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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5 호 ․ 1998년 11월 1일 >
☺이달의 동시 ☺
아빠! 아빠!
“그게 아냐, 제제. 퇴직자는 에드먼드 아저씨처럼
이미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하얗게 되고,
천천히 걸어 다녀야만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야….”*
“그런데 제제, 우리 아빠는 그게 아냐.” *
어제까지만 해도
열심히 열심히
회사에 다니셨던
우리 아빠
이제는 못 나간대요
회사가 망해서
이제는 나갈 수 없대요
회사에서 잘려서
아빠! 아빠!
우린 어떡해요?
우린 어쩌면 좋아요?
네, 아빠!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 따옴.
(1998. 1)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 나오는 한 귀절과 내 동시를 결합시켜 보았다. 나는 여기서 아직 6살이 안된, 장난꾸러기지만 상상력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꿈과 내면세계를 지닌 꼬마 ‘제제’와의 만남을 통해 오늘 우리 아이들이 겪고 있는 한 ‘아픈 모습’을 그려 보려 했다.
《바로 잡음》
앞 호의 우체국에까지 가서→우체국까지 가서
《소식》
박경선 - 금년 8월에 대학원은 마쳤으나 학교가 상설연구학교에다 교생을 받아서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함. 그러면서 우표 60장을 동봉. 나는 그가 교직 생활을 할 때에 ‘사랑의 학교’ 같은 작품을 써서 50명의 선생이 아닌, 수십 만 명의 선생이 되기를 (‘아마치스’같은 작가가 되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이야기 한 토막》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
“꽃에 관한 얘기였죠? 그럴 거예요, 선생님.”
“어떻게 그런 짓을 했니?”
“아침에 일어나서 세르지뉴 씨 댁 정원으로 들어갔어요. 대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 재 빨리 들어가 꽃을 꺾었어요. 하지만 꽃이 굉장히 많아서 표시도 안 났어요.”
“그랬구나. 그래도 그건 옳은 일이 아니다. 그게 대단한 일이 아니라 해도 도둑질이라는 것은 사실이잖니?”
“아녜요, 그렇지 않아요, 세실리아 선생님. 이 세상은 하느님 것이 아녜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꽃들도 역시 하느님 것이잖아요.”
선생님은 내 논리적인 말에 깜짝 놀라셨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선생님. 우리 집에는 정원이 없어요. 꽃을 사려면 돈이 들고요…. 그리고 난 선생님 꽃병만 늘 비어 있는 게 마음이 아팠어요.”
선생님은 마른 침을 삼키셨다.
“때때로, 선생님께선 제게 생과자를 사 먹도록 돈을 주셨잖아요, 그렇잖아요? ….”
“전 매일 받을 수가 없었어요.”
“왜?”
“점심을 가져오지 못하는 얘가 또 있었어요.”
선생님께서는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슬쩍 눈물을 닦으셨다.
“선생님은 ‘올빼미’를 아세요?”
“올빼미가 누군데?”
“머리를 굵은 끈으로 묶어 야자 잎사귀를 달고 다니는, 저만큼 작은 깜둥이 여자애 말 예요.”
“알겠다. 도로띨리아 말이구나.”
“네, 선생님. 도로띨리아는 저보다 더 가난해요. 다른 여자애들은, 그 애가 깜둥이에다 가난뱅이라고 같이 놀려고도 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 앤 매일 구석에 혼자 웅크리고 앉아 있어요. 전 선생님께서 주신 돈으로 산 생과자를 그 애 하고 나눠 먹었어요.”
선생님은 이번에는 아주 오래 눈물을 닦으셨다.
“선생님께선 때로 저 대신에 그 애에게 돈을 주어야 하셨어요. 그 애의 어머니가 남의 빨래를 해서 먹고 살아요. 애들이 열한 명이나 된대요. 게다가 아직 어린애들이래요.. 우리 이웃집 진지냐 할머니께서도 토요일마다 그 애 집에 쌀과 콩을 갖다 주세요. 그 래서 저도 어머니 말씀대로 가난한 사람과 나눠 먹으며 살려고 그 애와 나눠 먹은 거예요.”.” 선생님은 아예 눈물이 흘러내리도록 그냥 내버려 두셨다.
* * *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 -아들의 손가락 자르기, 교사를 폭행한 학부모, 여고 괴담에 보이는 폭력 교사들, 일부 교사들의 돈봉투 사건 따위를 생각하면 위의 이야기는 정말 동화 속 이야기이다. 사람 사는 사회라면 당연히 그래야 할 일들이 이제는 동화 속 이야기처럼 되어가는 사회가 되었다. 가난했던 60년대에는 학교도 사회도 오늘처럼 이렇지는 않았다. 오늘에 견주면 그때는 그래도 사람 사는 사회가 유지되고 있었다. 지금은 풍부해진 물질만큼 정신과 마음은 더 메말라가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70년대 이후부터 이루어진 ‘공업화’와 ‘도시화’ 때문이다. 산업사회가 인간을 파괴하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가 사람의 능력을 자유롭게 발현시켜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자본주의적 약육강식의 경쟁 상태로 사람을 몰아가기 때문이다.
《젊은 동시인에게 띄우는 편지》
― 최고의 제빵 기술자가 되기를 꿈꿔라
……(전략)
당신이 시심이나 동심으로 본 사물, 체험들이 당신의 머릿속에서 반죽이 될 때까지 참고 기다려라. 그리고 반죽이 되었으면 의식의 소금으로 싱겁지도 짜지도 않게 간을 맞추어라. 그런 뒤 거기에 언어의 칼로 모양을 빚은 다음 그것을 잘 달아오른 빵가마 속에 넣어라. 적당한 양의 상상력은 이스트처럼 빵 만드는 데엔 없어서 안될 요소다. 이스트에 의해 발효되어 먹음직스러운 부피로 부풀어 오를 빵, 그리고 적당하게 구워진 빵! 당신의 동시도 그런 빵처럼 되기를 원하라. 여기에 덧붙여 중요한 것은 빵 굽는 시간이다. 이것은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두려워 말라. 경험은 이내 쌓일 테니까.
지금 당신은 미숙한 제빵 기술자여도 최고의 기술자가 되기를 꿈꿔라.. 그런 꿈속에서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빵을 만들 것을 스스로 다짐하라. 그런 다짐 속에서 일하라. 당신이 만든 빵은 당신 이름이 인쇄된 포장지에 싸여 나갈 것이다. 당신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때로 당신이 흰 빵이 아닌 현미빵이나 옥수수 빵을 구웠다 할지라도 딱딱하고 맛이 없어 못 먹겠다는 소리를 듣지 않아야 한다.
당신은 이제 갓 시작한 제빵 기술자이다. 앞으로 당신이 시행착오를 일으킬 숱한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라. 그리고 당신이 나이 먹어 늙은 기술자가 되더라도 처음의 순수함만은 그대로 지닌, 동심의 기술자가 되기를 노력하라. 그러나 빵 맛을 판별하는 혓바닥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섬세하고 예리함을 간직하도록 하라.
누가 뭐래도 당신의 천직은 제빵 기술자임을 당당히 내세워라. 당신의 손은 미다스왕의 황금의 손 같은 것이 아니라 약간의 이스트만 있다면 어떤 재료라도 빵으로 구워 낼 수 있는 그런 빵 기술자의 손이어야 한다. 그것도 최고로 맛 좋은 빵으로.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당신이 만든 빵의 가장 중요한 손님은 아이들이라는 것을. 그들이 커서도 당신이 만든 빵 맛을 잊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나이 들어 어른이 되었을 때 다시 당신 가게의 단골손님으로 당신을 찾도록 해야 한다. 나는 당신이 아이들을 위해 정신과 마음의 양식인 빵 만드는 기술자임을 한시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그런 제빵 기술자가 되기를 바란다. 이것 말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 있는가라며 빵 굽는 기술자! 경건한 마음으로 당신은 내일도 빵 만들기를 위해 손에 하얀 밀가루를 묻히며 반죽 이기기를 할 것이다. 나는 당신이 빵 만들기에 미친 제빵 기술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중 나이를 먹어도 꿈은 젊고 힘찬 그런 기술자가 되기를 덧붙여 바란다.
또, 당신의 가정 경제에 혹 위기가 올지라도 당신의 창작 생활은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은 언제나 창작의 호황기에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늘 구조 조정을 할 줄 아는 지혜와 용기를 가져야 한다. 오늘 호황이어도 내일 불황일 수 있고, 심하면 공황을 맞아 재기 불능에 빠질 수도 있다. 자신의 정신과 마음 가짐을 늘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라. 끝으로 한마디, 작은 만족에 빠지지 말고 3류 비평가들의 말에 쉽게 도취하지 마라. 자만하지 마라. 자만하여 YS처럼 OECD에 가입했다고 혼자 기분내거나 허랑 하게 세계화니 뭐니 하고 선진국 흉내 내다가는 당신도 IMF를 맞게 된다. 이 비유를 잘 음미하라. 우리에겐 ‘자립정신’이 필요하다. 당신의 창작도 마찬가지이다. ‘주체성’을 가지고 당신 식대로 창작하라. 늘 순수하라. 순수한 자만이 정의롭고 사랑이 넘치는 자로서 휴머니스트가 될 수 있다. 훌륭한 휴머니스트만이 훌륭한 동시를 쓸 수 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당신의 문운을 빈다.
《나는 늘 혼자 중얼거린다》
10월 10일 토요일 오후 4시 40분, 김구연, 윤동재 씨와 약속한 영등포로 가기 위해 전동차에 올랐다. 수원이 출발지라 쉽게 문 옆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내 왼쪽 편에는 30대 후반의 건장한 사내가 붙어 앉았다. 잠시 피곤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 눈을 감았다. 전동차가 출발했다. 내 왼쪽 편에 앉은 사내가 자기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에다 올리더니 내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다가 금방 반대로 그 몸짓을 한다. 열차가 한 정거장을 지나자 다시 또 내 쪽으로 몸을 틀었다. 눈을 감고 앉은 내 귀에 사내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무슨 노래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사내는 혼자 계속 씨부렁대다가 흥얼거렸다.
‘IMF 시대가 되니 별 놈 다 보는구나. 몸은 황소라도 때려눕힐 만큼 건장하게 생겨가지고. 세상 참 한심하다.’ 이렇게 혼자 조소를 보내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속으로 허허하고 말았다. 이유는 나 자신도 그 사내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일순간 머리에 번쩍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 그 사내와 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그 사내는 지금 혼자 입으로 중얼거린다는 거지만,, 나도 늘 가만히 있지 않고 혼자 머릿속으로 중얼거리지 않는가? 어쩌면 내가 그 사내보다 더 중얼거리는지 모르지.’ 이러면서 나도 아무 뜻도 없이 계속 혼자 중얼거리다 보니 어느새 영등포역이어서 그 사내와 헤어졌다.
역 광장으로 나오니 약속 시간보다 20분이나 여유가 있었다. 멍하니 광장 한쪽에 서 있으니 내가 인해(人海) 속에 떠있는 한 개 빈 깡통처럼 느껴졌다. 잠시 뒤 광장 중앙에 키가 작달막한 웬 30대 청년이 나타나더니 성경을 왼손에 든 채 한껏 목청을 돋우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구원을 받으라’는 말이겠지. 저 청년의 믿음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예수에 미친 사람! 미치면 부끄러움 대신 용기가 생기는 걸까. 예수에 미친 행복한 사내.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건만 혼자 계속 무슨 말인가를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다. 사내가 제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핵폭탄처럼 퍼부어댄다 한들 이 역광장에서 누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찾으려 하겠는가. 지금 당장 급한 것은 정신의 허기가 아니라 육체의 허기, 욕망의 허기, 물질의 허기인데.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는데, 캐주얼 차림에 등에 가방을 멘 대학생 스타일의 갓 마흔을 넘은 사내 하나가 희멀쑥한 얼굴로 광장을 두리번거린다. 윤동재였다. 자동으로 내 오른손이 번쩍 치켜졌다. 그가 씩 웃으며 다가온다. 악수를 하면서 소매를 걷어붙인 팔목을 힐끗 보니 고리라 팔뚝처럼 털이 엄청 무성하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신 광장 쪽으로 눈길을 주고 있으니 작달막한 키에 땅땅한 체구의 50대 후반 막바지에 이른, 낯익은 사내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다가가 악수를 하며 아래쪽을 보니 전에처럼 등산화에 남방을 입고 잠바를 걸쳤다. 김구연이다. 등산에 미친 사내! 역 광장 지하도를 서둘러 빠져 나간다. 받치는 게 사람이라 걸어가는 것도 전투적이어야 한다. 뒷골목으로 들어선 뒤 이리저리 간판을 쳐다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그냥 눈앞에 보이는 대중식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비로소 안도감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이제는 혼자 중얼거리지 않아도 된다. 나와 같은 아동문학의 신도 두 사람이 내 앞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따지자면 셋이 함께 중얼거려야 하는 꼴이다. 왜냐하면 우리 세 사람의 말(작품)을 들어줄 대상자(독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셋이 만나면 입에 침을 튀기며 말을 주고받지만 실은 셋이서 합동으로 중얼거리는 셈이다. 예수를 믿으라고 혼자서 열을 올리며 전도하는 사내! 아동문학으로 허기를 면해 보려고 만나는 세 사내! 예수보다, 동화나 동시보다, 물질에 더 허기져하는 시대, 정신의 구원보다 욕망의 구원이 더 급하다고 아우성인 시대에, 우리는 계속 혼자 중얼거려야 하는 쪽일 수밖에 없다. 이런 글 쪽지도 따지고 보면 결국 나 혼자만의 중얼거림에 대한 또 다른 모습일 뿐이지 않는가. 소주 한 병에 돼지고기3인분 시켜서 우선 배와 목을 달랜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별 특별한 내용도 없고 기억도 없다. 윤동재 씨가 준 글 쪽지만 있다. 그렇게 3시간 함께 중얼거리다가 내일 일찍 등산 가야 한다는 김구연이 때문에 일어섰다. 윤동재는 감기 기운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맥주 한 잔 더 하자는 한 사내의 제의는 여지없이 묵살됐다. 우린 세 방향으로 나뉘어 제 갈 길로 갔다. 그래서 나는 다시 혼자 계속 중얼거려야 하는 일상으로 일찌감치 원대복귀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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