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이장하(李章夏) 목사 ⌵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이 글의 주목적은
이장하 목사에 관하여 그동안 알려진 내용들은 무엇이며
제적부상에 나타난 내용들은 무엇인가를 비교하면서
그의 가계도를 정리하며
부모와 처자 그리고 이사한 주소지를 추적 정리하고자 함에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 글은 추후 이장하 목사에 관련된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함이다.
이는 이장하 목사에 관하여 이미 공개된 내용이외의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그 이전 대한제국
그 이전에는 조선이라고 하였다.
조선의 마지막 왕은 제27대 순종이며 그의 부친은 고종이었다.
고종의 부친은 흥선대원군(이하응)인데
제25대 철종이 후사 없이 떠나자
조대비에 의해 그의 아들 명복(이후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섭정을 하였다.
한편 명성황후 민씨에게서 순종이 태어 낳고,
셋째 부인인 순헌황귀비 엄씨에게서 영친왕이 태어났으며
영친왕은 이방자 여사와의 사이에서 이진과 이구를 낳았다.
흥선대원군은
왕실강화와 내부 체제를 정비하고 개혁을 시도함과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쇄국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며느리 민비가 정치 일선에 나서면서 축출당하였으나
임오군란 때 정권을 다시 잡았지만
민비의 요청을 받은 청나라 군대에 의해 실각당하고 유폐 당하였다.
그러나 1894년 일본군의 경복궁 침입으로 민씨 정권을 무너뜨리고 대원군을 전면에 앞세웠다.
한편 일본에 의해 민비가 살해당한 후(을미사변)
1896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몰래 빠져나감으로(아관파천) 친러파정권이 되었다.
이후 고종은 경운궁으로 환궁하여
독립협회의 진언을 따라 1897년에 연호를 광무라 하고
황제즉위식을 한 후 대한제국이라 선포하였다.
이때 순종은 황태자가 되었다.
그 후 1907년 일본이 고종을 퇴위시키고 순종을 황제의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을사오적의 매국행위로 인하여
1910년 8월 한일병합이 되어 국권을 빼앗기고
민족의 정통성과 역사의 단절기인 일본의 불법 강점에 의한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조선은 건국된 지 519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가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의 격변기에
어즈버! 장차 나라를 걸머질 수많은 동량들이 정적으로 취급되어
죽임을 당하거나 외국으로 떠났다.
그리하여 장래 적재적소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역량 있는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수많은 인재들을 잃었다.
이 글은 그러한 격동의 파고가 거세게 몰아치던 때 태어난
의주의 한 청년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