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한 사람♡
성경: 디모데후서 1장 15~18절
찬송: 368, 384, 400, 532
설교: 이 경준 목사님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디모데후서 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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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는 여러 인종이 혼재하여 있습니다. 다른 피부색, 그리고 또 다른 생김새와 언어와 풍습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모두가 인간(human)이라는 같은 종(種)으로 분류됩니다. 인간에게는 인격이 있습니다. 인격은 본래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것으로서 고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당신의 성품을 닮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를 사랑할 줄 알고, 상대를 배려하면서 살아가기를 좋아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신실합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인간답다.라고 합니다,
인간의 모습은 원래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에게서 돌연변이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 아닌 악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돌연변이 성품은 전파력이 강해서 많은 사람을 감염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구별하여 사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곧 고상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습니다. 이해하고, 베풀고, 돕기를 즐기기 때문입니다. 사람다운 사람은 이런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정의롭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정겹고, 함께 있고 싶고, 헤어지면 또 만나고 싶어집니다.
사도바울에게는 그런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고난에 처하기 전에는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모두 다 떠나가 버리고 그의 곁에는 오네시보로만 있었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을 떠난 사람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고난을 받게 되자 배반하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들의 떠남이 섭섭하였던지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하여 그 사정을 알렸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신실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쉽게 배반하여 상대의 신뢰를 깨뜨리는 사람입니다.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돌아서서 비방하는 말을 잘하며 항상 자기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거짓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많은 사람이 괴로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같이 있으면 괴롭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정치권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는 쪽입니까? 아니면 반대로 분위기를 깨뜨리고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가져다주는 쪽입니까? 원하기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바울과 같이 동역을 했던 사람입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되자 '부겔로'와 '허모게네'와 에베소에 있는 여러 사람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재판 때 와서 증언을 해 줄 것을 청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바울의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어려움을 당할 때 찾아와 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입니다.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친구이기 이전에 동역자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하여 바울과 함께 목숨까지 버리기로 약속을 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울뿐만 아니라 주님까지 배반한 것입니다.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성경에서 배신자로 낙인이 찍힌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원히 낙인찍힌 존재가 된 셈입니다.
반면에 본문을 보면 다른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오네시보로'입니다. 이 사람은 ‘부겔로’와 ‘허모게네’와 전혀 반대되는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 (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또 저가 에베소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편지내용에 고마움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바울을 외면하고 다 떠나버렸는데 오네시보로만은 옥살이를 하는 바울을 찾아와서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위로하며 수발을 들었던 것입니다. '오네시보로'라는 이름의 뜻은 ‘유익을 가져오는 자’라는 말입니다. 그 이름의 의미와 같이 '오네시보로'는 사도바울에게 많은 유익과 기쁨을 안겨주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들고 지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오네시보로'와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게 되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네시보로’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이 말은 '오네시보로'가 바울을 찾아와 위로해줌으로 마음에 위로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가 바울을 어떻게 상쾌하게 해 주었는지는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있지는 않지만, 바울에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베풀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아가면서 사회와 교회에서 그리고 친구와 가족들에게 배신자라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신의를 지키며 헌신하여서 이웃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십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나 교회에 필요한 사람은 '오네시보로' 같은 신실한 사람입니다. 자기에게 손해가 되면 쉽게 등지고 떠나버리는 '부겔로'와 '허모게네' 같은 사람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서도 변절하지 않는 신실한 사람이 말입니다. 우리가 이 같은 사람이라면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은 위안을 받고, 행복을 느낄 뿐만 아니라 그들도 남들을 위한 봉사와 희생을 베풀 수 있는 신실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세상을 밝히고,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믿는 사람들이 오네시보로와 같이 신실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신실한 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에서 두 종류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자기에게 손해가 되면 쉽게 등지고 떠나버리는 '부겔로'와 '허모게네'와 같은 사람과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서도 변절하지 않는 신실한 ‘오네시보로’와 같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나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모든 사람에게 위안이 되고 행복을 주는 사람, 남들을 위한 봉사와 희생을 베풀 수 있는 그런 신실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좋은 교회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좋은 교인이 되게 하시고, 좋은 친구와 동료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좋은 친구와 동료가 되게 하시며, 좋은 남편과 아내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좋은 남편과 아내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사랑과 섬김이 교회를 바로 세우고, 세상에서 칭찬받으며,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되는 그리스도의 향기 나는 삶이 되게 하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올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