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과 동궁
경주 역사문화유적의 대표적인 장소를 추천한다면 월성과 동궁은 아마 다섯손가락 안에 들지 싶다. 월성은 신라 천년 사직을 이어오면서 왕이 거처했던 궁궐이 있었던 곳이고 동궁 또한 정확한 용도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왕이 될 세자가 기거했던 곳으로 짐작된다.
월성과 동궁은 천년 신라를 이끌어 온 핵심 구중궁궐이 있었던 자리인 것이다. 월지는 동궁을 에워싸고 있는 인공연못이다. 작은 연못이 마치 넓고 깊은 바다의 오묘함을 담고 있는 듯한 신비감을 준다.
지금은 당시 위용을 자랑했을 궁궐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천년왕국 월성의 남쪽으로 흐르는 남천을 따라 유유자적 걸어보는 것은 힐링이 된다. 동궁과 월지는 신문왕이 그의 장인을 죽여야 했던 비운의 역사와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이 천년사직을 고려에 바치며 왕건을 초대해 연회를 열었던 곳이다.
밤이면 월지는 조명을 받아 나뭇가지와 동궁의 서까래, 기와골이 선명하게 물에 비쳐 절묘한 대칭을 이룬다. 마치 바다의 용궁을 연상하게 하는 환상적인 월지의 야경은 보는 이를 황홀하게 한다.

동궁 야경
현재 월성은 발굴작업으로 여기저기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고 있고 동궁은 천 년 전의 모습을 찾아가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그 모습 또한 역사를 더 가까이서 되새기며 힐링할 수 있는 길이 되고 있다.
월성 가까운 곳에 위치한 많은 먹거리들 중에서 특별히 순두부와 버섯이 만나 고영양식으로 각광받는 맷돌순두부를 소개한다.
▒ 천년 왕궁터 월성
월성은 천년왕국 신라의 궁성이 있었던 곳이다. 신라 5대왕 파사왕이 궁궐을 지으면서 신라천년의 궁궐터로 유서깊은 성역이다. 경주시가지 중심에서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신라시대 대표적인 역사문화유적지로 사적 제18호로 지정돼 있다.
월성은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시대로 접어들면서 급격하게 황폐화되기 시작했다. 경순왕이 대신들과 고려의 수도 개경으로 올라가면서 궁궐이 텅텅 비게 되었다. 거기에 고려시대 관아를 지금의 경주문화원 자리에 짓고, 읍성을 쌓으면서 월성의 궁궐 석재를 옮겨 재활용했다.

월성 발굴 현장
자연스레 월성은 기울어진 신라의 운명과 같이 허물어져 지금은 폐허의 모습이다. 화려했던 신라왕궁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월성은 6.25전쟁 때 다시 뿌리까지 훼손되는 운명을 맞았다. 미군 포병부대가 주둔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풍화되어 가던 신라천년의 궁궐터가 그 훼손되는 속도를 더했던 것이다.
지금은 신라 천년의 화려했던 시간을 발굴하기 위한 삽질이 이어지고 있지만 왕국을 떠받치고 있던 기둥은 썩고 흔적을 찾기 어렵다. 다만 주춧돌과 기와 부스러기, 목간과 연적, 수레바퀴 자국, 담장과 건물을 지었던 터전이 간신히 오래된 시간의 흐름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역사의 흔적들은 방문객들의 상상과 문인들의 감성을 자극해 문학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반월성으로 알려져 있는 월성은 일반적으로 다른 곳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훌륭한 힐링의 공간이 되고 있다.
봄이 오기 전까지 궁성터는 허허벌판으로 휑하니 찬바람이 불어 방문객들의 마음을 더욱 허전하게 한다. 경주시는 그런 방문객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문헌과 여러 자료들을 검토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 옛날의 궁성을 복원하는 삽질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자연스럽게 형성된 숲에서 피어나는 꽃나무와 어울리게 다양한 꽃들을 심어 월성과 동궁, 월지는 봄부터 가을까지 꽃대궐을 이뤄 월성을 찾는 이들을 황홀경으로 이끈다.

월성 성벽 돌담

월성 소나무 숲

월성터 우물
월성은 신라시대 왕이 거처하며 나라를 다스렸던 곳이다. 적의 침입에 대비해 성을 들러싸는 해자를 만들어 섬의 형태를 띠고 있다. 성의 남쪽은 동에서 서로 하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하천인 남천은 천년세월을 지나 지금도 묵묵히 흐르고 있다. 동쪽은 동궁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던 곳으로 해자의 흔적이 있어 발굴작업이 진행 중이다. 서쪽과 북쪽도 인공해자가 존재했던 흔적을 따라 발굴작업이 한창이다. 해자에서 신라시대 토기편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어 역사를 캐내는 작업현장을 지켜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된다.

월성둘레길
성의 서쪽에서 남천을 건너 남산으로 이어지는 월정교 복원사업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월정교는 홍보관이 설치돼 교량의 본래 모습과 과학적으로 설계된 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 2천여 년 전의 뛰어난 과학을 보는 재미와 선조들에 대한 뿌듯한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
월성으로 진입하는 길은 남쪽을 제외하고는 곳곳으로 열려 있다. 지금은 동궁으로 연결되었던 길이라 짐작되는 동쪽 진입로와 북쪽 첨성대 사적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이 가장 분주한 편이다. 동편의 진입로에는 노점상들이 홍보관까지 이어져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는 가족여행이라면 지갑을 열지 않고 들어서기는 어렵다. 코를 자극하는 계절별 다양한 먹거리와 특이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장난감들이 방문객들의 시선을 끌어 청소년, 어른들도 쉽게 지나치기 힘들게 한다. 북쪽 연결로에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씽씽 달리는 청년층과 연인들, 비단벌레전동차도 입구까지 진입해 북적거린다. 좌우로 한창 진행 중인 해자 발굴 장면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월성 둘레길을 외곽으로 길게 걸어보는 것도 좋지만 2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로 시간이 넉넉해야 된다. 반면 월성 안으로 접어들어 발굴광경을 찬찬히 살피면서 다양한 유물들을 둘러보는 내부 둘레길은 1시간이면 볼 수 있다. 월성 내부 길은 돌로 입구를 막아둔 우물터와 석빙고, 성벽 돌담길, 소나무 숲 쉼터, 쓰러진 아름드리나무둥치벤치 등 낭만 넘치는 코스가 된다. 도시락이라도 먹으면서 즐기면 한나절도 편하게 보낼 수 있다.


석빙고
남북방향으로 지하 동굴을 파서 만든 석빙고가 월성의 북쪽 성벽과 연접해 있다. 큼직한 돌벽돌을 아치형으로 쌓아 만든 기하학적 건축기법으로 그 조형미를 감상하는 것도 의미깊다. 조선시대에 서쪽 100m 지점에서 옮겨 개축한 것이라는 글이 석빙고 입구의 머릿돌에 새겨져 있다. 석빙고는 이름 그대로 냉장고의 기능을 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훈훈하게 온도를 유지해 얼음과 음식물을 보관한 곳이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색적인 포토존이 되고 있다. 월성은 선덕여왕 등의 영화와 드라마, 사극물이 많이 촬영된 곳이다.
또 성의 소나무숲에는 정자와 남천이 내려다보이는 나무벤치가 있다. 친구나 가족단위의 여행이라면 도시락을 준비해 와서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힐링 장소다.

월성 해자 발굴현장
▒ 동궁과 월지
동궁과 월지는 조명이 만들어내는 황홀한 야경으로 방문객들이 사철 붐빈다. 연못에 비치는 동궁의 기둥과 서까래, 기와는 물론 조경수 가지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면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연한 푸른색을 띠는 조명이 물속에서 어른거리면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나오고 카메라 셔터소리가 밤공기에 진동한다.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누구를 초대해도 실망하거나 책망을 듣지 않는,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힐링의 명소다.

월지 산책길 야경
동궁과 월지는 문무왕이 건축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의 역사서에 전한다.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하고 나라의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비대해지는 나라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궁궐을 확장해야 했을 것이다. 별궁의 기능을 하는 여러 건물을 짓고, 인공연못과 동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희귀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을 것이다.
동궁과 월지는 연인과 손을 잡고 사랑이야기 나누며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이미 처음 출발했던 곳에 이르게 된다. 친구나 연인의 어깨에 걸었던 팔은 금방금방 자연스럽게 풀린다. 곳곳에 펼쳐지는 절경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유혹이 더욱 크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부터 오리와 기러기가 날아들어 안압지로 불렸던 월지는 1975년 발굴과정에서 동궁과 월지로 불렸던 기록이 드러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또 월지에서는 유물 3만여 점이 발굴되면서 당시의 생활상을 추정하는 단서가 되고 있다.

월지 야경
동궁과 월지는 삼국통일 이후 최초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고구려의 성벽 쌓는 기술과 백제의 아기자기한 정원예술이 가미된 종합예술작품이다. 현시대에서도 따라잡기 어려운 뛰어난 기술과 예술성이라 할 수 있다. 인공연못인 월지는 남북의 길이는 200m 남짓하고 둘레 또한 1㎞ 정도이지만 바다를 연상케 할 정도로 오묘하게 설계됐다. 어느 지점에서 보아도 연못의 전체를 조망하기 어렵다. 특히 입수구와 배수구에 자연스럽게 정화기능을 하는 설치기술과 월지의 물이 썩지 않게 고려한 장치들은 현대의 기술자들조차 혀를 내두르게 한다.
현대과학이 만들어낸 월지에 비친 야경을 즐기고, 천 년 전 신라인들의 생활상을 유물전시관에서 엿보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다. 월지를 내려다보며 당시의 풍류를 상상해 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힐링이 된다 하겠다. 여기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절대 포기해서도 포기할 수도 없는 유적의 발굴과 보존의 필요성을 찾을 수 있다.

동부사적지
▒ 황남맷돌순두부
월성과 동궁은 경주시가지에서 남쪽으로 치우쳐 위치하면서 먹거리 중심상가와는 살짝 비켜있다. 30여분 걷거나 차량으로는 5분 이내의 거리로 이동하면 행복한 밥상을 마주하는 기회를 갖게 한다. 첨성대 사적지 주변이 가장 가까운 식당가이다. 황남초등학교 앞에 위치한 ‘황남맷돌순두부’는 단체관광손님은 물론 경주시민들도 점심과 저녁식사로 부담없이 찾는 곳이다. 순한 맛과 고단위 영양식이 단골을 잡는 비법이다.
황남맷돌순두부는 맷돌로 갈아 만든 순두부가 메인이다. 고소한 두부의 맛을 주는 요리가 여러 가지 부재료와 궁합을 맞춰 입맛을 돋운다. 두부라면 일단 현대인들이 즐겨 찾는 힐링음식이다. 거기에다 다양한 기능성 건강식품으로 추천되는 능이와 송이 등의 버섯을 부재료로 사용하면서 황남맷돌순두부집이 경주사람들의 선호도 일순위에 드는 요리집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황남맷돌순두부의 은근한 매력 중의 하나는 식당 방 한곳을 차지하고 있는 역사문화를 소개하는 책가방이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신라시대 역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실은 책들이다. 누구나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책들에는 손님들의 손때가 묻어 있다.
친구의 엄마나 외숙모 또는 이모 같기도 한 주인아주머니의 인심도 편안하다. 그녀의 인심을 닮아 넉넉한 밥그릇과 부족하다 싶으면 별다른 주문 없이도 밥상위로 날라주는 손들이 좋아서 황남맷돌순두부를 찾는다고들 한다. 이렇듯 신라인의 미소를 머금은 경주사람들이 있고, 거기에 어울리는 먹거리들이 있기에 힐링을 즐기려는 이들의 경주를 찾는 발걸음이 잦아지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