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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1 주일설교
구원자에게 여전히 감사하고 있습니까?
다니엘 11:5
다니엘 11장은 BC 538년에 천사가 다니엘에게 해준 예언입니다. 이 예언은 향후 600년가량 진행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내용들은 역사학자가 아니라면 평소에 접할 기회가 없던 내용입니다. 그런데 하나씩 들여다보면 이 예언은 너무나 정확해서 기절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교훈도 있습니다.
2절은 고레스 이후에 등장할 바사의 왕들에 관한 예언인데 지난주에 설교했습니다. 바사 제국은 아하수에로 왕의 헬라 정복 시도가 실패한 이후 점점 약해지다가 건국한 지 220년 만에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3절이 말하는 “한 능력 있는 왕”은 헬라를 세운 알렉산더를 말합니다. 알렉산더는 BC 334년에 거대한 바사 제국을 점령하여 전 세계를 헬라어로 통일했습니다. 아리스토텔스의 제자였던 알렉산더 영향으로 전 세계에 학교가 세워지고 헬라의 철학이 세계로 퍼졌습니다.
하지만 4절은 알렉산더가 세계를 정복해 놓고 갑자기 죽을 것을 예언하는데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가 죽자 부하들이 후계자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그중에 안티고노스가 터키 지역을 차지하고 알렉산더의 나라 전체를 통일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안티고노스의 뜻대로 되지 않고 터키와 시리아 지역은 셀레우코스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 남쪽 이집트 쪽을 차지한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입니다. 5절에서 예언한 남방의 왕이 바로 프톨레마이오스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름이 길어서 사람들이 프톨레미라고 부르기도 하고 영어권으로 가면서 톨레미로도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역사책에서는 프톨레미/톨레미 둘 다 쓰이고 있습니다.
그가 세운 나라는 흔히 톨레미 왕국이라고 부르는데 275년간 유지되다가 BC 30년에 로마에 정복되었습니다. 톨레미 왕국의 마지막 왕은 여러분이 잘 아는 클레오파트라입니다. 그녀는 7개 언어를 구사하는 똑똑한 여왕으로서 로마의 장군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사이에서 줄타기했으나 이집트의 멸망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름을 들여다보면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톨레미의 정식 이름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그의 이름이고 “1세”는 후대의 동명이인과 구분하는 숫자인데 중요한 것은 이름 뒤에 붙은 “소테르”입니다. 소테르(Σωτήρ)가 중요한 이유는 그 뜻이 헬라어로 구원자(혹은 해방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소테르(Σωτήρ)라는 헬라어가 생소할 것 같지만 사실 이 말은 익숙한 단어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박해 속에서 서로를 향해 신앙 고백을 하며 상대도 신자인지 확인하는 암호가 있었는데 바로 물고기입니다. 물고기는 헬라어로 익투스(ἸΧΘΥΣ)인데 이를 풀어보면 이렇게 됩니다.
Ι (요타) – Ἰησοῦς(예수)
Χ (키) – Χριστός(그리스도)
Θ (테타) – 하나님의(Θεοῦ)
Υ (윕실론) – Υἱός(아들)
Σ (시그마) – Σωτήρ(구원자)
여기서 Σ(시그마)는 바로 소테르(Σωτήρ 구원자)의 이니셜입니다. 그렇다면 이집트의 왕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름에 왜 소테르(구원자)가 붙었을까요?
이 이름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그에게 구원자라는 이름을 붙여준 사람들은 로도스 사람들입니다. 로도스는 에게해에 있는 한 섬나라인데 터키 남서쪽 해안에 가깝지만 오늘날 그리스에 속해있습니다. 로도스 외에도 에게해의 섬은 거의 그리스 영토입니다. 요한이 계시를 받은 밧모섬도 터기에서 굉장히 가까운데 그리스 영토입니다.
여러분에게 로도스가 생소한 것 같지만 성경에도 나오는 이름입니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오는 길에 에베소의 장로들과 작별한 후 고스 다음으로 통과한 항구가 ‘로도’인데 그 로도가 바로 로도스 섬입니다.
(행 21: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이처럼 로도스는 지중해를 여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섬입니다. 그래서 지중해 항해와 무역에서 굉장히 중요한 섬입니다. 로도스는 독립국으로 지내며 무역을 통해 돈을 벌고 있었는데 BC 304년에 북쪽을 차지한 안티고노스가 자기 아들을 사령관으로 세워서 로도스를 정복하려 했습니다. 로도스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침략이 불편한 것은 로도스 사람만이 아니었습니다. 안티고노스가 로도스를 차지하면 지중해 패권을 장악할 것이고 그러면 이집트를 다스리던 프톨레마이오스가 그만큼 위축됩니다. 그래서 프톨레마이오스는 함대를 보내어 로도스를 도와주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막대한 해군과 군수 물자를 보내어 로도스를 도와 주자 안티고노스의 아들 데메트리오(Δημήτριος)가 물러갔습니다. 그 덕분에 로도스는 멸망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로도스 사람들은 프톨레마이오스에게 열광하며 그를 소테르(구원자)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름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가 정식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로도스 사람들의 마음이 바뀝니다. 처음에는 감사했지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영향력이 커지자 그를 부담스러운 존재, 자기들에게 간섭하는 세력으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한때 “구원자”라 열광했던 존재는 결국 미움의 대상이 됩니다. 이처럼 사람은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달라집니다.
이와 유사한 일은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1950년 6.25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은 거의 멸망 직전까지 갔습니다. 낙동강 전선에서 나라의 생명이 꺼져갈 무렵 우리를 도운 것이 유엔군이었고, 그 유엔군의 약 90%가 미군이었습니다.
미국의 젊은이 수만 명이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공식 통계로 36,940명입니다. 부상자는 10만 4천 명입니다. 내 아들 하나가 어느 미개한 나라를 구하겠다고 가서 죽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미국은 수만 명이 죽어가면서 우리나라를 구해 주었습니다. 각종 군수 물자는 얼마나 쏟아부었습니까? 내 돈을 가난한 나라에 100만 원만 보내려고 해도 손이 떨리는데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물자를 제공받았습니다.
물론 미군이 우리나라를 도와줄 때 희생과 봉사의 순수한 마음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태평양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해 국제정치적 판단과 이익을 위해 도운 면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프톨레마이오스가 로도스를 도와서 구원해 준 것과 비슷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미군이 정치적 목적으로 대한민국을 구원해 주었다고 하더라도 분명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그 당시 우리에게는 절박함이 있었고, 그 도움은 실제였고, 그 희생은 고마운 희생이었습니다. 우리나라를 구하기 위해 미국의 유력한 가문의 젊은이 수만 명이 우리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쳤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고 아들의 생명은 본인의 생명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수만 명이 죽어주면서 이 나라를 구해 주었습니다. 미국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북한 인민이 되어 신음하고 있을 것입니다.
미국은 우리나라를 세 번 구해 주었습니다. 2차 대전을 이겨 일본으로부터 구해 주었고, 6.25 한국전쟁에서 북한으로부터 구해 주었고, 전쟁 후 거지 나라의 가난으로부터 구해 주었습니다. 미군이 주둔했기에 안보는 미국에 맡기고 우리는 경제개발에 힘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미국을 사용하여 우리나라에 복을 주셨습니다. 미국이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신앙을 전수받을 수 있었으며 또 어떻게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을까요? 해방 전에는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믿음이 뜨거웠지만 지금 북한 교회에는 지하에 숨어든 일부 교인밖에 없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영화 [신의 악단]에서는 믿음을 숨기고 살던 두 명의 고급 장교가 가짜 찬양단에서 찬양하다가 그 믿음이 되살아나서 결국 기꺼이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제가 영화를 보고 나서 “복음은 위험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 중에는 미국의 희생을 폄훼하며 그 모든 희생을 “다 자기네 패권 때문이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을 점령군으로 취급하고 북한이 사용하는 미제국주의자라는 표현까지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를 구원자, 소테르라고 부르며 고마워하다가 시간이 지나자 은혜를 잊은 로도스 사람들처럼,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이 미국을 미워하며 양키고홈(Yankee Go Home)을 외치는 것은 배은망덕입니다.
마치 못된 자식이 목숨을 바쳐 낳아주고 길러 준 부모에게 누가 낳아 달라고 했느냐고 덤비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연습하도록 우리에게 보낸 분입니다. 그러므로 부모 공경을 통해 하나님 경외를 연습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배은망덕하고 구원받은 은혜를 저버리는 것은 그 옛날 로도스 사람들과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신자도 종종 하나님께 배은망덕합니다.
사람이 도와주고 구해 주는 것은 선의도 있고 자신의 이익도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선의가 부담이 되고 부담이 커지면 미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서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도움을 받을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입니다. 게다가 인류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수없이 깨뜨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끝내 언약을 지키셔서 독생자를 보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은혜를 쏟아부으실 뿐 우리 위에 군림하지 않으십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로도스를 구해 주었을 때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무런 흑심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소테르(구원자)가 되시기 위해 직접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외면당할 것을 알면서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알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시간이 지나도 부담이 되지 않는 구원자, 영원히 변하지 않는 참 소테르이십니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수많은 소테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그 소테르들은 모두 지나갑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토록 우리의 소테르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사람들이 불러준 소테르였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소테르가 되셨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믿으면 우리는 저절로 ἸΧΘΥΣ(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소테르)에게 감사하게 됩니다. 그 분을 왕으로 삼고 그에게 순종하게 됩니다.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게 됩니다. 이 믿음과 감사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댓글 https://youtu.be/uU_SFwc_dts?si=VUb5l8PzujHsj_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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