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은총 입어
누가복음 19장 1-1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9절)
암으로 죽어가는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교회에는 깨 오래 다녔으나 그럭저럭 믿는다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막상 암에 걸려 이제 죽을 날이 멀지 않으니 마음이 조급해지고 뭔가 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습니다. 이제라도 늦었지만 자신의 영혼과 육신의 병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었으나, 기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니 기도한번 제대로 못한 빈껍데기 신앙이 안타깝고 부끄러웠습니다. 곧 만나게 될 하나님께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중에 목사님이 문병을 오셨습니다. 목사님에게 자신의 기도하지 못하는 사정을 이야기하며 어떡하면 기도를 잘 할 수 있느냐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며칠 후에 젊은 목사님은 꽤 두툼한 책 한권을 주시면서 기도에 관한 최고의 책이라고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몸이 마를 대로 마르고 병약한 노인이 병상에서 그 무겁고 큰 책을 읽는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집중해서 읽으려 해도 생경한 단어에 문장은 왜 그리 길고 내용은 까다로운지 도저히 읽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절친한 믿는 친구에게 털어놓았습니다. 남은 목숨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기도를 하고 싶은데 기도에 관한 설교나 책들이 어려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그러자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여보게, 기도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네. 기도는 그냥 예수님과 이야기하는 거야. 자네 맞은편에 빈 의자 하나를 놔두게. 그리고 예수님이 거기 앉아계신다고 믿어보게. 빈 의자에 앉아 계신 예수님께 대화하듯 그냥 이야기 하는 거야. 그렇게 해 보게.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된다네. 그렇게 한번 해봐.”
노인은 친구의 말대로 했습니다. 날마다 눈을 떼자마자 아니 잠이 안 올 때는 그대로 빈 의자를 바라보면서 친구와 이야기 하듯 기도했습니다. 지금까지 속에 담고 있던 모든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구에게 말 못한 속에 있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쉽고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끔 빈 의자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을 가족들이 알아차리거나 주변 사람이 들을까봐 조심했습니다. 자신을 실성한 사람으로 여길까봐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날을 이런 기도생활을 계속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간병인도 이를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노인의 마음에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비록 몸은 죽을병이 들었지만 하나님께 감사가 막 터져 나왔습니다.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펴져났습니다. 옆에 있는 환우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 노인 때문에 병실의 분위기다 확 달라졌습니다. 안 믿던 자식들에게 적극적으로 전도를 했습니다. 겉보기에는 그 노인이 조금도 말기 암환자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심방오신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기도에 관한 책을 다 읽었느냐고. 노인은 빙긋이 웃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빈 의자의 정체에 대해서 말을 했습니다.젊은 목사님은 암 말기의 노인의 고백에 크게 감동하고 오히려 은혜를 받고 돌아갔습니다.
그 날 저녁에 노인의 딸이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목사님, 조금 전에 제 아버님께서 돌아 가셨습니다. 제가 잠시 외출한 사이에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어요. 아버지께서 몸을 기울여 침대 옆의 의자 위에 머리를 두시고 계셨어요.” 딸은 아버지의 죽음의 뜻을 알지 못했지만 목사님은 알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노인이 예수님의 품에 얼굴을 박고 편안하게 돌아가셨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사님이 급히 병원에 가 보니 과연 노인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산 사람 이상으로 환한 미소를 띠고 천사와 같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 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중한 죄인들이었습니다. 정말 용서 받기 어려운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그 막중한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다.
죄에서 구원 받고 은혜 받아 그리스도 예수님과 동행하니 슬픔이나 고통이 가득한 세상일지라도 그 곳이 항상 천국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돈 많이 벌고 출세하여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예수님이 함께 계시지 않으면 그곳은 어디나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성도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첫 번째 조건입니다.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네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하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저 멀리 하늘에 있습니까? 물론 거기에도 하늘나라가 있을 것입니다. 믿는 성도가 죽은 후에 갈 곳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찬송가 제 495장을 지은 C. F. Butler라는 사람은 누군지 잘 알려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도 모릅니다. 어디에 사는 사람인지도 잘 모릅니다. 알려지기는 미국의 어느 시골에서 목회하던 어떤 목사님일거라는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많은 찬송가를 지었습니다. 그의 찬송에는 항상 은혜가 있고 기쁨이 있고 감사가 넘칩니다.
찬송가 495장을 부르면서 분명하게 느끼는 것은 이 찬송가 가사를 쓴 Butler라는 분은 주님을 만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찬송의 원문에는 주님의 웃으시는 얼굴을 본 후에 멀리 느껴졌던 천국이 그의 마음속에서 시작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주님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늘 찬양하며 살았습니다. 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천국에까지 가게 될 것을 믿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가장 큰 기쁨이고 큰 감사이고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세상의 어디든 주님이 계시면 그 곳이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높은 산이나 거친 들판이나, 초막 같은 오두막집이나 넓고 화려한 궁궐일지라도 장소에 상관없습니다. 최고의 시설을 갖춘 호텔이나 고급 주택 혹은 높고 화려한 궁궐이라도 주님이 안 계시면 그 곳은 지옥입니다. 그러나 높은 산이나 거친 들판이나 다쓰러져 가는 오두막집이나 단칸 방 셋집이라도 예수님이 계시면 거기가 하늘나라입니다.
사람에게 빈부나 귀천이 문제가 아닙니다. 건강한 몸이든 병든 몸이든 상관없습니다. 멀쩡한 육신이든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불구의 몸이라도 오직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행복합니다. 어떤 모습으로든지 천국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멀쩡한 육신을 가지고 못 된 짓 다하고 악을 품으며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지옥의 백성이요 마귀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고, 높은 자리에 있지 않아도 주님을 모시고 살고 있기 때문에 천국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참으로 기쁨이 북받쳐 오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사가 가득 차고 넘칩니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주님이 계신 곳은 그 곳이 어디나 찬양으로 매워지며 감사로 채워질 것입니다.
찬송가 제 495장 후렴을 부르시겠습니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아멘.성도 여러분이 예수님과 동행하시고 여러분이 사는 곳이 하늘나라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박완서 씨가 쓴 ‘자전거 도둑’이란 책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출판된 책입니다. 작가는 그 책에서 시종 인간의 삶에는 ‘몸이 잘 사는 사람’이 있고, ‘마음이 잘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이 다시 나왔습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은 몸이 잘사는 삶을 살고자합니다.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잘먹고 잘 살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은 항상 불행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마음이 잘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잘 사는 삶, 영혼이 잘 사는 삶을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그가 있는곳은 어디든지 하늘나라가 되기를 바라며 사는 사람이 ‘마음이 잘사는 삶’을 사는 사랍니다. ‘영혼이 잘사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삭개오라는 사람은 처음에 철저하게 ‘몸이 잘 사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돈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돈을 긁어모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행복이나 기쁨은 없었습니다. 민족의 배신자라는 누명을 씻을 수가 없었습니다. 늘 갈등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뭔가 마음에 끌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뽕나무 위에 올라가 예수님을 쳐다보다가 예수님에게 들켰습니다.
예수님의 눈과 삭개오의 눈이 부딪치고 가슴이 찡해 왔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마음을 아시고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삭개오의 집에 가서 유해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는 너무 감격하여 결단을 내렸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8)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9-10)
삭개오는 예수님을 간절히 열망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제는 삶이 바뀌었습니다. 이전의 ‘몸이 잘 사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변화 되었습니다. 이제는 ‘마음이 잘 사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자신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 때문에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감사가 차고 넘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놓았습니다.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 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전에 저와 여러분은 무서운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님의 친구입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이 있는 곳이, 성도 여러분이 사는 곳이 항상 하늘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이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성도가 있는 곳은 어디나 천국입니다. 먼저 마음속에 하늘나라가, 있는 곳 어디나 하늘나라가 임합니다.
그래서 늘 감사하는 성도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늘 기뻐하며 찬양하며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