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차(維歲次) 2022년 임인(壬寅)년 경술월 10월 신해삭(辛亥朔) 1일
예나 지금이나 배달의 얼을 계승하고 비추던 여기에 서면
일월성신(日月星辰) 찬란한 빛은
만고 세월의 역사를 간직한 산중 계곡과 아리수 동호(東湖)에 비추는데
폐수로 흐르는 물질문명의 도만 넘치고
세상이 변하여 오가는 사람은 만고의 자연에 넘쳐나는데
모두 제 몸만 돌볼뿐이니 난세(亂世)에 배달의 얼을 일으켜 세울 수 있겠는가
어떤 이는 경전에 진리와 정의의 깃발을 세웠다 하고
어떤 이는 난세에 영웅이 등장하듯이 옥(玉)을 품은 이 또한 많다 하는데
천지(天地)간의 인(人)이 마땅이 행할 도리(道理)의 시비(是非)를 분별하지 못하고
아무리 많은 옥(玉)을 품은들 들판에 핀 풀 한 포기 보다 못하고
역사는 흐르는 폐수(廢水)와 같으니 구한 것이 무엇인가
이는 깨달음이 부족한 역사(歷史)를 직시(直視)하지 못하는 것과 둘이 아니니라.
“난세에 배달고토 중원 태행산맥이 가르는 요동 요서를
넘보는 자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하던
깨달음을 득한 도(道)를 구한
배달의 기상 을지문덕도 혼자서 난세를 구했겠는가
배달의 군민들이 그 얼 아래 혼연 일체가 되어 구했을 것은
만고 세월을 지킨 산중(山中) 초목(草木)들도 흥망(興亡)의 역사를 품고 있거늘
이를 헤아린 두모포 옥수 선인은
“천지에 이치가 있다면 천지간의 인(人)이 마땅히 행할 이치를
구한 배달의 후손들이 정성(精誠) 모아 행한다면
그 어찌 천지가 그 뜻을 외면하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아리수 동호(東湖) 옥수(玉水) 풍류(風流) 전하는데
그 후손들이 역사를 직시한다면 이를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여기 두모포 옥수 후손 후학들이 선현들의 풍류의 멋과 그 대를 잇고자 천지신명께
삼가 맑은 술과 마음의 음식을 정성껏 차려 공경하는 마음으로 올리나이다.
환기 9219년(단기 4355년) 음력 10월 1일 두모포 옥수 후손 후학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