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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는 1982년 부산 민락동 해안이 매립되기 전에, 찰랑거리는 바닷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위치의 횟집 상호다. 감로 선생 모친이 문을 연, 스무 명이 들어가도 꽉 차는 가게였다. 감초 감(苷)자, 우둔할 로(魯)자 감로는 풍산 홍씨 25대손 홍종관 사단법인 ‘동시동화나무의 숲’ 이사장 호다. 재주 예(藝)자 동산 원(園)자 예원은 그의 부인, 경북 청도가 고향인 박미숙 《열린아동문학》 편집위원의 호다. 홍종관, 박미숙은 몰라도 감로, 예원하면 《열린아동문학》에 작품을 실은 아동문학가들은 거의 기억하고 있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름이다.
우둔해 보이지만 어디서나 감초처럼 귀하고 소중한 역할을 하는 감로 선생은 젊은 시절 온갖 풍랑에 시달리다가 어머니가 계시는 부산으로 와 황소처럼(그는 49년 소띠다) 일하다가, 부산문인협회 사무국장 일을 겸하던 나와 스며들 듯이 만났다. 마침 부산 MBC가 신사옥을 민락동에 짓고 있던 터라 몇몇 동료들이 들르던 ‘방파제’에 갔었는데, 주방에서 묵묵히 일하던 그가 날이 갈수록 마음에 와닿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한 잔 청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고, 그때 일어난 불씨는 광안리 바다에 아침 해가 뜰 때까지 피어오르기도 하고, 나중에는 술 마시기 좋은 곳을 취재원으로 해 함께 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방파제’는 부산 MBC 직원들 외에 부산 문인들과 전국 아동문학가들의 집이 됐고, 지금의 《열린아동문학》 편집위원들도 그때 인연을 맺은 오래된 글동무들이다. 1990년에 산 고성의 ‘작은 글마을’도 한몫했으니 고성과 아동문학의 연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1996년 어느 날 술자리에서 부산아동문학인협회가 재정적으로 어렵다고 운을 뗐더니 그때 30만 원인가 하던 상금을 100만 원으로 올려서 돕겠다고 했다. 단, 익명의 조건을 붙여서. 그래서 1997년 시상식부터 상금을 100만 원으로 했는데, 가만히 지켜보니 상금이 시상식에 참석한 하객들의 저녁값으로 다 나가자 다음 해에는 시상식 뒤풀이를 방파제에서 해주었다. 아주 멋지고 푸짐하게. 그러나 다음 해부터는 시상식날마다 예약이 넘쳐 결국 상금을 200만 원으로 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일은 《열린아동문학》이 발행되는 2009년까지 계속되었다. 익명의 자물쇠는 쓸데없이 오해를 받던 내가 10년이 될 무렵에 풀었다.
‘한 번 해 보입시더’로 시작한 《열린아동문학》은 감로와 예원의 ‘즐거운 새 일’이었다. 예원 선생은 편집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원고료를 무엇으로 할까를 걱정했고, 책이 나오면 시는 작품 전체를, 동화는 제목을 곁들인 문인화를 화선지에 쓰고 그려주었다. 청어멸치, 김, 된장, 고추장, 참기름, 미역, 다시마, 곶감, 청도 감말랭이, 김장김치, 여름이불 등 철마다 다른 원고료는 필자들을 감동시켰고, 푸짐하고 정갈한 방파제 음식으로 1박 2일 치른 ‘열린한마당’과 ‘열린아동문학상’ 시상식은 전국의 아동문학가들을 매료시켰다.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박홍근, 신지식, 이영희 등 원로 선생께 김장김치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횟집 운영이라는 고되고 분주한 일을 하면서도 감로 선생은 선무도를 하고 북을 치며 소리 공부도 했다. 맹자와 공자를 읽고, 한문 서예도 익혀 부산미전에서 특선도 여러 번 했다. 20여 년 전에 신장 하나를 동생에게 나누어 주고도 아직 주류 불문, 조용한 음주를 즐기는 소리꾼이다. 그러나 ‘방파제’가 호황일 때는 마냥 즐거운 일이던 《열린아동문학》에 따른 모든 일이 비브리오, 사스, 메르스, 김영란법,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어깨가 내려앉는 힘든 일이 되고, 가장 힘든 일은 이제 감로 나이 일흔이 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일흔다섯이 되는 2년 후에는 이 모든 것의 원천이었던 ‘방파제’ 간판을 내리려고 한다.
어려운 일이 산처럼 쌓이겠지만 ‘동시동화나무의 숲’이라는 새로운 엔진으로 아동문학의 또 다른 방파제가 될 참 겸손하고 검소한 감로와 예원 선생. 나는 이 숲에 큰바위얼굴을 새기듯 두 분의 얼굴을 새기며 아름다운 천 년을 꿈꾸며 다짐해 본다.
우리나라 아동문학가들이 원고 청탁을 받아서 기쁜, 그래서 생애 최고의 작품을 쓰고 싶은 《열린아동문학》과 아동문학 하기를 참 잘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열린아동문학상’ 과 ‘동시동화나무의 숲’이 이 땅에서 영원하기 위해 내 몸이 부서질 때까지 일할 거라고.
감로, 예원 참 고맙습니다. 두 분은 진정 아름다운 큰바위얼굴입니다
첫댓글 배익천 선생님과 감로, 예원 세 분의 희생과 지원이 있었기에 동동숲과 열린아동문학이 있겠지요. 감사드립니다 ☆
감동입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닌 하나 같고 영원한 것을 꿈꾸는 부부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