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下絶色(천하절색)의 도시 강릉, 文香을 일궈낸 여인들
남진원(시인. 문학평론가)
강릉은 역사적으로 볼 때 기이(奇異)한 곳이다. 기이하다는 뜻은 풍광이 수려한 곳이요, 뛰어난 인물이 많이 난 곳이라는 뜻이다. 특히 강릉은 시대 정신을 이끄는 석학이나 우뚝한 문사 예술가들이 많이 태어난 곳이다.
강릉을 예향, 문향이라 하는 말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곳이 강릉이다.
강릉의 수려한 자연 환경은 절세가인을 낳았다.
광활한 대륙을 자랑하는 중국에도 미인들이 있었지만 강릉의 미인들과는 그 양상이 매우 다르다. 중국의 미인들은 모두 망국의 길로 이끈 주역이었다. 말희는 하나라를 망하게 하고, 달기는 상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포사는 주나라를 망국으로 이끌었고 서시는 오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하였다.
강릉의 미인들은 예와 덕을 갖춘 현숙함이 있었다. 모두 심덕을 갖춘 여인으로 자제들에 대한 교육이 지대하여 칭송의 대상이 된다. 또한 강릉은 빼어난 환경과 걸맞게 미인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명주가(溟洲歌)의 전설이 깃든 월화거리의 주인공, 무월랑과 연화낭자의 러브 스토리에서부터, 헌화가와 해가사의 주인공인 수로부인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로부인은 강릉태수인 남편을 따라 올라오는 도중에 두 번이나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그 까닭은 수로의 미모 때문이었다. 강릉에 거의 도착하였을 무렵, 수로는 벼랑에 핀 철쭉꽃의 아름다움에 반한다. 그리고 그것을 따서 갖다 줄 사람이 없느냐고 주위를 둘러보며 묻는다. 그러나 그 까마득히 높은 벼랑에 올라가서 꽃을 따올 젊은 사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였다. 암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말한다. 암소를 잡은 이 손을 놓게 해 주시고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말 꽃을 꺾어 바쳤는지는 알 수 없어도 글의 내용을 유추해 보면 노인은 꽃을 꺾어 바쳤을 것이다. 수로부인은 암소를 잡은 그 노인의 손에서 그 줄을 놓아주게 하였을 것이다. 이런 모습에서 나이를 초월하여 아름다운 사랑의 교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아름다운 사람이 자신에게 마음을 내어준다면 목숨까지 아깝지 않게 버릴 수 있었던 것을 우리는 많은 고사에서 읽었다. 어찌 노인이 꽃을 꺾어 바치지 않았으리오. 수로부인은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이번에는 동해의 해룡에게 납치당한다. 사람들이 모여 언덕에서 막대기로 땅을 치며 위협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를 듣고 해룡은 수로를 놓아주었다. 이 노래가 해가이다.
이 헌화가와 해가는, 아름다운 여인이 강릉 땅으로 들어오는 배경적인 이야기이다. ‘헌화가’에서는 사랑의 정표인 꽃과 아름다운 자연 비경을 노래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해가’에서는 미인이 겪어야 하는 위험을 극복하는 과정이 집단적 행위의 해결로 그려져 있다. 모두 아름다움이 갖고 있는 위험성과 위험을 극복하는 이야기이다.
수로부인은 성이 김씨이고 이름이 수로이다. 성덕왕 때 당나라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김지량의 따님이다. 후일 강릉 태수 순정공의 부인이 되어 남편을 따라 강릉으로 왔다. 그 후로 강릉은 미인이 많이 사는 고장이 되었다.
조선시대 홍장은 천하절색 강릉의 기생이었다. 박신은 관리가 되어 강릉에 내려왔다가 홍장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한양으로 올라간 후에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박신이 안찰사가 되어 강릉으로 다시 내려왔다. 그 옛날 홍장과의 사랑을 나누던 경포 호수에 나갔다.
“천년 풍류를 잊지 못해서 신라 화랑 안상은 아름다운 배 위에서 천하절색 홍장을 다시 불렀네.”
배 위에는 커다란 글씨로 시가 적힌 휘장막이 바람에 펄럭인다. 안찰사 박신이 가까이 가 보니 죽었다던 홍장이 뱃전에서 박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호수 위를 두 사람의 사랑이 백조처럼 미끄러져나갔다. 그때 배위로는 둥근 달이 내려앉을 듯 떠 있었다.
이처럼 강릉은 격조 높은 낭만과 서정, 사랑이 안개가 되어 흐르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21세기 강릉의 시내를 걸어가다 보면 무수한 천하절색의 미인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디 강릉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얼굴만 예쁜 것일까?
강릉 여인들은 미모에다 자신감이 있고 슬기가 있고 그렇기에 적극적인 삶을 살며 자녀 교육에 힘을 쏟았던 것이다. 그 영향으로 지금도 강릉은 자녀교육에 대한 어머니들의 의지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이다.
조선시대 기호학파의 영수인 이율곡은 성리학의 우뚝한 산맥을 이루었다. 그 어머니는 신사임당이다. 즉 율곡의 어머니는 강릉 여인이라는 말이다. 또 어릴 때 재주꾼이란 소문이 널리 퍼지고 세종이 크게 쓸 인물이라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매월당 김시습 역시 본관이 강릉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김시습은 강릉에 와서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생육신의 한 사람이고 조선 최고의 학자이며 최초의 한문소설 작가인 김시습은 그 어머니가 강릉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분들의 자제들은 하나 같이 걸출한 인물이 되었다. 허균과 허난설헌은 조선 사회를 진보적 사상으로 일깨우며 작품 활동을 한 분들이다. 불평등과 차별을 없애고자 한 그들은 사회개혁을 꿈꾸는 혁신의 주역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김시습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을 내어놓았는가 하면, 허균은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을 쓴 위대한 작가이기도하다. 모두 그 뒤에는 강릉의 여인이며 위대한 모성애를 가진 어머니가 있었다.
이율곡은 ‘호송설’이란 글을 지었는데 강릉에 소나무를 심고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처럼 강릉의 해변과 곳곳은 우람한 금강송으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한송정에는 소나무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 소나무를 소재로 하여 전해오는 한송정 민요도 멋들어진다. 민요의 일부가 훼손되어서 보완을 하였다.
한송정 솔을 베어
배를 만들어
임 태우고 노를 저어
달구경 가세
강릉 경포대로
달구경 가세
한송정 솔을 베어
배를 만들어
벗과 함께 노를 저어
달 구경 가세
강릉 경포대로
달구경 가세
- 달구경 가세 -
풍류를 즐기며 호연지기를 길렀던 조상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근래에 들어와서는 민중의 심금을 울리는 국민 가수 이미자가 ‘강릉 아가씨’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 내용을 보면 강릉의 아가씨가 얼마나 서정적인 내면의 아름다움이 깃든 인물인지를 알 수 있다.
대관령 재를 넘어 떠나오던 날
그 임도 울었으리 나를 보내고
달빛 어린 해변에서 맺은 사랑을
못 잊어 못 잊어서 불러보지만
지금은 알 길 없는 강릉 아가씨
못맺을 그 사랑에 눈물 뿌리고
힘 없이 돌아서던 대관령 고개
달빛 어린 경포대서 맺은 기약이
아쉬워 아쉬워서 그려보지만
이제는 알 길 없는 강릉 아가씨
- 이미자 노래 ‘강릉 아가씨’ -
이쯤 되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강릉에 위대한 현사와 학자, 문인, 예술가들이 배출되는 것은 강릉을 지키는 소나무와 바람, 지혜와 슬기를 한 몸에 지닌 위대한 강릉의 여인들이 있었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