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심론』의 선정론
2.사선과 멸진정
1)사선과 사무색정
선정은 몸과 마음의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괴로움을 벗어나게 한다. 선정수행을 통해 괴로움의 원인을 알고, 삼매의 심일경성(心一境性, cittasyaikâgratā)에서 체험하는 환희를 통해 번뇌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삼매의 인식대상에 대한 집중도가 높을수록 점진적으로 네 가지 색계의 삼매, 네 가지 무색계의 삼매, 상수멸(想受滅)의 멸진정(滅盡定, nirod ha-samāpatti)의 단계로 진전된다. 이러한 아홉 가지 단계를 구차제정(navânupūrv a-samāpattayaḥ)이라 부른다.
이 같은 선정수행의 궁극적 목적은 초기 불교는 아라한과(阿羅漢果, arhat-phala)의 증득이고, 대승불교는 번뇌와 장애를 극복하고 자리이타의 보살도(bodhisattva-caryā)를 성취하는데 있다. 사선(四禪, cattāri jhānāni)은 수행으로 인해 변화하는 네 단계 심신의 상태를 나타내며, 선정수행의 과정과 성취를 나타내는 지표로도 활용된다. 이러한 선정의 주제로는 십수념(十隨念, daśa-anusmṛti),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四無量心, catvāri apra māṇāni), 사무색정(四無色定, catasra-ārūpyasamāpatti) 등이 있다.
『금강심론』의 사선과 멸진정의 설법에 대해 무주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석존이 성도시(成道時)와 열반시(涅槃時)에 몸소 체현하고, 또한 삼승성자(三乘聖者)가 다 한결같이 공수(共修)한다는 근본선인 사선정과 멸진정의 필수(必修)를 역설함은, 현하(現下) 불교계가 해오만을 능사로 하는 무기력한 풍토임을 감안할 때, 정해탈(定解脫)을 위한 불가결한 수도(修道) 법문임을 절감케 한다.
위의 내용을 정리하면 첫째, 불타의 깨달음과 열반은 사선과 멸진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둘째, 성문(śrāvaka)‧연각(pratyekabuddha)‧보살(bodhisattva)의 삼승이 모두 사선과 멸진정을 닦는다. 셋째, 이치로만 깨닫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선정 해탈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사선과 멸진정은 선정 해탈에 필수 불가결한 수행임을 알 수 있다.
초기 경전에는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cetovimutti)과 지혜에 의한 해탈 (paññāvimutti)을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고 한다. 그래서 아라한은 지혜의 해탈에 심해탈을 더해 구분(俱分)해탈, 혹은 양면해탈(ubhatobhāgavimutta)이라 한다.
벽산은 먼저 사선근(四善根, nirvedha-bhāgīya)에 대해 난(煖)‧정(頂)‧인(忍, kṣānti)‧세제일법(世第一法, laukikāgradharma) 등이 사대의 색온(色蘊, rupa-khandhā)과 하나 되는 경지라 한다. 그리고 사선정(四禪定)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한다.
사선정이란 밀계(密界)의 그 실색(實色)을 증견(證見)하는 동시에, 수(受)‧상(想)‧행(行)‧식(識) 사온의 사선으로써 상(常)‧낙(樂)‧아(我)‧정(淨) 사덕의 사정(四定)에 전입하는 경계니, 곧 사무색의 경계일상(境界一相)을 관찰함은 사선이요, 그의 사유로써 일행(一行) 함은 사정이라.
인용문에는 깨닫기 전의 사선근이 오온(五蘊, pañca-skandha)의 색온을 견증하는 단계라면, 사선정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실상의 색을 깨달아 보는 단계라 한다. 즉, 사선은 나머지 사온을 정화하여 사덕(四德, catur-guṇa)의 사무색정(四無色定)에 들어가는 경계라는 것이다. 이것은 독특한 설명으로 사선근‧사선‧사무색까지 수행의 인위(因位)에서 차례로 오온을 상대하여 개공(皆空)을 증명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즉, 느낌‧생각‧ 의지‧분별 등의 사온을 사선의 수행으로 청정히 하여, 사덕을 얻는 사무색정으로 전입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선의 대상이 되는 사념처(四念處, catvāri smṛty-upasthānāni)의 수행으로 신수심법을 부정(不淨, aśubha)‧고(苦, duḥkha)‧공(空, śūnya)‧무아(無我, anātma)를 관하는 것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사념처의 신수심법을 관하는 것에 비해, 『금강심론』의 사선은 오온을 대상으로 선정을 닦는 것이다.
그런데 열반 사덕은 구경각(究竟覺)에 해당할 수 있는데, 사선에서 사무색정으로 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아마도 멸진정에서 완전히 체득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사무색의 경계 일상을 관찰하는 것이 사선이며, 그 사유로 한결같이 행하는 것을 사무색정이라 한다. 이것은 『청정도론』의 사십업처(四十業處)에서 사무색을 주제로 하는 것과 상통하며, 선정을 닦는 대상으로써 사무색정이 되는 것이다. 사선과 사무색이 서로 능소(能所)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다음은 초선정(初禪定)과 이선정(二禪定)에 대한 벽산의 설명이다.
공무변처(空無邊處)를 관하고 염하여 색계의 금진(金塵)을 보고, 욕계의 허망상을 소멸하고 열반계의 정덕(淨德)을 증득함은 초선정이다. 식무변처를 관하고 염하여 미진의 아누색(阿耨色)을 보는 동시에 수성적(水性的) 수음을 걷고 정심(淨心)의 아덕(我德)을 증득함은 이선정이다.
위의 인용문은 심신의 상태와 공덕을 설하는 일반적인 설명과는 다르다. 벽산은 초선정은 공무변처(ākāśânantyâyatana)를 관하고 염하여 색계의 금진(金塵)을 보고, 욕계의 허망상을 쓸어버려 열반계의 '정덕(淨德)'을 증득한다고 설한다. 즉, 공(空)이 무한하다는 것을 관하여 금진을 보는 것은 물질의 원자핵을 봄에 해당하며, 물질의 근본인 금진을 보고 열반계의 정덕을 성취함이 초선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물질이 공(空)이 되어 가는 과정을 선정의 차례로 두는 석공관의 일곱번째에 해당한다.
초기 경전 이후의 사선에 대한 설명은 거칠고 미세한 생각이 사라지고, 선정에서 기쁨과 행복에 머문다고 한다. 하지만 벽산은 선정의 대상과 견처에 주목하여 열반 사덕을 증득한다고 설하는 것이 다르다.
이선정은 식무변처(vijñānânantyâyatana)를 관하고 염하여 미진의 아누색을 보며, 탐욕의 성품인 수음(vedanā-skandha)을 멸하고 청정한 마음의 '아덕(我德)'을 성취한다고 한다. 식이 무한하다는 것을 관하고 염하여 무색계인 미진을 보는 것은 식의 알갱이를 보는 것이다. 천안으로 보며 느낌의 분별을 멸하고 청정한 마음의 '아덕'을 얻는 것이다. 그러니까 초선에서 색온을 멸하고 이선에서 수온을 멸하며 차례대로 오온과 사선이 대치가 된다.
열반의 사덕은 『열반경』에 '나'[我]라는 것은 곧 부처의 뜻이고, '항상'[常]하다는 것은 법신의 뜻이며, '즐겁다'[樂]는 것은 열반의 뜻이고, '청정'[淨]하다는 것은 법 의 뜻이라고 한다. 무주가 설하는 사덕으로 첫째, 상덕(常德)은 항상 불변하여 지혜와 자비의 무량 공덕이 변함 없다. 둘째, 낙덕(樂德)은 조금도 조작이 없는 절대적인 행복이다. 셋째, 아덕(我德)은 신통묘용의 대자재를 갖춘 공덕이다. 넷째, 정덕(淨德)은 일체 번뇌가 없는 자리이다. 아래에서 『금강심론』의 삼선정과 사선정에 대해 설한다.
무소유처를 관하고 염하여 색구경의 극미를 보는 동시에, 화성적(火性的) 상음을 돌이켜 일도광명(一道光明)의 상덕을 증득함은 삼선정이다. 비상비비상처를 관하고 염하여 미미(微微)의 인허상(隣虛相)을 보는 동시에, 풍성적(風性的) 행음을 돌이켜 낙덕(樂德)을 증득함은 사선정이다. 사선정이란 곧 사바즉적광토(娑婆卽寂光土)임을 보고 사바세계 그대로 극락세계임을 증득함이다.
삼선정은 무소유처(無所有處, ākiṃcanyâyatana)를 관하고 염하여 색구경(色究竟)의 극미 모습을 보며, 화내는 성품인 상음(想陰, saṃjñā-skandha)을 돌이켜 한 줄기 광명의 상덕(常德)을 증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수화풍의 사대는 차례대로 견고함, 축축함, 따뜻함, 움직임 등의 성품이 있다. 또 사음 가운데 수음은 낙(樂)‧고(苦)‧불락불고(不樂不苦)를 접촉하는 느낌이며, 상음은 모양에 집착해 색깔‧장단‧성별‧친소(親疏) 등을 차별하고 집착하여 의지한다. 행음(行陰, saṃskāra-skandha)은 색‧수‧상‧식음을 제외한 나머지 유위법이며, 오음 가운데 가장 수승하고 유위법을 발생시킨다. 식음(識陰, vijñāna-skandha)은 의(意)‧식(識)‧심(心)이며 식이 분별하여 안식에서 의식까지 육식취(六識聚)를 이룬다.
그렇다면 삼선에서 성냄의 성품인 상음을 돌이키는 것은 성냄과 모양에 집착함을 돌이켜 광명의 상덕(常德)을 증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사선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naivasaṃjñā-nāsaṃjñâyatana)를 관하고 염하여 아주 미세한 '인허상(隣虛相)'을 보며, 움직이는 성품의 행음을 돌이켜 낙덕(樂德)을 증득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선정은 사무색을 관념하며 공관(空觀)의 표상을 보고, 사대와 오음을 돌이켜 열반 사덕을 성취하는 체험적 설명이다.
초기 경전에서 삼선은 '마음 챙김'으로 행복에 머물며, 사선은 불고불락(不苦不樂)의 평정에 머문다고 한다. 또 『구사론』에서 삼선은 사(捨)‧염(念)‧혜(慧)‧낙(樂)‧등지(等持)와 사선에서 사(捨)‧염(念)‧비고낙수(非苦樂受)‧등지(等持) 등의 선지(禪支)를 설한다. 사선은 근심‧괴로움‧기쁨‧즐거움을 차례로 여의며, 정념은 대상 소실과 정지(正知)는 혼침과 도거를 각기 방지한다.
『보살지(菩薩地, Bodhisattvabhūmi)』에는 네 가지 선정으로 말하며,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 기쁨, 만족한 즐거움, 평정 등이 따르는 것이라 한다.
다시 말해 『금강심론』의 사선정은 구체적으로 사대와 오온을 조합시킨 통불교적 깨달음의 체험이라 할 수 있다. 사대와 오온을 돌이켜 열반 사덕을 성취하므로, "사바세계가 곧 적광토이다."라는 구절이 도출된다. 이것을 『청정도론』의 사십업처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선의 주제는 사무색이고 공(空)이 되어가는 표상이 경계이다. 십변처의 지수화풍은 성품이 바뀌는 성격으로 인용되며, 물질계와 심성론을 결합한 독창적인 선정의 결과이다.
이어서 『금강심론』에는 사선을 근본선이라 하며, 몸과 마음에 나타나는 여덟 가지 감촉과 열 가지 공덕을 설한다. 전자는 떨림‧가려움‧가벼움‧무거움‧서늘함‧뜨거움‧깔깔함‧미끄러움 등이며, 후자는 공‧밝음‧선정‧지혜‧좋은 마음‧부드러움‧즐거움‧기쁨‧해탈‧경계상응 등이다. 이처럼 초선에 들어간 경계와 공덕을 말하며, 사선에서 받아들이는 감각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초선에는 후각과 미각이 없어지고, 이선(二禪)부터는 오식(五識)을 모두 여의고 의식만 있다. 혹은 눈‧귀‧감촉의 세 식이 기쁨을 받아들이고[喜受] 의식과 상응한다. 의식이 행복을 받아들이고[樂受] 세 식과 상응하는데, 의식의 희열이 크고 거칠기 때문에 희수(喜受)이고 낙수(樂受)가 아닌 것이다. 삼선에는 역시 의식만 있고, 행복[樂]‧평정[捨]의 두 가지 받아들임에 상응한다. 기뻐하는 형상이 지극히 순수하고 미묘하므로 낙수이고, 사선에는 역시 의식뿐이고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할 뿐이다.
끝으로 벽산은 사대를 착각하여 실상을 모르며, 사음을 사덕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것이 범부라 한다. 그러므로 사선정은 삼승성자가 받들어 수행하는 근본선이며, 멸진정을 거쳐 마지막 깨달음을 성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표 6> 사선정과 사무색정
사선정 | 관념 | 견상 | 사대 | 사음 | 상응 | 열반 |
초선정 | 공무변처 | 금진 | [허망] | 색음 | 희수 | 정덕 |
이선정 | 식무변처 | 아누 | 수성 | 수음 | 희수 | 아덕 |
삼선정 | 무소유처 | 극미 | 화성 | 상음 | 낙‧사수 | 상덕 |
사선정 | 비상비비상처 | 인허 | 풍성 | 행음 | 사수 | 낙덕 |
<『금강심론』 수행론 연구/ 박기남(普圓)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