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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영화 같은 사랑이... (2화)
백화 문상희 (중편소설)
4부) 웨딩마치
천수는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 정읍 본가에 도착했다.
"어머니, 안녕하셨어요?
둘째 천수 왔습니다."
"아니, 천수야!
연락도 없이 평일에 무슨 일로 왔느냐?"
"예~, 어머니!
저 색시감이 생겨서 결혼식을 하려고 내려왔어요!
아버지는 어디 계셔요?"
"그래, 저번에 얘기한 대로 정년퇴직을 하고
국회의원 공천받는다고 정신이 없단다."
"아이고 아버지는 그 머리 아픈 국회의원은
왜 하신다고 그러실까요?
그리고 제가 알기론 지역공천을 받으려고 유명인사들이
줄을 섰다고 들었는데요!"
"그러게 말이다.
그 황소고집을 누가 말리겠니 안 그래?
그나저나 네 색시감은 누군지 데려와서
얼굴이라도 좀 보여주고 결혼식을 해야지!"
"예, 어머니 아버지에게 말씀드리고 다음 주말에
같이 내려올게요!"
저녁 무렵 천수 아버지가 집으로 오셨다.
"안녕하세요 아버지!
그동안 강령하셌는지요!"
"그래, 천수 왔구나!
회사 일은 할만하더냐?"
"예~, 아버지!
저 결혼을 하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래?
색시감은 뭐 하는 사람이냐?"
"예~, 사범대학 나와서 피아노 학원을 하는
스물다섯 살 여자입니다!"
"그래?
다음에 한번 데리고 와보거라!
근본이 있는지 가정교육은 잘 됐는지 좀 봐야겠다."
"예, 아버지!
다음 주에 데리고 오겠습니다."
천수는 부모님께 결혼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
이튿날 바로 방배동으로 향했다.
천수는 피아노 학원에 들렸으나 영희가 없어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벨을 눌렀다.
"띵동 띵동 띵동"
"누구세요"
"저 유천수입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
"응, 우리 손녀사위 왔구먼!
어서 들어오게!"
"예, 안녕하세요 할머니!
영희씨는 어디 갔나요?"
"응, 학원 마치고 지금 씻고 있다네!
자네도 저녁 먹게 식탁으로 가게나!"
마침 그때 영희가 목욕탕에서 나왔다.
"아~, 천수씨 오셨군요!"
"아이고, 영희씨는 화장 안 한 민낯이 훨씬 더
이쁘네요! 하하하 하하하하"
"또 오셨다고 놀리는 거예요?"
"아니요? 아닙니다.
저는 사실대로 말한 겁니다.
그나저나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이번 주말에
당장 데리고 오랍니다."
"아이고 천수씨!
왜 그렇게 서두르는 거예요?"
"우리 이쁜 영희씨를 누가 채어갈까 봐 조바심에
서두른 거지요!"
"천수씨는 여하튼 넉살도 좋으세요!"
"아니요, 아닙니다.
저는 원래가 지극히 사무적인 성격인데
유독 영희 씨에게 만 그렇답니다."
"이제 그만하고 얼른 이리 와서 저녁이나 먹게!"
"예~, 알겠습니다 할머니!"
천수는 저녁을 먹으면서 부모님께 말씀드린
경위를 할머니와 영희에게 말했다.
"할머니, 이번 주말에 영희씨를 데리고 간다고 했으니
할머니가 저를 좀 도와주세요!"
"아니, 저한테는 부탁을 안 하고 왜 할머니에게
부탁을 하세요?"
"아이고 할머니가 이 집에 어른이시고 또
저의 지원군 이잖아요! 하하하하"
"그래, 영희야!
언젠가는 결혼을 해야 하니 기왕이면 빨리
결혼식을 올리게 유서방 따라서 내려가도록 해라!"
"이번엔 딴 데 가지 말고 아침에 집에서 꼭 기다리세요!
아셨지요?"
천수는 저녁을 먹고 두 사람에게 다짐을 받고
집으로 들어갔다.
천수는 주중에 근무를 하고 주말 아침 일찍 방배동으로 갔다.
"띵동 띵동 띵동,
할머니 저 왔습니다."
거실로 들어가자 대답을 미루던 영희가 화장에
열중이었다.
천수는 할머니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영희씨가 어쩐 일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네요?"
"아이고 이 사람아!
그동안 내가 이해를 시키고 구슬렸지!"
"고맙습니다. 할머니!"
천수는 할머니 덕분에 아침을 먹은 후 영희를
데리고 정읍 집으로 갈 수가 있었다.
천수와 영희는 일찍 출발한 덕분에 점심때쯤
정읍 집에 도착했다.
"어머니, 둘째 천수 왔습니다."
"아이고, 우리 며느리감도 왔구먼?
아버지도 방에 계시니까 얼른 들어가거라!"
"아버지, 천수 왔습니다."
천수는 방으로 들어가서 영희와 함께 부모님께
큰절을 올렸다.
"아이고 우리 천수가 어찌 저렇게 이쁜 색시감을
데리고 왔디야?"
천수 어머니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어흠, 어흠, 천수에게 얘기는 들었다.
사범대학 나와서 피아노 학원을 한다고?"
"예, 그렇습니다 아버님!"
"나는 사주팔자고 궁합이고 그런 것 안 따진다.
우리 천수가 어련히 알아보고 선택을 했겠냐!
요즘 결혼 시즌이라 예식장도 복잡하니
이번에 새로 지은 군민회관에서 결혼식을 하도록 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아버지."
영희는 단번에 천수 부모님께 허락을 받았다.
결혼식은 군민회관에서 한 달 뒤 10월 27일
11시로 예약이 되었다.
그리고 결혼식 행사 준비는 천수 아버지가
잘 아는 행사전문 업체에 맡겼다.
정읍 본가는 본가대로 영희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결혼식 준비에 바빴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영희를 위해 분주하게
시집 예물과 예단을 준비했다.
천수는 할머니가 준비한 예물과 예단을 가지고
매주 주말에 정읍 본가를 오갔다.
드디어 10월 27일 11시에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신부화장을 하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영희는
그야말로 눈부신 천사 같았다.
천수는 예복을 입은 상태로 친구에게 말했다.
"야, 홍범아!
신부 측 자리가 텅 비었잖아!
네가 얘기를 해서 친구들 모두 신부 측 자리에 가서
앉아라!
"오케이, 무슨 말인지 알았다 천수야!"
천수는 영희가 민망해할까 봐 친구들을 텅 빈
신부 측 자리를 채우도록 배려를 했다.
드디어 웨딩마치가 울리고 신랑 신부가 입장했다.
천수의 친척과 친구들은 결혼식장이 떠나가도록
박수를 쳤다.
"와~, 꼭 연예인들 결혼식 같아!"
"아니야, 신랑도 잘생겼지만 신부가 꼭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아!"
하객들의 입에서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영희는 너무 긴장이 되어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미소도 지을 수가 없었다.
천수와 영희는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르고 마지막
폐백도 올렸다.
군민회관 식당에 차려진 연회장에는 백 명이
넘는 하객들로 붐볐다.
천수는 연회가 끝나고 회사에서 지원한 버스에 할머니와
영희의 친구들을 태워 보냈다.
영희는 친구들을 먼저 버스에 태우고 할머니를
불렀다.
"할매요, 저 시집보내시느라 정말로 고생하셨어요!
버스가 사당역에 내려준다니까 거기서 집에까지
꼭 택시 타고 들어가세요!"
"그래그래 영희야!
우리 이쁜 영희가 결혼을 하니까 나는 너무 좋단다."
"신혼여행 다녀와서 천수 씨하고 집으로 갈 테니
조심해서 올라가세요!"
"그래그래, 영희야!
신혼여행 잘 다녀오너라!"
할머니는 영희의 손을 꼭 잡은 채 눈물을 훔쳤다.
버스를 떠나보낸 두 사람은 전주에 있는 호텔에서
신혼 첫날밤을 보냈다.
5부) 허니문 베이비
신혼여행을 갈 때도 천수의 아내 사랑은
지극정성이었다.
"자~, 퍼스트레이디!
마나님, 앞자리에 앉으세요!"
"아이 천수씨!
그렇게 까지 안 해도 돼요!"
"마나님, 유기사 출발합니다."
두 사람은 신혼여행지 제주도를 가기 위해
목포로 차를 몰았다.
천수는 미리 예약을 했기에 차에 탄 채로
카페리호에 탑승했다.
"마나님?
일등석으로 모시겠습니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예약한 레스토랑으로
올라갔다.
"우와~, 천수씨 3층 창가에서 바다를 보니까
바다가 너무너무 아름다워요!"
"넵, 마나님을 위해서 미리 예약을 했지요!
하하하 하하하하"
"고마워요 천수씨!"
잠시 후 바닷가재 요리가 나왔다.
"카페리호 예약을 할 때 메뉴판을 보고 영희씨도
좋아할 것 같아서 바닷가재 요리를 주문했어요!"
"오~, 바다향이 물씬 풍기는 가재가 너무너무
맛있어요!"
"아이고 마나님 입맛에 맞으니 다행이네요!"
"고마워요 천수씨!"
"난 이름이 천수가 아니고 여보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턴 여보라고 부르세요 알았지요!"
영희는 부끄러워 천수의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천수는 왜이터를 불러서 지폐 몇 장을 쥐어주고
창가에서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남는 것은 추억과 사진뿐입니다. 마나님!"
영희는 천수의 배려심 깊은 태도에 고마움을 환한
미소로 답했다.
천수는 제주도에 도착한 배에서 내려 파라다이스
호텔로 차를 몰았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호텔 프런트에서 체크인을
하고 객실로 올라갔다.
"아~, 천수씨, 아니 여보!"
제주도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요!
여기 호텔비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우리 마나님께 점수 따려고 스위트 룸으로
예약을 했지요!
사실은 아버지가 돈을 많이 주셨답니다. 하하하하"
"여하튼 고마워요 여보!"
영희는 너무 기뻐서 천수를 껴안아버렸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 허니문 키스를 했다.
영희는 감격에 겨운 마음으로 천수에게 안겨서
포근하게 잠들었다.
천수는 이튿날부터 계획한 대로 여행 코스를 밟았다.
첫 번째로 간 곳은 제주 말 농장이었다.
"여보, 난 말 타는 거 무서워서 못 타요!"
"이것은 조랑말이라 괜찮으니 타 보세요!"
천수는 영희의 엉덩이를 밀어서 말에 태우고
천수도 말에 올라서 한 바퀴를 돌았다.
"어때, 재미있지요?"
"아이고 나는 무서워서 덜덜 떨었어요!
그리고 말을 처음 타서 그런지 종아리와
허벅지까지 아파요!"
"아이고, 우리 마나님이 아프면 안 되지요!
자, 주차장까지 업어줄 테니 여기 업히세요!"
영희는 마지못해 천수에게 업혔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천수씨 널찍한 등이 너무 편해요!"
"우리 마나님이 편하다니까 나도 좋아요!"
두 사람은 남들이 쳐다보든 말든 개의치 않고
콧노래를 부르며 주차장으로 갔다.
영희는 그제야 결혼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제주에서 2박 3일 신혼여행을 마치고
역순으로 목포항구에 내려 정읍으로 향했다.
천수와 영희는 본가에 내려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아이고, 우리 이쁜 며느리가 시부모 선물을
많이도 사 왔구먼!"
"아버지 어머니 선물을 이 사람이 세심하게
골라서 샀답니다.
"그러게 말이다.
여하튼 자손은 다다익선이라 많을수록 좋단다.
그러니까 아들 딸 많이 낳아서 잘 키우거라!"
"예~, 아버님 어머님 알겠습니다."
천수와 영희는 정읍 본가에서 하루를 묵은 뒤
서울로 향했다.
"여보, 자기 집 정리하고 우리 집에서 할머니
모시고 산다는 약속 꼭 지켜야 돼요 알았지요?"
"아이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번 토요일 이삿짐센터에 예약을 해 놓았으니
걱정 붙들어 메세요! 하하하 하하하하"
천수와 영희는 이번에도 할머니에게 드릴
선물 보따리를 할머니 앞에 풀어놓았다.
"아이고 이 사람들아!
시집에 드릴 선물이나 살 것이지
내것은 안 사 와도 되는데 말이야!"
"할매에게 드리려고 조개껍질로 만든 브로치와
진주목걸이도 예뻐서 사 왔답니다."
"그래그래, 우리 손녀사위와 손녀가 최고다 최고여!"
할머니도 선물이 마음에 들어 흡족해하셨다.
토요일엔 천수의 이삿짐을 방배동으로 옮겼다.
"아이고 이제 우리 집이 사람 사는 것 같구먼 그래!"
세 사람은 이삿짐 정리가 끝난 다음 식탁에 앉았다.
할머니는 시골 냄새를 풍기는 청국장을 끓였다.
그런데 식탁에서 청국장 냄새를 맡은 영희가
심하게 구역질을 했다.
"아니, 여보! 왜 그런 거야?
갑자기 어디가 안 좋아요?"
"가만, 가만있어봐!
너희들 만리장성을 쌓은 게 아마 8월 초였지?
그래그래, 벌써 석 달이 지났으니 임신을 한 게야!"
"영희씨, 아니 여보!
정말 임신을 한 거요?"
"아이고 경사가 났구먼 경사가 났어!
이제부턴 태아를 생각해서 몸관리 잘하거라
영희야 알았지?"
"예~, 할매요!
제가 봐도 제가 임신을 한 것 같아요!"
"여보, 내일부터 피아노 학원도 강의 시간을 줄이고
일찍 들어와서 쉬도록 해요 알았지요?"
할머니는 청국장을 치우고 영희의 밥상을 따로
차려주었다.
천수는 월요일 아침 회사 상사들에게 줄 선물을
챙겨서 일찍 출근을 했다.
천수는 아내의 임신 소식을 회사에 알리고
한 시간 일찍 출근해서 한 시간 먼저 퇴근하도록
허락을 받아냈다.
천수의 직장은 여의도였고 회사에서 방배동 까지
30분이면 출퇴근이 가능했다.
천수는 5시 반이면 학원에 도착해서 임신한
영희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갔다.
그리고 마트에 가야 할 때도 영희와 할머니가
얘기한 것을 메모해서 천수가 사다 날랐다.
천수는 주말이면 운동복 차림으로 영희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여보, 이제는 아기를 위해서도 좋은 음식, 좋은
생각으로 걷기 운동도 해야 돼요 알았지요?"
"예~, 고마워요 여보!
지금 생각하니까 당신과 결혼한 게 행운인 것 같아요!
나는 결혼생활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어요!"
천수는 영희보다 다섯 살 위였지만 아내에겐 언제나
존칭을 사용했다.
천수의 아내 사랑은 헌신적이고 지극정성이었다.
겨울이 되어 영희의 배가 점점 불러오고
걷기 운동을 못하게 되자 실내용 스탠드 자전거를
사 와서 운동을 하도록 했다.
눈 내리는 날이면 구두를 신은 영희가 다칠까 봐
업고서 시장을 다녀왔다.
"아이고 여보, 창피하니까 내려주세요!"
"남들은 다쳐서 업힌 줄 아니까 걱정 말아요!"
또한 영희가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할 때 그때서야
천수는 씻으러 들어갔다.
음식을 시킬 때도 영희가 오늘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보고 시켰다.
초여름인 6월이 되자 영희는 태동이 점점 심해졌다.
"할매요, 아기가 계속 발로 차는 것 같아요!"
"그래, 영희야!
산달이 다 되었으니까 그럴 거야!
그놈 노는 걸 보니 분명히 아들일 게다."
"응, 그래요?
어디 나도 한번 느껴봅시다."
천수는 영희의 배에 귀를 대고 태동을 느껴보았다.
"맞아요 맞아!
이 녀석 분명히 아들입니다 아들! 하하하 하하하하"
천수는 팔불출 마냥 소리치며 좋아했다.
"여보, 당신 다니는 산부인과에 미리 입원 예약을
해야겠어요!"
"그래, 유서방!
자네가 전화를 해서 미리 예약을 해두게!"
"예, 알겠습니다 할머니!"
영희는 6월 말이 되면서 정말로 산통을 느꼈다.
영희는 학원 수업을 못할 것 같아 피아노를 치는
같은 대학교 후배에게 학원을 임시로 맡겼다.
산부인과에 예약한 다음날 아침 영희를 차에 태우고
입원을 시켰다.
천수가 회사에서 업무에 열중일 때 직원이 불렀다.
"부장님, 웬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왔는데요?
"응, 그래 바꿔줘요!"
"유천수 아버님, 축하드려요!
잘 생긴 아드님이 태어났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천수는 회사 앞 꽃집에서 꽃다발을 한 아름 사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여보, 고생했어요!
이게 다 할머니가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어디 우리 아들 얼굴 좀 보자꾸나!"
"그래, 우리 유서방을 꼭 빼어 닮았다네!"
천수는 영희와 할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간호사를 통해서 아들을 품에 안았다.
"아이고, 똘방똘방한 우리 아들!
올해가 호랑이 해라서 준수한 호랑이처럼
잘 자라라고 할부지가 호준이라고 이름을 지었단다."
천수는 퇴원을 할 때까지 조기 퇴근을 하고
병원에 붙어있었다.
천수는 아이가 태어났어도 할머니와 영희
그리고 아들에게 정성을 다했다.
호준이가 돌이 되어갈 때 손자가 없었던 할아버지는
돌잔치를 정읍 본가에서 하기를 원했다.
천수는 토요일 아침 영희와 호준이를 태우고
정읍 본가로 내려갔다.
"둘째야, 그리고 에미야!
첫째가 아직도 손주 소식이 없는데
내가 죽기 전에 손자를 안겨줘서 고맙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첫 손자를 보고 좋아서 동네방네
자랑을 하셨고 돌잔치도 거창하게 열어주었다.
영희는 부엌에서 손님 상 차리는 일손을 거들고
있었다.
그때 시어머니가 돼지고기를 삶던 솥뚜껑을 열자
영희는 심한 구역질을 했다.
"아이고 새아가!
너 둘째 임신을 했나 보구나!"
"예~, 어머님 그런 것 같아요!"
"경사여~, 경사가 났구먼 그래!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좀 쉬도록 해라!"
"예~, 어머님 알겠습니다."
이 사실은 전해 들은 천수와 할아버지는 겹경사가
났다면서 좋아했다.
이듬해 사월 영희는 다시 산부인과에 입원을 했고
영희가 좋아하는 라일락 꽃 향기가 날리는
사월 초 둘째 호영이가 태어났다.
호준이가 세 살, 호영이가 첫돌이 지난여름
손자 둘을 돌봐주시던 할머니가 몸살이 났다.
천수는 할머니를 차에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할머니에겐 기력회복 링거를 놓아드리고
몸살약을 처방받아서 집으로 왔다.
"할머니, 점심 드신 후 잊지 마시고 약 드세요!
저는 좀 늦었지만 출근하겠습니다."
"그래요 할매!
할매가 호준이 호영이 돌보시느라 몸살이 났네요!
몸살 다 낳으면 보약 한재 해드릴게요!"
"아이고 괜찮다.
나이 드니까 기력이 떨어져서 그렇지 뭘!"
"오늘은 제가 애들 데리고 학원에 갈 테니까
할매는 약 드시고 푹 쉬고 계세요!"
"그래, 내가 몸살이 났으니 그렇게 해야겠구나!"
천수는 영희와 아이들을 학원에 내려주고
출근을 했다.
영희는 피아노 학원 사무실에 만들어놓은 어린이
놀이방에 아이들이 놀게 하고 강의를 했다.
영희는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편의 차를 타고 집으로 들어갔다.
천수가 초인종을 여러 번 눌러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현관 열쇠를 꽂아 문을 연 천수와 영희는 깜짝 놀랐다.
"할매요~, 할매요~,
영희가 불러도 할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영희는 할머니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할매요, 어디 아프세요?"
영희는 할머니를 흔들었으나 기척이 없었다.
천수는 급히 단골 병원에 전화를 해서 출장진료를
부탁했다.
할머니의 베개 옆에는 편지봉투가 놓여있었다.
"영희야,
사랑하는 손녀 우리 영희야!
에미 애비 없이도 네가 잘 커줘서 고맙구나!
네가 좋은 사람과 결혼도 하고 호준이와
호영이도 낳아서 잘 크고 있으니 다행이구나!
나는 이제 기력도 떨어지고 얼마 못 살 것 같아
이 편지를 미리 써둔다.
그리고 우리 손주사위에게 부탁하건대 지금처럼
가족들을 잘 보살펴 주게나!
우리 영희와 알콩달콩 살면서 호준이 호영이도
자네처럼 멋진 사람이 되도록 키워주게나!
그리고 영희야!
천국에 가서 네 에미 애비를 만나면 우리 영희와
사위, 그리고 호준이 호영이 자랑도 해줄게!
영희야~, 부디 행복하게 살거라!
우리 가족을 사랑하는 할미가!"
조금 후 단골 병원 의사가 집으로 와서 진료를
했지만 사망진단을 내리고 돌아갔다.
영희와 천수는 할머니를 붙들고 한없이 울었다.
호준이와 호영이도 엄마 아빠를 따라서 울자
집안은 울음바다가 되어버렸다.
영희는 외할머니 영전에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서 올렸다.
할매꽃
할매꽃이 피었네
하늘하늘 할매꽃 잎새가 눈이 되어 내리네
할매가 보고 싶어 하늘을 보니
눈이 녹아 흐르는 건가
눈물이 흘러내리는 건가
그리움의 강둑이 터진 건가
우리 할매 나 어릴 적에
동대문시장에서 곱디고운 천을 사다가
이쁜 한복 손수 지어 입히시고
양갈래 머리 땋아 댕기 매고
노리개 달아주시며 세상에서 제일 고운 내손녀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왔누 ~~
활짝 웃으시며 꼭 안아주시던 할매
학교 다닐 땐 끝날 때쯤이면
교문 앞 저만치 서서 기다리시다
뛰어와 안아주시며
오늘은 뭐 배웠냐며 궁금해하시던 할매
애지중지 키워주신 할매덕에
나 커서 시집갈 때 뒤돌아서 눈물 바람 보이시며
시집가는 걸 서운해하신 할매
첫아이 낳았을 때
금이야 옥이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며 제대로 한숨
눈도 못 부치고
증손자 안고 어르고 나 키울 때처럼
궂은일은 다하시며 행복해하시던 할매
할매를 생각하면 왜 눈물이 나나요
할매는 꽃이 되어 날리고
할매가 그리운 손녀는 눈물 바람꽃이 되어
할매 사진을 껴안아 봅니다
할매 하고 부르면
오냐~
할매 여기 있다 할 것 같아
바람소리에도 문 열어 봅니다
할매꽃이 내 인생길 길잡이가 되어
할매가 극진히 아끼던 손녀가
할매가 되어 손자 재롱에 웃고 있네요
할매 보고 있나요?
할매 한테 받았던 사랑을 손자에게 주면서
말 알아들을 때쯤
할매꽃 이야기를 할게요
보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할매,
우리 할매 그립습니다.
천수와 영희는 지인들에게 부고를 보낸 후
장례를 치르고 외할머니를 천국으로 보내드렸다.
할머니가 평시에 농담처럼 하신 말씀대로 유골은
한강에 뿌려드렸다.
영희는 더욱이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고 외할머니에게
업혀서 컸기에 가슴이 더 미어졌다.
영희는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슬픔에 빠졌다.
6부) 남편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영희는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도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그러나 남편 천수의 위로와 지극정성인 보살핌으로
제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여보, 가신 분은 가신분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당신이 그러고 있으니 애들도 웃지도 않아요!
제발 마음을 추스르고 기운을 차려요!"
"예~, 알았어요 여보 고마워요!"
영희는 아이들 걱정에 마음을 추스르고 가을이
지나면서 차츰 정상적인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일로 남편이 일본 출장을
가게 되었다.
일본 판로 개척을 위해 3주간의 남편 출장이었다.
영희는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과 떨어져서 지내게
되었다.
영희는 항상 정겹게 아이들을 돌봐주셨던 할머니도
돌아가셨기에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다.
천수는 일본 출장을 가서도 매일 밤 국제전화를
걸어와 영희를 달래주곤 했다.
"호준아, 호영아!
자 오늘도 학원에서 놀아야 하니 가자꾸나!"
피아노 학원 사무실에 작은 놀이방을 만들었다지만
영희는 수유와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느라
피아노 강의에도 소홀했다.
영희는 어쩔 수 없이 후배인 프리랜서 피아노 강사를
다시 불러서 강의를 맡겨야 했다.
영희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영희 언니예요?"
"응, 보연아!
나 좀 도와줬으면 싶은데 요즘은 뭐 해?"
"예~, 유학준비하느라 아직은 쉬고 있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내가 아이들 둘 키워가며
학원을 할려니까 너무 힘들어!
유학 갈 때까지 나 좀 도와주면 안 될까?"
"그래요, 언니!
나도 마침 용돈이 궁했는데 좋아요!"
영희는 후배 보연이에게 피아노 학원을 맡기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잠시 창가를 바라보던
영희가 소리쳤다.
"호준아, 호영아!
바깥에 첫눈이 온단다.
자, 우리 호영이도 첫눈이 오는 걸 볼까?"
세 살 베기 호준이는 소파에 기어올라 소리쳤다.
"엄마, 엄마, 저게 눈이야 눈?"
"그래, 저기 하얀 게 바로 눈이란다 눈!"
아이들도 엄마가 좋아라 하니까 덩달아 멋모르고
좋아했다.
그때 전회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얘들아, 아빠에게 전화 왔나 보다!"
"여보, 나야 나!
나 없는 3주간 애들보느라 고생했어요!
일본 출장 마치고 내일 오후에 서울로 갈 거야!"
"아이고 여보!
일식도 안 좋아하는 당신이 나보다 더 고생했지요!
내일 시장 봐서 당신 좋아하는 동탯국 얼큰하게
끓어놓을게요!"
"그래요 여보!
내일 저녁은 집에서 먹도록 할게요!
잠깐 애들 목소리 좀 들려줘요!"
"얘들아, 아빠에게 인사드려야지?"
"아빠, 엄마, 아빠빠!"
"그래, 우리 호준이, 호영이 엄마 말 잘 들어요?"
"응, 아빠빠!"
아이들도 아빠 목소리가 반가워서 전화기에
귀를 대고 소란을 떨었다.
"여보? 조심해서 들어오세요!
사랑해요 여보!"
"응, 나도 당신 사랑해요!
내일 저녁에 봐요~!"
이튿날 영희는 피아노 학원 놀이방에 아이들을
두고 시장으로 갈 준비를 했다.
"보연이 후배~!"
"네~, 선배 원장님!
"애들 사무실 놀이방에 두고 시장을 좀 다녀올게!
우리 안으면 그냥 두면 돼요!"
"네~,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영희는 천수가 좋아하는 동태와 두부김치 재료를
사서 학원으로 돌아왔다.
"보연이 후배, 오늘도 고생했어요!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쉬고 월요일에 봐요!"
"네~, 선배 원장님!
그럼, 월요일에 나올게요 수고하세요!"
영희는 쌍둥이 유모차에 호준이와 호영이를
태우고 눈길에 조심조심 집으로 돌아왔다.
어젯밤 눈이 오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서 영희는
아이들에게도 모자와 목소리를 해줬다.
집으로 돌아온 영희는 남편이 좋아하는 동탯국과
두부김치를 열심히 준비했다.
저녁 겸 반주로 먹을 두부김치 요리도 마친
영희는 남편을 기다렸다.
"분명히 7시쯤 온다고 했는데 왜 아직 안 올까?"
보행기를 타고 놀던 아이들도 아빠, 아빠빠를
부르며 기다렸다.
여덟 시가 조금 지나서 전화벨이 울렸다.
영희는 비행기가 연착해서 이제야 왔나 보다
하고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당신이에요?"
"저~, 유천수 씨 부인되시는가요?"
"예~, 제가 집사람입니다."
"예, 여기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입니다.
환자분 지갑에서 명함을 보고 전화드렸습니다."
"아니, 세브란스병원엔 왜요?"
"네~, 제가 경찰관에게 듣기론 빙판길에 차가
전복되어 구급차로 실려왔다고 들었습니다.
보호자가 빨리 병원으로 오셔서 수술과 입원
절차를 밟아주셔야 합니다."
"네, 여하튼 알겠습니다."
영희는 전화를 끊고 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신이 없었다.
남편의 사고소식에 덜덜덜 떨고만 있던 영희는
정신을 가다듬고 정읍 시댁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머님, 저 호준이 어미입니다."
"그래그래, 얘들은 잘 크고 있는가?"
"예, 어머님!
그런데 호준이 아빠가 일본 출장에서 돌아오다가
눈길에 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났답니다.
병원에서는 빨리 보호자를 오라고 하는데요!
전 애들을 재운다음에 택시를 타고 가보도록 할게요!
아버님께 말씀을 드리고 올라오셔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호준이 큰아버지에게도 연락을 해주세요!
호영이가 전화번호 노트를 다 찢어놔서 전화번호가
없답니다."
"그래, 알았다 에미야!
그나저나 얼마나 다쳤다고 그러던가?"
"저도 모르겠어요!
의식이 없다고만 들었어요!
여하튼 아이들 재우고 저부터 택시 타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아이고, 이를 어쩌면 좋으냐!
알았다 알았어 에미야!
내일 첫 기차 타고 올라가도록 할게!"
영희는 안절부절못하고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잠들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우유를 다 먹은 호영이부터 잠들었다.
영희는 호준이를 토닥거려서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부리나케 도로로 내달렸다.
"택시, 택시, 여기요!"
그러나 퇴근시간이 되어 택시가 서질 않았다.
순간 영희는 예전에 남편이 택시 잡을 때를
생각하며 더블을 외쳤다.
"택시, 택시, 신촌 더블이요 더블!"
영희는 손으로 브이자를 가리키며 택시를 불렀다.
그제야 택시가 영희 앞에 멈추었다.
"아저씨, 요금은 더블로 드릴 테니까
빨리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가주세요!"
"예~, 급하신 모양이네요 손님!"
"예, 남편이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있답니다."
"손님, 안 그래도 눈길 빙판길이라 미끄러워요!
여하튼 최선을 다해서 가도록 하겠습니다."
영희는 뒷좌석에 앉아서 좌불안석을 못하고 꼭 쥔
손바닥엔 땀이 솟아났다.
영희는 한 시간이 지나서야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영희는 다급하게 응급실 접수처 문을 두드렸다.
"간호사님, 간호사님!
유천수 씨 어디 있나요?"
"예~, 차트 기록을 살펴보고 말씀드릴게요!"
"예, 빨리 좀 부탁드립니다."
차트를 한참 살피던 간호사가 말했다.
"응급처치와 엑스레이 촬영을 마치고 105호
중환자실에 있답니다.
여기 보호자분 성함과 주민등록번호 써주시면
간호사가 안내해 줄 겁니다."
영희는 보호자 기입란에 사인을 하고 간호사를
따라갔다.
수간호사 모자를 쓴 간호사가 물었다.
"어느 분 보호자 되시나요?"
"예, 유천수 씨 보호자입니다."
"네~, 저기 창문 쪽에 있는 환자입니다.
응급처치로 맥박은 뛰는데 의식은 없답니다.
조금 후 열 시쯤 과장님이 회진을 오실 때
자세히 물어보세요!"
천수는 찢어놓은 환자복을 입고 오른쪽 팔과 다리에
붕대를 감은채 손과 코에는 링거줄을 매달고 있었다.
영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천수의 손목을 잡고
흐느꼈다.
"여보 나 왔어요!
호준이 호영이 아빠, 대답 좀 해보세요!"
영희는 아무런 기척이 없는 남편의 손을 잡고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저는 종교는 없지만 우리 남편 좀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시면 하느님을 믿겠습니다."
영희의 기도에도 남편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영희는 잠시 후 주치의가 들어오는 바람에 눈을 떴다.
주치의는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또 환자의 눈까풀을
뒤집어보고 여러 가지 진료를 이어갔다.
"간호사, 이 환자 심박수와 맥박 그래픽 차트 좀
가져오세요!"
주치의는 환자 상태와 차트를 번갈아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보호자에게 말했다.
"환자 보호자 분!
사고 기록에는 조수석에 탔다가 차가 전복되면서
유리를 뚫고 튕겨져 나왔답니다.
운전자는 현장에서 사망했고요 환자는 응급실에서
회생 응급치료를 받았습니다.
부러진 팔과 다리는 깁스를 하면 된다지만
문제는 심박수와 맥박이 불규칙해요!
인명은 재천이라 했으니 기다려봅시다."
"예, 의사 선생님!
제발, 제발, 우리 아기아빠 좀 살려주세요 예?"
"예~, 저희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아침에 회진 올 때까지 간호사가 체크를 하고 있으니
상태가 호전되도록 기다려봅시다."
주치의는 다른 환자를 봐야 한다며 자리를 이동했다.
영희는 남편을 위해 기도를 하면서도 애들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 세상에 호준이 호영이를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희는 새벽에 어쩔 수 없이 보연이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선배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응, 보연이 후배 새벽에 전화를 해서 미안해!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있어요!
애들은 재워놓고 왔지만 아침이 문제야!
당분간 학원은 못 열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보연이 후배가 당분간 우리 애들 좀
봐줘요!
내가 은혜는 잊지 않고 갚을 테니 부탁해요!"
"아이고, 어쩌다가 그런 사고를 당했데요?"
"응, 김포공항에서 회사 직원과 집으로 오다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차가 전복이 됐다네요!
회사 동료는 사망하고 남편은 지금 의식이
없는 상태야!
그러니까 당분간 학원은 접고 애들을 좀 봐줘요!"
"예, 알았어요 선배님!
어차피 잠을 깼으니까 얼른 준비해서 가볼게요!"
"그래요 보연이 후배!
분유는 식탁에 반찬은 냉장고에 있으니까
애들에게 먹이도록 부탁해요!"
영희는 공중전화를 끊고 다시 중환자실로
들어가서 남편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아까와는 달리 남편의 손이 싸늘했다.
"간호사님, 간호사님, 여기 좀 봐주세요!"
새벽이라서 잠시 졸고 있던 간호사가 뛰어왔다.
"간호사님, 아까보다 손이 차가워요!
빨리 좀 봐주세요!"
간호사는 급히 인터폰으로 의사를 불렀다.
의사는 맥박을 확인하고 청진기를 가슴에
대고 확인을 하더니 다급하게 소리쳤다.
"환자분 밖으로 내보내고 빨리 E GEN (심폐소생술)
준비하세요!"
영희는 간호사에게 떠밀려 밖으로 나왔다.
대기실 의자에 앉은 영희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리며 고개를 숙인 채 흐느꼈다.
"제발, 제발, 우리 남편 호준이 호영이 아빠를
살려주세요!"
영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영희는 간호사가
어깨를 흔들어서야 눈을 떴다.
"보호자분 중환자실 주치의 방으로 들어가 보세요!"
간호사는 주치의 대기실 문을 열어주었다.
"보호자분!
제 말을 잘 들으세요!
환자는 병원 응급실에 올 때도 의식이 없었습니다.
저희 대학병원에서는 최신 의료장비로 응급처치를
하고 의료진도 최선을 다했지만 안타깝게도
조금 전 사망하셨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시고 마지막 인사를 드리세요!"
영희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간호사가 계속 흐느끼는 영희를 부축해서
입관실로 데리고 갔다.
"보호자분!
슬픈 마음은 알지만 여기 사망진단서에 서명을
하시고 안으로 들어가세요!"
영희의 눈에는 눈물로 얼룩져서 글씨가 보이지도
않았다.
간호사가 손수건을 건네고 눈물을 닦은 후 영희는
억지로 서명을 했다.
영희는 입관실 방으로 들어가서 남편을 붙들고
오열을 했다.
"여보,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라고요!
우리 호준이 호영이는 어떻게 살라고요!
이렇게 허무하게 가셔도 되는 겁니까?
제발, 말 좀 해보세요 여보!
이렇게 가실 거면 왜, 저와 결혼을 했냐고요!
이별 인사라도 하시고 가실 것이지 안 그래요?"
영희는 이미 망자가 된 남편의 가슴에 엎드려
소리치며 한없이 울었다.
복받치는 설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남편 유천수는 영희와 아들 호준이와 호영이를
남겨둔 채 결혼한 지 만 삼 년 만에 저세상으로 떠났다.
(독자 여러분 3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