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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꽃실네 원문보기 글쓴이: 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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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3개국을 다녀와서(영국,프랑스,이탈리아) 1997년 6월 3일~6월 18일까지 백홍수/영덕중학교교사 6월 3일- 서울 출발 동경의 대상이기만 했던 유럽 여행이 "세계화를 위한 해외 연수"라는 현실로 다가왔다. 서울 하늘을 날아 중국, 러시아를 지나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거쳐 영국의 런던에 도착하는데 열 두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가 지상 10km를 시속 700∼800km로 날아가는데 눈 아래에 펼쳐지는 양털같은 구름, 길고 긴 강줄기 등은 대자연의 위대함으로 나를 깊은 감동에 젖어 생각에 잠기게 했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운동삼아 기내를 돌아보니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시는 분들 또 엽서를 쓰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 모습들은 긴 비행의 지루함 속에서도 신선함을 갖게 하여 보기 좋았다. 대각선으로 앉으신 할머니는 한복에 돋보기 안경을 끼시고 소설책을 보고 계시는데 그 우아한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주고 있다. 유럽을 대표하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를 돌아 보며 그들의 생활과 사고 방식을 보고 느끼기 위해 가는 이번 여행이 유익하고 보람되기를 기원하며, 세계 3대 공항의 하나인 런던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말쑥하고 세련된 현지 가이드가 나타나 인사를 하였다. 운전 기사를 '드라이버'라 하지 않고 높임말로 '코치 캡튼'이라고 부른다는 설명에 영국에 온 것을 실감했다. 6월 10일- 런던에서 길가의 노천 까페에서 바로 옆에 차가 다녀도 편안히 식사를 하고, 3∼4명의 사람들이 맥주를 들고 안주도 없이 서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술이 목적이 아니고 대화를 나누는데 의의를 두는 보기 좋은 모습이다. 우리와는 좀 다른 풍경이라서 뒤를 돌아보게 했다. 명문사립학교인 하로 고등학교(Harrow College)를 방문하여 보니 역사와 전통이 무엇인지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처칠을 비롯해 7명의 수상을 배출하였고 런던 시내의 동산에 위치하여 전망이 아주 좋고 대학 캠퍼스 같이 많은 건물과 광활한 과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체육 시설로는 승마장, 골프장, 암벽등반 시설, 타이탄을 깔아 놓은 육상 시설 등은 학생들이 마음껏 뛰놀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수영장 시설은 어떤 대회라도 치를 수 있을 만큼 아주 완벽해 보였다. 교내 박물관 역시 규모는 작으나 짜임새 있게 2층으로 만들어졌고 방문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품을 구비하고 있었다. 특히 300주년 기념 강당은 파이프 오르간까지 설치되어 있고 음향 시설이 잘 되어 계단식의 반원형(야외 음악당 같은)으로 서로를 볼 수 있는 부채꼴 모양의 구조로, 나무로 만든 벽면은 음향 시설이 특이해서 학교장이 훈화를 하면 가깝게 느껴져서 조용히 경청할 수 밖에 없는 모습은 쉽게 상상해 볼 수 있었다. 6월 11일 - 6월 12일 세계 문화유산의 보고인 대영 박물관은 이름 그대로 어마어마한 전시물로 압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헨델의 메시아 원본, 그리고 민주주의의 기본인 마그나카르타 대헌장, 이집트의 미이라, 등이 참으로 볼 만했다. 루브루 박물관, 중경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인 대영 박물관은 무료라는 점에서는 앞에 박물관과 다른 점이라고 한다. 전시물의 50%가 자국의 전시물일 경우에는 관람료를 받을 수 있으나 대영 박물관은 3%만이 영국 것이고 나머지는 식민지의 나라에서 가져온 유물이라고 한다 관람하는 입장에서 일부 관람자는 식민지의 전리품을 모아놓았다고 비난을 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각국의 도처에서 유물을 팔고 사는 현실에서 보면 박물관에서 제대로 관리하는게 어떻게 보면 나쁜것만은 아닌 것 같다. 윈저성은 단일성으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데, 15세기 영국풍의 고딕 양식 교회인 세인트조지 예배당과 조지 5t의 왕비인 메리에게 영국 국민이 헌상한 미니어처 성관으로 아주 정교하게 제작된 메리 왕비의 인형관 등이 볼거리였다. 버킹검 궁전의 금빛 천사를 조각해 얹은 비토리아 여왕 기념비는 빅토리아 당시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궁전 앞 광장에 세워져 있으며 여왕이 궁전에 있을 때는 정면 중앙에 왕실 깃발인 로열 스탠다드가 나부끼는데 이곳에서 위별 교대식과 함께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실제 교대식은 사진에서 많이 보아온 탓인지 낯설지 않았고 대영 제국의 권위를 나타내듯 거창하게 이루어졌는데 눈의 즐거움을 위해 상당히 가식적인 데가 많았다. 타워브리지를 보러 이동중에 영국 경찰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보며 퍽이나 한가해 보인다며 가이드에게 물어 보니 경찰이 천천히 걷는 모습은 영국사회가 안정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잣대라고 하니 우리 경찰의 모습과 비교가 되었다. 그리고 초등학생의 98%가 경찰을 희망한다고 하니 이해가 되었다. 주유소를 지나치면서 보니 경유가격이 휘발유보다 훨씬 비쌌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경유는 공해물질을 많이 배출하기 때문에 세금이 많이 매겨져 가격이 높다는 설명이다. 중심가 거리에서 걷는 모습 중 밝고 의젓한 모습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영국인다운 모습으로 생각되고 과연 신사다운 깨끗한 거리와 함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비가 많은 탓인지 보슬비가 오는데 반수가량은 그냥 걷고 있어서 의문스러웠고, 자전거 타는 모습 중 대부분이 사이클 선수가 쓰는 안전모를 착용하였으며, 상당수는 겨울 오토바이에나 어울릴 것 같은 검은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과거 '런던 스모그'를 연상하게 하였다. 타워브리지는 부산의 영도 다리처럼 아직도 필요시 들고 내리는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마치 성벽의 전망대와 같은 모양에 멋스러움은 가히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100년이 지났으나 아직 한 번도 고장나지 않아 영국인들의 긍지를 나타내고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다리의 하나로 유명하다. 우리도 짧은 시간에 기록을 세웠다는 자랑보다도 이런 정성들인 다리가 세워지길 바라고, 시작한 어떤 관리가 임기 중에 끝내려고 하지 말고, 쓸모있고 튼튼하게 역사에 남을 멋스러움을 함께 지닌 그런 다리를 지었으며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특히 우리 나라의 학교 건물도 성냥갑 같은 모양 일색에서 벗어나 미적이 감각을 지는 건물로 지어내고 공원같은 분위기의 교정이 되어야 학생들의 심성도 지금보다 여유롭게 되지 않을까.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우리와의 차이점은 어니 곳에서나 육교에는 계단과 함께 엘리이터, 또는 계단과 완만한 경사의 'Z'자 모양의 길로 되어 있어 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배려는 과연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국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거리에는 횡단 보도에 턱이 없어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데 전혀 불편한 점이 없었다. 저녁에 21명의 단원과 가이드 1명이 모두 모여 우리도 영국식으로 '기네스'라는 흑색 맥주를 한 잔씩 나누며 각자의 소개와 느낌을 말하며 영국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 한다. 곳곳에 작은 공원 같은 잔디밭 의자에서 대화를 나누는 못습이 여유로워 보였고 젊은이들이 갈 곳이 많아서 정서적으로 안정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영국을 멀리하고 말로만 듣던 Euro Star(고속열차)를 타고 프랑스로 향하자니 좀 섭섭한 감이 들며 바닷 속을 지나가면서 자기 부상 열차 탓인지 비교적 조용했다. 지금 이 곳은 프랑스일까, 아니면 영국일까, 궁금했으나 크게 보면 EC(유럽공동체) 국가라고 이름 지으니 같은 곳이 아닌가. 바닷속을 지나 프랑스에 넘어오니 영국에서는 볼 수 없던 전주가 지상에 노출되어 있었다. 달려도 끝없는 평원. 그것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이들은 전생에 어떤 복을 지었길래 이런 복을 받았을까. 드물게 나타나는 별장같은 인가, 양떼와 오솔길, 풀을 뜯는 젖소들…. 6월 13일- 프랑스에서 프랑스의 입국 절차시에 한국인들은 우리의 위상이 높아진 탓인지 중국인과는 달리 스탬프 날인도 없이 국적만 확인하고 무사통과였다. 프랑스는 청소법이 다른 나라와는 판이 하게 달랐다. 이곳은 모든 길거리가 약간씩 경사가 있어서 물로써 아래까지 씻어내는 청소를 하는 것이 퍽이나 달랐다. 길거리에 낙서가 무척 많아서 물어보니 극우파들의 소행으로 그들끼리 약속이나 암호를 전달하는 형태라고 하니 내용은 모르겠지만 웬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1889년 만국박람회때 세운 에펠탑은 27개월(2년 5일)공사 기간 중 단 한 사람도 희생된 사람이 없이 세워진 320m의 철탑이다. 이것을 세운 에펠은 3층 전망대(320m)에서 미국의 에디슨과 라디오 송수신 시험을 하여 성공하였다는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에펠과 에디슨의 밀랍 인형은 워낙 정교히 만들어서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올라가 보니 사무실에서 대화하는 두 사람 외에는 사람을 찾을 수 없어서 자세히보니 뒤에 조그맣게 에펠, 에디슨이라는 명패가 보였다. 속은 것이다. 3층 전망대에서 서울 방향의 표시를 보니 8991km 떨어져 있다고 명시되어 있고 2층에는 1997년 6월 13일 오후 8시 26분 현재 입장객이 169,015,961명이라고 숫자판에 나와 있었다. 3층을 내려오려는데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고 거기에다 정전까지 되어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설명에 의하면 2층에서 어떤 사람이 자살 소동을 하여 얼마 후에 내려오니 소방차와 취재 기자가 모여 있었다. 그 날 저녁 뉴스에 작은 소동이 간단히 보도되었다. 프랑스와 영국의 정원은 눈에 띄게 달랐다. 영국의 정원은 자연을 살린 형태이나 프랑스는 인공적인 것이 아주 기하학적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 내부·외부 할 것 없이 사치의 극치라고 할 만큼 별난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실내의 못 하나까지도 어느 것과는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이구동성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겠느냐 하면서 루이 14세를 비난하다가 덕분에 후손들이 먹고 살고 있다며 한마디씩 하였다. 늪지대를 메우고 강의 흐름을 돌려 분수를 만들고 거대한 펌프로 강물을 끌어올리고 할 수 있는 한 모든 치장을 다했다고 한다. 루부르 박물관에서의 관심사는 쿠텐베르그의 금속활자와 직지심경의 활자본이 마주 보며 가장 좋은 위치에 있었다. 쿠텐베르그의 금속활자에는 세계최고(世界最古)라는 설명이 있었고 직지심경의 활자본에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라는 설명은 없었지만 전시해 놓은 위치상 사실 그들도 최초의 금속활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나름데로(?)의 해석을 해 보았다. 루부르 박물관의 진수는 역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다. 안내자의 설명에 따르면 모나리자 그림의 얼굴 오른쪽은 미소를 짓고 있으나 악한 미소를, 왼쪽은 선한 미소를 짓고 있어서 보는 이의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그럴 듯한 설명이었다. 가이드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우리 일행은 한 시간 정도 벼룩 시장을 볼 수 있어서 여행의 몇 가지 즐거움 중 한 가지를 즐길 수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의 근면성과 검사한 일면을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시간이었고 의외로 새로운 것도 많았다. 이 벼룩 시장에는 심지어 비행기 구명 조끼에서부터 방탄복(조끼)까지도 팔고 있었다. 야간에 유람선을 타고 강을 거슬러 오르며 보는 에펠탑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그 배에는 관광객 못지 않게 내국인도 많이 보였고 특히 중·고교생들이 많았다. 웃고 까불고 사진찍는 모습들이 해맑고 건강미가 넘쳐 보였다. 나폴레옹의 명에 의해 세워진 개선문은 30년만에 세계 최대의 크기로 완공한 것으로 나폴레옹은 완공을 보지 못하고 유배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은 다음 관에 누워 이 문을 통과하여 앵발리드 묘지에 묻혔다. 벽의 안쪽에는 600여 장군들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고 샹젤리제 거리는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거리였다. 완만한 경사에 작은 분수의 마로니에,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퍽 인상적이었다. 넘실거리는 사람과 차량은 낭만의 거리를 수놓고 있었다. 파리의 북동쪽에 있는 130m 높이의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몽마르뜨르 언덕을 올라 무명 화가들의 그림을 잠시 돌아보고 뽕세르바뚜아란 예술 학교에 들렀다. 이 학교는 시에서 운영하는 시립학교로 5세에서 30세까지 원하는 사람들이 배우는 곳으로 수료증과 정식 직업으로 데뷔할 수 있는 자격증의 두 과정이 있는데 주당 20시간 정도로 공부하며 부모의 월급 증명서를 보고 수업료를 결정하므로 부유할수록 수업료를 많이 내게 된다. 1000개의 좌석을 가진 대강당이 따로 있어 저녁 때에는 일반 영화 상영, 낮에는 음악회 등으로 사용하며 이곳의 시민만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화요일은 하루 종일 음악의 날로 사용한다. 프랑스에서는 6월 21일이 '음악의 날' 이어서 자신이 어떤 종류로든지 연주를 할 수 있다. 일찍부터 자녀들의 재능을 발굴하고 키워 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시민들의 좋은 교육 기관이다. 6월 14일 - 6월 15일 파리 파리를 마감하고 드골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하늘에 이상한 모양의 비행기들이 곡예를 부리고 있어서 물어 보니 이 곳은 에어쇼를 하는 곳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현대 자동차 공장의 주차장처럼 많은 차량들이 에어쇼에 오느라 줄을 서 있어서 그 또한 장관이었다. 98년 월드컵이 프랑스에서 열기 위해 공사를 하는 곳을 지나가면서 1년 후에는 이곳에 인산인해를 이루겠구나 생각해 보았다. 파리를 멀리하고 이제 로마로 향한다. 이탈리아는 어떤 곳일까? 집시들의 소매치기를 너무나 많이 들어서 이탈리아에 대한 선입견은 별로였다. 드골 공항에 도착하여 대기하는 도중 단원들은 지친 탓인지 앉기만 하며 기대고 눈을 붙인다. 늘어지고 쏟아지는 잠은 아쉬운 시간에도 질 수 없이 다가온다. 잠시 짬이 생기면 한국에 전화를 하고 아니면 음료수를 사 먹으면 짧은 영어로 제법 여유를 즐긴다. 아무 곳에서나 환전도 잘한다. 이제 두 시간 후면 로마다. 6월 16일 - 6월 18일-이탈리아(로마) 로마의 날씨는 한국의 여름과 같이 무척 덥다. 아침에 폼페이로 향하였다. 로마에서 반가운 사실을 소나무를 흔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시가지의 가로수, 소공원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고 교외로 나갈 때 로마시내의 전차 도로에 가로수가 소나무로 쭉 이어져 있어 소나무는 키우기에 따라 훌륭한 가로수라고 여겨졌다. 로마인들이 건설한 고속선과 도로는 무려 180,000Km라고 하니 우리나라 고속 도로 총 연장이 30,000Km 일본이 80,000Km 미국이 190,000Km 2000년 전에 이미 도로가 그 정도라니 침략 야욕이나 오랫동안 지배하려던 그들의 꿈을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이라고 생각된다. 폼페이는 기원전 79년에 화산 폭발로 7Km나 떨어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지구에서 사라졌다가 2000년 후에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부터 발굴하여 지금은 2/3정도 진행되어 있다고 한다. 지금과 버금갈 정도로 상·하수도 시설이 완벽했고 특히 베티의 집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관심사를 적나라하게 일깨워 주었다. 쏘렌토로에서는 작은 악단과 어울려 ‘돌아오라 쏘렌토로’를 열창하니 그 곳 호텔 사장은 '브라보'를 연발하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앵콜을 청하였다. 자기들의 노래를 이방인들이 거리낌 없이 노래한 사실이 너무나 흡족한지 사진을 찍고 특별히 환대를 하니 무안함마저 들었다. 음악 교사들이라 듣는 이로 하여금 시원하게 들린 모양이다. 상대적으로 아마추어로 구성된 악단의 싱어들에게 좀 미안했다. 카프리 섬으로 가는 길은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바티칸 박물관, 올리브 나무 미리부터 여러 가지 자료를 조사하고 사진을 보고 기대를 잔뜩하고 갔으나 대단하지 않은 관광 상품을 최대한 잘 포장해서 여러 사람이 잘 살고 있다는, 마치 소왕국 같은 관광체계가 배울 만했다. 좁은 길과 매연을 염려해서 전기 자동차로 물건을 실어 나르고 있고 동굴 탐험은 볼 만 했으며 가파른 낭떠러지 위의 길은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공포감을 갖게 했다. 그 길을 하루에 몇 번씩 운전해야 하는 기사의 일과는 어떨는지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길이었다. 특히 아직도 남아 있는 로마인들의 휴양지는 지금도 별장으로 손색이 없다. 호주 시드니와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와 함께 세계 3대 미앙이라는 나폴리는 지저분하게 느껴질 정도로 쓰레기가 즐비하여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나니 다소나마 이해가 되었다. 좁은 길을 운행하느라 차들은 성한 곳이 없을 정도이고 백밀러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부서진 차도 좀처럼 고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15∼20년은 보통이고 어떤 차는 움직이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낡은 차였으나 그런 차들은 흔히 볼 수 있었다. 특히 로마에서 온 차들은 부담감을 안고 운행한다니 알 만했다. 이탈리아의 빈민층이 산다는 바티칸 박물관 남부 지역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곳이 나폴리라니 이해할 만했다. 바타칸 박물관을 들어가기 위해 30분 정도 줄을 서서 땀을 흘려야 했다. 이 곳의 더위는 우리 나라의 여름과 흡사하다는 것을 잘 알 수가 있었다. 베드로 성당은 로마와 수많은 유적들 중에서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함과 웅장함으로 가히 불가사의라고 할만큼 대단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화가 조각가로만 알려졌으나 신의 손을 가진 사람이 아닌지 그리고 지금의 모든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도 어려울 만큼 입을 다물지 못하게 압도하는 베드로 성당은 타종교인인 나를 압도하여 저절로 기도하게 만들었다. 지하 공동묘지를 카타콤베라고 하나 30여 개의 카타콤베 중 우리가 가 본 곳은 카타콤베 디산킬리토라는 지하 5층 규모에 10만 여명이 묻혀 있다. 지하로 내려가니 특이한 토질 탓으로 무너지지 않고 석굴을 파 놓은 듯 신기하게도 지탱하고 있었고 미로를 보듯 안내인 없이는 출구를 찾지 못하게 복잡했다. 지타 예배당과 작은 예배식 등은 당시의 기독교인들의 신앙심을 읽을 수 있는 의미 있는 곳이라 여겨져서 묵주 2개를 기념품 판매점에서 구입하였다. 얼마 남지 않은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호텔 정원에서 가든 파티를 벌였다. 미술 교사와 음악 교사로 이루어진 팀답게 개성이 뚜렷하여 조화를 이루기가 어려웠으나 무난히 잘 넘기고 지혜롭게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돌아가며 노래와 유머있는 이야기를 불을 피우며 샴페인과 맥주로 이국의 밤을 밝은 달과 함께 정담을 나누었다. 가이드의 기발한 생각으로 짬을 내어 숙소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표메치아 해수욕장으로 갔다. 해수욕을 한다는 것보다 지중해에 몸을 담가 본다는 일종의 추억 만들기라 할까. 아이들처럼 깔깔거리며 동심의 세계로 돌아갔다. 식사 후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진 '진실의 입'에서 사진을 찍고 역시 영화로 유명해진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을 어깨 뒤로 던지면 다시 로마에 올 수 있고 2개를 던지면 사랑의 열매를 맺고 3개를 던지면 이혼을 하게 된다는 '트레비'는 삼거리라는 뜻으로 분수 콩쿨에서 우승한 니콜라사비노의 1762년 작품으로 궁전 벽면을 이용한 후기 바로크 미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딸리아를 방문하고서 오페라를 감상하지 못하고 귀국 날이 다가오니 못내 아쉽다. 다음에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배낭여행을 다짐해 본다. 트레비 분수에서 던진 동전의 효험을 기대하며, 자니꼴로 언덕은 로마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으로 이탈리아를 정리하는 시간으로 필요했고 유럽 3국을 뒤돌아 볼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었다. 언덕 한 곳에는 인형극을 상영하고 있어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동심으로 돌아가 해 맑은 표정으로 감상하고 있어서 아이들의 얼굴을 몇 번이나 사진으로 남간다. 영국을 거쳐 프랑스, 이탈리아를 오늘 마치고 귀국 길에 오르면 내일은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기내에서 모두들 잠들어 있는 밤 12시 30분. 밤 10시에 해가 졌는데 날개의 앞 쪽인 하늘 끝에는 벌써 실낱같이 동녘이 밝아오고 있다. 이번 여행이 내게는 참으로 귀하고 귀한 시간들이었다. 많은 느낌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며, 이야기 하고 여유있는 교사로서 학생들의 좋은 친구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
첫댓글 보름간의 유럽여행을 단숨에 읽었습니다,읽는 사람이 직접 현장에 간듯한 느낌 이었습니다.소남 선생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