예고도 연락도 없다. 그래도 Port Control이나 Pilot Station에서는 시침이를 뗀다. 더 이상 흔들리는 것도 정작 무리다. 오늘 오후부터 한결 Sweel이 낮아졌다. 마치 웬 세상이 내려앉아 버린 듯하다. 이렇게 좋은 것을-.
어질어질한 기운이 아직도 남는다. 그저 눕고 일어서기만 했던 5일간. 어디엔가 기대고 지탱하고 버티기만 하면 했던 수십시간의 그 긴장이 한꺼번에 풀린다. Agadir외항에서 보낸 81년도의 연말과 82년도의 연초는 오래 기억 될 것이다. 그 속에서도 마누라에게 보낼 편지 한 장을 썼다는 것은 기적이 가까운 일이라고 새겨두자. 모두가 휑한 눈에 꺼칠하던 수염들을 오후에는 손질들을 한다. 누구하나 제대로 못 잔 잠부터 오늘은 느긋하게 이루려나? 아이구 골치야! 수심 25m인데도 선박의 흔들림으로 인해 밑바닥에서 뻘물이 솟아 오르더니 잠잠하니 제 색을 찾는다. 초여드레의 상현달이 제법 쌀쌀한 느낌을 띈다. 어서 움직이자. 움직이는 만큼 시간도 세월도 살아 움직인다. 결국 새해는 밝고 말았다. 차분히 이 한해를 이제부터 그려 나가야 한다.
Jan. 4 :
20:00시 S/B. 그리고 21:10 10번 부두에 접안. 곧 적하 시작하다. 접안을 해도 항내의 심한 너울 때문에 배가 쉴새없이 움직인다. 가지고 있는 모든 Rope를 사용하여 Mooring해도 별 수가 없다. 양하항이 France의 Nantes와 영국의 Sheerness 두 곳이라고 했다. 두 항 사이에 소요되는 시간당. Speed당 FO의 소모량을 Telex하라고 했다. 같은 한국선원이 타고 있는 선일상사(전에 광일천양)의 ‘R.V Atlantic Freezer’의 선장을 만났다. 60여명이 승선중. 선령 17년의 객선을 개조한 급냉선이다. 그래도 내부의 고전미가 화려하게 남아있다.
Jan. 6. :
자정에 출항하다. Nantes 도착이 8일 10:00시로 Navimar에서 요구한다. 날씨만 좋다면-. 8일 착. 9일 오후 출항. 10일 밤 Sheernes 외항착. 그리고 11중으로 양하를 끝냄으로서 Redelivery를 시킬 모양이다. 다소 무리가 있는 Schedule이다.
Jan. 8 :
거의 예정되로 10:40시 Nantes Pilot Station에 도착, 즉시 도선사를 승선시키다. 작년 3월 26일. 이 항에서 본선을 인수, 출항하던 일이 새삼 어제 같이 떠오른다. 짙은 뻘물에 빠른 유속의 강물. 그리고 주위의 습기찬 땅위에 솟은 파란 풀잎이 아무래도 북위47도의 1월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디를 가도 깨끗하고 산뜻한 France의 농촌. 그 아담한 가옥들의 지붕위에 솟은 꿀뚝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요즘이 우기. 내륙지방의 심한 비와 쌓인 눈이 녹은 물 때문에 매일 강의 수위가 높아지고 유속이 빨라져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한다. 14:40시 역시 그 전에 접안한 적이 있던 Wilson Berth에 접안, 가랑비가 하염없이 추적거리는 속에 Stevedore들이 대기하고 있었으나 비 때문에 작업을 시작하지 못한다. ETD는 11일. 영어를 잘 못하는 늙고 자그만 Agent 영감님. 또 전부 여기서 양하를 한단다. 영국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니 다행이다만 Navimar의 새끼들, 입항전까지 한마디도 연락이 없더니… . Pine Crest에서 얘기한 AS, SS, ES, PS 등의 각종 검사들을 어떻게 하려는지? 급히 Salen과 Pine Crest에 연락하다. 비 탓인지 푸근한 날씨다. 2시간 가량 시내를 걸어다니다 결국 USD를 교환하지 못해 커피 한 잔 마시지 못하고 귀선하다. 프랑스의 불편한 점이다.
Jan. 10 (일) :
9일 오후부터 10일까지 작업이 없었다. 근래 보기 드문 휴가(?)다. 그러나 NK가 지정한 검사관 검사가 어제부터 시작되었다. Rotterdam의 IHI에서 온 Mr. 山口 (Yamakuchi)는 비행기 사정으로 오늘 아침에야 도착. 완전한 은발의 Mr. Baulard가 사람 좋은 호인임을 볼 때 아무래도 Smooth하게 끝날 수 있을 것만 같다. 특히 Cargo gear의 분해검사까지 한다면 Off-Hire는 물론 수월찮은 경비가 들것이다.
C/S. 송 군의 급작스런 약물 중독사고는 결국 엠블런스를 불러 병원으로 옮겼다. 마침 어제 토요일 인데도 Agent에 사람이 있었고 또 Surveyor가 영어가 잘 통했기 때문에 천만 다행이었다. 11월 초 Limon에서 얻은 V.D(성병) 때문에 Agadir에서 싼 약을 과복용한 탓이다. 거대한 병원, 친절한 의사들과 간호원. 역시 이런 것은 안심할 수 있는 곳이다. 의사가 가지고 간 약병을 보더니 웃으며 위를 세척하면 큰 문제는 없단다.
Jan, 11(월) :
山口씨의 전언으로 Agent에서 Pine Crest에 전화. Mr.宮本 및 Anglo 徐 사장과 통화하다. 전항차 Mr. 安田의 서신관계 오해를 풀었다. 다음 항차에 미국행에 대한 USDA Instpection 관계 그리고 승선기간을 8월까지 연장에 따른 Bonus관계 등을 얘기하다.
얄팍한 칭찬, 속이 훤히 보이는 얘기지만 역시 그의 논리인 ‘貧者小人’의 의미가 통째로 떠오른다. 별고 기분이 좋지 않다. 알면서도 속아야 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 들여야 하는 지금의 입장들을 교묘히 이용하려 든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 그것이 또한 엄연한 우리의 현실임은 부인할 수도, 하지도 못한다. 그래도 전과는 달리 붙여진 단서에는 한 가닥 진정이 있었음을 느낀다. 전 선원들의 반응이 어떨는지? 대개 4-5명이 1년 더 연장하길 바라고 있지만 아무래도 한번은 심한 반발을 가져올 것이다. 일찍가나 3-4개월 늦게가나 별수 없으면서도 한번쯤 이것을 이용하여 자신을 과시해보려는 일부 선원들의 그 상투적인 심층구조들이 눈에 선히 뵌다. 아직은 덮어 두기로 하자.
내일 12:00 출항예정. 비가 가친 날씨가 제법 콧날을 시큰하게 할 만큼 찹다. 겨울맛, 역시 겨울은 추운 것이 계절 감각에 익숙한 신체구조에도 맞는가 보다. 아무것도 산 것이 없으면서도 또 몇십달러를 날렸다. 화려한 France의 여러 가지가 탐스럽다, 거리를 지나치는 젊은 여성들의 피부가 한층 곱고 윤택해 뵌다. 기분탓이 아니다. 사실이 그렇다. 프랑스에서 6번째인가의 큰 도시라고 했지만 깨끗하고 질서가 정연하다. 크리스찬 디올의 화장품들! 세계적인 Maker라 한다. 역시 통신장이 정통하다. 이번만은 한 셋트 사가지고 가려했으나 오늘 오전의 전화로 다시 그만두다.
Salen의 Telex는 Next employment가 USA의 Florida/Texas - Continental이라 한다. 그렇담 Rotterdam이 아니며 Le Havre가 거의 확정적일 것이다. 이왕 늦을 바엔 Wife를 한번 동반시켜 보는 것도 괞찮으리라. 함께 이렇게 외국의 거리를 걸어보는 것도 또 그러한 환경에 접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일거다. 대아의 신 상무 그리고 집에도 일단은 의사를 전하고 타진해 보자.
Jan. 12(화) :
오전 10시 모든 Survey 및 Documenting을 끝내다. 받은 Certificate를 모두 copy하여 Airmail하다. 12:00 도선가가 왔으나 Draft의 50cm초과로 1시간 가량 대기. 13:20시에 S/B하다. 4-5kt의 유속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 퍽이나 아슬아슬 했다. 16:40시 Pilot 하선. 울렁이는 해상이 다음 기항지까지의 겨울철 북대서양 횡단이 아득하기만 하다. Strike 좋아하는 프랑스인. 그만큼 Power가 있다는 뜻도 되겠지만 덕분에 며칠 푹 쉰 결과가 되었다. 최선을 다해보는 거다. Brownsville란 항구는 처음이다. Mexico와 접경지대라 다소 험악한 점도 있으리라. Florida의 Port Pierce는 두어 번 간 적이 있는 곳이다.
Jan. 20 :
한 주일 가량 일기를 쉬었다. 14일부터 18일까지가 역시 고비였다. 이 계절에 대권(Great Circle)을 횡단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는지 모른다. 13일 밤부터 시작된 거친 날씨가 14일 늦게부터 다소 가라앉음과 동시에 Salen에서 ‘Presest Position’에서 Stop하고 대기하라는 전보가 있었다. 그러나 그대로 정남으로 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결국 충실하게 drift 한 것이 닥아오는 저기압에 휩싸인 셈이 되고 말았다. 혹시나 Moroco로 되돌아가려나 기대했던 것이 15일 늦게 온 전보로 인해 무산. 가던 길을 계속 가랬다. 그러나 더 이상 정상적인 코스로는 항해를 할 수 없을 만큼 거친 해상. 밤새 뒤뚱거리고 바위에라도 부딛치는 듯한 수격작용. 무엇인가가 부서지기라도 하는 착각에 휩싸이기도 한다.
만약 이럴 때 기관이라도 이상이 생긴다면 - 그야말로 요지부동 꼼짝없이 고기밥이 되거나 끝도 없이 북극으로 밀려 가버리고 만다. 계속 가라는 Cable 있은지 1시간이 못되어 다시 cable. 또 바뀐단다. 중남미 Nicaragua의 Colinto - Long Beach에서 바나나가 될 것 같다고-. 모르겠다 어디를 가던 한시라도 빨리 이 황파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두려움도 지루함도 함께 뒤섞여 그저 시간에 어쩔 수 없이 끌려온 나날이었다. Wife를 불러야겠다는 계획을 재고해야겠다. 함께 있을 시간도 귀하고 갖고 싶지만 그렇듯 거친 해상에서 그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물론 그의 고통도 말할 것 없지만 우선은 내 자신부터 견딜 수 없을 것도 같다. 전부를 다 가질 수는 없다. 하나를 위해서는 다른 여러 개를 부득이 버려야 하는 경우도 있고 순간을 위해서 영원을 희생하는 경우마져 있기는 하다만-. 두어달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 그 동안 집안일, 애들, 그리고 학교일 등 여러 가지를 Give up 해야 하는 어려움도 없진 않다만 그리고서도 다시 이러한 심신적 괴로움을 겪어야 한다면 내게는 2. 3중으로 죄스러운 일이 아닌가?
16일 오전 09:00 무조건 코스를 정남으로 꺾었다. 12시간 예상했던 것이 결국 20시간 걸린셈이 되고 말았지만 우선은 좀 더 낮은 위도로 Position을 유지해야 한다. 계속 수신되는 Weather Report는 동서 양편에 자리잡은 거대한 저기압 2개가 온통 North Atlantic Ocean(북대서양)을 새카맣게 먹칠을 해 놓고 있다. 다행히 그 끝부분에 걸린 것이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17일 새벽 4시경 북위 37도 부근에서 겨우 제 코스를 잡고 정침을 했다. ETA는 3-4시간 늦은 걸로 Cable하다. 그러나 계속 고기압권내에 접어들면서 제 Speed보다 더 내게 됨으로서 예정보다 오히려 3-4시간을 앞당길 가능성도 있다. 19일의 Cable로서 다음 항차는 Corinto-Long Beach가 Fix되었다. USDA관계. 이번항차는 다시 Banana이므로 취소한다고 했는데 재확인전보를 띄웠다. 본선에서는 어제 일단 10개를 Test하여 각 sense의 성능을 시험했다. 14일 Anglo에서 미국행 Visa 발급, 발송했다는데 Brownsvill에서 Long Beach로 반송하도록 조치했단다. 정오위치 북위23-02, 서경 062-19이다. 차츰 외기가 후끈거리기 시작한다. 수평선에 걸려 있는 검은 색의 뭉게구름이 가끔은 소나기를 뿌릴 것만 같다.
며칠간의 거친 황파로 정신을 잃어 모두가 누렇게 떴던 얼굴들이 생기를 찾는다. ‘바다가 늘 이랬다면 한 놈도 배 탈 놈이 없을끼다’. 자연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것을 당하는 人智는 계속 늘어가면서 대항하고 있다. 26일부터 Corinto에서 적하가 시작된다고 했다. Panama Canal이 제날짜에 통과가 되려나? 재수좋게 2-3일 Waiting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1주일 앞으로 다가온 구정을 그런대로 마음 편히 맞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Jan. 21 :
다시 행선지가 변경된다. Turbo-Curacao-Medite. 라고 한다. 빌어먹을! 갈팡질팡 아닌가? Cable을 또다시 10군데나 보냈다. 그렇게도 Cargo가 없는가? 아니면 많아 남아 돌아가는 것인가? 도대체 예정을, 또는 Owner와의 Information을 fix할 수가 없다. 결국 Turbo로 낙착 될 것을 그토록 여러 번 사람을 초조하게 만들었던가.
Jan. 23. :
오전 09:00 Turbo 도착. 즉시 Port Clearance를 마치고 Shifting. 전과 달리 灣의 서쪽 육지 가까이 투묘했다. 적하 시작은 25일 저녁부터랬다. 구정이 바로 그날인데-.
Jan. 24 :
오늘을 구정으로 잡고 하루를 쉬기로 했다. 마침 Stanfruco의 Superintendent인 Mr. Ismael Rendon이 세 아가씨를 데리고 Mr. Iairo와 같이 와서 낮부터 Disco Party를 곁들여 한결 기분을 돋군셈. 낮의 윷놀이, 그러나 모두들 15살의 세 아가씨들에게 몽탕 정신이 빠진다. 오똑한 콧날에 훨씬한 키와 몸매에 예쁘게들 생겼으니 그럴 수 밖에 -,
회사 직원이라고 하긴 너무 어리다만 그러면서도 순진하게 잘들 어울려 주었다. 상육하여 그들의 Office까지 가자고 했으나 거절. 그런대로 하루를 즐겁게 보낸 셈이다. 권총을 타고 실탄까지 갖고 있는 세관원 그 놈도 사람은 좋은데 지나 내나 영어가 너무 짧아 불편했었다.
Jan. 28:
25일 밤 10시부터 적하시작. 그러나 멀리서 끌고 오는 Barge의 도착이 늦어 순조롭지 못했다만 오늘 새벽 04:40시 모두 마치고 Turbo를 출항. 급유를 위해서 네델란드 영인 Curacao로 향하다.
Jan. 29 :
오후 2시 외항 도착 즉시 접안하여 Bunkering을 시작하다. 자그마한 섬이지만 부족함이 없이 사는 듯하다. 일찍이 Netherlands가 건설하여 부근에서 남부럽지 않는 곳으로 만들었다. Bottom Touch를 위한 Sea Protest를 작성하다. 아가씨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다는 公娼인 Camp를 구경하지 못하고 옛 성터 자리에 지은 Hotel Robby에서 맥주한 잔. 그리고 2월호 Time誌와 News Week誌를 샀다. 이번에 내려오면서는 아무것도 못했다. 무턱데고 헌 News Week지만 읽었다. 아는 것도 약간 있었고 모르는 것이 태반을 넘었지만 후회없이 보낸 것도 같다. Reagon 미국 대통령의 암살미수 기사는 흥미가 있었지만 역시 정치적 차원의 얘기는 이해가 어렵다. 아무래도 현대영어를 많이 대하고 익히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오늘 산 두 권이 과연 얼마만큼씩 읽어내려 갈런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부딛처 보고 싶어서 산 것은 틀림없다.
Jan. 30. :
02:00 출항. 좁은 내항에서 Tug-Boat의 도움도 없이 배를 우악스럽게 회두시키는 도선사를 보고 있기도, 맡겨두기도 불안스러웠다. Turbo 도착 후 구정 전날 Mess Saloon Class 이상과 직장들을 모아 Nantes에서 Anglo 서 사장이 보낸 8월 Docking까지 승선연장 요청한 것을 알리고 협조를 구했는데 이제 슬슬 그 반응을 알아볼 차례다. 예상보다 귀국을 원하는 사람이 많을 듯.(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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