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4일, 편지쓰기강좌를 처음 가는 날이다. 소풍가는 전날처럼 잠을 설쳤다. 자다가 깨기를 반복하다 새벽 4시부터 부산을 떨었다. 머리를 감고 평소 잘 쓰지 않던 향 짙은 바디샴프로 샤워를 하며 들뜬 마음을 잠재웟다. 초등학교 1, 2학년 꼬마들과의 첫 만남, 작은 기대감이 일렁이며 사뭇 설레기도 했다.
(처음이라 유회숙회장님 반에서 함께 했다.)
2학년 아이들 맑고 초롱한 눈빛으로 반짝이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교실안은 흩어진 눈동자들로 분분하다. 잠시, 까맣게 지나친 세월, 내가 조만한 시절도 가보고, 내 아이들 자라던 삼십년 전을 거슬러 서너 해 전 손녀 교실안 풍경도 그려본다. 참 많이 달라진 풍경이다. 수줍어서 묻는 말도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땅에 묻었던 내 좀맘때를 생각하니, 그건 마치, 전래 동화에나 나옴직한 생경한 그림이 그려진다.
아이들마다 뛰어난 발표력이 도가 넘쳐 각기 다른 목소리로 정신없는 풍경이다. 잠깐만 그대로 두면 그야말로 편지쓰기 선생님 머리꼭대기로 마구 기어오를 기세다. 담임 선생님께서 소란함을 잠재우시던 방법을 몇번이나 도용했다.
집중~ 집중~ 집중 선창하면 따라하며 잠시 동안이지만 이내 조용하다.
회장님께서 편지쓰는 순서, 방법등을 차근차근 알려주고, 고학년 언니가 쓴 편지를 예시로 읽어주었다. 눈을 감고 편지를 쓰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라고 했다. 맨 앞줄 노란 병아리 학생은 한눈에 들어 올 만큼 수업태도가 우수하다. 책상위에 놓인 필통부터 정리정돈이 눈에 띈다. 선생님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듣고 말씀하시는대로 실천하는 모습이 가히 모범생이다. 단정짓고 싶다. 중구난방 들까부는 아이들과 눈에 띄게 비교가 되니 아이같지 않다는 소리를 들었음직도하다.하지만 저학년 아이들 생체리듬이 10분이상 같은 자세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하니 수시로 통제를 시킬 수 밖에...
1학년 교실이다. 학교생활 두어달 남짓한 그야말로 햇병아리들이다. 유치원을 재수, 삼수를 하고 한글을 자유자재로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모를까? 학교생활 겨우 두 달 된 꼬맹이들에게 그림일기도 아닌 편지쓰기는 어감부터 힘에 겨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입으로 편지를 쓰라고 하면 못 쓸 아이들은 하나도 없지 싶다, 그야말로 떠드는 수준도 막무가내로 쏟아내는 말은 천상유수다. 그런대도 조잘거리는 말을 글로 표현하는 건 당최 어려운 모양이다. 어떻게 쓰느냐고 여러번 되묻는 아이, 인사말 한 줄 써놓고 다썼다고. 고래고해 고함을 잘러대는 아이, 둘러보며 도와주려고 하면 이름 석자만 써 놓은 편지지를 일급 비밀인양 고사리손으로 가리느라 잘잘 매는 아이, 제법 편지형태를 갖추고 한자 한자 써내려가는 몇 몇 아이도 있다.
으뜸상을 받은 여자 아이가 할머니께 쓴 편지를 읽는다. 편지내용으로 보아 조손 가정의 아이지 싶다. 편지 내용은 아홉살까지 저를 키워주셔고 고맙고, 제꿈은 일등 요리사가 되는 것이며, 할머니 생신 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드리고 싶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어 할머니가 외로워 보인다며, 손녀가 있으니 외로워하지 말라는, 학교 다니는 것이 힘이 들지만, (아마 급식을 먹으며 느낀 마음일텐데) 영양이 많은 음식을 먹어서 좋다고 썼다. 편지 말미에는 커다란 하트문양을 할머니를 사랑한다는 의미 아이러브유 영어표기도 제대로 썼다.
으뜸상, 단 한명만 시상 할 게 아니라 부상(우표수집책, 개울가에 쓴 편지)은 없어도 상장만이라도 의미를 부여해서( 버금상, 아차상, 노력상) 여러 학생에게 사상을 하였으면, 싶은 아쉬움이 있었다.
목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 않는다는 꼬맹이들 성화에 박청자 고문님께서 다시 읽어주었다, 읽는 도중 내용은 알겠는데 맟춤법이 틀린 걸 빨리 해독 못해서, 더듬었더니, 내용도 그만하면 잘 썼지 싶은 아차상 수준의 편지를 쓴 남자아이가 식식대며 분을 참지 못하도 불만을 폭발했다.
어떻게 틀린 글자를 썼는데 상을 주느냐고, (그 아이가 쓴 편지는 맟춤법은 많이 틀렸으나 소리나는데로 써서 읽기에는 무리가 없었음) 목에 핏대를 세우며 따지기에, 저 친구 편지는 감동이 있지 않니? 감동이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했더니, 처음부터 그런 말을 했으면 저도 그렇게 썼을 거라고 거칠게 대구를 한다. 그러기에 처음부터 선생님 말씀을 귀담이 듣지 그랬느냐고 했더니, 제가 똑똑히 들었는데, 그런 소리는 안했다고, 제가 상을 탈 수 있을거라고 확신하였나 본데, 억울해서 못견니겠다는 투가 역력했다. 짝꿍이나 다른 친구가 말을 붙여도 저리 꺼지라며 거칠게 반항하는 모습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주어진 시간안에 교육을 마쳐야 해서 그아이의 성처난 마음을 달래주지 못함이 두고 두고 안타까웠다.
어쩌면 그아이는 편지, 편지를 떠 올리면 잘못한 심사에 대한 불신의 기억만 떠 올리면 어쩌나 하는 안타까움과 혹여라도 으뜸상을 탄 아이를 시기질투하여 따돌림을 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내 노파심이 아니길 빈다.
박청자 고문님께서도 안타까운 마음에 담임 선생님께 그러저러해서 안타깝다고 하셨더니, 그 아이말고 또 한 아이가 억울해 하던 끝까지 편지지를 붙들고 곧잘 썼던 두 녀석은, 뭐든지 잘하는데, 강한 승부욕이 채워지지 않으면 늘 그렇게 표출한다고 안타까워하는 우리 사정을 이해하셨단다.
5월 4일 오후 3시에 서울지회 어머니편지쓰기 시상식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편지쓰기 강좌에 참석하기에 친분있는 (문학카페 회원) 두 사람 수상을 하는데도 참석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랬는데 편지쓰기강좌를 마친 시간상,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서울체신청으로 가면 될 것 같았다.
다.
제 5회 어머니 편지쓰기 시상식은 다른 해 보다 더 의미있게 진행되었다. 우표전시회, 어머니 편지쓰기 수상작 작품전을 함께 하며 수상식도 공동으로 하여 품위를 더했다.
영광의 대상, 금상, 은상 수장자분들. 서울지회 우수회원으로 편지쓰기 모범회원으로 거듭나길 빕니다.
민들레 아줌마 (내 손녀가 서미애씨를 부르는 칭혹다) 서미애씨가 운영자로 있는 문학카페에서 만난 우정 돈독한 이들이다. 그 문학카페( 민들레 *)는 터가 좋다는 설이 있다. 카페지기가 문학을 하는 기관사분이다. 그분께서 굵직굵진한 문학공모전에 대상을 여러번 타신 분이라 그 정기가 서려있음일진데, 터가 좋다는 말로 통용된지 오래다.
회원들마다 알싸한 마음으로 부족하나만 문학의 씨앗 하나 품고 있는 달동네처럼 서민적이 공간이다, 그곳에 진득하니 길게는 이 삼년, 때론 한층 단축된 시점에서 크고 작은 공모전에서 수상을 한다는 설이 여전하다. 나역시 그곳에 엉덩이 들이밀고 들락날락 문학의 변방을 기웃거리다 자그마한 상 두 서개 꼼쳐두엇다. 하지만 번번히 장려상에 그쳤는지라 아직 문학카페 민들레 * 그곳을 명당이라고 단정짓지 못한다. 하지만 이번에 대상을 수상사신 회원에게는 명당이 분명하리라.
첫댓글 이수옥 감사님의 글을 읽으면 난 언제나 감동으로 한동안 마음이 뜨끈해진다. 2학년 6반 김인석 담임선생님께서 한눈에 알아보고 선견지명으로 한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소설가 이수옥선생님의 서고가 몇 년 후에 유명한 서점에 생길거 같다고 아이들에게 소개를 했다. 옆에 있던 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민들레역이라고 크게 말해도 되는데.....ㅎㅎㅎ 이수옥 감사님의 활약이 빛나는 하루였습니다.
설아할매,
요로코롬 근사한 활동사진으로 맹글줄 몰랐어요.
하면 우리 반에도 오셔서 사진 박으라 할걸요.
이 다음에 울반도 미리 부탁할 게요.
그날 수옥씨 만나서 많이 반가웠어요.
서울수상식장엔 잘 다녀오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