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남대 울트라 여행*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생활의 활력소가 되며 즐겁다. 함께라면 더욱 즐겁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도 나름 낭만을 즐길 수 있어 좋다. 그런데 오늘은 함께도 혼자도 아닌 둘만의 여행이다. 한때 함께 근무 했던 김선경 선생님이 2011년 슬관절(무릎)수술 이후 8년 만에 100km 도전하는 날이다.
그의 꿈은 장대했다. 십장생을 꼭 달성하고픈 마음이라며 우연히 흘리는 말에 공감되어 나도 어떨 결에 신청하였지만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 그가 운전하는 승용차 옆 좌석에 앉아 여행하면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간다.
2002년 6월 청남대 울트라대회가 개최되는 날 오후, 월드컵 축구 중계가
있었던 날로 기억된다. 한국 : 스페인 축구 중계를 보다 출발하게 되어 다소 아쉬움이 컸지만 전. 후반 연장전에서도 승부가 나지 않아 승부차기 까지 가게 되었다.
승부차기에서 무적함대 스페인을 이기고 8강에 오르는 귀여움을 토하니
온 국민은 환호의 도가니에 빠져, 지나가는 차량마다 빵빠레를 울리며
“대한민국” “대한민국”을 외치며 달리던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물론 4강전에서 독일에 패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ㅋㅋㅋ
환희의 물결을 타고 잘 달리는 도중 50km 지날 즈음 도로 중앙 4각 표시판에 걸려 엎어져 무릎을 많이 다쳐 도저히 달릴 수 없기에 번호표을 떼어 반환하고 포기한 아픈 기억도 떠오른다. 그 이듬해는 감독관으로 올라가면서 제 승용차에 우리지맹 이완찬님을 모시고 함께 하였다. 그는 그 이후 10년을 꾸준히 달려 10장생 꿈을 이루었다. 난 그동안 무었을 했는가? 자책을 하면서 현실로 돌아온다.
어느 사이 청남대 초입에 이르니 이곳엔 벚꽃이며 개나리 목련이 한데 어우러져 꽃의 향연을 이루며 절정을 이루고 있다, 우리 지역엔 벌써 벚꽃이 지고 연산홍이며 접벚꽃이 만발한데 개화시기가 이렇게 다르다니 우리나라도 정말
넓긴 넓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회장엔 선수들뿐만 아니라 상춘객들과 꽃이 한데 어우러져 축제 분위기를 고조 시키고 있다.
출발 준비를 마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기념관에서 사진 촬영도 하구
떨리는 마음으로 출발선에 섰다. 김샘이 맨 앞줄에 서야 사진이 잘 나온다며
앞줄에 서자고 한다. 맨 앞줄엔 잘 달리는 주자들만 서는 줄 알았는데 오늘은 생각을 바꾸어 앞줄에 서서 포즈를 취해본다. - 물론 사진이 잘 나왔겠지!
출발 신호와 함께 모든 선수들이 쏜살같이 달려 나가지만 난 행여 받혀 넘어질까 봐 옆으로 빠져 천천히 달린다. 오로지 완주에 목표를 두었기에 나의
페이스대로 달리는데 많은 주자들이 추월하면서 “형님” ‘선배님“ 잘 달리세요.
아직도 “현역입니까” 하는 주자들도 많으며 그들에겐 여유가 넘쳐 보였다.
출발지점 부터 언덕을 오르지만 오르내리막이 너무 많다. 오르막은 그런대로 달리지만 내리막은 허리 협착증 충격 때문에 빨리 달릴 수가 없다, 남들과
반대로 언덕은 뛰어 오르고 내리막은 빠르게 걷다한다. 16km 염티재도 뛰어 올라 1cp-22km 지점에서 백설기 1개와 물을 급수 받아 언덕을 쉼 없이 계속 뛰어 오른다.
고개 아래엔 벚꽃이 절정을 이루어 굽이굽이 하얀 물결을 이루며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승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물결 속에 파 묻혀 달리는 주자들의 모습은 꽃 보다 더 아름다우며 나 또한 그 무리 속에 있다는 걸 생각하니
달릴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는 걸 느꼈다. 벚꽃 터널도 끝나고 일몰과 함께 어둠이 묻혀오며 비포장도로가 시작되니 한 순간 행복도 꿈도 사라졌다.
이렇게 비포장도로가 계속된다면 난 과연 완주 할 수 있을까? 돌 뿌리에 걸려 넘어져 다치지나 않을까? 완주나 할 수 있을까? 주최 측이 원망 서러우며
지난날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염려와 달리 다행히 비포장도로는 그리 길지 않아 끝나 천만 다행이었다. 비포장도로가 끝남과 동시에 가로등 불빛과 함께
마을이 나타나기에 이런 곳에서 물이라도 공급하여 주자들을 배려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간다.
아직까진 오르막 내리막을 한 번도 걷지 않고 잘 달려왔다. 오르막에서 10여명을 추월하면 내리막엔 20여명이 추월해간다. 이러다 맨 꼴찌가 아닌가,
내 뒤에도 주자가 있는가? 거리표지판이 없기에 제한 시간 내 완주가 가능한지 스멀스멀 걱정이 밀려온다. 50km 2cp 까지 가려면 물이 부족 한 것 같아 물을 생명수처럼 아끼며 입술만 살짝살짝 축이며 달린다.
다행히 40km 부근에서 물을 공급하기에 물을 실컷 마시곤 보충하여 50km
지점을 향해 빠르게 달린다. 제한시간이 8시간 12시라 컷오프는 걸리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과, 완주하려면 후반을 생각하여 최소한 1시간 전에 도착해야 된다는 일념에 최대한 빠르게 달린다. 달리고 달려 50km 지점에 이르러
시계를 보니 10시 40분이라 다소 마음이 놓였다.
미역국 한 그릇을 비우고 잔반을 비우는 순간 이범식 정용희 이유희등 58 멍멍띠들이 들어오면서 “형님 날아왔네요” 한다. 아니 나도 조금 전에 도착했다며 맛있게 식사하라 이러곤 편의점에 들르니 조용국님이 따뜻한 캔 거피 하나를 권하기에 감사히 받아 마시곤 우유 1개를 사서 11시 5분전에 75km 지점을 향해 출발한다,
지금까지 빠르게 달려 온 탓에 땀을 많이 흘렸지만 출발하려니 땀이 식어
으스스 하다. 걷었던 소매를 내리고 점프 옷깃을 세우며 소화를 시킬 겸 빠르게 걷다가 생각을 바꾸어 이내 달린다. 75km 지점은 왜 그리 멀고먼지 감이 오지 않았다. 75km 지점인 줄 알고 도착 하였더니 70km 지점이며 우회전 하라한다. 갑자기 다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최대한 빠르게 달린다.
75km 지점에서 바나나 1개를 먹고 물을 보충 후 달리려니 기력이 소진 되었는지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가파른 언덕이며 내리막을 모두 달린
탓에 에너지가 고갈된 모양이었다. 이제 달리기는커녕 걷기조차 힘 든다. 주자들 모두가 빠르게 걸어올라 가기에 나 또한 빠르게 걷지만 보폭이 좁은 탓인지 이 또한 많은 주자들이 추월해간다.
정상에 다 올랐는가 싶으며 또 굽이굽이가 이어지고 이어져 S자 모양의 길은 끝도 없이 전개된다. 걷다보니 잠도 쏟아지고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자책감도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80km지점 피반령 고개에 이러니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백두산 보다 더 높다고 하였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소리가 나왔을까? 지금 생각해도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았다.
정상에서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40분, 시간당 6km만 달려도 1시간의 여유가 있기에 완주에 대한 자신감은 생겼지만 내려 갈 일이 꿈만 같았다. 척추협착증 때문에 내리막은 허리에 충격을 주므로 조심조심 슬금슬금 기다 싶이하여 내려왔다. 85km 지점에서 오뎅 한 그릇하면서 다짐을 해 본다. 이제 남은 거리는 쉬지 않고 달리자. 그러나 그 결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르막 내리막이 수없이 나타난다. 많은 주자들도 걷기에 나 또한 어느 순간부터 걷고 있다는 걸 느꼈다. 걷다 달리다 하는 순간 88km 부근에서 “형님도 아직 못 들어갔네요” 하면서 이도희 부회장님이 함께한다. 한동안 둘이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걷다 달리다한다. 도저히 그의 주력을 따를 수 없기에 90km
조금 지나서 먼저 가라하곤 나의 페이스대로 세월아 내월아 하며 지난날을
회상하며 달린다.
절대 무리하지 말자. 무리하면 다친다. 오래 달리려면 즐겁게 달리자하고 자신을 위로하며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에 청남대 골인 지점으로 들어섰다. 골인하니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며 맞이 해준다. 아~ 내가 드디어 골인 했구나 실감이 갔다. 특히 58개띠 이범식님이 “형님 사진 한 컷” 하기에 골인지점 앞에서 여유 있게 한 컷 찍곤 골인하니 15시간 14분 ~~ 46분을 남겨두고 골인하며 지난날의 한을 풀었다.
골인하니 함께 동행 했던 김샘이 먼저 들어와 골인아치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마웠다. 출발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했건만 골인지점 앞에서 우린 백년지기를 만난 것처럼 조우하며 서로 서로 축하를 하였다. 난 어쩜 마지막일지 모르지만 김샘은 첫 단추를 잘 끼웠기에 더욱더 축하해 주고 싶었다.
2019년 4월 14일 청남대울트라 완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