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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9 주일설교
내가 엘리야인 줄 깨달았습니다
마태복음 17:9~13
엠바고(Embargo)라는 말이 있습니다. 엠바고는 원래 포르투갈 말인데 정부가 상선을 출입하지 못하도록 금지명령을 내리거나 외국 선박을 항구에 억류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엠바고는 억류, 압류, 금수조치 등을 뜻하는데 이 말이 언론에서는 ‘보도 유예’를 뜻하는 단어로 쓰입니다. 기자가 어떤 내용을 취재했을 때 엠바고를 걸면 엠바고가 풀릴 때까지는 보도하면 안 됩니다. 만일 엠바고를 어기는 기자가 있다면 다음에는 취재할 기회를 박탈당하겠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느 날 제자들에게 엠바고를 걸었습니다. 변화산에서 내려오면서 예수님은 “산에서 본 것은 내가 죽었다가 부활할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라고 보도 유예를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10절)
이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1) 그러면 왜? ..... 방금 산에서 엘리야를 만났는데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요?
2) 서기관들이 ..... 서기관을 성경을 해석하고 설명해주는 사람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개인들이 성경책을 가지지 못했기에 서기관이 읽어주고 설명해주는 말을 통해 성경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서기관의 말이 곧 성경 말씀이었습니다.
3)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 서기관이 전해준 성경 말씀에 의하면 메시아보다 먼저 엘리야가 오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방금 우리가 엘리야를 만났는데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말해 주어야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믿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엠바고를 거십니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엘리야가 오리라는 예언은 말라기 4장에 있습니다.
(말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두 번째 대답은 11~12절에 나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풀어서 말하면 이런 뜻입니다.
“엘리야가 메시아보다 먼저 와야 한다는 말은 맞다. 엘리야가 와서 백성의 마음을 돌이키는 일을 할 것이다. 그런데 엘리야는 이미 왔단다. 그런데 사람들이 무지해서 그를 함부로 취급했단다.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러 온 엘리야가 고난당한 것처럼 인자도 고난받아야 하고 죽어야 한단다.”
이 말씀은 좀 어려운 말씀입니다. 엘리야는 죽지 않고 하늘에 올라갔고 방금도 변화산에서 나타났었는데 사람들이 엘리야를 죽여 버렸다고요? 그런데 13절을 보면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들었습니다. 13절을 풀어서 말하면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주님이 말씀하시는 엘리야는 아합왕 시대의 그 엘리야가 온다는 말이 아니군요. 그렇다고 변화산에서 본 것처럼 그렇게 잠시 보여주는 것이 아니군요.
말라기 선지자가 엘리야가 오리라고 예언한 말씀과 지금 예수님이 엘리야는 이미 왔다고 하는 말의 의미는 엘리야가 상징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한다는 그 말이고 그게 바로 세례요한이었군요.”
제자들이 깨달은 대로 예수님 앞에 나타나서 메시아의 앞길을 연 사람은 세례요한입니다. 요한은 사람들이 회개하게 하여 세례를 베풀었고 예수님에게도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요한이 바로 말라기 4:5에서 말한 엘리야임을 증명하는 말씀은 누가복음 1:17이 있습니다.
사가랴 제사장이 성전에서 분향할 때 천사가 나타나서 장차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을 테니 아이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성령이 충만하고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도록 회복시킬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우선 겉모습부터 엘리야를 닮았습니다. 마태복음 3:4에 의하면 세례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도 마찬가지로 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띠고 살았습니다. 지금부터 털옷을 입은 엘리야에 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내용은 국민일보 더미션에도 게재했습니다.
제목: “엘리야 선지자는 털북숭이였는가?”
열왕기하 1장에는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아하시야가 크게 다치자 그 병이 낫겠는지 물어보라고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신하들을 보냈다. 신하들이 갈 때에 엘리야가 등장하여 하나님을 두고 에그론의 신에게 가는 것을 책망하며 아하시야는 죽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신하들이 돌아왔을 때 아하시야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 했고 신하들은 “털이 많고 가죽 띠를 띤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하시야는 그는 틀림없이 엘리야라고 대답하였다.
여기서 ‘털이 많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털은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물질이기에 털이 많다고 하면 머리숱이 많거나 삼국지의 장비처럼 수염이 무성한 사람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돈이 많다고 하면 그것은 돈을 많이 가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털이 많은 엘리야는 털보일까? 털을 많이 가졌다는 말일까?
“털이 많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바알 세아르’(בַּעַל שֵׂעָר)이다. ‘바알 세아르’에서 ‘바알’은 주인을 의미한다.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 대신에 다른 주인, 바알을 섬기는 것 때문에 수없이 책망을 받았다.
히브리어에서 주인을 뜻하는 단어로 바알 외에 아도나이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을 뜻하는 단어 ‘아도나이’로 불렀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종류의 주인, 아도나이와 바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던 것이다. 갈멜산에서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상 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아도나이(여호와)와 바알 중에 진짜 주인을 선택하라고 했지만 백성들은 선택하지 못했다. 엘리야는 홀로 바알 선지자 450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엘리야가 승리했다. 그러므로 다수결이 정의라고 절대로 말할 수 없다.
“바알 세아르”에서 ‘세아르’는 히브리어로 ‘털’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바알 세아르’는 “털의 주인” 혹은 “털의 소유자”라는 뜻이다. 성경에서 털이 처음으로 언급되는 곳은 창세기 25:25이다. 여기에서 이삭/리브가의 아들 에서가 온몸이 털옷 같다고 하는데 에서는 완전 털북숭이였다.
털북숭이 에서처럼 털이 많은(바알 세아르) 엘리야도 털북숭이일까? 아니면 털옷을 입은 사람일까? 엘리야는 털보로 이해하기보다 털옷을 입은 사람으로 이해해야 한다.
엘리야를 털옷은 입은 사람으로 이해해야 하는 첫째 이유는 엘리야가 “털이 많고 가죽 띠를 띠었다”는 말이다. 엘리야는 그 털옷을 가죽 띠로 단단히 매어 입었던 것이다.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세례요한과의 일치성 때문이다. 마태복음 3:4에서 세례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띤 사람이다. 그러므로 엘리야도 털옷을 입고 가죽띠를 띤 사람이어야 한다. 엘리야는 왜 세례요한과 일치성이 있어야 하는가?
마태복음 17장에서 변화산 사건 후에 예수님은 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본 내용에 엠바고(Embargo)를 걸었다. 제자들의 궁금해서 묻자 예수님은 엘리야가 이미 왔는데 사람들이 무지해서 그를 함부로 대했고 메시아도 마찬가지로 고난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엘리야가 세례요한인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말라기가 장차 엘리야가 와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할 것이라는 예언은 아합왕 시대의 그 엘리야가 온다는 말이 아니었다. 말라기의 예언은 장차 엘리야와 같은 사람이 와서 엘리야와 같은 사역을 하게 된다는 말이라고 예수님이 설명하신 것이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한 엘리야가 세례요한이었음을 이해했다. 그러므로 엘리야와 세례요한은 모습에서 일치성이 있어야 한다.
세례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다. 세례요한의 모습을 생각하면 엘리야는 털이 많은 털보가 아니라 털옷을 입은 사람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말라기의 예언은 엘리야처럼 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띤 사람, 세례요한을 통해 성취되었다. 이래서 성경(구약)은 메시아 예언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국민일보 더미션> https://www.themiss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81359
엘리야와 세례요한은 털옷을 입고 가죽띠를 띤 겉모습이 닮았습니다. 또한 엘리야와 세례요한은 백성을 회복시키는 사역도 닮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엘리야임을 깨닫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준비시켰습니다. 400년 전에 말라기 선지자가 엘리야가 오리라고 한 예언을 세례요한이 성취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세례요한이 바로 말라기가 예언한 그 엘리야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세례요한을 귀히 여기지 않았고 헤롯은 요한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한 엘리야가 세례요한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행스럽게 1세기에 마태복음을 읽은 성도들도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기 위해 백성들의 심령을 회복한 엘리야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바로 자기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준비시키는 엘리야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2025년에 사는 여러분은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가 바로 엘리야인 줄 깨달았습니다. 내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사람의 마음을 회복시켜야 하는 사람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만이 아니라 여러분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마음을 준비시키는 엘리야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왔을 때 그 당시 사람들이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앞길을 여는 사람인 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듯이 오늘날 세상 사람도 우리가 예수님을 소개하며 구원으로 인도하는 사람인 것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세례요한이 엘리야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인생을 걸었듯이 우리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그들을 회개시켜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게 하도록 인생을 걸어야 하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이 외칠 때 요한을 배척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나중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도 있었듯이 우리가 원색적 복음을 전할 때 분명히 회개할 사람도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다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내가 엘리야인 줄 깨달았습니다.”
첫댓글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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