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억울한 옥살이와 늙은 정승의 그늘(단편)
차가운 동지섣달 바람이 의금부 바닥을 얼려버릴 듯 쌩쌩 불어대던 1440년(세종 22년) 11월.
의금부 감옥 안은 추위보다 더 시퍼런 비명이 매일같이 이어지고 있었다. 죄목은 뇌물 수수. 사건의 중심에는 세종대왕이 가장 아끼고 영의정 자리까지 오르내리는 노신(老臣), 황희의 아들 황보신이 있었다.
황보신은 중생(仲生)이라는 자에게서 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주범인 황보신은 수염을 거머쥐고 딱 오리발을 내밀었다.
"나는 결코 금을 받은 적이 없소! 모함이오!“
황보신이 뻔뻔하게 거짓으로 일관하며 죄를 인정하지 않자, 애꿴 사달이 났다. 뇌물 사건의 연루자, 즉 금을 주고받는 자리에 있었거나 이름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어 의금부에 갇힌 사람이 수십 명에 달한 것이다.
그 억울한 연루자 중에는 황보신의 첩인 윤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세종의 어전. 의금부 제조와 대간, 그리고 형조의 관리들이 한데 모여 엎드렸다. 이른바 삼사가 함께 죄인을 국문하는 '잡치(雜治)'가 벌어진 것이었다.
"전하! 황보신이 끝까지 거짓을 꾸며대며 자백을 거부하고 있나이다. 죄를 범한 연루자가 수없이 많아 옥이 미어져 나갈 지경이옵니다. 부디 황보신에게 엄하게 형신(拷訊)을 가하여 실정을 토해내게 하소서!“
형틀에 매달아 매질을 하지 않고서야 정장(正贓, 확실한 뇌물 증거)을 얻어낼 길이 없다는 절박한 청이었다. 그러나 어좌에 앉은 세종의 얼굴에는 번민의 빛이 가득했다. 세종은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그들의 청을 물리쳤다.
"무릇 옥사라는 것은 진상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을 때 형벌을 가해 추국하는 법이다. 황보신의 행적과 뇌물을 받은 형적은 이미 조정에 백일하처럼 드러나지 않았느냐? 죄상이 명백하거늘, 굳이 형벌을 가하여 몸을 훼손할 이유가 무엇이냐. 다시 논의하도록 하라.“
임금의 속내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세종은 나라의 기둥이자 노신인 황희 정승의 마음이 상할까 염려하여, 그의 아들인 황보신의 몸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일종의 '명가(名家)에 대한 특혜'이자 영의정에 대한 배려였다.
하지만 대간들도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 없었다. 사헌부 지평 이예손이 득달같이 앞으로 나아가 조아렸다.
"전하! 대간 역시 전하의 깊은 뜻을 모르는 바가 아니옵니다. 하지만 근래 장죄(臟罪, 뇌물죄)를 지은 자가 많다 한들, 황희 대감처럼 지체 높은 명가에서 이런 죄인이 나온 적은 없었나이다!"
이예손의 목소리가 어전에 울려 퍼졌다.
"지금 날씨가 극도로 춥사옵니다. 황보신 한 사람의 억지에 끌려들어 가 불쌍하게 감옥에 갇혀 한기를 견디는 연루자가 수없이 많으니, 참으로 마음이 찢어지는 듯하옵니다. 대간과 의금부, 형조가 모두 들러붙어 조사함에도 확실한 뇌물 증거를 잡지 못함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옵니다." 이예손은 뼈 있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황보신에게 고문을 하지 않으시는 것이 노신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함인 줄은 아나, 이대로 끌어 억울한 죄수들을 옥에 썩히느니(滯獄), 차라리 매질을 해서라도 진상을 철저히 밝혀낸 뒤에 전하께서 특은(特恩)을 베풀어 사면해주시는 것이 마땅할 줄로 아나이다!“
늙은 정승의 안위보다 옥에 갇혀 벌벌 떨고 있는 수많은 백성과 관리들의 억울함이 먼저라는 일침이었다.
세종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너희들이 말하는 바, '한 사람 때문에 여럿이 옥에 갇혀 고통받는다'는 말은 참으로 일리가 있도다.“
세종은 손가락으로 어좌의 팔걸이를 톡톡 쳤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황보신의 죄명은 이미 드러났으니, 굳이 억지로 형벌을 가해 뇌물 액수를 딱 맞춰 받아낼 필요까지는 없다. 그보다 더 기이한 일은 따로 있느니라.“
세종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증좌(證左)라는 것은 길 가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옥사에 끌려와 조사를 받는 법이다. 하물며 윤이라는 계집은 황보신의 첩으로서, 제 지아비가 금을 받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느냐? 그러니 그 여인이 의금부에 끌려와 국문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세종은 혀를 찼다.
"헌데, 내가 들으니 그 첩 윤이가 의금부 취조실에서 형리를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더구나. '뇌물을 받은 진짜 죄인은 저기 가만히 잘 있는데, 어찌하여 힘없는 첩의 몸만 이토록 가혹하게 문초하십니까!' 하고 말이다.“
어전에 정적이 흐르고, 세종이 헛웃음을 삼켰다.
"무릇 계집이 남자의 첩이 되었다면, 지아비를 대신해 매를 맞고 앙화(殃禍)를 뒤집어쓰는 것이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느냐? 그런데 제 살길을 찾겠다고 지아비를 대놓고 손가락질하며 저런 망발을 짓다니! 그 어리석음과 불초함이 참으로 짝이 없구나.“
황희의 아들이라는 허울 뒤에 숨어 입을 다물고 있는 황보신이나, 가부장의 그늘 아래서 은혜를 입고 살다가 매를 맞자 당장 남편을 밀어버리는 첩 윤이나, 세종의 눈에는 매한가지로 한심해 보였던 것이다.
"황보신에게는 신하로서의 예우를 지켜 매질을 더하지 않겠다. 대신, 정범을 끌어들이며 도리를 저버린 그 첩 윤이에게 매질을 더하여 엄히 신문하도록 하라!“
결국 세종은 명가의 체면을 살려주면서도, 옥사를 오래 끌지 않기 위해 첩 윤이의 입을 무겁게 짓눌러 사건을 조속히 마무리 짓고자 했다.
동지섣달 의금부의 차디찬 마당. 정작 금을 챙긴 거물 황보신은 옷 한 점 상하지 않은 채 꼿꼿이 서 있었고, 매질의 고통과 비명은 그의 첩 윤이와 억울하게 끌려온 하급 연루자들의 몫으로 남겨지고 있었다.
권력의 그늘과 칼바람이 교차하는 조선 초기의 겨울은, 지독하리만큼 차갑고 냉혹했다.
세종실록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이 되어 있다.
세종실록 91권, 세종 22년 11월 1일 경자 3번째기사 1440년 명 정통(正統) 5년
의금부 제조에서 황보신에 대해 고문할 것을 아뢰다
○義禁府提調與臺諫刑曹啓: "黃保身受仲生金, 辭連逮繫者頗多。 保身飾詐不承, 請加拷訊。" 上曰: "凡獄辭, 若事狀未著, 則雖大臣當加拷訊。 今保身事蹟已著, 何如拷訊? 其更議之。" 持平李禮孫啓: "臺諫固欲請加拷訊, 但義禁府專掌, 故未敢先啓耳。 近間犯贓官吏雖多, 未有出於名家者也。 且近日寒甚, 以一保身所犯辭連滯獄者多, 誠可痛心。 況此事, 命義禁府, 同臺諫刑曹雜治, 未得正贓, 甚不可也。 不使拷訊者, 以保身 黃喜之子, 乃慰老臣之心也。 然與其滯獄, 不若得情之後以示特恩也。 請依義禁府所啓。" 上曰: "汝等所啓以一人所犯滯獄者多, 其言然矣。 然儻保身納招, 未可謂之畢鞫也。 予意以爲保身罪名已著, 不必强推正贓也。 大抵證左, 雖是行路之人, 乃加拷訊, 況閏伊身爲保身之妾, 親見保身受金, 則其受拷訊宜矣。 予聞閏伊告於義禁府曰: ‘正犯人在此, 乃何推問妾身如是其甚也?’ 此女旣爲保身之妾, 欲以其身代保身受箠楚, 乃其道也。 今發如此之言, 其爲不肖甚矣, 更加拷訊可也。"
의금부 제조(義禁府提調)와 대간(臺諫)·형조에서 아뢰기를,
"황보신(黃保身)은 중생(仲生), 공사(供辭)에 연루되어 체포된 자가 매우 많사오며, 보신(保身)이 거짓을 꾸며 승복하지 아니하니, 청하옵건대 고문[拷訊]을 가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무릇 옥사(獄辭)1) 에서 사상(事狀)2) 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비록 대신이라 하더라도 마땅히 고신(拷訊)을 가하여야 할 것이나, 이제 보신(保身)은 일의 형적이 이미 나타났는데 어떻게 고문을 하겠느냐. 다시 그것을 의논하라."
하였다. 지평 이예손(李禮孫)이 아뢰기를,
"대간(臺諫)은 본래부터 고문을 가하시기를 청하고자 하였으나, 의금부에서만 전장(專掌)한 까닭에 감히 먼저 아뢰지 못했을 뿐입니다. 요사이에 장죄를 범한 관리가 비록 많다 하더라도 아직 명가(名家)에서 나온 자는 있지 않았사온데, 또한 근일에 한심한 것은 보신(保身) 한 사람이 범한 것으로 인하여 공사(供辭)에 연루되어 옥에 갇힌 자가 많으니 진실로 마음 아프옵니다. 더구나, 이 일을 의금부와 같이 대간과 형조에 명하여 잡치(雜治)3) 하게 하였사온데도, 정장(正贓)을 얻지 못하였으니 심히 불가하옵니다. 고문을 하도록 하지 아니한 것은, 보신(保身)이 황희(黃喜)의 아들이라 바로 노신(老臣)의 마음을 위로하였기 때문이오나, 그러나 체옥(滯獄)4) 하는 것보다는 실정을 얻은 뒤에 은전(恩典)을 보여 주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청하옵건대 의금부에서 아뢴 대로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아뢴 것은 한 사람의 범법한 것 때문에 체옥한 사람이 많다고 하니, 그 말도 옳으나, 그러나 만일에 보신(保身)의 공초(供招)를 받는다면 모두 국문(鞫問)하여야 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니, 나의 생각으로는 보신의 죄명이 이미 나타났으니 억지로 정장(正贓)을 추국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진다. 대저 증좌(證左)는 비록 길가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내 고문을 가하게 되는데, 더구나 윤이(閏伊)는 보신의 첩이 되어 친히 보신이 금 받은 것을 보았은즉, 그가 고문을 받음은 마땅한 것이다. 내가 들으니, 윤이가 의금부에서 고하기를, ‘정범인(正犯人)은 여기에 있는데 저를 어찌하여 추국하기를 이와 같이 심히 하십니까. ’고 하였다니, 이 계집은 이미 보신의 첩이 되었은즉, 그 몸으로서 보신을 대신하여 매를 맞고자 함이 바로 그의 도리인데도, 이제 이와 같은 말을 하였다니 그가 어리석기 짝이 없다. 다시 고문을 가함이 가하겠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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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옥사(獄辭) : 피고가 자백한 내용의 기록.
2) 사상(事狀) : 사건의 진상.
3) 잡치(雜治) : 삼성(三省)이 추국함.
4) 체옥(滯獄) : 재판이 결정나지 않아 옥에 머물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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