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시에 화답한 <두견새의 노래>
단종어제 자규루시(端宗御製子規樓詩)
一自寃禽出帝宮 (일자원금출제궁) : 원한 맺힌 새 한 마리가 궁중 떠난 뒤로
孤身隻影碧山中 (고신쌍영벽산중) :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가 푸른 산속을 헤맨다
假面夜夜眠無假 (가면야야면무가) :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窮恨年年恨不窮 (궁한년년한불궁) : 해가 가고 해가 와도 恨(한)은 끝이 없구나
聲斷曉岑殘月白 (성단효잠잔월백) : 두견새 소리는 이미 봉우리에서 끊겼고 새벽달만 밝은데
血流春谷落花紅 (혈루춘곡낙화홍) : 핏빛 물에 떨어져 흘러가는 저 봄꽃 붉기도 하다
天聾尙未聞哀訴 (천롱상미문애소) : 하늘은 귀머거리인 양 아직도 애절한 목소리 듣지 못하고
何奈愁人耳獨聽 (하내수인이독총) : 어찌하여 수심 많은 사람의 귀만 홀로 밝게 하는가
일명 '자규시(子規詩)'로 알려진 단종의 이 시는 세조에 대한 원망과 분노, 그리고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정순왕후에 대한 그리움을 주로 표현하였다.
1457년 유배되던 해의 여름 홍수로 청령포(淸冷浦)가 범람하자, 단종(端宗)은 영월 객사(客舍)인 관풍헌(觀風軒)으로 거처를 옮겼다.
특히 단종은 영월로 오기 전, 청계천 영도교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던 왕비가 그리울 때면, 관풍헌 바로 옆에 위치한 매죽루(梅竹樓)에 올라, 피리 소리에 보고픈 마음을 실어 보냈다.
이때 단종은 17세, 정순왕후는 18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단종의 절신(節臣) 조상치(曺尙治=副提學부제학, 예조참판, 생몰년 미상,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경(子景). 호는 정재(靜齋)·단고(丹皐). 태사(太師) 조계룡(曺繼龍)의 후손이며, 전객령(典客令) 조수(曺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정승 조익청(曺益淸)이고, 아버지는 강계병마사 조신충(曺信忠)이며, 어머니는 최중연(崔中淵)의 딸이다. 길재(吉再)의 문인으로, 1419년(세종 1) 증광문과에 을과장원으로 급제하여 사재감주부(司宰監注簿)가 되었다.
1424년 좌정언에 임명되고 집현전에서 유숙하였으며, 세종·문종·단종 3대를 섬겨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과 더불어 총애를 받았다.
1455년(단종 3) 집현전부제학에 발탁되었고,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뒤 예조참판에 임명하였으나 「세 아들이 조정에 올라 복이 너무 과하니 물러가겠다」라고 상소하여 사직하고, 마단(麻丹=永川영천)에서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그는 종신토록 왕궁이 있는 서쪽을 향해 앉는다는 법이 없었다.
자신의 묘비를 만들어 놓고 죽은 유수한 사람 가운데 하나인 그는, 큰 돌 하나를 주워다가 쪼지도 않고 꾸미지도 않은 자연석 그대로 표면에 다음과 같이 새겼다.
'노산조부제학 포인조상치의 묘(魯山朝副提學逋人曺尙治之墓)'라 새긴 묘비를 세워, 세조의 신하가 아님을 밝혀 충의를 기렸다.
노산조라 함은 오늘의 신하가 아닌 것을 밝힌 것이요, 계자(階資)를 쓰지 않은 것은 임금을 구하지 못한 죄를 나타낸 것이며, 부제학이라 쓴 것은 사실을 빠뜨리지 않으려는 것이고, 포인이라 쓴 것은 망명하여 도망한 신하라는 뜻이다.
그는 아들들에게 그가 죽거든 꼭 세우라고 유언했는데, 그의 아들들은 화가 미칠까 봐 그 비석을 땅에 묻어버렸던 것이다.
1791년(정조 15) 단종의 장릉(莊陵)에 배향되고, 그의 시문은 임종 시에 모두 소각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그는 단종이 영월에서 지은 '자규시(子規詩)'에 화답한 '두견새의 노래'는 유명하여 선비로부터 상민에 이르기까지 애송되었다.
子規啼子規啼(자규제자규제) : 접동접동 두견새 우는 소리,
夜月空山何所訴(야월공산하소소) : 달밤에 공산에서 그 무엇을 호소하나.
不如歸不如歸(불여귀불여귀) : 돌아가야 하리 돌아가야 하리,
望裏巴岑飛欲度(망리파잠비욕도) : 저 멀리 파촉 땅 바라보며 날아가고 싶어라.
看他衆鳥摠安巢(간타중조총안소) : 뭇 새는 둥지 찾아 고요히 잠드는데,
獨向花枝血謾吐(독향화지혈만토) : 너만 유독 꽃핀 가지에 피를 토하누나.
形單影孤貌憔悴(형단영고모초췌) : 네 모습 몹시도 고단하고 초췌한데,
不肯尊崇誰爾顧(불긍존숭수이고) : 존숭도 안 하거늘 누가 널 돌보리.
嗚呼人間冤恨豈獨爾(오호인간원한기독이) : 아아, 세상의 원한이 어찌 너뿐이랴.
義士忠臣增慷慨激不平(의사충신증강개격불평) : 의사 충신의 강개 불평을 더하는 일,
屈指難盡數(굴지난진수) : 아무리 손꼽아도 다 헤아리기 어려우리.
전문이 한국문집총간 17집에 수록된《탁영집(濯纓集)》속집에 실려 있다.
[출처] 단종의 시에 화답한 <두견새의 노래>|작성자 높은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