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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의 문학사
( 33세 )
〓 박경종 선생께서 1985년 을축년 휘호를 보내오셨다.
목 차
* 1985년 2월 12일 강원일보에 ‘이슬의 노래’ 발표
* 1985년 3월 ‘열매’지에 시 ‘눈병’ 발표
* 1982- 1985. 정선군 벽탄국민학교에 근무
* 1월 21일 자로 한국방송통신대학보 시조 ‘밭일구기’를 발표.
한국 시조 큰 사전 발간 에 약력 및 대표시조 작품 수록
- 고향( 1981. 봄, 나래시조문학)
. - 밤의 숲. (1980. 8. 월간문학)
- 뻐꾸기.(1980. 가을, 시조문학 )
- 약탕관.(1981. 6. 노래하는 항아리)
- 정선아라리.1 (1982. 7. 월간문학 )
* 1986년 6월 13일자 <어린이강원> 신문에 동요 <산길>이 뽑려 발표되었다.
* 1985년 부산문화방송에서 발간하는 [어린이문예] 6월호에 시 ‘봄날’을 발표하였다.
* 1985년 여름, 대전에서 발간한 [동화마을]에 동화 ‘한여름밤의 꿈’을 발표하였다.
* 1985년 <월간문학> 6월호에 시, ‘꽃밭에서’ 발표
* 1985년 6월 30일. 『미래시』 7집 시 발표
( - 머슴의 사랑. - 자리얘기 - 비오는 밤 )
* 1985년 7월 『어깨동무』시, ‘고향집’ 발표.
* 1985년 7월,
『교육자료』시, ‘봄은 맨 먼저 나의 잠을 깨우고’ 발표.
* 1985년 8월,
『새 벗』시, ‘누구인가요’ 발표.
* 1985년 9월호 『아동문예』시, ‘빗소리’ 발표.
* 1985년 10월호 『동화교실』제4집. 시, ‘한가위’ 발표.
* 1985년 10월 1일. 『강원아동문학』제10집.
시, ‘아가’, ‘산이슬’, ‘낙엽’ 발표.
* 1985년 10월호 『교우』. ‘삶’ 발표
* 1985년 방송통신대학 학회지, 『 청포』2집. 시 ‘탑’ 발표
* 1985년 10월 7일. 제5회 강원아동문학상 수상자 심사위원
* 1985년 10월 22일.
제25회 영동종합예술제 제2회 김동명 추모 시 낭송대회 심사위원을 하였다. (문인협회 강릉지부에서 위촉)
* 1985년 11월 7일, 시집 [나비, 청산의 나비] 상재. .
이 시집을 받은 심우천씨는 편지를 보내왔다.
* 1985년 11월 26일, 시집 [나비, 청산의 나비] 발간을 아동문학가 김원석 사백님께서 축하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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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11월 26일, 시집 [나비, 청산의 나비] 발간을 아동문학가이며 시조시인이신 대구의 김몽선 시백님께서 축하해 주셨다.
1985년 3월 22일 자로 계간 아동문학 전문지인 『아동문학세상』에 산문, [凡 文壇的인 風土를] 이란 제목의 글을 썼다.
[시], 작약꽃
[시] 좋은 점은
[시] 處暑가 지나도
[시] 세월 앞에서
[시]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동화- 왕밤 할아버지와 달래
[시], 고향집. [시], 한가위
1985년 11월 7일 발행.
[시집 차례 및 내용] 나비, 청산의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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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2월 12일 강원일보에
[시], ‘이슬의 노래’ 발표
이슬의 노래
남진원
내가 물방울이라면 당신 생각으로
몽친
다만 그 하나
외로움에 떠는
햇빛이 눈부셔
무지개 내 속에서 빛나도
그건 오직 그대 가슴에 들고픈
두근거림의 빛
상기도 풀잎에 매어달림은
네 마른 입술에 스밀
투명한 누물이기에
해가 뜬 한낮에도
젖은 채
상기도 풀잎에 매어달림은
아아 눈부신
울음은.
( 1985. 2. 12. 강원일보)
( 1985. 11. 7. 제2시집 『나비, 청산의 나비』 )
* 1985년 3월 ‘열매’지에 시 ‘눈병’ 발표
눈 병
남진원
눈이 꽤나 속이 상해 있었다는 걸
눈병이 나서야 알았다.
너무 더러운 것을 많이 본 죄로
더러는 안 볼 것을 ㅂhs 죄로
눈이 앓고 있다
곪아 터진 후에야 원망을 하는
나 자신을 비웃으며
나 대신 눈이 앓고 있는 것이다.
눈이 이제는 좀
세상을 가려가며 보라고 한다
정성스럽게 보는 법을 익히라고 한다.
( 1985. 3. 『 열매』3호)
(1985. 11. 7. 제2시집 『나비, 청산의 나비』)
(1987. 10. 1. 제3시집『넘치는 목숨으로 와서』)
* 정선군 벽탄국민학교에 근무하였다. 고향 마을의 학교 ‘문래국교’에서 병설학교로 운영되는 벽탄학교로 차출된 것이다. 그곳에서 초, 중 국어를 담당해 달라는 교육청 장학사의 부탁을 받았다.
이곳에서 4년 동안 근무하면서 많은 글을 쓸 수 있었다. 또한 방송대학교 행정학과에 편입학을 하였다.
* 1월 21일 자로 한국방송통신대학보 시조 ‘밭일구기’를 발표하였다.
밭일구기
남진원
떠날 것 다 떠나고 남루로 남은 땅에
땀띠 돋아 겉말 성한 나무들을 불지른다
익어서 거름도 못 될 소리 마저 태운다
바람과 물에 젖어 소금 치는 언어의 밭
아린 잠을 깨워 새벽으로 세워놓고
파아란 서정의 씨를 이랑이랑 뿌린다
돌아올 몫이 없어도 내일은 윤나는 거름
어둠을 모아놓고 살속 깊이 섞다 보면
아침은 한 生을 넘어 밭을 갈고 있느니.
밭이라는 소재를 선택하여 마음의 내면을 형상화한 시조였다. 힘들고 괴로운 삶 혹은 글쓰기에 대한 자각과 놈부림, 그리고 희망을 얹어놓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가 비뿌리고 바람 불어도 해가 뜨고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꿈꾸는 걸 잃지 않았다. 현재도 그렇게 살고 있다. 1985년 작품이니 40년 전의 작품이다.
한국 시조 큰 사전 발간 에 약력 및 대표시조 작품 수록
- 편저자: 한춘섭. 박병순. 리태극
편저자로는 이름을 세 분을 올렸지만 실은 한춘섭씨 혼자 그 큰일을 해낸 것이다.
<한국시조큰사전>이 발간 된 것은 시조문단사에 획기적인 일이다. 한춘섭 선생이 도맡아 힘든 일을 한 것을 보면 그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1985년 3월 25일 서울의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국 시조 큰 사전 출판기념회를 하였다.
발행일자는 1985년 3월 23일자였다. 출판한 곳은 [을지출판공사] 였다.
발간 경위는 한춘섭이 하고 인사말은 시조 시인 리태극과 발행인 윤해규 사장이 맡았다. 축사는 이희승, 정한모, 김동리, 전숙희 등이었다.
내용은 고시조와 현대시조를 망라하였다. 현대시조에는 381명의 시조시인이 참여하였다.
나는 1980년 초에 찍은 얼굴 사진을 보냈다. 사전 수록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았다.
남진원(南鎭源) 1953. 10. 18. - .
시조시인. 동시인. 시인. 호:청파(靑波).
강원도 정선군 골지리에서 출생
강릉교육대학 졸업(1973).
<교육자료>, <새교실>, <샘터>를 통해 동시가 천료되어 (76) 문단에 데뷔. 그 후 <아동문예>, <기독교 교육>에서도 동시가 천료 또는 입선되었으며 , (77 – 78), 1980년 <시조문학>에는 시조 ‘매미소리’가 천료 되기도 하였고,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 시조부문이 당선되었다.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1983), 현재 한국문인협회, 아동문예작가회,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이면서 한국아동문학회 이사이기도 하다. <조약돌>, <여울>, ,미래시> 동인에 참여하며 첫 시집인 <싸리울> (82)을 간행했다. 강원아동문학회, 아라리문학회 회원으로서 강ㅇ눠도 정선의 벽탄 국민 학교 교사로 재직 중임.
( 사진: 싸리울 출판기념회 사진 모습)
수록 작품
- 고향( 1981. 봄, 나래시조문학)
. - 밤의 숲. (1980. 8. 월간문학)
- 뻐꾸기.(1980. 가을, 시조문학 )
- 약탕관.(1981. 6. 노래하는 항아리)
- 정선아라리.1 (1982. 7. 월간문학 )
고 향
남진원
인절미 한 접시에도
정이 철철 넘쳐나던
그 눈길 그 손길
반겨 잡은 손바닥에
눅눅한 눈물이 솟는다
인정이 그리운 오늘
찔레꽃 환한 웃음
유년의 내 강기슭
물결은 잔잔한 미소
어머니로 다가앉네
어질디 어진 바람이
저녁으로 불고 있네
흙냄새 살쪄가는
흙냄새 풀빛 마을
개구리 울음소리도
달큰하게 섞여 살고
송아지 젖빛 목소리
물컹 고인 숭늉내
( 1980. <시조문학> 출신 특집 시조. 21페이지)
( 1981. 봄. <나래시조문학> )
밤의 숲
남진원
어둠 갈피 갈피 고요를 접어 넣고
잎새들 설핏한 머리칼 잘라 먹는 바람 한 떼
짓푸른 피냄새 맡으며 바람 뒤에 내가 섰다.
갈기갈기 펄렁이는 개구리 울음처럼
목 말라 목이 말라 갈증을 펄렁이는 풀벌레
갈색 잠 연한 개울가에서 물소리를 씹는다.
별들이 산에 안겨 무성하게 자라는 밤
하늘은 달을 떼다 산마루에 매어 놓고
외로움 짙은 눈빛을 풀어 잠든 산을 태운다.
( 「월간문학」제31회 신인작품상 당선작. 1980.8)
(「한국시조큰사전」,한춘섭. 박병순. 이태극. 1985. 3. 23. pp249-250)
- 남진원의 사진과 약력, 시조 작품을 수록 -
( 시조집 『내 인생 밭을 매면』, 삼환인쇄사. 1991. )
뻐꾸기
남진원
숲 뒤에 혼자 남아 생각조차 물든 설움
송화가루 묻은 설움 잎새 뒤에 숨겨놓고
해종일 누굴 찾는가 가슴 아리게 웁니다
고사리 참나물 뜯는 치마폭에 고여 와서
뒤울안 장단지 속 장맛으로 석여 가고
더러는 마당에 남아 그냥 그렇게 스러집니다.
괜스레 울적한 맘 그냥 슬퍼지는 날은
뜻 없이 발 닿는 대로 개울가로 내려와서
한 마리 나도 뻐꾹새 꺼칠한 소리로 웁니다.
( 「시조문학」제24호. 1980. 가을). ( 「물레문학」창간호, 1981. 10. 1. )
(「한국시조큰사전」,한춘섭. 박병순. 이태극. 1985. 3. 23. pp249-250)
- 남진원의 사진과 약력, 시조 작품을 수록 -
(「물레문학」 창간호, 정선아라리문학회, 1981.10)
( 2020, 전자책 시조집『꽃물 들어 아픈 날』, 한국문학방송)
약탕관
남진원
어머님 체온을 넣고 한지 덮은 약탕관
부채로 일구는 정성 숯불 더운 사랑 속에
여름 날 푸른 신앙으로 끓는 그 생명의 청수(淸水)여.
내 유년 파란 샘터에서 꿈을 켜든 어머님
가슴에 고인 달빛 버무려 죄 버무려
눅눅한 수액을 풀어가는 자국자국 아린 손.
모조리 아픈 것은 여울져 끓고 있다
흙빛 약탕관도 고열로 신음한다
어머님 맑은 눈물도 함께 담아 데우며.
( 「노래하는 항아리」. 한국시조시인협회 연간집. 1981. 6. )
(「한국시조큰사전」,한춘섭. 박병순. 이태극. 1985. 3. 23. pp249-250)
- 남진원의 사진과 약력, 시조 작품을 수록 -
( 2020, 전자책 시조집『꽃물 들어 아픈 날』, 한국문학방송)
정선아라리. 1
남진원
묵밭에 가 보아라
술에 취한 왕건의 수염을 봤는가
저 만큼 돌아 누워
산을 파는 아낙 곁에
머리털 하이얗게 센 조양강도 흘렀거니
마을이 텅텅 비어
바람마저 외출한 때
온 몸을 벗어 들고
태양 속을 걸어가는 여자
전생과 이승과 내생
그 모두를 태우고 있다.
(「한국시조큰사전」,한춘섭. 박병순. 이태극. 1985. 3. 23. pp249-250)
- 남진원의 사진과 약력, 시조 작품을 수록 -
( 1984. 5. 1. 미래시 5집)
( 1991. 3. 1. 제6시집<시조집> 내 인생 밭을 매면 발간.)
* 1986년 6월 13일자 <어린이강원> 신문에 동요 <산길>이 뽑려 발표되었다.
산 길
남진원
꼬불꼬불 산길을 걸어가며는
향긋한 꽃내음 풍겨 나오고
산새들 노랫소리 들려옵니다.
친구와 손잡고 걸어가는
재미난 산길
꼬불꼬불 산길을 걸어가며는
시원한 바람은 노래 부르고
길 양편 나무들은 춤을 추어요
휘파람 불며 불며 걸어가는
즐거운 산길
( 1983. 5. 『소년』)
( 1985년 6월 13일자. <어린이강원>에 동요곡으로 뽑힌 글. 뽐은 사람: 춘천교육대학 유원 고수 )
* 1985년 부산문화방송에서 발간하는 [어린이문예] 6월호에 시 ‘봄날’을 발표하였다.
봄 날
남진원
들판에 서면
나무들이 주고 받는
초록빛 대화
새 한 마리
노오란 음표 두어 개
하늘 속에 떨구고
보리밭 이랑 사이
아지랑이가
나비를 몰아가고 있다
화창한
어느 화창한
세상 밖의 세상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1985. 6. 어린이문예)
( 1992. 5. 6. 제7시집. 동시집. 『선생님의 구멍난 양말』 )
* 1985년 여름, 대전에서 발간한 [동화마을]에 동화 ‘한여름밤의 꿈’을 발표하였다.
* 동화마을 여름호에 동화, ‘한여름 밤의 꿈’ 발표
한 여름 밤의 꿈
남진원
별남이는 강원도 어느 산속에 사는 아이입니다.
어느 날 밤이었어요.
별남이는 숲속으로 자꾸 걸어가고 있었어요. 숲속에 숨어있던 어둠이 조용히 밀려들고 있었지요. 어둠은 나무와 풀잎과 새들에게 다가가서 새 옷을 입히기 시작했어요. 연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어둠의 옷을 입히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어둠은 나무와 풀과 새들을 편안하고 아늑한 꿈길로 데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답니다.
별남이가 얼마만큼 어둠을 따라 걷다보니 별남이 몸에도 풀풀 어둠이 묻어나고 있었어요. 그때 나무와 풀잎과 새들은 어둠이 깔아놓은 꿈속 나라로 들어서고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에는 풀벌레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어요. 풀벌레들은 파랑 노랑 색색의 악기를 들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어요.
별남이는 깜짝 놀랐어요. 이런 일은 생전 처음 겪어보는 굉장한 일이었지요. 그곳에는 황금옷을 입은 기린도 있었고 별남이가 마음 속에서 그려보던 , 얼굴이 예쁜 사슴도 있었어요, 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폴벌레들이 연주하는 악기 속에서 하나 둘 셋…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아기별들이 날개를 팔랑이며 날아 나오고 있었어요.
악기 속에서 나온 별들은 큰 나무 위를 오르내리기도 하고 이쪽 저쪽 풀잎 뒤에 숨어 술래잡기도 하며 놀기 시작했어요. 어떤 별은 나뭇잎과 소곤거리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어요.
“얘, 너도 함께 저기 가서 놀고 싶지 않니?”
누군가가 별남이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귓가에 속삭였어요. 바람이었어요. 따뜻한 바람이었어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걸요?”
정말이지 별남이는 몇 번인가 발걸음을 옮겨 보았지만 걸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꼼짝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넌 착한 아이가 아니구나. 마음이 착하지 못하면 누구든지 이곳에 함부로 들어올 수가 없단다.
어느새 날개를 단 아기별 하나가 별남이에게로 와서 말했어요. 아기별의 말을 듣고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었어요.
공부시간에 장난을 하다 선생님께 꾸중 들은 일, 옆짝 영순이를 괴롭혀 주던 일, 남의 일기장을 훔쳐 보던 일, 그런 것들이 생각나자 별남이는 부끄러웠어요.
‘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니? 옳아, 너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모양이구나.“
아기별이 별남이에게 말했어요.
“어떻게 알지? 너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요술거울이라도 가지고 있니?”
별남이는 아기별이 자기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이상스러웠어요.
“ 그런 것쯤은 대번에 알 수 있지. 너의 머리를 만져 봐.”
별남이는 아기별의 말을 듣고 머리를 만져봤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별남이의 머리에는 그림에서만 보던 도깨비 뿔이 세 개나 돋아났어요. 별남이는 갑자기 무서워졌어요. ‘어떻게 하면 좋지, 내 머리에는 뿔이 나다니…’
별남이는 부끄럽고 슬퍼서 울기 시작했어요.
“그래, 울으려무나. 눈물이야말로 용서해주고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빛이란다. 나를 잘 보렴.”
아기별은 별남이를 위해 기도하듯 눈물을 흘렸어요. 아기별의 초롱초롱한 눈에서 눈물이 흐를때마다 별의 눈빛은 더욱 맑아지고 눈물은 나무와 풀잎과 숲에 닿아 수많은 별이 되어 빛나고 있었어요.
별남이는 아기별의 눈물을 보고 있으니 온통 꿈을 꾸는 것처럼 기쁨으로 가득찼어요, 어두운 밤이었지만 별남이의 눈에는 모든 게 신비스런 빛으로 가득찼어요.
“아름다운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어둠 속에서도 모두가 아름답게 보이는 거야. 별남이는 이제 사랑의 눈을 가졌구나.”
바람이 조용히 별남이에게 속삭이고 있었어요.
“그러나 사랑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니? 그건 바로 조금 전에 아기별이 흘린 눈물처럼 남을 용서해 줄 수 있는 마음이란다.”
별남이는 바람이 하는 말을 들으며 머리를 도 만져보았어요. 그런데 도깨비 뿔 대신 머리엔 금빛으로 수놓은 풀잎모자가 씌워져 있지 않겠어요?
“어, 이게 어떻게 된 이이지?”
별남이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별남이의 머리엔 보기에도 흉측한 도개비 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별남아! 이제는 너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란다. 이 모자는 사랑의 눈을 가진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영광스러운 모자란다.”
아기별은 별남이의 모자를 가리카며 말했습니다.
“자, 너도 이젠 우리와 같은 친구가 된 거야.”
아기별은 힘껏 별남이의 손을 끌어당겼어요.
그러자 별남이의 몸은 갑자기 하늘로 둥둥 뜨기 시작했어요.
숲속에서 놀던 아기별들이 하나, 둘 날개를 팔랑이며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어요. 풀벌레들은 더욱 신나는 노래를 부르고 나무와 풀잎들은 작은 손을 꽃잎처럼 흔들어주었어요.
여러분, 여름밤에 가만히 하늘을 쳐다보세요. 그러면 그 중에 유난히 반짝이는 별 하나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반짝이는 사랑의 별을 말이어요.
* 1985년 <월간문학> 6월호에 시, ‘꽃밭에서’ 발표
꽃밭에서
남진원
철모르고
부끄러움도 없는
그런 세상이다
벌이 한 마리 날아와
닮는 연습을 하고 있다.
* 1985년 6월 30일. 『미래시』 7집 시 발표
( - 머슴의 사랑. - 자리얘기 - 비오는 밤 )
머슴의 사랑
남진원
1.
손톱이 타는 이 자리는 텟줄조차 머슴인가
구멍만 숭숭한 목숨의 타래 낮은 울음으로 뭉개다가 휘두르다가 물살에 콸콸 씻다가
푸르른 하늘을 떼어 시퍼렇게 낫을 간다
2.
꽃잎이여 네가 울어
속살 같은 달이 뜨면
남빛 바람 속에
사랑으로 앓고 있던
차가운 내 물소리만 밤새도록 떠나가고
3.
그날 네 눈 속마다 달빛에 익어가던
아아 내 속 눈물
머슴 같은 머슴 사랑
상기도 네 젖꼭지에 넌출이며 솟고 있을
4.
살아 꿈틀대는
네 알몸의 하늘 가에
목 피리 떨어 울며
어둠 밟는 눈 먼 가락
산보다 깊은 적막을 쌓았다가 허물다가
5.
無心
구렁에다
기약 하날 꼬아 두면
뻐꾸기 뼈가 하얀 울음으로 돋우다가
끝내는 가슴 하나 씩 솟아 우는 춤이 된다
6.
입술도 비우고 살갗도 허물고
뼈만 남은 물소리에 귀를 씻어냅니다
당신이 무성한 귀를 자꾸 씻어 냅니다
씻고 또 씻어도 더 빛나는 은빛 하늘
죄여
아름다운 죄여
지울 길은 더욱 멀어
모질게 꺾인 채 사는 패랭이 내,
패랭이꽃
( 1985. 6. 30. 미래시 7집)
자리얘기
남진원
저와 내가 다스리던 외로움의 기슭에서
몸도 생각도 버린 사랑으로 앉은 자리
옆에다 세속을 두고 가야할 자리를 두고
아무리 가까워도 천리 밖에 사는 그대
아무리 멀어도 마음 안에 사는 그대
오늘은 멀고 가까운 그 행간도 비웠다
입은 옷이 달라 자리가 달라 보여도
생긴 모습이 달라 자리가 달라 보여도
여기는 저와 내가 고인 이 저승의 마음자리
( 1985. 6. 30. 미래시 7집)
( 1986. 6. 20. 『시조문학』 여름호 )
비오는 밤
남진원
임이 비가 되어
소리로 오시는 밤
나는 눈 먼 채
귀 열고 앉았으면
살갗은 온통 빗소리
임이 익어 스며든
임그리는 생각으로 몽친
나 도한 당신 빗물
임의 뜰 가득히
방울방울 맺혔다가
이 빗물 임의 그릇에 담겨
사랑 하나로 끓고파.
( 1985. 6. 30. 미래시 7집)
* 1985년 7월 『어깨동무』시, ‘고향집’ 발표.
고 향 집
남진원
바람은 바람 끼리
물은 물끼리
이때 쯤이면 귓속말을 한다
나무는 나무끼리
꽃은 꽃끼리
이때 쯤이면
서로 몸을 기댄다
별이 몇 개
문을 열고
살며시 내려다보는
꿈을 꾸듯
조용한
시골 밤 마을
달님이
시골집 봉창에
밤 깊도록 동양화를 그리고 있다.
( 1985. 7. 『어깨동무』)
( 1989. 4. 15. 제5시집,동시집>,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 1985년 7월,
『교육자료』시, ‘봄은 맨 먼저 나의 잠을 깨우고’ 발표.
봄은 맨 먼저 나의 잠을 깨우고
남진원
1.
창틈으로 들어온 연둣빛 바람
풀숲에서 나의 잠을 깨우고 있어요
꽃잎이 되어 흔들리고 있어요
샘터에 모여 선 미루나무가
새들을 불러내고 있어요
눈짓만으로도 벌써 아침은 아우성이어요
미늘처럼 반짝이는 햇살
엄마의 손이 보일 듯
장독대에 머리카락이 보일 듯
아른대는
우리들의 푸른 아지랑이
아지랑이는
눈이 없는 데서도 만나
들리세요
저 허공에 부딪치는 작은 유리병 같은
색깔을
2.
담밑엔
어머니가 들려주던
내 어릴 때의 노래가
자라고 있어요
파릇파릇한 순
조약돌을 쥔 내 손이었다오
그런데 저기 보세요
꽃밭을 맴돌다 얼굴을 잃어버린
나비 한 마리 때문에
5월은
5월의 봄은
하늘만큼 키가 크고 있어요
3.
어머니
오렌지 빛으로 길은
기타 선율처럼 휘어지고
때론 아주 작게 떨리고 있어요
나뭇가지엔 새소리가 걸려
나뭇잎은 온통
푸른 바다 냄새가 나요
어느새 온 들판이 마을이
어머니
누구를 기다리듯 마중 나가듯
새옷을 입었잖아요
들어보세요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풀잎처럼
귀연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우리들의 눈처럼 맑은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 1985. 7. ‘교단문인초대석’, 『교육자료 』)
( 1993. 3. 9. ‘92 아동문학 우수작 선집『너희들은 모르지』,계몽사 )
( 1997. 9. 25. 제8시집. 동시집. 『할아버지 이뽑기』, 대교출판 )
* 1985년 8월,
『새 벗』시, ‘누구인가요’ 발표.
누 구 인 가 요
남진원
우리 엄마 품속은
웃음이 솟아니는
작은 샘입니다
엄마가
눈짓만 해도
아기는 금방 방글거립니다
누가
웃음이 솟는
엄마의 가슴을 주셨을까요
우리 엄마 손은
약손입니다
어디가 아픈가
만져만 봐도
아기는 금세 병이 낫지요
누가 누가
신비로운
엄마의 손을 주셨을까요
우리 엄마 등은
꿈밭입니다
아기를 업고
뜰에 나서면
어느새 새록새록
잠이 듭니다
누가 따뜻한
엄마의 등을
주셨을까요
엄마와 아기
아기와 엄마
세상에서 아름다운
그 이름을 주신 분은 누구인가요
그 사랑을 주신 분은 누구인가요.
( 1985. 8. 『새벗』)
( 1988. 8. 30. 제4시집<동시집>, 『풀잎과 코스모스에게 』)
( 1989. 4. 15. 제5시집,동시집>,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 1985년 9월호 『아동문예』시, ‘빗소리’ 발표.
빗 소 리
남진원
여름밤 별님들이 모여 놀던 하늘에서
별보다 맑고 고운 비님이 내립니다
내려선 내 꿈속 길에 풍금을 켜고 있습니다
누가 부르는 듯 잠깬 눈을 들어보니
저 들판 흔들리며 은빛으로 귀를 열고
창 열자, 산도 한아름 빗소리로 안깁니다
그리운 소식인 냥 실실이 푸는 사연
말랐던 가슴끼리 적셔주며 품어 주며
하늘과 땅이 하나로 마음 잇고 있어요
( 1985. 9. 『아동문예』
( 1985. 11. 1.) 『누군가 그리우면』, 한국대표동시집.2)
( 1988. 8. 30. 제4시집<동시집>, 『풀잎과 코스모스에게 』)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 1985년 10월호 『동화교실』제4집. 시, ‘한가위’ 발표.
한가위
남진원
은하의
물결이 흐르고
하얗게 메밀꽃이 핀 밤
아이들은
조개처럼 하얀 송편을 먹고
살찐 달빛을 먹고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목소리가 환하게 어우러지면
맑은 웃음이 고여
달빛에 익는
누나의 옷고름
황금빛 노래에
들판마저
꿈에 부풀어 일렁이고
마을은 온통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신명난 아이들 목소리로
또 하나 커다란 보름달이 뜬다.
( 1983. 10. 『교우』. / 1985. 10. 4. 『동화교실』 제4집 )
( 1992. 5. 6. 제7시집. 동시집 선생님의 구멍난 양말 )
* 1985년 10월 1일. 『강원아동문학』제10집.
시, ‘아가’, ‘산이슬’, ‘낙엽’ 발표.
아 가
남진원
자면서도
크는
파릇한 새 순
산 이 슬
남진원
밤새
마알갛게
맺힌
풀벌레 노래
그
몽오리
낙 엽
남진원
낙엽은
개구쟁이 장난꾸러기
나무 밑에
모여
놀다,
바람이 나타나자
달음박질을 친다.
* 1985년 10월호 『교우』. ‘삶’ 발표
삶
남진원
소매를 걷어붙이면
네 머리칼도 싱싱한 날
단칸방도 한결 넓어 뵈고
마른 심장도 퍼렇게 젖겠다.
근심이야
걱정이야
둘둘 말아
콱, 흙 속에 끌어묻고
저승 길목에서
그때
서러운 눈물
팍 불지르자
지금은 푸르도록
힘줄 세워
부르튼 가슴
신명나게 살아갑세. .
( 『교우』. 1985년 10월호 )
* 1985년 방송통신대학 학회지, 『 청포』2집. 시 ‘탑’ 발표
탑
일하는 사람들 여기 모여
배움의 탑을 쌓는
청청한 손날
더러는 아프고 배고픈 노동이지만
돌의 중량 만큼이나
층층이 쌓이는 기쁨으로
탑을 쌓는다
두 발은 견고하게 땅을 딛고
하늘로 솟아오를
꿈을 꾸며
오늘도
시린 손끝에 온 힘을 모아
어둠의 한쪽을 깨뜨리는 이여
광활한 땅 위에
우리의 뼈로 쌓아가는
탑은 높아만 가고
어느 날
손바닥 부르튼 피멍으로
일어서는 탑을 보게 되리
날아오르는 탑을 보게 되리
그때
탑속에서 울려나오는
빛과 소리
그 푸른 눈물로 신나게 울자.
(1985. 『청포』제2집. 한국방송통신대학 학회지)
(1985. 11. 7. 제2시집 『나비, 청산의 나비』)
* 1985년 10월 7일. 제5회 강원아동문학상 수상자를 심사하다
강아 제8호 : 제5회 강원아동문학상 수상자 결정을 위한 회의 공문을 받았다.
1985년 10월 12일 오후 3시.
장소는 원주국민 학교 교무실.
참석 대상자: 임교순. 유성윤, 박유석, 이연승, 최도규, 고상순, 남진원
당시 나는 강원아동문학회 사무국장이며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였다.
* 1985년 10월 22일.
제25회 영동종합예술제 제2회 김동명 추모 시 낭송대회 심사위원을 하였다. (문인협회 강릉지부에서 위촉)
장소: 가을신용협동조합 4층 대회의실
* 1985년 11월 7일, 시집 [나비, 청산의 나비] 상재. .
이 시집을 받은 심우천씨는 편지를 보내왔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먼저 제2시집 출판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나를 잊지 않으시고 시집까지 보내주신 순수한 선생님의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아동문단의 비 순수가 역겨워 그냥 고향의 솔내음 지키며 살아가는 나에게도 가끔은 순수한 시인과 시들이 찾아주어 조금은 흔쾌한 삶을 느끼곤 한답니다.
선생님의 순수가 지속 되시고 太白 山河의 메아리가 공해에 오염되지 않도록 지켜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최도규 시인과 가끔 나누며 시집을 탄생 시켰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선배님을 잘 모시고 잘 해나가노라면 선생님은 더욱 「한국시단」에 큰 별 되실 것을 확신합니다.
부디 정진하시어 순수문학의 정도를 걸으시고 삼가 신께 기도드립니다.
1985년 11. 36. 심우천 드림
* 1985년 11월 26일, 시집 [나비, 청산의 나비] 발간을 아동문학가 김원석 사백님께서 축하해 주셨다. .
「 <나비 청산의 나비> 출판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늘 좋은 글 쓰시길 빕니다.
1985. 11. 26.
김 원 석 드림 」
*** 대구에 사시는 김몽선 시인께서 축하 엽서를 보내주셨다.
당시 주소는 대구 수성구 만촌1동이었다.
* 1985년 11월 26일, 시집 [나비, 청산의 나비] 발간을 축하해 주셨다. .
[ 나비, 청산읜 나비 ] 출간을 축하합니다.
멀리까지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승하시고 문운 빛나시기를 빕니다.
1985. 11. 25. 김몽선 드림
1985년은 내가 정선읍 용탄리 벽탄 병설학교에 있을 때이다. 이 당시 한국방송대학에 편입하여 공부하기도 했고 문학 활동도 활발한 시기였다. 돌아보니 까마득한 40년 전의 일이 되었다.
1985년 3월 22일 자로 계간 아동문학 전문지인 『아동문학세상』에 산문, [凡 文壇的인 風土를] 이란 제목의 글을 썼다. 엄기원 선생께서 운영하는 아동문학 전문지였다. 돌아보니, 30대 초반의 나이로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였던 것이다.
이 무렵 아동문학 단체는 [한국아동문학회], [한국아동문학가협회], [현대아동문학가협회] 등 아동문학의 분열 조짐이 있던 시기였다.
凡 文壇的인 風土를
남진원
或者는 말하기를 ‘아동문학이 몰지각한 인간들에 의해 짓밟혀 있는 것을 본다. 지금 우리의 아동문학은 천박한 유행을 가르치는 교재가 되고, 혹은 말장난이 되고 웃음거리가 되어 있다. 아동문학은 동심과 꿈을 팔면서 사치한 인간들이 사는 천당으로 가 버리고 이 땡에는 없다.’ 고 한다.
이글을 쓴 작자의 의도를 충분히 짐작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도 말초적이고 신경질적인 표현이 아닌가 싶다.
大抵, 창작 행위라는 자체가 개인의 자아실현과 인간완성에 있다는 것을 일의적 대명제로 한다면 아동문학이라고 이러한 문학의 범주 속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위의 말을 인용한 대로라면 이러한 표현을 한 본인과 그 외 자화자찬 격인 극히 ‘소수의 엘리트 群’을 제외 하고는 그 외 아동문학인들은 작가적 양심도 없이 천박한 유행에나 쫓는 작품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는 말인가? 사실이 그렇다면 개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허나 취중에서 서너 잔 마신 술로 하여 제 작품만 잘 났고 참된 문학이라고 씨부렁거리는 것은 술 때문이라고도 보아줄 수 있지만 무릇, 한 시대의 작품을 두고 논할 때에는 좀 더 넓은 식견과 안목으로 명확한 논리 진술과 문제점을 도출하여 그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해야 되리라고 본다.
더더욱 세간에 발표된 몇몇 작품을 보고 유아독존의 자세로 마치 전체가 다 그렇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편협된 평은 멀쩡한 정신을 가진 식자라면 반드시 경계해야 할 일이다.
또한 글을 쓰는 작가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처세술에만 골몰하여 문단 장치 행각을 일삼는 데 헛된 시간을 보낸다거나 이리자리 눈치를 보며 그 좋은 문학상(?)이나 하나 타 볼까 하는 부질없는 공명심에 연연하는 일, 그리고 작품 발표의 기회에 급급한 나머지 알량한 이름 석저나 활자화 되길 바라는 치졸한 짓을 한다면 이 얼마나 뭇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겠는가?
나는 아동문학을 순수한 사랑의 토양 속에서 가꾸어가는 나무라고 말하고 싶다. 순수와 사랑, 그 절대덕 자유의 바탕 위에서 아동문학이라는 나무를 심고 가꾸고 꽃 피워야 할 일은 우리 아동문학인 모두의 권리이며 의무인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동문학은 오늘날 안이한 생활, 편리한 생활 만을 추구해나가는 부류의 인간들에게, 또 기계와 기름, 소음, 공해에 찌든 채 병들어가는 물질만능의 현대사회를 구원할ㄹ 수 있는 오늘의 문학이자, 미래의 문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작가가 작품을 쓴다는 것은 신이 부여한 은혜로 알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보상을 받고도 남는 일이 아니겠는가.
비록 야산에 피어 있는 보잘 것 없는 꽃일지라도 향기가 좋으면 먼 곳에 있는 나비가 찾아오기 마련이고 밤(栗)이 익으면 절로 송이가 벌어지는 것과 같이 우리 아동문학인들은 애오라지 한마음이 되어 범 문단적인 풍토 아래 글쓰는 일에 전념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무슨 문학회니, 네가 무슨 문학회니 하는 아집에 찬 소속감도 버리고 강원도니 경상도니 전라도니 제주도니 하는 지역적인 배타 관념도 불식하면서 아동문학이란 정점을 축으로 하여 사랑과 순수의 토양 아래 혼신의 힘을 다하여 아동문학의 꽃을 피우자고 불초 소생이 강호 제현들에게 무례함을 무릅쓰고 천명(闡明)하는 바이다.
( 1985. 3. 22. 아동문학세상 )
내 나이 10살 무렵을 전후하여 우리 집 뒤뜰 여름은 내겐 아담한 정원이었다. 우리 집은 밭 가장자리에 집이 있었다. 집은 울타리가 있어야 했다. 삼촌들이 해온 소나무 판자를 길게 잘라 집 주위에 돌아가며 세웠다. 그것이 울타리였다. 그 울타리 밑에는 해마다 작약꽃이 피어났다. 작약 꽃대가 봉긋이 올라오면 그 모습이 너무도 예뻤다. 작약이 자라서 꽃을 피울 때 쯤에 나는 그 둘레를 깨끗이 풀을 뽑고 정리를 하였다. 어느 날 꽃이 피어났을 때의 그 기쁨은 값진 보물을 얻은 것보다 기뻤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고향집의 그 작약꽃 피던 날을 잊지 못하였다. 그래서 쓴 시가 <작약꽃>이다. 1985년 이 작품을 [아리랑 문예지] 2집에 발표하였다.
[아리랑문예지]는 김길식이라는 젊은 분이 예미에서 만드는 작은 책자였다. 원고를 청탁하였기에 작품을 보냈는데 소책자를 보니 정공채 선생의 작품 <산그늘>도 초대시로 들어 있었다. 정공채 시인의 작품을 읽으니 마치 그 분을 뵙는 듯 정겹고 반가웠다. 시속에 담긴 언어는 그 분 특유의 쓸쓸한 색채로 다가왔다. 김길식은 민족문학의 기치를 내걸고 영월, 정선 지구에서 책임을 맡아 일을 하고 있었다. 회원들의 작품도 수록되었다.
내가 어릴 때 아름다운 고향집의 기억을 아름답게 떠올려 주는 하나가 이 작품 <작약꽃>이다. 한마디로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작품’이다.
[시]
작 약 꽃
남진원
고향을 떠나 있으면
고향인 냥 그리웁게
피는 꽃이 있다
초여름 뒤 울안
수줍은 새색시처럼
솔곳이 피어나는 작약꽃
막걸리 한 사발에
고향을 풀어넣고
손가락으로 휘저으면
거기, 뻐꾸기 울음과 함께
피어나는
꽃 한 송이
오늘은
뉘 집 뒤란에서
흙냄새로 물씬 피고 있을까.
( 이 작품을 저녁 8시 무렵 마침 전화가 와서 이 시인께 낭독하였더니 아주 좋아하였다. 일부러 용기를 주려고 칭찬한 것 같기도 하고 ...... )
정공채 선생의 시 <산그늘>도 아름다운데 읽으면 잔잔한 아픔이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 그 늘
정공채
한 소년이 걸어가도
내 눈에는 한 쓸쓸한 중년으로 보이네
산 그늘 恨이 서려
내 눈에 들어오네
한 중년이 걸어가도
내 눈에는 한 소년의 외로운 家出이 되어 있네
감빛 山그늘
눈물에 어리어 ……
한 소년이거나 한 중년 이거나
山그늘 돌아가는 길
옛날의 고향집 어스름일세.
그 고향 마을 저녁답 연기(煙氣) 빛일세.
(* 저녁답: ‘저녁 무렵’의 경상도 방언 )
- 아리링 문예지 2집 -
============
소년, 중년, 어스름, 산그늘 등의 시어에서 이미 쓸쓸함의 이미져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고향집 어스름’으로 귀결되는 데 고향 마을의 저녁 무렵과 조화를 이루며 외로움의 효과를 상승시킨다. 독자의 심층 속에 묻어두었던 외로움을 정공채의 ‘산그늘’ 한편에서 꺼내어 평안마저 얻게 하는 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언제 읽어도 따뜻이 다가오는 벗 같은 작품이다.
* 시인 정공채(1934 – 2008)
- 경남 하동 출생.
- 195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 1957년 <현대문학>에 박두진의 추천으로 등단.
- 1959년 현대문학상 수상
- 1979년 시문학상 수상
- 한국문인협회 이사 및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을 지냄.
- 시집으로 <정공채 시집 있습니까?>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밖에 <아리랑> 등이 있다.
정선뮨화원에서 최문규 원장님이 계실 때, [산촌시인학교]를 개설하여 정공채 선생을 모시고 문학 강연을 열기도 하였다. 그때 선생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선생은 매우 겸손하고 진솔하셨다. 옆에서 본 나로서는 선생의 인품이 매우 돋보였다.
[시]
좋은 점은
남진원
일요일 아침이다
무료하다
TV는 食傷해사,
라디오를 켜서 혼자 떠들게 놔두었다
무료한 이야기가 지속되면
끄면 된다
좋은 점은
귀만 열어놓고 있어도 된다는 것이었다
( 2025. 8. 24 )
더위가 물러선다는 어제가 處暑이다. 너무 무더운 여름이다. 내 평생 처음 겪는 폭염이다. 작년에도 얼마나 더운지, 올해는 더 더울 것 같아서 에어컨을 들여놓았다. 단단히 준비를 하였기에 여름을 지낼 수 있었다. 매년 여름이 오길 기다렸다. 더운 여름이야말로 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부터 너무 더워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여름을 보니, 겨울엔 또 예상치 못한 추위가 올까 봐 미리 걱정이 되기도 한다.
[시]
處暑가 지나도
남진원
오늘도 전국 대부분 지역에 발효된, 폭염 특보
處暑라는 절기가 지난 게.
무색한 2025년 8월 24일이다
시원한 노래를 틀어봐도 후덥덥하고
밖에 나가 발 디디기는 더 겁난다
시내에 내려와 보면 젊은 남녀들이
이 더위 속에서도 평화롭게 걸어다닌다
숨통을 죄는 더위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걷는
저 모습이 대단하다 못해 위대해 보인다
나도 한때는 저런 시절이 있었겠지만
이젠
꿈속 일처럼
까마득하다.
[시]
세월 앞에서
남진원
어제는 국민 학교 동창들을 만나
식사도 하고 차도 마셨지만
세월 앞에서는
저나 내나 모두 낯선 늙은이들.
어릴 때 일들을 떠올리며
맘껏 웃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외로움의 그늘이 보였다
그래,
돌아서면 다시 독거노인이라고
쓸쓸함과 친해져야 한다고 ….
쓸쓸함에 더해
더위까지 보태고 있다고
헤어지는 발걸음들이
다소 무거워 보였다.
( 2025. 8. 24 )
그래도 여름은 갈 것이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더 하고 싶은 일이 없을까. ( 이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긴장되었다.)
[시]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남진원
폭염이 제아무리 지속되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여름 다 가기 전에
후회되지 않게
못해 본 일 없이 다 해 봐야지
나리꽃 꺾어 들고
환하게 웃던
어린 시절 분이야.
고향 냇가에서
맨손으로 풀숲을 더듬다가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며
고기잡이를 해 보는 거야
매미채 들고
매미 소리 따라
등이 흠뻑 젖도록 숲속을 헤매 봐야지
해거름 저녁이면 방죽에 앉아
그날처럼
도란도란 옛 얘기도
또 해 보는 거야
그래그래, 한여름 밤
탁자에 앉아
머리 허연 친구들 불러 모아
여름밤 총총히 빛나는 별을
다시 세어 보는 거야.
( 2025. 8. 24 )
1979년 소년조선일보에 동화 <우체부 아저씨>를 발표한 이래 두 번 째로 1985년 4월 18일부터 연재 동화 <왕밤할아버지와 달래>를 어린이강원에 연재하였다.
다음 글은 [어린이강원]에서 새 동화 연재 1주 전에 알리는 알림글이다.
그 동안 어린이들이 즐겨 읽던 최도규 선생님의 동화 ‘약속 220일’은 지난 주로 끝을 맺고 이번주부터 아동문학가인 남진원 선생님의 새 동화 ‘왕밤 할아버지와 달래’를 연재합니다.
이 동화는 왕밤할아버자와 달래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엮은 글입니다.』
*동화- 왕밤 할아버지와 달래
<1>
봄이라곤 해도 아직은 아침 저녁 콧잔등이 시린 바람이 붑니다. 연화산 언덕배기 양지쪽에는 ‘달래’라는 꽃씨가 땅속에서 싹이 틀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캄캄한 어둠 뿐인 땅속에는 아직 으스스한 추위만 감돌았습니다. 그러나 달래는 땅위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희망으로 가득 차서 조금은 기쁨에 들떠 있습니다. 작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습니다.
‘아휴, 갑갑해.’ 달래는 짜증이 났습니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꼼짝 할 수 없습니다. 이러다간 여영 땅 속에 묻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두려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애야, 조급하게 굴 것 없다.”
달래의 쬐그마한 귓속으로 어디선가 훈훈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누구세요?”
달래는 어둠 속에서 소리나는 곳을 향하여 귀를 오무렸습니다.
“나 말이냐? 난 이곳 터주대감이란다. 이곳에서 살아온 지가 올해로 꼭 삼백년이 된다.여기서는 모두들 왕밤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왕밤 할아버지는 긴 뿌리를 약간 움직이며 자랑스러운 듯 말했습니다. 달래는 자기 말고 또 다른 누가 곁에 있다는 것을 알자, 한결 마음이 놓였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언제쯤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 있나요?”
달래는 하루 빨리 칙칙하고 습한 땅 속을 벗어나 넓은 세상을 구경하고 싶었습니다. 어둡고 캄캄한 이곳은 정말 달래에겐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더구나 전과는 달리 달래의 가슴이 점점 갑갑해져 왔고 숨이 찼습니다.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 오셨기 때문에 달래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달래는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 말씀 좀 해 주세요. 저는 언제 쯤 숨막힐 듯한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지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한동안 무겁고 어두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기다려야 하는 거야. 너처럼 그렇게 성미가 급해서야 될 일도 안 되지. 세상에 쉬운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법이란다. 조금 더 참고 기다려 보려무나.”
무조건 기다리라는 말에 달래는 화통이 터졌지만 꾹꾹 눌러 참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지낼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달래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아무도 달래의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없다는 게 슬펐습니다. 왕밤 나무 할아버지는 마음이 좋아 보였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무슨 이야기라도 좋으니 누가 이럴 때 아무 얘기라도 들려주었으면 갑갑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달래의 주위에는 왕밤나무 할아버지의 다리 같은 길다란 나무 뿌리만 이리저리 뻗어있고 칙치한 흙냄새만 풍겼습니다.
“아이, 속이 메스꺼워라.”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머리도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현기증이 날정도로 정신이 어질거리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쓰러져서는 안 돼. 나는 새 잎을 틔워야 해.”
달래는 아픔을 가까스로 참으며 몸을 꼿꼿이 치켜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수를 셀 수도 없을 만큼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허사였습니다. ‘새 잎을 틔워 보기도 전에, 땅 위 세상에 나가 보기도 전에 영영 죽고 마는구나!’
달래는 슬픔이 복받쳐 오르는 것을 참을 길이 없었습니다.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울려고해도 울 기운조차 이제는 없었습니다. 달래는 피곤해지는 몸을 가누지못한 채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얼마나 잤는지 모릅니다. 달래가 잠에서 개어났을 때에는 연화산 등성이에 듬성듬성 버짐 먹은 얼굴처럼 붙어있던 겨울눈도 모조리 자취를 감춘 날이었습니다. 꽁꽁 얼어붙었던 연화산 골짜기에는 시냇물이 파란 하늘을 물 밑에 곱게 깔아놓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달래의 눈앞에 보이는 건 캄캄한 어둠뿐 이었습니다. ‘내가 살아 있었구나!’ 달래는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살아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몸을 치켜들고 땅위로 솟아오르려고 했습니다.
‘나는 밝은 세상에서 살고 싶은 거야. 어둠 속의 세상은 싫어.’ 달래는 온 힘을 모아 뒤채었습니다. 흙벽에 자신의 몸을 부술 듯 흔들었습니다. 살점이 떨어져나갈 듯 아팠지만 하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쾅!’ 가슴이 쪼개지는 고통을 느끼며 달래는 가물가물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2>
간 밤에 밤새도록 봄비가 내린 탓으로 연화산은 목욕을 한 것처럼 말끔했습니다.
올해 들어 유난히 포근한 아침 햇살이 연화산에 담뿍 쏟아져내리고 있습니다. 앙상했던 나무들은 생기있게 물을 빨아올리기 시작합니다. 남쪽에서 꽃 내음이 달큰하게 묻은 봄바람이 이곳 연화산에도 찾아왔습니다.
제일 먼저 겨울잠에서 깨어난 버들개지가 흔들거리며 봄바람을 반깁니다. 바위 밑에 웅크리고 있던 개구리도 햇살을 한입 물고 껑충껑충 뛰어 봅니다. 숲속에 숨어 있던 새들이 신이 난 듯 날개를 파득이며 푸른 하늘 속으로 솟구쳐 오릅니다. 졸졸거리며 흐르는 시냇물 소리도 맑은 공기 속으로 굴러 퍼지고 있습니다. 연화산 산 속 식구들은 모두가 즐거운 봄나들이를 하고 있습니다.
왕밤나무 할아버지도 큰 나뭇가지를 흔들며 기지개를 켰습니다. 그러나 몸이 전 같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너무 늙었어.”
생각해 보니 다른 산짐승이나 나무들 보다 더 오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왕밤 나무 할아버지는 지난 날의 일들이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릅니다.
연화산이 붉고 노란 단풍잎으로 꽃대궐을 이룬 어느 가을 날,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나뭇가지가 찢어지도록 탐스러운 밤송이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습니다.
“야! 이 밤 송이 좀 봐.”
‘어휴, 세상에 이렇게 큰 밤송이는 처음 보겠다.“
다람쥐와 산토끼가 부러운 듯 저마다 한마디 씩 재잘거리며 지나갔습니다. 그럴 때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여간 자랑스럽지가 않았습니다.
“햇볕에 잘 익혀서 산속 친구들에게 선물을 해야지.”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산속 친구들에게 주렁주렁 열린 왕밤을 선물한다고 생각하니 기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달님이 환하게 떠오르는 밤이면 왕밤을 잘 익게 해달라고 빌기도 했습니다.
그 해 늦가을, 첫 서리가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날 아침,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알밤을 하나, 둘 모두 산 속 가족들에게 보내주었습니다.
“맛있다. 맛 있어.”
“이렇게 맛 좋은 알밤은 처음인 걸.”
다람쥐며 토끼, 노루들까지 우루루 몰려 들어 알밤을 까먹으며 좋아했습니다.
왕밤나무 할아버지가 일년 내내 익힌 알밤은 해마다 연화산 산속 가족들에게 햔겨울 동안 큰 식량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산짐승들은 커다랗고 우람한 밤나무 할아버지에게 ‘왕밤나무 할아버지’란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참 즐거웠습니다. 남에게 도움을 베풀어주는 일이 이렇게 기쁜 일인지를 전에는 몰랐습니다.
“왕밤나무 할아버지, 재미있는 얘기 좀 해 주세요.”
어미 배에서 태어난 지 몇 달 안 되는 아기 토끼들은 왕밤나무 할아버지를 찾아와서 응석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바다 건너에서 날아온 커다란 새들이 이곳까지 와서 어린 새들을 마구 잡아먹는 이야기이며 배불뚝이 총각 사슴과 곱단이 처녀 사슴이 결혼하던 이야기들을 구수하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왕밤나무 할아버지가 10여년 전부터 심한 병을 앓아오면서 전처럼 탐스러운 밤송이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할 기력조차 점점 없어져 갔습니다. 봄이 되면 어린 나무들은 힘차게 푸른 잎을 틔우는데 왕밤 나무 할아버지는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이러다간 정말 죽고 말지….’
은근히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팔이 아프도록 왕밤이 달리던 때는 다람쥐며 산토끼 사슴 너구리 심지어는 여우까지 찾아와 인사를 하며 아침 저녁 건강을 걱정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한 해 두 해 왕밤나무 할아버지의 몸이 점점 더 쇠약해지자 산짐승들의 발걸음도 뜸해지더니 요 몇해 동안은 아예 발걸음도 안 했습니다. 행여 왕밤 나무 할아버지가 있는 곳을 지나가게 되면 ‘흥, 이제는 대추씨 만한 밤도 안 열리는 쓸모없는 늙은이가 되었구나.’ 하는 눈빛으로 힐끔힐끔 보며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럴 대마다 왕밤나무할아버지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요 몇 해 사이에 더욱 폭삭 늙어 쪼글쪼글해졌습니다. ‘죽을 날이 가까이 온 모양이야.’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힘 없이 중얼거리며 바싹 말라빠진 자신의 몸을 찬찬히 어루만져 보다가 뿌리 밑둥 부근에 눈이 닿자, 빙그레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요놈이 용케 땅을 뚫고 올라왔수나!”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흙속에서 빠꼼이 고개를 내민 달래를 보았습니다. 연두색 몽당 크래용만한 새싹이 할아버지의 곁에 돋아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3>
달래는 어디선가 불어오는 향긋한 향기에 정신이 들었습니다. 한결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
“여기가 어디지?”
살그머니 눈을 떴습니다.
“아이, 눈 부셔!”
눈을 뜨자 햇살이 잘금잘금 은가루처럼 내리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연화산은 연두색 물감이 퍼진 듯 고왔고 땅속으로부터 아지랑이들이 시샘을 하듯 날아 오르고 있습니다. 들판은 지난 밤 봄비가 내린 탓으로 기름을 칠해 놓은 것처럼 윤이 났습니다.
“내가 땅위 세상으로 나왔구나!”
“어, 내 몸이 이렇게 예쁜 연두색이었구나!”
달래의 기쁨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땅을 뚫고 나왔지?’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 큰 충격을 받으며 정신을 잃었던 달래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달래야, 기분이 좋으니?”
고개를 들고 보니 하늘에 닿을 듯 큰 나무가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바로 왕밤 나무 할아버지란다.”
달래는 아름드리 고목 나무가 바로 어둠 속에서 목소리로만 듣던 왕밤나무 할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시무룩해졌습니다.
“그 동안 애 많이 먹었지?”
“ …… .”
생각하니 왕밤나무 할아버지가 얄미웠습니다. 땅 속에서 어렵고 힘들었을 때에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도와주기는 커녕 참고 기다리라고만 하던 말이 새삼 떠올랐던 것입니다.
‘너, 나를 미워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내가 너를 도와주고는 싶지만 그런 일은 아무도 도울 수가 없단다. 누구든지 태어날 때는 그런 아픔을 겪는 것이란다. 그러니 그만, 오해를 풀려무나.“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뾰루퉁해진 달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습니다.
풋풋한 흙냄새 속에 섞여 오는 봄향기가 달래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습니다.
“비쭁, 호르르르.”
어디선가 맑은 새소리가 들렸습니다. 달래는 뾰루퉁해진 마음도 봄눈 녹듯 슬그머니 풀렸습니다. 하늘엔 조약돌 같은 하얀 구름 떼가 한가롭게 떠다니고 있습니다. 땅 위 세상은 살기가 너무 좋구나! 여기에서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참, 왕밤나무 할아버지, 누가 저를 땅위로 끌어올린 거예요?”
달래는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것도 모르다니…. 바로 네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 온 거야. 네가 열심히 노력하고 애를 썼기 때문에 너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키가 큰 것이란다.”
‘내 힘으로 솟아 올랐다니….’ 달래는 잘 믿어지지가 않았지만 자랑스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번 땅 속에서 답답하고 가깝하던 일과 머리가 깨어질 정도로 고통스럽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쇠망치로 얻어 맞던 것처럼 아프던 일도….‘
이 모두가 지금의 달래에겐 좋은 추억으로 여겨졌습니다.
“좋은 봄날이구나!”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마른 나뭇가지를 흔들며 중얼거렸습니다.
“할아버지는 잎을 안 틔우세요?”
연화산의 나무들은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서로 서로 잎을 피우느라 야단들이었지만 왕밤나무 할아버지 만은 큰 몸을 움직이지도 않은 채 꺼칠한 모습으로 서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잎을 피워야지!”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뿌리에 힘을 주고 땅속 물을 빨아 올리려고 하였습니다.
“너도 해 보렴.”
달래도 천천히 심호흡을 한 뒤 뿌리에다 땅 속의 수분을 모았습니다. 참 쉬웠습니다. 물 오르는 소리가 달래의 귀에도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숨이 차구나!”
왕밤나무 할아버지의 힘에 겨워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힘이 안 드는데요? 오히려 신나는 걸요.”
“그럴거다. 나도 전에는 그랬으니까. 이제는 몸이 통 말을 안 듣는구나.”
“그래도 힘을 내세요.”
달래는 왕밤 할아버지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는 밤알은 커녕 잎사귀 하나 제대로 피워내기가 힘들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왕밤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쳐져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세요?”
달래는 우두커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왕밤나무 할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주먹 같은 왕밤이 열리기는 틀린 거여.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왕밤을 주렁주렁 달아보아야 하는데….”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다시는 왕밤을 맺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무척 섭섭하신 모양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좋은 수가 있을 거예요.”
“그래, 고맙구나.”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달래의 말을 듣고 대견하다는 듯이 빙그레 웃었습니다.
<4>
이제는 달래도 몰라보리만큼 자라서 아기 손바닥 같은 잎을 너울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달래는 부지런히 땅속의 물을 빨아 올렸기 때문입니다.
연하ㅘ산을 휘돌던 바람이 왕밤나무 할아버지를 칭칭 감고 맴을 돌았습니다.
“이 녀석아, 어지럽다. 그만 두지 못 해?”
“히히히 할아버지, 저는 신나는 데요?”
“이 노옴!”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노여움을 참지 못해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얘, 꼬마 바람아? 어른을 그렇게 놀리다니….”
달래도 바람이 뺑뺑이를 도는 틈에 정신이 어지럽고 쓰러질 것 같아 핀잔을 주었습니다.
“아니, 뭐라고? 쬐끄만 게 누굴 보고 꼬마래.”
바람은 땅위에서 한창 자라나고 있는 달래를 보고 아니꼽다는 듯 쏘아붙였습니다. 달래는 그 말을 들으니 심술이 났습니다.
“너 때문에 나도 어지럽단 말이야. 이 꼬마 바람아.”
“아니, 또 꼬마라고..... 꽃도 피우지 못하는 주제에 참 별꼴이야.”
달래는 바람의 심술궂은 말에 한바탕 싸움을 벌이려고 하였지만 꽃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꾹꾹 눌러 참았습니다.
“꽃이라 그랬지?”
달래는 다그쳐 물었습니다.
“그래, 꽃이라 그랬다. 넌 꽃도 모르니? 내 몸 가까이에서 냄새를 맡아 봐. 향긋한 냄새가 나지? 이게 다 내가 저쪽 삿갓봉 밑에 살고 있는 꽃들이 내게 준 선물이야. 부럽지, 부럽지?”
바람은 달래에게 역을 올렸습니다. 달래는 바람의 몸에 커를 대 보니 정말 바람의 몸에서 난생 처음 맡아보는 달큰하고 기분좋은 냄새가 났습니다.
“호 - ” 달래는 다투던 것도 잊고 바람에게 물었습니다.
“그 꽃이란 건 어떻게 생겼니?”
“그것도 모르니, 넌 촌놈이구나. 그럼 내가 설명해 주지.”
바람은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달래에게 꽃잎의 모양에서부터 여러 가지 빛깔들의 꽃에 대한 이야기를 신이나게 종알거렸습니다. 그리고 알록 달록 멋진 옷을 차려 입은 호랑나비 왕자가 찾아와서 삿갓봉 꽃님들을 매일매일 쓰다듬어 주며 귀여워한다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바람으로부터 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달래는 삿갓봉 밑에 살고 있는 꽃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달래는 자신도 멋진 꽃을 피워보고 싶었습니다.
‘나도 꽃을 피워야지.“
“흥, 네까짓 게 무슨 꽃을 피우니?”
바람은 빈정거렸습니다. 바람이 돌아간 뒤 달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나도 어떻게 하면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만 머릿속에 꽉찼습니다. ‘옳지.’ 달래는 날이 밝으면 왕밤나무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아야 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달래야, 잠을 안 자니?”
왕밤나무 할아버지도 잠이 안 오는 모양입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몸을 흔들고 있는 달래를 불렀습니다.
“예, 잠이 안 와요.”
“무슨 걱정거리라도 생겼니?”
“할아버지, 어떻게 하면 꽃을 피울 수 있어요?”
“옳아, 그 일 때문에 잠이 안 오는 모양이로구나. 걱정할 건 없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저절로 꽃이 된단다.”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수 있어요?”
“남을 미워하는 생각을 버리면 자연히 아름다운 마음이 생기지.”
“왕밤나무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아가 바람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한 일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달래는 갑자기 어두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왜 아무 말이 없니?”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달래가 입을 꼭 다물고 있자, 또 토라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또 토라졌니?”
“그래서 그런 게 아니어요.”
“그럼?”
왕밤나무 할아버지가 다그쳐 묻자, 그제서야 달래는 아까 바람에게 ‘꼬마’ 라고 한 말과 퉁명스럽게 바람에게 말대꾸한 것이 걱정이 되어 그랬다고 했습니다.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달래의 말을 듣고 껄껄 웃었습니다.
“너는 참 마음씨가 착하구나. 자신의 잘못된 점을 뉘우치는 그 마음이야말로 아름다운 마음이란다.”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달래를 칭찬했습니다. 처음으로 왕밤나무 할아버지로부터 칭찬을 들었고 또 멋진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즐거움이 샘처럼 솟아났기 때문입니다.
<5>
달래는 날개가 있다면 어디든지 훨훨 날아가고 싶도록 기분이 좋습니다.
“나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지.” 그러면 틀림없이 삿갓봉 밑에 살고 있는 꽃들보다 훨씬 더 예블 것이라는 자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람에게 말로만 들은 호랑나비 왕자님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벌서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합니다.
여름이 한창 익어갈 무렵 달래는 훤칠하게 큰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꽃 피우기에 마지막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왕밤나무 할아버지, 더운 날씨지요?“
‘덥다 마다.“
왕밤나무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더위를 이기지 못해 마치 고무풍선이 빠지는 듯 힘이 없는 목소리였습니다. 여름이 되면서부터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눈에 띄도록 쇠약해졌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부채살 같은 잎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지만 할아버지만은 거무스레한 나뭇가지에 겨우 몇 개의 잎사귀 밖에 달지 못했습니다.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왕밤을 달아보고 싶었는데....”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왕밤을 다는 게 이제는 소원이 되다시피 한 것 같습니다. 달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할아버지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 제가 대신 꽃을 피우면 되잖아요.”
“그래, 고맙구나.“
달래는 왕밤나무 할아버지에게 아름다운 꽃을 피워 즐겁게 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화산 봉우리에서부터 산 밑까지 온통 초록색 크레용을 칠해 놓은 것 같은 여름 날, 달래는 도 한 번 심한 아픔을 느끼며 꽃을 피웠습니다.
“내가 드디어 꽃을 피운 거야.”
달래는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입니다. 멀지 않아 호랑나비 왕자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달래는 여간 즐겁지 않았습니다.
저쪽에서 초록 잎사귀를 밟으며 바람이 오고 있습니다. 달래는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얘, 바람아, 어때 멋 있지?”
달래는 바람이 칭찬해 줄 것이라고 짐작하고 으스대는 듯이 말했습니다. 달래의 말을 듣고난 바람은 깔깔거리며 웃었습니다.
“야, 야, 배꼽이 다 아프다.”
바람은 제자리에서 곤두박질을 칠 듯 웃었습니다.
“요것도 꽃이라고 피웠니? 삿갓봉 밑에 가면 너 같은 꽃은 수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단 말이야. 나비 왕자는 너 같은 것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으실 거다.”
바람은 달래가 피운 꽃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말했습니다. 달래는 한꺼번에 품었던 희망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어, 무슨 꽃이 요렇게 생겼어?”
다람쥐도 자나가다가 시큰둥하게 말합니다.
“쬐그만 게 볼품이라곤 없다. 그지?”
토끼도 지나다가 저희끼리 한 마디씩 주고받으며 지나갑니다.
달래는 죽고 싶었습니다. 왕밤나무 할아버지가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면 예쁜 곷을 피울 수 있다던 말도 모두 거짓말 같습니다.
‘난 어쩌면 좋아?’ 달래는 점점 초조해지고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하루하루가 달래에겐 지겹고 살아 있다는 것이 짜증스럽기만 했습니다.
‘난, 미운 얼굴이야. 모두가 날 거들떠보지도 않아.’ 이런 생각을 하니 지금까지 땅 위 세상으로 나와 꽃을 피우기까지 애썼던 일들이 억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대 벌 한 마리가 날아와 달래의 꽃잎 위에 사뿐이 앉았습니다.
“넌 누구니?”
달래는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난, 일벌이라고 해.”
달래는 일벌을 보아도 별로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몸집이라곤 콩알만한 것이 웬 목소리는 그리 큰지 작은 날개를 파득이며 날 때마다 왱왱 기분 나쁜 소리가 났기 때문입니다.
“넌 여기 뭣하러 왔니?”
달래는 맥 빠진 소리로 물었습니다.
“난 네가 좋아.”
“뭐라고?”
달래는 속이 상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모두가 자기를 미운 얼굴이라고 했는데 일벌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하자 비웃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너, 나를 못생겼다고 일부러 비웃는 거로구나.”
“아니, 아니야. 난 정말 네가 좋아서 내 마음을 그대로 얘기했을 뿐이야.”
“그래, 흥.”
달래는 그래도 일벌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들 나를 밉다고 하는데, 왜 너 만은 그렇게 생각 안 하지?”
“그건 각자 보는 눈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그런 거야.”
달래는 일벌의 말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일벌의 눈이 특별하게 생겨서 그런가?’ 달래는 그날 밤 일벌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6>
어둠이 풀풀 날릴 것 같은 밤입니다. 왕밤나무 할아버지는 피곤한 지 벌써 깊은 잠이 든 것 같습니다. 풀벌레들이 여기저기에서 나무 잎사귀를 간질이며 사근사근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아니야, 괜히 그런 거야. 일벌이 나를 놀리려고 그랬던 거야.”
달래는 도리질을 해 봅니다.
“괜히 그런 게 아니란다.”
‘누구지?“
주위를 둘러 봐도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렴.”
어디선가 또 속삭이는 듯 아까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야, 아름답구나!”
달래는 놀랐습니다.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로 은구슬을 깔아놓은 듯 했습니다. 그 중에 유난히 반짝이는 아기 별 하나가 달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달래야, 난 너를 밤마다 지켜 보았지.“
아기별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달래는 아기별에 비하면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볼품 없는 꽃 같아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넌 참 예뻐!” 아기별이 말했습니다.
달래는 이젠 아기별에게 까지 놀림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욱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아가 일벌도 나를 좋아한다고 하더니 너도 나를 놀릴 셈이로구나. ”
달래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달래야, 너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아름답다는 것도 일벌이 말한 것처럼 보는데 따라 다른 것이란다. 일벌은 원래 착하기 때문에 거짓말도 할 줄 몰라. 너도 남을 한 번 사랑해 보렴.”
“그러나 나는 내가 생각해도 내 자신이 미운 걸, 어떻게 남을 사랑하니?”
“그건 네가 바람과 토끼 다람쥐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기 때문일거야.”
“일벌은 멋있지도 않은데?”
달래는 심드렁해져서 말했습니다.
“우리들은 ‘아름답다’는 말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 그가짓 겉만 반지르르한 나비가 뭐가 좋으냐? 거기 비하면 마음 좋고 성실한 일벌이 네게는 훨씬 잘 어울린다. 우리 별나라에서는 겉 모양 보다 속 마음이 고운 별들 끼리 더욱 위해 주고 사랑해 준단다.”
달래는 아기별의 말을 들으면서 아기별이 점점 좋아졌습니다. 아기별은 바람이나 토끼 다람쥐처럼 남을 얕잡아 보지 않았습니다.
아기별과의 만남이 있은 후로는 달래는 외롭지가 않았습니다. 심심한 밤이면 아기별이 내려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어느 날은 달래의 꽃잎 속에서 꼬박 잠이 들었다가 새벽녘에야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일벌은 달래를 만나던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찾아왔습니다.
달래는 어느 사이 큰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일벌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아기별로부터 좋은 얘기를 듣고 난 다음 날 부터는 일벌이 찾아와도 싫지 않았습니다.
일벌이 달래의 꽃잎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줄 때는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차츰 차츰 일벌을 만나면서부터는 달래는 세상이 무지개 색깔로 보였습니다.
이제는 호랑나비 왕자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호랑나비 왕자를 생각한다는 것조차 머리에서 지웠습니다.
달래는 일벌이 자주 찾아주는 것이 미안하기만 했습니다.
‘일벌 도령님, 나는 미안해서 어쩌지요? 도령님이 나를 이토록 생각해 주는데 나는 아무 것도 드릴게 없으니까요.“
달래는 정말로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요? 사실은 난 달래에게 큰 도움을 받고 있는 거라오. 내가 매일매일 찾아오는 건 달래가 예쁘고 귀엽고 보고 싶기도 하지만 달래에게서 난 맛있는 꿀을 얻어가고 있는 거라오. 그러니 그런 생각일랑 조금도 갖지 말아요.”
일벌의 이야기를 듣고 난 달래는 꼭 꿈속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행복한 일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달래는 일벌 도령에게 자신도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쁨이 하늘에 닿을 것 같았습니다.
여름도 끝나가는 어느 초가을 밤이었습니다. 일벌은 달래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일벌 도령님, 제게 줄 선물이 무엇이셔요? ”
달래는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일벌 도령은 싱긋이 웃기만 했습니다.
“벌써 주었는 걸?”
“뭔데요?”
“우리들의 아기.”
달래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닌게아니라, 달래의 몸에서는 새로운 꽃씨들이 오롱조롱 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달래는 너무 행복하여 눈을 감았습니다. 그때 왕밤나무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달래야? 너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꽃이 되었구나! 나도 아기별이 내 소원을 이루어주어 마지막 눈을 감으면서도 행복하구나.”
달래는 왕밤나무 할아버지를 쳐다보았습니다. 달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왕밤나무 할아버지의 앙상한 나뭇가지에도 아기별들이 왕밤처럼 주렁주렁 열리고 있었습니다.
[시]
고향집
남진원
바람은 바람기리
물은 물 끼리
이때 쯤이면
귓속말을 한다.
나무는 나무끼리
꽃은 꽃 끼리
이때 쯤이면
서로 몸을 기댄다.
별이 몇 개
문을 열고
살며시 내려다보는
꿈을 꾸듯
조용한
시골 밤 마을
달님이
시골집 봉창에
밤 깊도록 동양화를 그리고 있다.
[시]
한가위
남진원
은하의
물결이 흐르고
하얗게 메밀꽃이 핀 밤
아이들은
조개처럼 하얀 송편을 먹고
살찐 달빛을 먹고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목소리가 환하게 어우러지면
맑은 웃음이 고여
달빛에 익는
누나의 옷고름
황금빛 노래에
들판마저
꿈에 부풀어 일렁이고
마을은 온통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신명난 아이들 목소리로
또 하나 커다란 보름달이 뜬다.
- 1985. 10.4 동화교실(제4집) -
1985년 11월 7일 발행.
[시집 차례 및 내용] 나비, 청산의 나비
●차례
서시 5 서문 박유석 6 발문 최도규 97
제1부 아내의 가게 13
나무심기 15 작약꽃 16 꽃이 피는 창가에서 17 달 18
여인 19 겨울 스케치 20 정사 21 사랑법 22 단식 23
어느 화가 24 바람들은 25 봄빛 26 아침 새 28 그날이 오면 29
장마 30 돌과 물 31 코풀기 32 눈병 33 탑 34 아내의 가게 35
도시의 아침 36
제2부 사랑, 그 외로움의 그물을 깁는.... 37
1.이슬 2.나무 3.풀벌레 4.노을 5.달맞이꽃 6.밤새 7.별 8.풀꽃
9.기다림에 비워 둔 꽃잎 하나가 10.사랑, 그 외로움의 그물을 깁는
제3부 아라리, 정산 아라리 49
제4부 임이여, 청산에 꽃 되오서 71
당신이 곁에 있으면 73 임이 비 되어 오신다면 74 너는 한 줄기 바람이더니 75
사랑은 76 샘 77 사랑 78 행복 79 그리운 이가 그리운 밤에 80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날 81 대숲 아래서 82 돌이 되고 싶은 날 84 부러운 밤 85
이슬의 노래 86 라일락 피는 봄에 87 봄 밤 88 어느 산기슭 풀꽃처럼 살다가 90
알아나 보자 91 임이여, 청산에 꽃 되소서 92 산유화 94 도라지 96
*저자 근영 3 *저자 약력 4
발문 恨 意識의 계승
박유석
恨이 많은 詩人 그는 南鎭源이다.
그를 만난 것은 오래지만 그의 人間과 文學을 함께 참 모습으로 느끼게 된 것은 같은 직장에서 근무를 하고 한 방에서 두 달 이상을 숙식을 같이 한 벽탄에서 시작되었다.
남 시인은 정선아리랑의 고장인 이곳 정선 골지리 출생으로 그를 대하고 있으면 靑山의 풀내음과 솔바람 소리를 느끼며 뜨거운 정에 이내 同化돠고 만다.
이번 詩集 「나비, 靑山의 나비」는 4부로 나누어 노래하고 있다.
그의 詩 世界 전반에 깔려 있는 意識은 정선아라리에 숨겨진 恨의 비애를 강한 배경으로 하고 있다.
詩人이기에 앞서 한 人間으로서 日常과 生에서 아파야 하는 것들에 깊은 애착을 통해 언어만으로가 아닌 淸純함으로 詩를 잉태하고 있다.
또한 아픔과 외로움 속 혼의 事物들을 사랑으로 그물을 짜며 그것을 더 높은 次元의 傳統的 아라리의 恨으로 여울져 흐르게 하고 있다.
그 한은 또다시 개성있는 순수한 詩精神으로 형상화되고 體質化하여 그 나름의 靑山에 작은 우주를 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번뜩이는 예지와 표현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헤어지는 법도 잊었다가
만나는 법도 잊었다가
친구야 외로울 때 바람이 되자
어느 산기슭
풀꽃처럼 살다가
먼 기억들을 되살려서
달 뜨는 밤이면
달맞이꽃 처럼 일어서서
숲을 지나고
강을 건너
그렇게 바람이 되어 만나는 거다.
풀물든 얼굴로 만나는 거다.
‘ 어느 산기슭 풀꽃 처럼 살다가’ 의 일부이다.
이렇듯 남 시인은 정선아라리의 恨 意識을 자신의 詩脈 속에 용해하여, 임이여 靑山에 꽃 되소서로 시를 통해 다시 태어나고 있어 기쁘다.
1985. 10. 20
정선 벽탄에서
江原兒童文學會長 朴裕錫
제1부 아내의 가게
나무 심기
나무를 심는다.
아내와 내가
언젠가
비좁도록 공간을 메울
목숨의 푸른 줄기를
땀을 버무려 넣으며
아내의 살갗처럼 흰
웃음을 다독거리며
사과나무를 심는다.
아내의 행주치마에 담은
우리의 미래를 나눠 심는다.
작약꽃
고향을 더나 있으면
내 마음 속엔
고향인냥 그리웁게
피는 꽃이 있다.
초여름 뒤 울안
수줍은 새색시처럼
솔곳이 피어나는 작약꽃
막걸리 한 사발에
고향을 풀어넣고
손가락으로 휘저으면
거기
뻐꾸기 울음과 함께
풀물처럼 묻어나오는
꽃 한 송이
오늘은
뉘집 뒤란에서
흙냄새로 물씬 피고 있을까.
꽃이 피는 창가에서
사는 게 때로 피곤할 때면
창가에 앉아
꽃을 본다.
인생은
다들 혼자로
피어난 꽃들
어둠이 풀어지는
창가에 서면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는 게 더러 힘이 들 때면
사는 게 이리도 아플 때면
창가에 기대
꽃을 보다가
빈 배가 된다.
달
한 밤에
고무신 가득히 고이는
선지피.
여인
여안은
화초
사랑의 물을 줄 때에야
싱그럽고 윤기있게 피어 오르는 꽃.
겨울 스케치
눈이
내린다.
간간이
바람의 작은
기침 소리
산에서 내려오고
뿌연
낮달이
눈 내리는 저 너머
생각 속에 잠겨 있다.
정사
다리가
보일 뿐
숲에는
하늘이 열린 채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랑법
부풀어
출렁이는 바다
빛과 소리가 슬프도록 차다.
단식
찢어진
북이 되어 앉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살들이
흐물흐물
흘러내리고
보아야 한다.
지금
죽음 저 너머에서
하얗게 일어서는
내 뼈를.
어느 화가
무지개가 몇 층 식 둘러선 가운데
동양화를 그리며
산을 마구 팔던 너
너의 노래는
귀에 쟁쟁한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고
우린 그때
하늘의 피부 깊숙이
네 손이 닿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바람들은
마을 밖에서 달려오는
저 눈물의 깊이 나는 몰라
어디쯤서 태고의 바람이 부는지
츨량할 수 없는 은밀한 불안으로
나는 밤마다 잠들다 놀라 깨고
어둠으로 부푼 벽에
죽음처럼 널려있는 우리들의 옷
오늘 밤 탈출의 의미를
나는 저 방황하는 속에서 듣는다.
뜨락에 지는 오동잎, 거기
불행이 될 수 없는
조용히 기울이는 바람의 눈동자
비 오는 동구밖 떠나는 것들이
네것이 된다해도
허전하게 고이는 빛깔들을
그렇게 사랑하는 바람들은
아픈 것을 나란히 눕혀놓고
밤마다 꿈을 꾸며
들을 수 없던
어둠의 음성까지
파란 속 잎을 틔우게 하고
저 깊은 나무들의 뿌리
맑고 깨끗한 신경을 퍼올리며
밤 내내 눈을 뜬 채
걸어가는 소리.
봄 빛
1
새벽으로 가는 안개들의
푸른 길 옆에
산의 손시린 물소리
마을로 오고 있다.
들판은
번쩍이는 햇살과
귀가 아픈 새떼 속에 일어서고
우리들의 삶
그 한가운데
희디 흰 소금으로 남아
짭짤하게 등허리를 절이고 있는
풀 뿌리 밑에서
아침은 깨끗한 피부를 드러낸다.
벌써 몇 광주리씩 푸른 바람을 이고
대문을 나서는‘아주머니들
땀과 거름으로
기름진 잎들이
그림자를 드리운 채
빛 속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있다.
2
미루나무 잎새들이 부풀어오르는 한나절
따뜻한 것으로 닿아
살 섞이는 돌과 풀
눈썹같은 아지랑이들이
꽃씨들을 파랗게 들어올리는
햇빛 속으로
웃대 할아버지의 송화가루
풀풀 뻐꾸기 울음으로 날리면
종달새가
보릿대궁 피워 물고 솟아오르는 하늘 속엔
유리알 같은 오월의 바람이 불고
네 이름과 내 이름이 가슴 속까지 닿는
우리들의 눈동자가 젖어 있었다.
아침새
신비의
숲에서
새가 운다.
우는 소리가
차가울수록
아름다워서
산이
바람처럼
일어서고
새벽의 강을
건너오는
꽃 한 송이.
그날이 오면
옷을 벗는 일이다.
옷을 벗고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일이다.
내 목숨의 빈 잔 거두어갈 때
당신의 손에 끌려가지 않고
당신의 뒤에 따라가지 않고
다만 내 스스로
걸어가도록 준비하게 해 주소서
나는 당신의 나라를 모르지만
당신이
나를 찾아오는 줄은 압니다.
질병과 무서움, 괴로움의 병정을‘거느리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건
남루한 옷을 벗기기 위한
당신의 예법이기에
정영, 내가 나의 임을 사랑하듯이
그날이 오면
나는 나의 문을 열어 놓고
그렇게 당신을 맞이하여
옷을 벗으리
옷을 벗고도
부끄러워 하지 않으리.
장 마
생채기 투성이다.
누가 뒤에서 조종하는 손을
잡기는 커녕 보지도 못한 채
자꾸 뜯김을 당하고만 있다.
어둡고 혼돈한
비가 내리고
물아개만 푸르딩딩한 넋으로 살아
물 위를 거닐고 있다.
돌과 물
물이 돌을 부순다.
온 몸이 박살나는 물
그렇게 흩어진 물 알갱이들은
또 다시 모여서 돌을 부순다.
이제는 어리석은 물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세상을 걸어 잠근
돌이 미울 뿐이다.
코풀기
코를 푼다
썩은 콧물을 풀어낸다.
가난한 그 시대의 다락방에서
눈물보다 매운 코를 풀어 던진다.
온 몸의 힘을 콧구멍에다 쏟고
숨통이 콱 터지라고
풀어내는 코지만
아가리가 시커먼 그놈은
되려 눈만번들거리고
은밀한 곳에서 썩어가면서도
썩는 줄 모르고
세도를 누리고 있다.이, 팍 물어 쳐죽일
콧구멍 때야
이놈의 코
이놈의 코.
눈병
눈이 꽤나 속이 상해 있었다는 걸
눈병이 나서야 알았다.
너무 더러운 것을 많이 본 죄로
더러는 안 볼 것을 본 죄로
눈이 앓고 있다.
곪아터진 후에야 원망을 하는
나 자신을 비웃으며
나 대신 눈이 앓고 있는 것이다.
눈이 이제는 좀
세상을 가려가며 보라고 한다.
한 동안 한쪽으로만
정성스럽게 보는 법을 익히라고 한다.
탑
일하는 사람들 여기 모여
배움의 탑을 쌓는
청정한 손날
더러는 아프고 배고픈 노동이지만
돌의 중량 만큼이나
층층이 쌓이는 기쁨으로
탑을 쌓는다.
두 발은 견고하게 땅을 딛고
하늘로 솟아오를
꿈을 꾸며
오늘도
시린 손 끝에 온 힘을 모아
어둠의 한 쪽을 깨뜨리는 이여
광활한 땅 위에
우리의 뼈로 쌓아가는
탑은 높아만 가고
어느 날
손바닥 부르튼 피멍으로
일어서는 탑을 보게 되리
그때
탑 속에서 울려나오는
빛과 소리
그 푸른 눈물로 신나게 울자.
아내의 가게
자동차 바퀴의 소음 속에서
아내는 잠을 깬다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3백원 짜리 떡볶기를 팔고
김밥을 파는 아내
처음 가게문을 열고나서
손님이 오니
신랑보다 더 반갑더라고
활짝 웃으며 말하는 목소리에서
억센 풀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가진 것이 남루해도
늘 행주질을 하며 사는 아내
봄꽃보다 아름다운 수줍음도 몇 개
소매 끝에 숨겨둔 채
오늘도 아내는
빈 그릇에 수북히 담겨지는 도시의 소음
그 폐수를 닦아내며
키 큰 손님
키 작은 손님의 목소리 따라
분주히 간을 맞추고 있다.
도시의 아침
자동차 소음과 번쩍이는 간판과
골목에 숨었던
때 묻은 바람 소리로
도시의 아침이 깨어나면
고단한
간밤의 꿈을
옷섶에 여며 넣으며
서둘러 문을 여는 사람들
그리고 부지런히
시림들은
살찌우기 출발을 하고 있다.
제2부 사랑, 그 외로움의 그물을 깁는…
(1)사랑
사랑은
아침 햇빛에 매달린
투명한 울음
내가
네 속에 사는
네가
내 속에 사는
사랑은
슬픈
맞물림
(2)나무
바람이
불면
우리는
한 그루 씩의 나무
빈 하늘
이쪽 저쪽에
서로 외로운 이름을 쓴다.
서로 허전한 얼굴을 그린다.
(3)풀벌레
무후한
어둠 속에 젖는
풀잎들의
저 눈물을 보아요.
달빛이 구부러진
숲길에
목소리만 남아
가슴 속 입술만 남아
설움을 만지고 있는
풀벌레 갸름한
손
(4)노을
외로움이 깊어서 바다가 될 때
당신이 부르시면
난 멀리서 대답하는 노을이 될래요.
먼 길에 당신 모습만 봐도
난 벙어린데
난 벙어린데
당신 앞에 서면
말이 없어도
황홀한 말씀
당신이 오실 땐
마냥 부끄러워서
눈을 감아도
자꾸만 가슴이 뛰는데
내 그리움 너무 깊어
당신이 찾으시면
난 멀리서 우는
노을이 될래요.
(5)달맞이꽃
아파도
고운 약속이라서
그리움만 짙은
네가 피운 꽃은
슬퍼도
아름다운 약속이라서
기다림만 물든
네가 피운 꽃은
사랑은
외로운 약속이라서
밤에만 몰래
네가 피운 꽃은
울음소리도 작게
네가 피운 꽃은…
(6) 밤 새
그리도
애닲은
혼만 남아
달빛 푸른
숲
숲에 고인 새야
울다가
지치거든
고운
고운 잠 자라.
(7)별
머나먼
그
하늘 밭
터질듯
외로운
몸짓으로
밤에만 피어나는
들꽃
내 작은 들꽃
눈빛이 고와
눈빛이 맑아
가슴에 훈장처럼
너를 달고 싶은
밤
(8)풀 꽃
우리가
이름 없는
풀꽃이어도
가리울데 있는
서런
잎이지 말자
잊힌듯
볼품없는
빛깔이어도
하늘과 물과 바람과 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살자
피어서
꽃이라고
불러줄 이 없어도
내가 네곁에서 피고 있는 것을
네가 내곁에서 피고 있는 것을
감사하며 살자.
기도하며 살자.
(9)기다림에 비워 둔 꽃잎 하나가
초록 햇살이 내리는
길 위론
눈이 아려서
당신 오실 길도
눈이 아려서
비워 둔 채
귀가
아픈
내
이름은
작은 꽃망울
(10) 戀歌
처음도 끝도 없는
늘 설레임의 마당
내 사는 곳은
다시 갈 수 없는 그대 울밑이라도
늘 서성거리는 마당
그대 사는 곳은
- 기다림으로만 살았어도 좋아라
- 그리움 만으로 살았어도 좋아라
세월에 흰 머리카락 날리며
풋풋한 바람처럼
영혼이여, 육신을 떠나 날아 오를때면
오오, 그때야
그대 기다림으로 비워 놓은 자리에
온전하게 살을 붙이리
내 영혼의 집을 지으리.
제3부 아라리, 정선아라리
1
내 입김만
닿아도
스며 아지랑이
되는 임
그 연한
외롬만 짙어…
어느
천년
꽃이 될까.
2
바람이 불어오는 밤은
무섭다.
오늘처럼
어느 산기슭 이름 모르는
꽃이 피는 밤은
더 무섭다.
어둠이 일어서서
돌 하나를
흔들어대는 밤
하늘에
미친 달이 타고
아아
머리칼이 빠진 바람이 분다.
3
하늘 아래
울음 빛
푸르른 봄날
성마령
골짜기에도
산수유가 피고
나는
색동옷 입은 나비
임 그리던
생각을 모아
날개를 짠다.
하늘 아래
울음 빛만
푸르른 봄날
4
임 계신
꽃대궐
어디신가
그리던 생각일랑
날개에 싣고
잠들면
환한 세상
꿈밭길에서
가자
또 가자
나비
청산의 나비
5
먼 산에
아지랑이 같은
오오, 나의 림은
그 연한
외로움만
푸르르게 돋아
봄 오고
또 봄 오는 들판에서서
가슴에 돋아나는 그리움들을
파랗게 파아랗게 시로 씁니다.
먼산에
아지랑이 같은
오오, 나의 임은
6
임은
작은 별
쏟아질 듯
총총총
별 빛나는 밤
불어라
바람아 바람아 바람아
7
그리움이
소망으로 젖어드는 밤
바람이 사는 언덕에서
당신 젖가슴이 고운
달을 보자던
오늘은
달처럼 또 하나 달이 떠서
마음이 그립도록 번져가도
임이 깰까봐
숨어 비치는
달
팔 아픈 달
8
하늘 창창한 봄날
이별보다 싯푸른
울음이 섞여
산굽이도 한줄기 틀어져 내려와
입이 시리게 섞여 도는
혼백의 강
꿈에라도 손이 닿는
사랑길이라면
눈물 맛 한 백년 아우라져도
단맛만 나리
단맛만 나리
산비알 굽이굽이 외로움만 짙은
서른 세 살의 강 모래톱엔
탱탱 가슴이 빈
머슴의 눈빛 같은 싸리꽃만 피고
이 빠진 기다림에
이승을 지키고 선 내 나룻배엔
저승에서 쫓겨 온
오오, 불쌍한 임의 손톱자국만
아프게 흔들리고 있다.
- 아우라지강-
9
헤어질 사람도 없는데
서럽게 울 눈물도 없는데
꽃이
피어
외로운
봄밤
촛불을 켜고
그리운 것들을
다시 데운다.
10
생자의 목숨 가지에
날아와 앉는
새야
궁금타
입술 마른
사랑의
식량 때문
오늘은
하느님의 나라도
비어
말 없는
햇살만 콩가루처럼
섭섭하게
진종일
배 고픈
연두색 미운
봄날
11
당신은
강물이구려
흐르기만 하는
떠돌기만 하는
나는 눈 먼 사공의
낚싯대가 되어
당신의 가장 깊은 곳에
추를 드리고
천년
또 천년
당신의 살 속에서 익으리.
12
열두번 도 더
산을 오르고 싶다.
연한 새순이 돋아
만산
채운이 도는
임의 살결
그 같다면
그 같다면
열백번도 더
산을 오르고 싶다.
13
오늘 밤에 뜬
달은
천년
푸른 솔가지 태워
조총처럼 구운
그리움
단 한번 피우려다 엉겨 붙은
사랑의 풀꽃 무더기 무더기
잠이 든 그대 창가에
밤 내내
소망인냥 떠 있거라
내 임을 그리사와 우니나니.
14
사는 게
꿈인가
꿈 속이
삶인가
청산에
저 나비
임이라시면
꿈 속에
뵈는 임
왜 보내셨나.
15.
너, 내가
하늘과 땅 그 머나 먼 거리도
아프락싸스
그분이 예비하신
온 몸을 떨어
울어
눈물이 빛날 때 까지
너, 내가 만나냐 할
열매, 젖가슴, 그리움
장밋빛 해
우리가 어둠을 나누어 섞을 때
사랑이 두 개 네 개 여덟 개…
하늘 밭에 번져갈
눈물을 처음 보신
아프락싸스
그분이 예비하신
카인의 표지
땅과 하늘의 사랑
16
설운 사랑도
여물면
분이 나는가
외로움도
달디 단
씨가 되어서
제 홀로
여문
희디 흰 울음
슬픈 사랑도
여물면
분이 나는가.
17
맺히고 싶은
열망이
오죽이나 컷으랴
지금
몽글몽글한
푸른 맛으로 채워지고 있는
포도나무를 보고 있으니
먼 산 보듯
바라보고 사는
임과 내가
부럽다.
18
임도
나도
모르게
꿈속에서만
쬐끔 씩
키우는 사랑
빨갛지도 하얗지도 못한
자주색
감자.
19
물을 태우고
바위를 태우는
불
사랑 불
나도
나의 임도
태우리
태워서
희디 흰
꽃씨 만드리.
제4부 임이여, 청산에 꽃 되소서
당신이 곁에 있으면
당신이 곁에 있으면
나는 연둣빛 연한 오월의 사슴
정녕
나는 당신의 사슴일레요.
당신이 곁에 있으면
나는 6월의 바람
우윳빛 당신의 젖줄 같은
사랑을 물고
언제나 당신의 바람일레요
당신이 곁에 있으면
당신이 곁에 있으면
오, 그래요
나는 한 송이 꽃일레요
질 수 없는 당신의 꽃이 될레요.
임이 비되어 오신다면
임이 비 되어 오신다면
나는 세상보다 큰 솜덩이가 되어
앉으리다.
참으로 석지 않는
솜이 된 채
내 살을
당신의 비로 적시리.
너는 한 줄기 바람이더니
내 창가에 달디 단 향기로 묻어나는
너는 한 줄기 바람이더니
꽃가지를 흔들며 내 귓가에 속삭이는
너는 봄 아침 은은한 빗소리더니
저 들녘 새 잎 돋아나는 아우성처럼
와 - 와 -
소리 없이 번져
내 빈 가슴 속 자리 잡은 너는
칠색 무지개더니
오늘은 귀가 귀가
네 귀가 고와라
스물 네 살 쑥 내 나는 푸른 바람이여.
사랑은
사랑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근원에서 나와
너와 나를 적셔주는 봄비 같은 것
사랑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저 언덕 연두색 들판의 아지랑이 같은 것
사랑은 주면 줄수록
더 많이 고여
주어도 주어도 철철 넘치는
여름 아침의 샘물터 같은 것
그러나
사랑은
해 지고 달 뜨면 울고 싶은
사랑은….
샘
마주
앉으면
우리는
하나
나는 네게로
너는 내게로
언제까지고
주기만 하는
너와 나
샘이고 싶다.
사랑
하늘 속에서
울리는
푸른 떨림을
그대
땅에 스며
흙의 기운으로 되울리는
너와 나는
한 개 씩
혼으로 우는
진동 항아리
행복
내 속에
송두리
네가 살고
네 속에
송두리
내가 살고.
그리운 이가 그리운 밤에
오늘 밤은
그리운
촛불을 켜렵니다
그대
외로워
잠 못 이루던
그 많은 밤을 위하여
그 많은 날을 위하여
어느 머나 먼 나라의
소망처럼
별이 빛나듯
눈물로
고운 촛불을 켜렵니다.
손 모두어
밝히는
촛불을 켜렵니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날
꽃가지를 흔들듯이
너를 자꾸만 흔들고 싶은
바람이고 싶어…
매화 향기 불어오듯
그렇게 네 가슴에 번져드는
향기이고 싶어…
가을엔 내 속살 송두리
너로 하여 익어가는
과일이고 싶다.
그러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내 하늘 빛 기다림은 겨울바다에서
또 한해 새움으로 돋아날
바람이고 싶어서
봄이고 싶어서….
대숲 아래서
당신은저렇게 굽이굽이
아랑의 안개에 젖고 있다.
생각도 젖어 흐느낌도 젖어
그 달 같은 옷고름도
자꾸 젖는 밤
이땅의 모두가 슬픔이라도
바람이 자고
또 바람이 자면
당신은
예맥의 여인
소망의 어느 산기슭에서
작으디 작은 등을 켜는가
산다는 것이 혼돈이어도
혀 아닌 가슴으로
한 세월 사랑의 옷을 깁고 앉은
당신의 눈 먼 바늘 귀
산도 바다도 가라앉는
눈물이 젖어
밤은 깊어가고
달빛이어라, 당신은
내 온 몸 소리없이 젖는 달빛이어라.
돌이 되고 싶은 날
하늘이 푸른 날은
나는
가라앉는 돌이 된다.
아지랑이
실실이 붉은 날은
차라리 눈이 먼 채로 돌이 된다.
하늘 구만리
저리도 고운 노을은
죽어서도 내가 남아 울다
바람이 자면 가라앉는
나의 돌
해 지면
달아
뜨지 말아라.
부러운 밤
나무 이파리들이 흔들린다.
주고받는 이야기가 싱거운 거야
상관없다.
그들에겐 이야기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있다는 확인이 중요하다.
말이 없어도 좋은 밤에
서로가 서로를 흔들고 있다.
이슬의 노래
내가 물방울이라면 당신 생각으로
몽친
다만 그 하나
외로움에 떠는
햇빛에 눈부셔
무지개 내 속에서 빛나도
그건 오직 그대 가슴에 들고픈
두근거림의 빛
상기도 풀잎에 매어달림은
네 마른 입술에 스밀
투명한 눈물이기에
해가 뜬 한낮에도
젖은 채
아아 내 눈부신
울음을.
라일락 피는 봄에
라일락 옆에 서면
나도 라일락 꽃 될까부다.
사는 것이
눈물나도록 고마운
봄 하늘 아래
네 앙가슴
작은 말들이
푸르러지도록 귓속말로 들리는
라일락 옆에 서면
네 숨결 내 가슴에
하나로 모아
정말은 나
네 속에 번져나는
솔방 향기이고 싶다.
(* 솔방: 몽땅이란 뜻)
봄 밤
봄밤은 떠나간 이름들의
발자국 소리
그렇게 떠나간 이들이
스며드는 소리
천리 먼 내 임의 울음소리도
개구리 울면 문밖에 나와
외로운 갈꽃인냥 흔들고 있어
별이 반짝이면
숨었던 바람들이
얼굴을 들고 찾아오고
서리서리 굽이쳐 돌다
물끼 어린 눈동자로 오는 바람아
너무나 소중한 것들끼리
그렇게 만난 이유 하나로
죽은 듯 살아온 식구들아
주는 것이 없어도 좋아서
받는 것이 없어도 좋아서
시작도 끝도 없는
그리움 만이
발자국 소리로 흐르는 밤에.
어느 산기슭 풀꽃처럼 살다가
헤어지는 법도 잊었다가
만나는 법도 잊었다가
친구야
외로울 때 바람이 되자
어느 산기슭
풀꽃처럼 살다가
먼 기억들을 되살려서
달 뜨는 밤이면
달맞이꽃처럼 일어서서
숲을 지나고
강을 건너고
그렇게 바람이 되어 만나는 거다.
풀물든 얼굴로 만나는 거다.
헤어지는 법도 잊었다가
만나는 법도 잊었다가.
알아나 보자
궂은 비
눈보라
인욕으로 사는 한 생
알아나 보자
새가 우는 까닭을
세상사 끊이잖고
물레처럼 도는 시름
알아나 보자
꽃이 피는 까닭을
한 목숨 피고지면
흙이 되어 썩을 육신
행자여, 옷을 깁듯
시름 속에 깁는 사랑
알아나 보자
해가 뜨는 까닭을
알아나 보자
달이 뜨는 까닭을.
임이여 청산에 꽃 되소서
그리운 이가 그리운 날에
임이여 꽃 되소서
나는 한 마리
나비 되오리다.
가다가 곤하면
갈섶에서 잠이 들고
잠 들면 꿈속에서
임의 꽃 가르쳐주소서
그리운 이가
그리운 날에
임이여 꽃 되소서
나는 한 마리
나비 되오리다.
가다가 힘들면
아무 꽃잎에 앉으리까
아무 풀잎에나 앉으리까
그리운 이가 그리운 날에
임이여
가는 길도
임의 향기로 가르쳐주소서
임의 향기로 붙들어주소서.
산유화
한 세상
구비 돌면
외진
그런 곳에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사는
산유화
산유화
가슴이 맑아
산에
피었나
보일 듯
말 듯
바람에 흔들리며
석양에
물드는
노을을 닮아
그리운
그 모습을
그려 보다가
저 혼자
산에
산에
피워보는 꽃.
도라지
깊은 산
뻐꾸기 울다
지나가는
파란 하늘
그 아래
아무도 없는 외딴 산길
산처녀 같은
도라지
도라지꽃
피었습니다.
발문
최도규(시조시인, 아동문학가)
‘나비 청산의 나비’라는 조그마한 시집을 하나 내겠다고 어느 토요일 저녁 남선생이 찾아왔다.
보석함이 어디 커서 값진 것을 담았던가 무엇을 담느냐가 문제인것이다.
나는 일주일 만에 만난 아내와도 아야가를 나눌새 없이 술 한 잔을 나누며 밤 늦도록 남선생과 시집에 관한 의논을 했다.
일찍이 아동문학으로 등단을 하여 동시집 ‘싸리울’을 내 놓았고 시조문학과 월간문학에 시조로 당선하여 문제작을 발표하더니 그것도 부족해 몇 년 전시로 다시 신춘의 문까지 통과한 남시인이다.
문학이라는 것은 사색하는 것이고 너그러움을 키우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시와 치열한 정신의 승패 없는 싸움을 해 온 그였다.
이런 남선생의 시집에 발문을 쓰게 되어 영광스럽긴 하다.
그러나 각 시편마다 잘 짜여진 이미지의 직조를 서투른 가위로 재단하고 또 보기 흉한 실올까지 보이게 한다면 시에 대한 해설이나 분석은 오히려 해가 되는 일이므로 나만의 감상으로 그칠까 한다.
남시인은 강원도 하고도 ‘울고 가서 울고 왔다’는 정선 태생이다.
연작으로 쓴 ‘아라리 정선 아라리’에서 시인의 내밀한 꿈을 읽는 것 같아 차분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빨갛지도 하얗지도 못한 / 자주색 / 감자’에서 향토작인 깊은 의미와 현실성과 역사성을 전달시키고 있다.
‘슬픈 사랑도 / 여물면 / 분이 나는가’
‘천년 / 또 천년 / 당신의 살속에서 익으리’ 에서피의 진함을 인간의 바램속에서 염원하고 있다.
‘지금 / 죽음 저 너머에서 / 하얗게 일어서는 / 내 뼈를’
‘남루한 옷을 벗기 위한 / 당신의 예법이기에/ 옷을 벗으리’ 죽음은 하나의 공포가 아니라 눈물이 진주알로 순화될 그런 빛남의 유앙스를 지나는 깊은 곳의 이야기도 길어올렸다.
죽음을 바탕으로 한 삶의 긍정을 바로 삶 그 자체에 폭 넓은 애정의 근겅를 두었기 때문임을 이내 찾을 수가 있다.
남시인의 시는 설명이 필요없는 시다. 그 만큼 쉽게 쓰여졌을 뿐만 아니라 관념과 정서와 이미지가 하나로 무르녹아 있기 때문이다.
또 노래하는 시라기 보다는 생각을 요구하는 시에 속한다. 이러한 냄새는 그의 시가 거느리고 있는 포괄적인 의미 구조에서 충분히 감지된다.
수년 동안 동시를 다루어 온 원숙미가 바로 시에 그대로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티없는 동심과 천심이 어우러진 그의 고백이 우리에게 넉넉한 감동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남시인의 재치는 상상력의 뒷받침에 의해 돋보인다.
“봄빛”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는 밝은 색조도 많은 작품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현상이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글이란 기발한 낱말이나 절묘한 기교 등에서 오는 수사력이 아니다 저변에 도도히 흐르는 사상 우리의 혼을 흔들어 깨우는 상상력 묵중한 사색에서 오는 끈덕진 이야기들만이 우리 피부에 와 닿는 흡착력을 지니게 마련인데 남시인은 상당한 소화력으로 주어진 소재들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앞으로 제2 제3의 시집이 장마 뒤 봇물 터지듯 이어 나오길 기대하면서 박수를 보낸다.
〠남진원 시집 나비, 청산의 나비
1985년 11월 5일인쇄
1985년 11월 7일 발행
펴낸이: 박 종 현 발행소: 아동문예사
등록: 1977년 6월 23일 (마 No. 36호)
서울 종로구 인사동 16-2 (402호) TEL 723-62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